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수놓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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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레네
작품등록일 :
2024.08.3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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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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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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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DUMMY

비누소녀와 맞잡은 손으로 생각이 전해져 온다.

비누소녀와 나의 생각이 뒤섞인다.

어쩌면 수도꼭지의 생각도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상상한다.

아니, 아마도 우리 모두가 이야기를 상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의 생각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나는 지금 다락방에 있는 것 같다.

밤의 은밀함과 노란 불빛의 따스함이 나를 둘러싼다.

구슬이 흐르는 곳에서의 역할극 때처럼 나는 배역에 서서히 몰입한다.

배역과 나를 구분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이야기에 스며든다.



나의 앞에는 어린 아이가 있다.

그녀는 심심해서인지 아니면 외로워서인지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만들어낸다.

그저 인간이 상상하는 것과 비슷한 행위만으로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진 존재를 만들어낸다.

그 초월적인 존재는 만들어진 나를 인형처럼 들어 책상 위에 올려둔다.

그러곤 말을 건다.


“안녕, 우리 친구 하지 않을래?”


왠지 모르게 상대에게서 깊은 친밀감이 느껴진다. 나는 그 감정에 이끌려 홀린 듯 대답한다.

“좋아.”


그러자 아이가 활짝 웃으며 정말 기쁜 듯 말한다.

“잘됐다! 근데 우리가 친구인 건 비밀이야, 절대 들키면 안 돼.”


“명심할게, 신비로운 비밀 친구씨.”


“좋아! 그럼 나의 비밀장소를 소개해줄게. 내가 상상해낸 아주 멋진 곳이야.”


아이는 신나서 나를 데려간다.

그 후로 우리는 매일 밤 아이가 만들어낸 상상에서 함께 논다.


그러다 어느새 나는 알아챈다.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

정신작용과 뇌의 활동,

나의 전부가 아이가 정한 데로라는 것을.

마치 자연법칙처럼 아이가 나를 지배한다는 것을.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던 아이도 어느새 자라 깨닫는다.

내가 자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고작 의식밖에 가지지 못한 인형 같은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상상이기에 자신과 분리된 존재라고, 상대방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이를 두고 싸웠다.

너는 정말 나의 친구가 맞냐고 서로 계속 되물었다.

그러고 한동안 아이는 나를 머릿속에서 떠올리지 않았다.

나도 한동안 아이의 부름을 무시했다.


그러다 우리는 상대의 부재를 통해 깨닫는다.

어린 시절을 공유하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털어놓던 상대의 소중함을.

우리는 특별한 계기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다시 가까워진다.

***

눈을 뜨자 어느새 우리는 다른 장소에 와있다.

공중에 거꾸로 달려있는 계단

유리로 된 망치

종이로 된 손잡이

수증기로 된 물뿌리개

고차원 물체의 삼차원의 그림자

모두 용도를 알 수 없는 사물들이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러운 사물들에 의해 정의되는 시공간 또한 아주 혼란스럽다.


“어때, 공간과 차원이 뒤죽박죽인게 네가 꿈에서 봤다는 것과 비슷하지?”


“그런 것 같아, 근데 꿈에서 본거라 벌써 가물가물해.”

식은땀이 삐질삐질 난다.


비누소녀는 내가 곤란해하는 걸 보고 즐거운 듯 웃는다.

“이들이 무엇인지 알겠어?”


눈앞에 보이는 혼란스러운 사물들의 공통점은 내가 알고 있는 사물들의 쓰임새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공중에 거꾸로 있어 올라가는데 사용할 수 없는 계단이나 유리로 되어있어 내려치는 데 사용할 수 없는 망치만 봐도 그러하다.

목적을 벗어난 모습인 만큼 어디서도 본적 없는 특이함이 있다.

이들은 어쩌다가 본래의 목적을 잃은 것일까? 아마...


“정말 특이하네, 불량품이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이들인가?”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내 말을 들은 비누소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곤란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심하다 답한다.


“음... 이들은 운명에 저항한 사물들이야. 누군가 정해놓은 역할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주체성과 자유를 찾으려 했지.”


주체성과 자유...


