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수놓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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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레네
작품등록일 :
2024.08.3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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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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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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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DUMMY

바람이 분다. 풍경이 바람에 흔들린다. 온 세상이 동적으로 변한다. 그중 나무는 다른 것들에 비해 더 열심이다.


나뭇가지가 탄성을 가지고 출렁인다. 다른 것들은 그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조금씩 흔들릴 뿐이다. 그러나 저 나무는 정해진 방향을 조금씩 거스르며 역동적으로 출렁인다.


위 아래, 그러다 양 옆으로 그리고 다시 위 아래.


자신에게도 생명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유일한 기회라도 되는 듯 열심히 바람의 방향을 거스르며 사방으로 출렁인다. 그러나 소녀는 그런 나무의 몸부림 따위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하게 스쳐 지나간다.


소녀에게 바람을 거스르는 저 출렁임은 그저 나뭇가지의 탄성에 의한 조금 특이한 움직임일 뿐이다. 나무가 바람을 거스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저러는게 아니다. 그때 나무가 말을 건다.


“내가 살아있는 것 같지 않나 보구나.”


그러자 소녀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니에요, 엄마.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다 소녀는 곧 체념하고 말한다.

“나는 어째서 나무로 태어나지 않았나요?”

.

.

우욱

구역질이 난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한동안 심하게 구역질을 했지만 정작 토는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저 구역질을 흉내낸 것 뿐일 수도 있다.

.

.

지금은 단체수업 시간이다. 1학년 아이들이 모두 오리엔테이션 때 모였던 곳에 집합했다.


첫 수업은 상상력을 키우는 수업이 진행되었다. 어제 비아나와 학교를 둘러보며 보았던 색종이와 색비닐, 종이박스, 천 그리고 여러 잡동사니로 만들어진 장소로 이동했다.


“여기서 여러분은 마법의 자유도에 대해 배우게 될 것입니다. 마법은 현실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고 마력만 충분하다면 정말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손에 작은 드래곤을 만들어낸다. 아이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것 대부분이 이 세상에 구현 가능한 것들일 겁니다. 다만 상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법칙에 대한 이해와 구현할 방법,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겠지요.


예를 들어 이 드래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생명에 대해 잘 알아야 해요. 또한 정신세계 즉, 무의식이 우리의 상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정신과 마력이 어떻게 감응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해요.


그래서 단체수업은 상상력 기르기, 이론 배우기, 정신에 대해 배우기. 이 그래서 수업은 주로 세 가지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그중 상상력 기르기를 해볼 거예요. 이곳을 자유롭게 체험하고 느낀 점을 쓰도록 해요.”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가 재미있는 놀이터라도 되는 듯 바로 뛰쳐나간다. 그 자리에 남아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거나 설명을 곱씹고 있는 아이는 극소수이다. 남아있는 아이들 중 같은 반이 되었던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환상마법을 쓰는 아이는 가만히 서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자기만의 상상에 빠진 모양이다.


“저기, 안녕?”


“....”

...자는 건가? 눈 앞으로 손을 흔들어 보아도 반응이 없다. 눈을 자세히 보니 여러 환상적인 이미지가 흘러가고 있다. 마법을 쓰고 있는 걸까?


이렇게 무방비하게 있으니 괜히 장난기가 발동한다. 나는 살짝 벌려진 입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본다.


“!”


아이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놀란 토끼 같은 반응이 너무 귀엽다.


아이는 잠깐 표정을 보인 후 다시 반쯤 감긴 졸린 눈으로 돌아온다. 그러고 하품을 한 번 늘어지게 하더니 나에게 손을 내민다.


“나는 한서은이야.”


갑자기 자기소개를? 내가 벙쪄 있자 아이가 내민 손을 흔든다.

악수...하자는 건가?

나는 내민 손을 마주 잡고 흔들며 말했다.


“어... 반가워?”


아이가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는 갑자기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내가 당황해서 굳어 있는 사이 아이는 내 옷에 걸려있는 이름표를 떼어갔다.


“흥.”


