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수놓는 마법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시니레네
작품등록일 :
2024.08.30 12:24
최근연재일 :
2024.09.13 22:42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30
추천수 :
0
글자수 :
87,661

작성
24.09.12 23:27
조회
5
추천
0
글자
13쪽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DUMMY

서하는 그저 굳어 있다. 아직 서하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나는 지금 투명이의 발자국을 만들어낸 바닥에게 말을 걸었다.


“왜 이런 짓을 한거죠? 왜 우리를 기만하나요?”


“...투명이라는 상상 속 캐릭터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관념이야. 마치 인간이 양심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지.


하지만 너희도 알다시피 투명이는 실존하지 않아. 그래서 우리는 투명이를 연기하게 되었어. 마치 실제로 있는 존재처럼.


모두가 있다고 믿으면 그건 실제하는 거니까.


반대로 실제로 있다고 해도 아무도 모른다면 그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우리의 창조자께서는 이렇게 말했어.”

[현실이란 모두가 함께 꾸는 환각입니다.]

.

.

진실과 거짓, 진짜와 가짜는 무엇이 구분 짓는가?

.

.

나는 지금 저녁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아 있다. 너무나 넓은 이 식탁을 바라보고 있자면 자유로움과 공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나는 나의 앞에 멀리 떨어져 있는 비아나를 바라봤다.


나는 입을 뻐끔거리다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다시 닫았다. 그리고 다시 말을 고른 후 드디어 밖으로 내뱉는다.


“내가 투명이를 실체로 만들 수 있었어. 너에게 했던 것처럼.”


“그러면 투명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이 아니잖아. 꼭 실체가 있어야 할까?”


“너도 알잖아. 사람들은 실체가 없으면, 그저 누군가의 상상에 불과하다면 그걸 실제라고 생각하지 않아. 가짜라고 느낄 뿐이야.”


비아나가 나의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뜬다.


“너도 그렇니? 그래서 나를 꿈 속 인물에서 실존하는 존재로 바꾼거야?”


“그땐 너가 사라질까봐 그런거야. 절대 너를 가짜라고 생각해서가 아닌 거 알잖아. 그냥 지금 이 얘기를 하는 건 서하가 걱정돼서야. 서하는 분명 투명이의 정체에 충격받았을 테니까.”


“...미안해. 갑자기 흥분해서....그래도 나는 그렇게 마음대로 세계를 주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그건... 그들의 세계를 부정하는 거잖아.”


“나도 그렇게 함부로 힘을 쓸 생각은 아니야. 그냥 심란해서 뱉어버린 말이었어.”


잠시간의 정적.


“일단 투명이 일은 나중에 생각할까? 언제든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니까. 서하 말도 좀 들어보고.”


“...그래, 그러자.”


“가게 주인이 나에게 제안했다는 거 기억나지?”


주방에 있던 그림자씨가 나의 말에 반응한다.


“신성이 강림한 이유. 그건 이 세계를 ‘여러 신의 상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어. 그러면 이 세상이 더 진실해질 것이래. 이에 협조해 달라고 나에게 제안했어.”


“공통의 상상은 진실되다. 어째 투명이 일하고 비슷하네.”


그림자씨가 음식을 주위에 띄우고 다가와 식탁에 앉는다.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신성집단 중 하나를 우군으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구나.”


“그들이 세상을 망치고 있어요.”


“그건 그들을 배척하건 포용하건 일어날 일이란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진실과 거짓의 신은 온건파야. 자신들의 신성으로 세상을 물들이는 것보다는 충돌 없는 화합을 추구한단다. 내 말은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말라는 거란다.”


“...생각해 볼게요.”


***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

.

그러나 새는 꼭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가?

.

.

“서하야 어제 잘 들어갔어?”


“응.”


“피곤하지는 않아?”


“응.”


“...괜찮아?”


서하가 고개를 돌린다.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의 움짐임도 순간의 떨림도 없는 고요함.


“어.”


무언가 덧씌워진 느낌.


덧씌워진 것과 덧씌워짐 당한 것.

껍질과 과육.

둘 중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다.


한서은이 우리의 말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옮긴다. 이내 앙증맞은 입을 오물거려 말을 뱉어낸다.


“얘 왜 이래? 어제 뭔 일 있었나?”


“아니, 별일 아니야.”


시간이 필요할 거다. 그런데 정말 저대로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속을 일부러 헤집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고민하다 옆에서 계속 지켜봐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떻게 하면 서하와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을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우리 같이 놀러 갈래?”


“우리끼리? 어른들이 위험하다 생각하지 않을까?”


“무슨 상관이야. 남들이 뭐라 하든 나를 막을 수는 없을걸?”