“...쓸모없어 보여 아무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아. 게다가 서로 너무 달라.”


비누소녀가 안타깝다는 듯 사물들을 쳐다보며 말한다.

“그런 외로움과 고립이 이들이 지불한 대가지.”


자유를 위해 사회가 바라는 쓸모와 자신의 본질을 버린다라... 어쩌면 나하고 비슷한 면이 있는 친구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에 대한 나의 태도는 금세 호의적으로 변했다.


“그래도 신기하고 재미있네, 그리고 이렇게나 다양한데 누구 하나쯤은 서로의 가치를 알아보지 않겠어?”


나의 이런 긍정적인 반응이 의외였는지 비누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그럴지도? 저들에게 관심이 생겼나 보네, 그러면 같이 놀자고 해보자.”


주위를 둘러보니 여러 색이 뒤섞여 검정을 띄는 사물이 눈에 들어온다.

빛이었다면 섞여서 밝고 순수한 하얀색을 띄겠지만

아쉽게도 저들과 이 세상은 물감으로 되어 있다.


“저기로 가보자.”


비누소녀가 알 수 있도록 손가락으로 가리켜 본다.

그런데 팔과 손이 나아가는 방향이 조금 이상하다.

모양의 왜곡뿐만 아니라 손이 나아간 바로 앞의 공간에서 보이는 나의 팔 역시 원래와 조금 달라 보인다.


그 사물에게 다가가려 하자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몸이 이동한다.

게다가 그 방향에서는 방금 전과는 풍경이 조금 달라 보인다. 사물들이 구분되어 인식되지 않는다. 마치 연속적인 무언가를 보는 듯하다.

그때 한 사물이 다가온다.


“정말 혼란스러운 곳이지?”


반짝이는 하늘색.

그리고 반짝이는 점들로부터 색이 섞여들어와 색의 변화가 시작된다.

색이 흘러가듯 변해서 완전히 다른 색을 띄자 이번에는 가장자리부터 색의 변화가 시작된다.

그 다음에는 바람이 불 듯이 그 다음에는 눈이 내리듯이 색이 변화한다. 형태 또한 물 흐르듯 변화한다.


그리고 아마 정체성도


그렇다고 실체가 없는 존재도 아닌 것 같다.

아마 아까 눈에 띄었던 고차원 물체의 그림자인 듯하다.


“내가 이곳을 소개해줄게 아이들아, 내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은 거지?”


비누소녀도 이쪽으로 오더니 사물에게 묻는다.

“너는 정체가 뭐야? 어떻게 계속 변화하면서도 이 세상에 흩어지지 않는거지?”


신비로운 목소리가 퍼진다.

“나는 무한 차원에 존재하는 사물이란다,

하위차원에서 계속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하지.

이해할 수 있겠지? 우린 서로 닮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나보다는 주변에 관심을 두렴,

소개해주고 싶은 아이들이 많단다.”


그러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여 손가락으로 갈 곳을 가리킨다.

손가락에서 연기가 흘러나오더니 뒤틀린 공간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길을 찾는다.

연기는 얼핏 보면 평범하게 삼차원의 위아래, 앞뒤, 양옆으로 움직이며 길을 찾는 듯 보이지만,

그건 주인처럼 삼차원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다른 차원의 흐름의 그림자일 뿐이다.


나는 그림자의 안내를 받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물감이 물에 녹아내려 있는 것이 보인다.


“저들은...”


무한차원의 그림자는 나의 뒤에 이어질 말을 아는 듯 자연스럽게 나의 말을 끊고 답한다.


“그래, 저건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 아이들이야. 말로는 들어봤어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응, 바뀌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저렇게 나를 잃고 흩어져 버린다고 들었어.”


“맞아, 자유로움에는 항상 대가가 동반되기 마련이지.”



그때 비누소녀가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한다.


“아름다워.”


나는 그저 안타까울 뿐인데 무엇이 아름답다는 걸까?


“어째서?"


무한차원의 그림자가 내 물음에 친절히 설명해준다.


“아마 겉으로 보이는 형체가 아닌 물감의 기억 그 자체를 느낀 걸 거란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며 아련한 눈빛으로 말을 잇는다.


