꿈을 수놓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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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레네
작품등록일 :
2024.08.3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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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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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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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DUMMY

.

.

물살을 타고 도착한 곳은 정말 화려했다. 난생 처음 보는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불균일하고 다채롭다.

그와중에 아릿함 속에 섞여있던 약간의 추억은 잠시 떠올랐다 어느새 냄새와 함께 흩어졌다.


“여기가 가장 번화한 거리야. 상상놀이를 연습하기에는 여기가 딱이지.”


눈이 내리고 하얀 햇빛이 여름처럼 내리쬐는 수영장. 둥글게 물결치는 분홍과 하양의 바닥으로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유리구슬들.


비누소녀의 말과는 달리 거리보다는 놀이동산이나 테마파크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리고 수중도시라는 컨셉에 어울리게 바닥이 없고 위아래의 구성이 상당히 자유롭다.

두리번거리는 내게 비누소녀는 주변을 가르키며 말한다.


“모든 사물들은 각자의 가게가 있어. 본인의 정신세계가 투영된 놀이터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지.”


나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 여기가 정신세계? 놀이터가 더 어울리는데? 그리고 가게라니? 가게는 보통 어른들이 무언가를 사려고 가는 곳 아니야? 들어가서 놀이터처럼 사용해도 돼?”


“에이, 걱정하지마, 괜찮아. 가게라고 꼭 정해진 용도가 있는 건 아니야! 손님에게 도움이 되기만 하면 되는 거지.”


“...가게 주인이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누소녀가 가게로 가버린다.

나도 아이를 뒤따라 빨리 가게로 들어간다.

들어가자 아까 보았던 빗방울 같은 유리구슬이 보인다.

천장의 끈적이에서 방울진 유리구슬이 떨어져 창문에 맺힌 물방울처럼 바닥을 매끄럽게 흘러내린다.

투명한 바닥 안에는 분홍과 하양의 반짝이가 흐르고 있어 유리구슬이 흐를 때마다 빛을 난반사시킨다. 정적이면서도 화려하다.

그때 나의 감상을 깨며 비누소녀가 질주한다.


우다다다다

그러더니 미끄럼틀 타듯이 슬라이딩을 한다. 공중으로 튕겨나갈만도 한데 물방울처럼 표면에 꼭 붙어 미끄러진다.

슈우웅~~

그러곤 바닥의 유리구슬을 마구 흩뿌리며 크게 웃는다. 아까의 진지한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너도 해봐, 완전 재밌어!”


민폐가 아닌지 조금 고민된다.평소 물방울들이 흐르는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서 기대되기도 한다.

이내 결심하고 나도 달려서 미끄러진다.

파도를 타는 듯한 기분과 함께 비누소녀 옆으로 미끄러진다.

그때 내 옆으로 한 유리구슬이 다가와 말을 건다. 콧수염을 달고 모자를 쓴 모습이 눈에 띈다.


“참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그냥 흘려보내긴 아까울 정도로”


‘그러게, 이런 경험 앞으로도 흔치 않겠지.’


“두 분 모습을 찍어드려도 될까요? 이 순간의 일부나마 남길 수 있을 거랍니다.”


비누소녀가 나의 동의를 구하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좋아, 친구하고 찍는 사진은 즐겁지.”


“나도 괜찮은 것 같아.”


“좋아요, 그럼 찍겠습니다.”


‘근데 주변에 사진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뭘로 찍는다는 걸까?’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나 둘 셋,


그 순간 갑자기 유리구슬이 방울방울 맺히는 슬라임 천장이 내려와 우리를 덮친다.

치즈~


으겍, 퉤퉤퉤 이게 뭐야!

눈 깜빡이셨네요, 한 번 더!


다시!

쾅...


“두 분 다 고생하셨습니다! 여기 본뜬 모형을 가져왔어요.”


방 전체를 본뜬 슬라임 천장을 말려서 내게 건넨다. 비누소녀가 구슬을 흩뿌리며 웃는 모습,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인상을 쓰는 모습, 천장을 향해 주먹질하는 모습 등이 찍혀있다.

