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수놓는 마법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시니레네
작품등록일 :
2024.08.30 12:24
최근연재일 :
2024.09.13 22:42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38
추천수 :
0
글자수 :
87,661

작성
24.09.05 18:36
조회
11
추천
0
글자
12쪽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DUMMY

밖으로 나와 조금 걸으니 한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도시의 풍경은 의외로 내가 자신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인 마법이 막 등장했을 때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모습이다. 자동차 대신 마력을 이용한 현상 발생 장치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달리고 있으며, 도시 곳곳에 기계장치들이 많이 늘어난 정도 이다.


“기계장치를 좋아하는 마법사 하나가 큰 업적을 남기셨나보군.”


“한 명 때문에 이렇게 많은 게 바뀔 수 있어? 내 도시는 안 그랬는데.”


“마법은 조건에 맞춰 상상하기만 하면 마력으로 뭐든지 빠르게 생산할 수 있는 걸로 보이는구나. 큰 비용 없이 시행착오를 겪고 생산할 수 있으니 개인의 힘이 강해졌겠지. 이런 경우 보통 다품종 소량생산이 일어나지만 저 기계장치가 많이 유용했던 모양이구나.”


무한차원의 그림자씨가 비누소녀의 물음에 답했다. 유일하게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그림자씨만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정신세계와 현실세계의 시간 차이가 꽤 많이 나거든. 마법이 등장한 지 고작 100년도 채 안 됐을 테니 기술력이 되더라도 큰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웠겠지. 아마 그래서 다품종이 아닌 기계장치 하나만 받아들여진 걸 거야.”


“아-글쿠나.”


비누소녀가 영혼 없이 대답한다. 눈에 초점이 없이 멍하다. 생각하기를 포기한 모습이다. 니가 나한테 설명할 때 나도 이런 기분이었단다 얘야.


우리가 얘기를 나누던 사이 경찰들이 우리 앞에 걸어와 있었다.


“마법사시지요? 아이들을 데리고 위쪽에서 피난 오신 것 같은데 마법사 협회에 가입 하셨나요?”


우리의 마력을 감지하고 온 모양이다.


“피난이라니? 전쟁이라도 난거야? 우린 계속 집에서만 지내서 이런 거 잘 모르거든.”


경찰들 중 가장 직위가 높아보이는 한 남자가 아이의 물음에 대답한다.


“아, 전쟁 중에 계속 벙커에서만 지내셨나보군요.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마법 전쟁 이후 이제야 밖으로 나오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림자씨가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서서 말한다.


“지금은 전쟁이 종식 되었나요? 저희가 대피했던 주변은 좀 잠잠해진 것 같아 나왔는데 아직 좀 걱정되네요.”


“개인이 마법으로 큰 힘을 가지게 된 이후 벌어진 마법 전쟁은 거의 진압이 되었어요. 강한 마법사를 중심으로 도시국가들이 세워지면서 안정을 되찾았지요.


그리고 황폐화된 땅들이 복구되고 조금 살만해지면서 이제 다시 예전의 거대국가와 비슷한 연합들이 생겨나는 추세입니다.


여기는 원래 한국이었던 도시들이 모인 곳입니다. 이 모든 게 7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니 믿기지 않죠. 마법이라는 게 파괴만큼 창조에도 유용한 모양이더라구요.


그런데 요즘 위쪽 도시국가와 좀 충돌이 있어서 위에서 피난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 남자는 엄청난 수다쟁이이다. 경찰 주제에 이렇게 경계심이 없다니, 얼마 전에 전쟁을 겪었던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길어. 짧게.”


“전쟁은 최근에 끝났고 도시국가들 간의 충돌이 좀 있습니다.”


그림자씨가 안심한 듯한 표정을 연기하며 말한다.


“그럼 다행이네요. 그런데 마법사 협회가 무슨 조직이죠? 소속되야 할 이유가 있나요?”


“아, 그건 마법사의 신분을 보증해주는 국제적인 마법사 단체입니다. 가입하면 감시가 따라붙고

긴급소집에 참여해야 하지만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어디를 가든 보증받을 수 있어요.”


남자가 안광을 빛내며 말한다. 지금보니 아까부터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마법사 협회에게 안전을 보장받을 수도 있고요. 보니까 악한 분은 아닌 것 같아서요.”


나쁜 제안은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려 했으니 딱히 행동을 제약받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 학교도 보내셔야죠. 딱 봐도 중요한 시기인데요.”


? 이건 아닌 것 같은데. 감시도 받으니까 의무교육이면 피하기도 힘들고. 그때 그림자씨가 사악하게 웃으며 우리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말한다.


“가입할게요.”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음침한 그림자씨.”

딱콩

아야

***

지금 나와 비누소녀는 마법사 등급 테스트를 받고있는 그림자씨를 구경하고 있다.

마법 이외의 고유한 능력은 당연히 숨기기로 했다. 아마 그래도 웬만한 마법사보다는 훨씬 강할 것이다.



그림자씨의 정신세계가 눈에 들어온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고차원의 모습. 빛들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왜곡되고 난반사되어 공간을 특이한 보석 같은 모습으로 만든다. 참 예쁜 능력이다.



다행히 검사관들은 고차원을 못 알아보는 모양이다. 아마 그들의 눈에는 그저 공간이 왜곡되어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이어서 마력으로 현상을 일으키는 테스트를 진행했다. 공간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하위차원에서 초현실에 가까운 현상을 일으키는 능력. 당연히 가장 높은 등급을 받았다.

그림자씨가 우리에게 브이를 하며 말한다.


