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수놓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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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레네
작품등록일 :
2024.08.3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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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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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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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DUMMY

감겨있던 눈을 뜬다.

흐릿한 시야의 초점을 맞춘다.

맞춰진 초점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둥근 물체이다.

단순한 원은 아니다.

일차원의 점, 이차원의 원, 삼차원의 구.

그리고 나의 이해를 벗어난 다른 차원의 완벽한 모양들이 중첩되어있다.


비누소녀의 생각이 전혀 나에게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여긴 비누소녀의 무의식인 것 같다.

생각이 공유된 상태에서 서로 단절되려면 이 경우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본인은 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본인의 무의식으로 들어올 수 없으니까



다시 눈에 보이는 관경에 집중해본다.


물체를 다시 보니 단순히 차원의 개념에서만 완벽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건 마치 완전한 주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듯한 모습이다.


물체 주위로는 여러 세계가 흐르고 있다.


여러 차원의 세계가 연속적으로 흘러간다.


차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세계들이 흘러간다.


세계의 강은 완전한 물체와 공명하며 물체의 인도를 따른다.


이게 아마 비누소녀가 나의 구슬을 울리고 비눗물을 조종하는 능력의 실체일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세계를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비누소녀가 걱정하고 있을 테니 여기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찾는 게 먼저다.


비누소녀가 나의 구슬을 울리던 모습을 잠시 떠올린다.

나는 흐르는 세계에 몸을 던져 세계와 함께 물체와 공명해본다.

그때처럼 ‘나’ 자체인 구슬이 울린다.

구슬 모양의 동심원이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나’ 자체가 세계에 퍼져나가며 영향을 주는 신비로운 느낌이 다시 나를 덮친다.

곧이어 나는 나를 끌어들였던 웅덩이로 다시 튀어나왔다.


“뭐하고 있었어? 한참 찾았잖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답한다.

“잠깐 잠에 들었어.”


그러자 비누소녀가 마치 부모님이 다 알고 말할 때처럼 무서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흐으음...그건 아닐 텐데~”


...이거 진짜 알고 말하는 거지?

여기가 잠을 잘 수 없는 꿈속이라는 것도,

내가 그녀의 정신세계에 갔다온 것도.


나는 머리를 굴려 극적으로 타협하여 말한다.

“그리고 꿈에서 점, 원, 구가 중첩된 물체와 그 주위를 흐르는 세계들을 봤어.”

나는 비누소녀의 정신세계에 들어갔던 것을 꿈을 꾼 것으로 착각한 듯이 말한다.


비누소녀가 한 번 봐준다는 듯 장단을 맞춰준다.

“아~, 거기? 내가 거길 좀 잘 아는 데 궁금한 거 있니?”


역시 내가 말하는 곳이 본인의 정신세계라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던 곳이라 궁금한 점이 많다.

혹시 답해줄지 몰라 기대 어린 마음을 담아 물어본다.


“응, 말해줄 수 있어?”


“아니.”

?

“괘씸해서 안되겠어.”

비누소녀가 삐진 듯 돌아선다.


“근데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알아, 지금은 말고 다음에 갈 계획이야. 준비 됐으면 출발할까? 아니, 출발할래.”


비누소녀가 도망치듯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마치 여기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비밀이 숨어있는 듯이.

물살에 이끌려 이동한다.

이제는 이것도 익숙하다.

그런데 여러 소리가 섞여 있는 물살의 백색소음에 한 소리가 섞여 들린다.



가지마 가지마


내 곁에 있어줘


깨어나지 말아줘 나를 위해


그리고 잊어줘 나를 위해




물살을 타고 도착한 곳은 밝은 빛이 굴절되고 있는 신비로운 장소이다.

하얀 빛이 물에 굴절되고 나뉘어 여러 색과 모양을 띄고 있다.

그리고 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물감이 남는다.

물은 남겨진 물감을 사물로 빚어내고 있다.

"이곳은 사물들이 태어나는 곳이야."

“마침 저기 수도꼭지가 태어났네, 보러 가자.”



수도꼭지가 태어난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사물들을 빚어내고 있는 비눗물의 물살이 느껴진다.


직선으로 쭉 뻗어나가는 물살


부드럽게 휘어지는 물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물살


특정 패턴을 그리는 물살


다양한 물살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여러 음이 합쳐진 백색소음이다.

백색소음에 귀를 기울이니 물살 하나하나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빛을 이렇게 왜곡하는게 좋을 것 같아.”

“아니, 이 사물에는 빛을 이렇게 왜곡하는게 더 알맞을 거네.”

“너무 뻔하잖아, 차라리 이렇게 하자.”


비누소녀는 신기해하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나는 돌아보며 비누소녀에게 말한다.


“비눗물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비누소녀는 회상에 빠진 듯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한다.

“정말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음... 나도 한때는 그들 하나하나를 이해해보려 했지.”


하나하나라, 하지만 그들은 섞여있다.


“그럼 이 비눗물은 하나인 거야 여럿인 거야?”

...

말이 없는 그녀의 눈을 잠시 응시해본다.

회상에 젖은 눈, 그러나 공허한 눈.

그리고 이 상충하는 느낌에 대한 감상으로 씁쓸한 뒷맛.


그 공허함은 회상의 내용에 대한 공허함이라기 보다는 회상이라는 행위 자체의 거짓됨에서 비롯된 듯하다.


“비눗물에 섞여 있는 비누들은 한때 비눗방울이었어.”