비누소녀가 입안에 무엇가를 뱉으며 말했다.


“으, 웃다가 끈적이가 입안에 다 들어갔어.”


나는 조금 전 상황에 놀란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설마 찍는다는게 이런 것일 줄은... 아저씨 말장난 너무 구려...”


“하하 그럼 저는 이만, 다른 즐길거리도 많으니 천천히 둘러보다 가세요, 꼬마 친구들.”


다른 즐길 거리라, 주변을 둘러봐도 특별할 건 없어 보인다. 그나마 배 한 척이 눈에 띈다.


“저기 배가 왜 있는 걸까?”


비누소녀가 내 시선을 따라 배를 보더니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른 듯 신나 보이는 말투로 말한다.


“글쎄, 사실 여긴 바다였던게 아닐까? 하지만 지금은 메말라 버려서 굳어버린 바닥을 타고 흐르는 구슬만이 유일한 흔적으로 남은 거지”


비누 소녀가 갑자기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한다. 뜬금없지만 왠지 재밌어 보여 나도 한마디 해본다.


“그래서 굳어버린 바다를 다시 깨우고 바닷속 보물을 얻기 위해 우리가 온거야!”


“아니야, 우린 그런 속보이는 이유로 온 게 아니라고”


“바다로 떨어져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물방울들을 위해 온 걸로 하자”


그러곤 바닥의 구슬 하나를 주워 들고는 인형극 하듯이 말한다.


“저는 바다를 떠나 세상 곳곳을 여행했어요.

멋진 풍경, 좋은 친구, 소중한 상대,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떠나기에는 너무 많은 걸 바다 밖에 만들었지요.



하지만 저는 알았어요, 바다에겐 제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설령 제가 사라져 바다에 녹아내려 바다와 하나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바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우리의 생명의 요람은 굳어 있었어요. 그건 더이상 생명이 아닌 물체였고, 역동적인 과정이 아닌 멈춰버린 결과였어요.

모두 바다로 돌아오지 않았던 거지요.”


나도 유리구슬 하나를 들고 말한다.


“그때 한 유리구슬이 말을 걸었어요.”


“바다로 돌아가는게 뭐가 무섭다고 이러는 건지, 어차피 우리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뿐인데”


“저는 속으로 그건 아니라고 외쳤어요. 소중한 것을 버리고 자신을 잃는 것이 아무것도 아닐 리가 없어요. 그때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우리를 죽이던 바다가 굳어버리다니 참 다행이지.”


“아니에요. 아무도 태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 어떻게 다행인가요?”


“그때 제 마음속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나는 비누소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럼 너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니?’


비누소녀가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곤 내 대사를 흘리고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저는 제가 바다를 위해, 태어나지 못한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고민했어요.

그래서 바다 위를 굴러다니기로 했어요.

멈춰버린 바다를 구르며 빛을 반사시켰어요.

조금이라도 이 세상을 느낄 수 있길 아가들아!

마치 말라버린 바다 대신 흐르는 눈물처럼 멈춰버린 세계에 조금의 생기라도 생겼으면 하며...”


우리는 가게를 나와 거리를 걷는다.

“역할극 같아서 재미있었어, 방금 한 게 상상놀이야?”


“비슷해, 다음에 할 게 더 상상놀이 답지만.”


비누소녀가 두 손을 앞으로 펼치며 말한다.

“자, 도착이야”


다른 가게에 다다르자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원을 그린다.

그리고 원의 일부를 지운다.

그러면 지워진 부분에서 선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지금 이 느낌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서있다.

마치 세계가 사물들을 그려 나에게 인식시킨 후 그린 것을 지우고 나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것들은 거기에 있다고, 나는 기꺼이 세계의 꼬임에 넘어간다.


“재미있지? 오감으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뭐가 있는지 정확하게 인식되잖아.”


“머릿속으로 직접 정보가 흘러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고”


비누소녀의 말대로 오감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다.

때문에 느껴지는 대상이 단순한 관념인지 실체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럴 때 보면 너는 조금도 아이같지가 않단 말이지.”