그러고는 태연히 나를 지나쳐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향한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내가 이제 막 유치원을 졸업한 꼬맹이한테 주도권을 잃다니.

내가 잠시 충격에 휩싸여 있을 때 비아나가 내 곁으로 달려와서 말을 건다.


“저기 봐봐! 엄청 커다란 화분도 있고 종이로 된 강도 흐르고 있어! 완전 신기해!”


비아나가 눈을 빛내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비아나의 말대로 정말 비일상적인 풍경들이 보인다.


천과 종이로 이루어진 알록달록한 잔디, 고기 굽는 그릴로 만든 듯한 철조망, 솜으로 된 구름, 잡동사니를 이어붙여 만든 생물 등 일상적인 물품들이 대형화되어 원래와는 다른 쓰임새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확실히 아이들에게 편견을 깨고 사고를 확장하는 데 적절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나저나 비아나는 벌써 아이들 사이에 적응해서 아이들을 이끌고 다니고 있다. 비아나는 에너지 넘치고 아이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른스러운 면모가 있으니 아이들이 잘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너도 여기 멀뚱히 서있지만 말고 같이 놀자!”


같이 논다고? 저 많은 애들한테 둘러싸여서? 상상만 해도 피곤하다.


“나는 사람 많은 건 좀 힘들어서... 그냥 혼자 있는 애들한테 말 좀 걸어볼게.”


“그럼 애들 놀게 보내놓고 우리끼리 놀아도 되는데.”


이런 무리한 제안까지 하다니 비아나는 나와 함께 있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지금 말고도 같이 있을 시간은 많으니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아니야, 애들도 아쉬워할거고, 나도 다른 사람하고 대화좀 해봐야지.”


“음... 알겠어. 혼자 있는 애들이라, 아까 종이 강에서 한 명 보긴 했는데, 혼자가기 무서우면 같이 가줄까?”


비아나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게 정말.


“나 혼자서도 갈 수 있거든.”


“너가 가서 아무말도 못하고 어버버 거릴까봐 그러지.”


“그정도는 아니야.”


나는 비아나에게 가볍게 인사한 후 종이강으로 가보았다. 여러겹의 종이가 액체처럼 흘러가고 있다. 종이강 위에는 코팅이 되어 있어 반짝이는 비닐조각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리고 비닐 조각들 사이에 이질감 없이 같이 떠다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보았던 머리가 투명한 아이이다.


“얘, 안녕. 거기서 뭐하니?”

“....”


말이 없다.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저기...”


몇 번 더 부르자 고개를 내쪽으로 돌린다. 그러나 나의 말에는 전혀 대답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리지 못한 것처럼. 그저 계속 소리가 들려서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본 것 뿐인 모양이다.


“조용히 해줘.”


완전 철벽이다. 그러나 이렇게 물러날 내가 아니지.


“아, 드디어 나를 봐줬구나! 거기 누워서 뭐하고 있는거야?”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한다.

“나보고 하는 말이었어?”


요 녀석, 일부러 대화를 피해놓고 이제와서 모르는 척하면 내가 넘어가 줄 것 같니?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더 있어?”


아이가 강을 가리키며 말한다.


“나는 너가 강을 보고 말하는 줄 알았어.”


진위를 의심하기에는 너무나 순수한 울림이다. 아무래도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강을 보고 말을 건다고? 이 아이는 사람보다 강에게 말을 거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직 어리니 그럴 수도 있다.


그때 아이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그러고는 나의 눈에 무엇이 비치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양 내 눈을 자세히 살피며 말한다.


“지금도 그래.”


아이가 나를 바라본다. 나의 영혼이 꿰뚫리는 기분이 든다.


“나는 너를 보고 있는데 너는 대체 누구를 보고 말하는 거니?”


뭐...라고?


“강을 보고 있는 거야, 나를 보고 있는 거야? 구분이 안 가.”


심장이 빨리 뛴다. 호흡이 가빠진다.


‘왜 이러지, 고작 이런 걸로...’


나의 몸이 이제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 옛 신체의 반응을 의미 없이 흉내낸다.