아무래도 얘도 감시가 필요해 보인다.


“그래, 그러자. 서하도 오케이?”


“응.”

한서은이 우리를 데리고 텔레포트한다. 텔레포트의 빛에 휩싸인 후 감았던 눈을 뜬다.


넓은 들판이 나의 초점을 뒤로 보낸다. 여러 마력변질된 동식물들이 밀도 있게 펼쳐져 있다.


잡념이 사라지는 풍경이지만 넉놓고 바라보기만 할 수도 없는 곳이다.


나는 곧장 아이들에게 공격을 법칙단위에서 와해시키는 방어막을 전개했다.


마력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마력의 등장 이후 생태계는 매우 변화무쌍해졌으며 그만큼 위험해졌다.


게다가 요즘 신성의 침식으로 이현상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서은 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가 사고치기 전에 이런 건 좀 일러둬야겠다.


“여기야! 내 친구들이 있는 곳! 날씨도 화창하고 딱 좋네.”


“...너 전에도 여기 온 적 있어?”


“응. 거의 매일 오는 곳인데? 괜찮아. 그렇게 위험한 애들은 없어. 다들 나의 놀이에 잘 어울려주는 착한 아이들이야.”


서은이가 살짝 음산한 분위기를 띄며 말한다. 생각해보니 정신을 조작할 수 있는 서은이에게 동물은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눈에 띄는 동물을 제외해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혼자서 이런 곳에 오면 위험해. 다음부터는 꼭 날 불러.”


“내 친구들이 탐나는구나. 아니면 내 놀이에 관심이 있는 건가? 뭐든 괜찮아. 새 친구는 언제나 환영이야.”


음... 뭔가 벽에다 대고 말하는 느낌인데. 그림자씨에게 말하든가 해야지 뭐.


우리는 서은이의 소개를 따라 크기, 모양, 행동양식 등이 다양한 생물들을 구경했다.


공중에 떠다니는 해파리, 물감 같은 액체 생물, 웬만한 산보다 거대한 골렘 등등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자, 이제 소개도 끝났으니 역할극을 시작하자.”


이 많은 생물들을 데리고 어떻게 역할극을 한다는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곧 펼쳐지는 현상에 예상치 못한 답을 얻었다.


생물들이 서은이의 지휘에 따라 이야기의 배경을 형성한다.


단단한 생물들이 형태를 잡고 거기에 액체의 생물들이 달라붙어 디테일한 모양과 색을 낸다.


순식간에 기이한 건축물이 세워졌다. 비아나가 이 모습을 보고 놀란다.


“이래도 되는거야? 너무 불쌍한데.”


“그럼. ‘도시’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데. 내 친구들은 이 역할을 정말 좋아해. 봐봐, 다들 기뻐하잖아.”


서은이가 그렇게 말하자 생물로된 도시가 웃는 것처럼 들썩인다.


“이야기의 무대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거든. 다른 놀이에 비유하면 사회자 같은 역할이려나? 보면 알거야.”


아무리 봐도 사회자는 재밌는 역할이 아닌데. 일단 넘어가자. 서은이와 정상적인 소통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그럼 지금부터 성으로 들어가자. 우리의 역할은 무시무시한 괴물을 물리친 마법사 일행이야.”

성이 아니라 거대한 괴물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지만 말이지.


“[마법사 일행은 위협으로부터 성을 지켜내고 드디어 귀환했습니다.]”


서은이가 서술자 역할을 겸하며 역할극을 이끌어간다.


“우와, 저길 봐! 시민들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어. 건물들도 신났는지 들썩이네!”


비아나가 신나하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적응력이 뛰어나다.


아이들이 한참 놀이에 빠져있는 사이 나는 조용히 일행에서 빠져나왔다.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현실이라는 꿈속에서 자각몽을 꾸고 있는 나만이 알아챌 수 있는 힘. 꿈을 만드는 자들의 힘.


바로 신성이다.


이 도시에 은밀히 섞여들어 있다. 이미 상당량이 생체도시를 침식했다. 지금도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중이다.


서은이가 매일 여기서 논다고 했으니 이를 노려 생물들이 뭉치는 지금 신성을 퍼트린 것일 수도 있다.


지금 당장 처리하고 싶지만 신성처럼 변수가 많은 힘은 함부러 건드려서는 안 된다. 찝찝하긴 하지만 일단 아이들과 합류하자.


“너 어디갔다 왔어.”


“이상한 게 있어서 잠깐 확인하고 온거야.”


“말 없이 사라지지 말라구.”


비아나의 꾸중을 듣는 사이 이변이 일어났다. 생체도시가 꿈틀거리며 형태를 바꾼 것이다.