“뭐? 나는 기포도 없고 딱딱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신경쓸 필요 없어, 내가 알고있는 아이는 조금 달라서 말이야”


“그게 뭐야, 그리고 너도 좀 이상하거든.”


“가끔 다른세계에서 온 것 같단 말이야.”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자연스레 화제를 돌려본다.

“근데 어떻게 느낌만 있을 수 있는 걸까?”


“여기는 누군가의 정신세계니까.

이곳에서는 위치, 색, 모양, 질감 등 한 대상의 분리할 수 없는 것들을 따로 분리시킬 수가 있어.

주인의 상상에 따라 현실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고.”


화제를 잘못 돌린 것 같다.

신나서 설명하는 상대한테 실례되는 생각이지만 애가 말을 뭐 저렇게 어렵게 하는지... 하긴, 애초에 누군가의 정신세계인데 어떤 일이 발생하든 이상할 것 없다.


“근데 여기는 신기하기만 하고 할게 없는 것 같은데?”


비누소녀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드러눕는다.

“자, 너도 옆에 누워.”


비누소녀가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며 말한다.

“그리고 눈을 감아.”


일단, 말에 따라 누워서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있으니 의식이 멍해지고 아무 생각이나 마구 떠오른다.

그러나 멍하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도 세계가 느껴진다.


“어때, 아직도 이 세계가 느껴지지?”


그러곤 내 손을 조심스레 잡는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비누소녀의 생각이 내 머릿속에 흘러 들어온다.

흘러들어온 생각은 내가 떠올린 생각처럼 이질감이 없다.


“내 말 들리니?”


내가 긍정의 개념을 떠올린다. 이것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하다.


“자 그럼 상상놀이를 시작하자.”


내가 느낌의 세계에 서있는 상상을 한다. 비누소녀도 호응하듯이 내 옆에 나타나는 상상을 한다.

비누소녀가 붓을 꺼낸다. 그리고 내게도 하나 건넨다.


“색칠놀이를 해보자.”


“음... 여긴 시각 정보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실체가 없는 단순 개념도 있는데 칠해질까?”


“으으으으, 방금 조금 어른 같았어, 안된다고 생각하니까 안되는 거야!”


“자 빨리 어울리는 색으로 꼼꼼히 칠해.”


그러고 보니 조금 궁금해진다.

개념을 칠하면 어떤 모습일까?

개념에 대응되는 정신세계의 주인의 경험이 나타날까?

아니면 상징적인 모양이 나타날까?


개념으로 보이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 사랑과 비슷한 감정인 것 같다.

주인이 정말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다.

궁금증을 풀 겸 색을 칠해보자 뇌가 특정 패턴과 호르몬으로 활성화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내가 다른 것을 떠올리자 하트 모양의 물체가 나타난다.


맞다, 여기는 내 상상이었지.


느낌 세계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그저 나의 해석이 나타난다. 조금 실망스럽다.


“어때 칠해지지?”


나는 조금 기죽은 목소리로 답한다.


“근데 진짜 모습이 나타나지는 않는 것 같아.”


그러자 비누소녀가 핀잔을 준다.

“당연하지, 상상놀이인데 우리의 상상이 아니면 무슨 소용이야?

니 말대로 느낌세계는 느낌세계 대로 놔두라고, 괜히 눈으로 보려하지 말고.”


비누소녀가 칠한 것도 관찰해본다.

아이는 아이인 걸까, 칠한 것 대부분이 일관성이 없고 정신없다.

보석 아이스크림에는 크리스마스 때의 집의 모습이 갇혀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은 그 안에 타고 있는 난로에 녹아내리며 집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은 웅덩이를 만들어 아직 ‘색칠되지 않은 풍경’을 비추고 있다. 왠지 그 웅덩이에 비친 풍경이 나를 빨아들이는 듯하다.

나는 웅덩이에 달라붙는 물방울처럼 웅덩이에 빨려 들어간다.

혼자 남겨진 비누소녀는 어리둥절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떻게 사라진 거지? 분명 연결은 끊기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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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3 13 0 13쪽
5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2 12 0 11쪽
4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1 1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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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0 3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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