거짓된 것.


머리부터 발 끝까지

이제는 없는 것이 분명한 나의 세포 하나하나

나의 뉴런 하나하나

나의 기억 하나하나

그리고 결국 마음조차

모두 기만인 것.

소름돋게 인간을 흉내내는 것.

눈앞에 있는 존재를 상대라고 느끼지도 못하면서 어색하게 연기하는 기만자.

계속 허공에 혼잣말 하고있는 외톨이.


“얘, 괜찮니? 안색이 안 좋아. 선생님한테 데려다 줄까?”


너에게는 눈앞에 있는 소녀도 그저 ‘사물’일 뿐이잖아. 정말 이들을 친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야, 왜 말이 없어?


시끄러워.


혹시 아직도 꿈꾸고 있니? 이 세상이 가짜 같니?

아하! 그래서 현실에서도 계속 비실재의 관객에게 독백하고 있는 거구나? 니가 말하는 관조자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그만해


그런데 너도 알잖아.


뭐를, 대체 뭘!


사실은 너가 가짜라는 걸


손을 내려다 본다.

소녀가 손을 내려다 봅니다.


거기엔 텅 빈 무언가가 그저 세상의 빛을 반사하고 있다.

거기엔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끄러워!

소녀가 소리칩니다.


진정하자, 이건 그냥 한밤중의 나쁜 꿈이야. 눈을 감고 하나, 둘, 셋에 깨어나는 거야.

소녀가 눈을 감고 되냅니다. 그러나 소녀는 잠에서 깰 수 없습니다.



깨어질 듯한 구슬은 왜 깨어지지 않았는가?

그 답은 ‘소녀는 꿈에서 깨어날 수 없다.’이다.

그때 소녀의 고개가 들린다.


“내 눈을 봐.”


그순간 고개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들린다. 강제로 눈이 마주쳐진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늘어나 우리 둘만을 감싼다. 둥둥 떠다니는 파스텔톤의 귀여운 형체들을 보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된다. 아이가 나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댄다.


그러자 아이의 일생이, 기억이 흘러들어온다. 인간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경험들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선택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변화하고 있는 무언가.


“느껴지니? 이게 나야. 뭔가 조금 부끄럽네.”


아이의 눈을 조심스레 올려다본다. 아이가 나와 눈을 맞추며 살짝 미소 짓는다.


“이제 알겠지? 앞으로는 이걸 보고 대하면 돼.”


여전히 모르겠다. 고작 저 빛 따위가 인간이라니. ‘구슬’을 가지고 있는 나와는 전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공허하고 불안정하다.


계속 변화하고 허상처럼 잡히지 않는다. 여전히 그 빛에서 나와 동등한 영혼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와 그들은 이렇게나 다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싫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이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진정으로,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어쩌면 언젠가 불완전한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저 생에서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친구처럼.


그때가 되면 나는 더이상 외톨이가 아닐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한 발짝은 내디딘 것이 아닐까? 인간에게, 그리고 평범한 존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존재를 품었던 당신들에게.

.

.

소녀가 점점 꿈에 녹아들어 간다. 배역에 서서히 몰입한다. 배역과 자기 자신을 구분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이야기에 스며든다.


소녀의 꿈은 더이상 자각몽이 아니다. 그녀에게 꿈은 이제 현실이다. 꿈의 배역은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꿈이 정말 누군가의 현실이 될 수 있는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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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가 24.09.13 6 0 14쪽
15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24.09.12 6 0 13쪽
14 가게 24.09.11 7 0 13쪽
13 가게 24.09.10 8 0 13쪽
12 가게 24.09.09 9 0 12쪽
11 입학 24.09.08 10 0 11쪽
»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7 12 0 12쪽
9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6 10 0 13쪽
8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5 11 0 12쪽
7 시작 24.09.04 13 0 14쪽
6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3 12 0 13쪽
5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2 11 0 11쪽
4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1 14 0 10쪽
3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1 16 0 11쪽
2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0 34 0 10쪽
1 평범한 누군가 24.08.30 5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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