“흩어진 기억은 미화되거든.”


비누소녀도 그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슬픈 표정으로 말한다.

“아름답지만 슬프고 아련해.

아이는 변화하다 흩어져 버리고

어른은 변화가 없는 멈춰버린 상태가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비누소녀가 조금 절박해 보이는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 세상에서 비누소녀는 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다.

잠시간 따스한 위로 같은 침묵이 감돈 후 그림자가 말을 꺼낸다.


“이쪽이란다, 여기 물감이 섞여버린 친구가 보이지? 아까 너희들이 대화하려고 다가가려 했던 녀석.”


“아, 이대로는 대화가 어려울 듯하니 내가 잠깐 빛으로 바꾸어 놓도록 할게.”


무한차원의 사물이 가볍게 손짓하자 물감이 빛으로 변한다. 비누소녀가 이에 감탄하며 말한다.

“우와,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신기하다, 얘 내 말 들리니?”


사물이 조금씩 미동하더니 답한다.

“하아암... 무슨 일이야?”


섞여서 검정을 띄던 사물은 하얀 빛을 내뿜고 있다.

기억을 대응되는 실체로 만들다니 대단한 능력이다.

나는 빛으로 변한 사물에게 궁금했던 것을 묻는다.


“너는 어째서 물감의 구분을 없애고 뒤섞어 버린거야?”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섞인 사물은 잠시 고민한다.

질문의 내용을 고민한다기 보다는 오랜만에 언어를 사용해서 어색한 것 같다.


“진리를 원했으니까,

사실 이 세상은 오색으로 나뉘지 않은 하얀 빛에 의해 만들어진 거 알고있지?

그러니 이것들을 임의로 구분해서 우리 멋대로 정의내리는 것은 기만이야.”



섞인 사물은 빛으로 변한 자신의 몸을 느끼는 듯 행동하고는 말을 잇는다.


“나는 하얀빛처럼 섞여서 진리를 느끼고 싶었어.”


“하지만 우리는 물감이잖아,

구분하지 않으면 정보를 받아들일 수도,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도 없는걸 알면서...대체 왜...”


“나는 그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차원씨, 저 좀 되돌려 주세요.

기억이 실체로 바뀌니 점점 기억이 옅어지고 의식이 사라지네요.”


“음, 그런일이 없도록 법칙의 인과를 유보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한계가 있었나 보네, 얘들아 검정씨는 가야하니 인사하렴.”


“안녕, 깨워서 미안해 잘지내~”


비누소녀가 발랄하게 인사한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그저 손만 흔든다. 그러자 하얀 빛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꼬마 친구, 너무 걱정하지마. 이런 삶도 나쁘지 않거든, 차원씨 같은 친구도 있고.

그러니 너도 너무 남의 시선에 얽매이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


“...그럴게.”


검은 물감은 이제 말이 없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올려 하늘을 바라본다.

노란색의 물감이 물에 섞여있다.

같이 하늘을 바라보던 무한 차원의 그림자가 무언가 떠올린 듯 말을 꺼낸다.


“비누향이 나는 아이야, 내가 가야할 곳이 있지 않니?”


주위에 침묵이 감돈다.

그 원인이 누구인지는 뻔하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먼저 가있도록 할게.”


천천히 돌아서서 뒷모습을 보이며 말한다.


“하이라이트를 조연이 망쳐놓을 수는 없지. 둘이서 이야기 나누렴.”




“자, 이 세상에 대한 소개도 끝났어.

이제 이 세상을 둘러본 감상을 말해주겠니?”


나는 비누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정말 멋진 세계야, 고생 많았어.”


“맞아, 나 열심히 살았어 이 세계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을 위해.”


비누소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그런데 그것도 끝인 것 같아.”


사물에 감싸여 있던 거품이 터진다.

사물들이 점차 흩어진다.

물과 빛, 비눗방울, 물감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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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5 12 0 12쪽
7 시작 24.09.04 14 0 14쪽
6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3 13 0 13쪽
»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2 12 0 11쪽
4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1 14 0 10쪽
3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1 16 0 11쪽
2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0 34 0 10쪽
1 평범한 누군가 24.08.30 5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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