“그러다 모종의 이유로 물에 녹아 서로 섞여버렸지,


우리로 치면 존재, 영혼,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비눗방울도


기억이라 할 수 있는 물감도.”


“그들은 결국 섞여서

여럿이라 하기에는 서로 구분되지 않으며

하나라고 하기에는 일관성이 없어.”


“서로 구분되지 않아 서로 다른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상대방 또한 없어졌지.”



“그들은 외로워했어.”



“하지만 원형을 잃은 비누를 다시 비눗방울로 구분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어.”


“그래서 나는 물속에 녹아있는 물감을 모아 사물로써 구분시켰어.”


“다행히도 이것만으로도 그들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어.”


“존재와 기억은 딱 잘라 말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비눗물은 사물과 접촉하여 사물의 기억을 전해 받고 그 기억 속의 행위자를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했어.”


“이렇게 조작자와 인형이 구분되지 않는 인형극이 시작됐지.”


항상 발랄하기만 하던 비누소녀의 진지한 모습을 보니 신비로우면서도 멀게 느껴진다.


지금보니 사물을 감싸안고 있는 비눗물이 계속 흘러가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비눗물이 변화할수록 점점 아까와 다른 사물처럼 느껴진다.

겉모습도 성격도 기억도, 그리고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본인의 모습도 같다.

그러나 마치 복제인간을 보듯이 아까와는 다른 사물처럼 느껴진다.

비눗물도 사물을 조종한다기 보다는 사물 본인이라고 착각하는 듯하다.


마치 한사람의 인형극을 보는 듯 하다.

마치 영원히 닿지 못하는 타인들의 독백을 듣는 듯 하다.

마치 외로운 혼잣말을 듣는 듯 하다.


그때 우리의 얘기를 듣고 있던 수도꼭지가 와서 말한다.


“아니, 나는 인형이 아니야.”


말에서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혼란스러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비누소녀의 말이 어지간히 충격적인 내용이기는 했나 보다.


“비눗물은 복잡하지만 그저 기계적으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일 뿐이야.”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수도꼭지가 파이프를 움직이자 비눗물이 그에 따라 움직인다.


“봤지?”


비눗물이 수도꼭지의 마음대로 움직인다.

나야 비누소녀에게서 자주 봤기에 익숙하지만 비눗물이 인격체처럼 복잡하게 작동하는 이 세상에서는 굉장히 대단한 능력일 것이다.


“그들은 그저 자연법칙의 일부일 뿐이야. 그리고 나야말로 이들을 이용하는 주체라고.”


그 말을 듣자 감정이 복잡해진다.

내가 꿈세계를 창조해내는 창조자로서 비눗물에게 동질감을 느껴서인지,

그를 한낱 영혼없는 기계 취급을 하는 것이 기분 나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연법칙에 반항하는 유일한 마법사로서 수도꼭지에게 공감이 간다.


이 모순된 감정은 갈 곳을 잃고는 이내 나조차 알 수 없는 격양된 감정으로 바뀐다.


“그런 너의 행동조차 비눗물에 의한 거라면?”



방금 막 태어나 혼란스러워하는 사물에게 나는 진정은 못 시킬지언정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갑게 말한다.

그래, 나에게도 이건 정말 민감한 주제이다.


“그래, 나라고 비눗물의 손 밖에 있는 건 아니지. 하지만 주체성은 나에게 있어.”


나는 비누소녀에게 화살을 돌린다.

“비누소녀야 혹시 너라면 이런 상황에서 세상을 자연법칙처럼 이용할거니?

아니면 세상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하나의 존재로 대할거니?”


비누소녀는 내가 흥분한 것을 눈치챈 듯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설명한다.


“세상과 나는 어느 한쪽만 주체성을 가지고 지배하거나 이용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야.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함께 살아가는, 말하자면 친구 같은 관계지.

세상과 그 속의 존재는 서로 상대가 정말 의식과 주체성을,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이 들겠지,

서로의 입장을 모르니까.


하지만 나는 믿을래.

타인의 존재는 증명하는게 아니라 믿는거니까.

우리는 그저 이 외로운 곳에서 서로에 의지해 살아가는 주체들이야.”


정말 좋은 말이다. 하지만

“사물을 조종할 수 있는 비눗물은 사물을 친구로서 대할 수 있을까? 그저 자신이 조종하고 있을 뿐인데도?”


비누소녀가 말하기를 망설이자 나는 예를 들어 다시 설명한다.

“너가 상상놀이로 친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해봐.

그럼 그 상상친구를 정말 영혼을 가진 존재로 대할 수 있겠니?”


나는 반문한다. 비누소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내 가정이 지금 이 세계의 상황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방금 사물이 태어나는 곳에서 봤듯이, 사물은 빛이라는 실체에 대한 비눗물의 기억이자 상상인 물감이다.

결국 같은 이야기이다.


내 상상의 대상을 친구로 대할 수 있는가 하는.


그러자 비누소녀가 조용히 나를 응시한다. 눈을 계속 빤히 바라본다. 화났다기 보다는 확신에 가득찬 눈빛이다.

“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너는 그 답을 알거라고 생각해.


자,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수도꼭지 너도.”


비누소녀가 내 손을 잡는다. 그리고 수도꼭지도 손으로 붙잡는다.


“우리라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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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5 11 0 12쪽
7 시작 24.09.04 13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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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2 11 0 11쪽
»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1 14 0 10쪽
3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1 1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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