“이런! 길을 잃어버렸어. 어떻게 하지?”


이게 방금 서은이가 말한 세계의 무대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역할인 거구나.


이야기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신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역할임은 분명하다.


처음에 생체도시를 봤을 때는 그저 기괴하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서은이 나름대로 재미를 주기 위해 공들여 설계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저런 역할은 좀 그렇다.


“막다른 길목이라니 기대되는데? 대체 뭐가 나올까?”


비아나는 완전 이야기에 빠져서 즐기고 있다.


“흠. 내 경험상 이쪽의 지하동굴이 맞는 길일 거야.”


한참 침묵을 지키고 있던 서하가 질색한다.


“...완전 아닌 것 같아.”


“왜, 앞에 뭐가 있을지 완전 두근거리지 않아?”


지하동굴은 생물체들이 엮여 꿈틀대고 있다.


마력변질이 일어난 생물들이라 인공물과 자연물 그 사이 어디 쯤에 위치한 생김새이다. 때문에 그리 그로테스크하지는 않다.


하지만 밀폐된 대다가 어두컴컴하기까지 해서... 좀 그렇다.


“다들 나만 믿고 따라와! 마법사 일행에게 두려움 따윈 없다!”


아이고 난 몰라.


동굴 안은 생각보다 볼만한 관경이었다.


투명한 발광 생명체들로 이루어진 탓에 징그러움보다는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마치 서하의 머리카락을 보는 듯한 모습이다.


그때 서은이가 무언가 이상한 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한다.


“이상하네. 나는 이런 친구들은 본 적이 없는데.”


“뭐? 너가 환각으로 조종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내 환각에 빠진 건 맞을거야. 특정 범위에 있는 생명체는 모두 환각에 빠지는 마법을 썼거든. 그래서 내가 알든 모르든 상관없어. 그래도 뭔가 이상해.”


서은이가 마력발광 생물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뭔가 마법에 저항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힘이 개입된 것 같기도 하고?”


잠깐, 다른 힘?


잘 보니 소량의 신성이 현실을 침식해 있다. 이걸 내가 왜 눈치채지 못한 걸까.


아니, 보나마나 너무 이 세상에 몰입해서 자각몽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 거겠지.


처음 꿈의 배역에 몰입했을 때에는 이 세상에 적응했다고 마냥 좋아했는데 신성을 감지하는 데에는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그런데, 왠지 서하를 닮았는데? 뭐랄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


그 말을 듣자 나는 반사적으로 서하를 쳐다보았다.


확장된 동공, 흔들리는 눈빛, 여러 감정들이 섞인 복합적인 표정.


서하의 얼굴에 수많은 감정들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그것들은 물밀 듯이 들어와서 서하의 머릿속을 장난기 많은 요정들처럼 어지럽힌다.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이런 말괄량이 를 다루는 데 매우 미숙하다.



순수한 아이들은 그들의 장난을 너무 적나라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그것은 아이들에게 때로는 이뤄 말할 수 없는 삶의 동기로, 아니면 지금처럼 너무나 적나라한 난도질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감정들은 늘 그러하듯 선도 악도 아니라 어떠한 탓도 할 수가 없다. 서하에게 저 감정은 어떤 것일까.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칼날일까


아니면 정신 깊이 침투하는 따뜻함일까


서하의 반응을 살핀다.

서하는 그 감정들에게 고통받으면서도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려는 듯 계속해서 곱씹는 듯 보인다.


어쩌면 서하의 삶은 긍정과 부정으로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사연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하의 이러한 격정적이면서도 미묘한 반응을 보니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론 호기심이 피어오른다.


서하가 반응한 저 생체발광 생물들은 신성을 품고 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당장 텔레포트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곳을 떠난다면 서은이의 마법이 사라지면서 생체도시는 무너질 것이다. 신성에 대한 단서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신성은 소량이니 계속 탐사를 이어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나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지금 놓치면 이 눈덩이가 얼마나 불어날지 모른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미리 처리하는 게 낫다. 일단 비아나에게 지금 상황을 전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꿈을 수놓는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가 24.09.13 5 0 14쪽
»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24.09.12 6 0 13쪽
14 가게 24.09.11 7 0 13쪽
13 가게 24.09.10 7 0 13쪽
12 가게 24.09.09 8 0 12쪽
11 입학 24.09.08 10 0 11쪽
10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7 11 0 12쪽
9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6 10 0 13쪽
8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5 11 0 12쪽
7 시작 24.09.04 13 0 14쪽
6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3 12 0 13쪽
5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2 11 0 11쪽
4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1 13 0 10쪽
3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1 16 0 11쪽
2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0 34 0 10쪽
1 평범한 누군가 24.08.30 57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