“엄마 만점 받았어. 잘했지?”


비누소녀가 아무 생각 없이 해맑게 웃으면서 그림자씨에게 달려가 안긴다.


“응, 대박 멋졌어.”


“누가 엄마라는 거...예요.”


말하던 도중 옆에서 같이 구경하던 경찰이 눈에 들어온다. 일단 표면상은 가족이니 입조심 해야 한다. 아마 이런 주변의 시선을 노리고 친 장난이겠지. 그림자씨, 진지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에 비해 생각보다 짖궂은 면이 있다.


테스트를 끝마치고 우리는 경찰과 함께 거리를 구경했다. 마법은 생각보다 생활에 깊숙이 자리잡혀 있었다.


단순히 마법으로 만든 물품뿐만 아니라 마력으로 현상을 일으키는 장치들이 곳곳에 있다. 마력으로 찬 바람을 만드는 장치, 음료를 만들어내는 장치 등 기존의 것들을 대체한 것부터 날씨를 조정하는 장치, 공간 확장, 정교한 환각, 시뮬레이션 등등을 할 수 있는 장치 등 이론은 있지만 기술력이 부족하여 구현하기 힘들었던 것들이 모두 마법으로 실현되어 있다.


마법 덕분에 실험이 간편해지니 이론도 급속도로 성장한 모양인지 우주 이민이나 여행 등 우주와 관련된 광고도 많이 보인다. 비누소녀가 광고를 관심 있게 보더니 경찰한테 묻는다.


“경찰아저씨, 혹시 외계인도 발견됐어?”


“아니, 외계생명체는 발견 되었지만 아직 외계 문명은 발견하지 못한 상태란다. 우주 개척이 이루어진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거든.”


나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느낀다.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이 도시에서 내 기억과 일치하는 것은 알맹이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겉모습 뿐이다. 어쩌면 사람도 그러하지 않을까.

물리적으로도 성격적으로도 매일매일 변해갈 것이다.그들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기에 삶과 생명이 있지만 그렇기에 계속 원래의 자신을 잃을 수밖에 없다.



내가 그들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나는 지원받은 집에서 잠이 들 때까지 계속 그 생각이 맴돌 뿐이었다.

***

소녀의 앞에 화장품이 놓여있다. 화장품은 텅 비어있다. 아이가 옆에 놓인 큰 화장품에게 말한다.


“엄마 화장품이 안 나와요.”



큰 화장품이 말한다.

“괜찮아, 내일은 그런 일 없을 거란다.”


다음 날 아이는 새 화장품을 받았다. 그런데 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엄마,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


“왜 그러니? 똑같은 걸로 교체 한건데?”


소녀가 말한다.

“원래 쓰던 거는요?”


“다 썼으니 버렸지. 설마 그게 좋았던 거니? 걱정하지 말렴. 똑같은 걸로 바꿔 놓은 거란다.”


소녀가 말한다.

“그런데 냄새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완전 똑같지는 않아요. 전에 쓰던 거 계속 쓰면 안 되나요?”


그러자 큰 화장품이 말한다.

“하지만 그건 이미 죽어있잖니.”

***

“얘, 일어나렴.”


뭐지, 꿈인가, 나를 깨울 사람은 없을 텐데.


“학교가야지?”


슬며시 눈을 뜨니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이 보인다. 마망... 아니 이게 아니지.

방심하고 있던 그 순간 나에게 달려드는 어떤 형체가 어렴풋하게 보인다. 불가해한 공백이 나를 덮친다. 코스믹 호러같은 상황. 나는 재빨리 몸을 날려 피해보려 했지만... 그것은 이미 도약해서


“빨리 일어나!”


압도적인 질량으로 나를 누른다.


“꾸에엑.”

비누소녀가 나를 부둥켜 안고 볼을 마구 부비며 말한다.


“오늘은 새로운 친구들을 잔뜩 볼 수 있는 날이라고! 기대되지 않아?”


“말도 제대로 안 통할 애기들 만나는 건데?”


비누소녀가 웃으며 말한다.

“너가 그러니까 친구가 없는 거야.”


그런가? 생각보다 설득력이 있다. 사람을 제대로 대하지 못하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사실 이런 것 때문이었을 수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나까지 슬퍼지잖아.”



“나는 안 슬퍼.”

“오또케, 혼자 너무 오래 지내서 감정까지 매말랐나봐.”


비누소녀가 장난을 멈추고 진지하게 내게 당부한다.

“니 문제를 제대로 직시해야 하는 거 알지? 피하지도 말고 숨기지도 말고. 그리고 힘든 일 있으면 꼭 내게 말해줘.”



요 녀석 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진지할 때는 한없이 진지하다. 사실 이런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가 아직도 잘 적응되지는 않는다. 역시 인간하고는 좀 다른 점이 있나 보다.


“고마워.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거창한 것보다는 코앞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닥쳐 있어.”


“뭔데?”


“니 이름. 학교에서 부를 이름이 필요하잖아. 생각 좀 해봤어?”


옆에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그림자씨가 말을 꺼낸다.


“그거, 학교에서 제출하라고 하길래 그냥 내가 지어서 냈단다. 원래 이름은 부모가 지어주는 거 알지?”


비누소녀가 기겁을 하고 말한다.

“그걸 그냥 마음대로 지었다고? 나는 인정 못 해!”


그림자씨가 개의치 않으며 말한다.

“원래 인생이란 부조리한 거란다. 니 세상도 그랬으니 잘 알지 않니?”



“여기서까지 그런 부조리 느끼고 싶지 않거든.”


그림자씨가 삐진 아이를 달랜다.

“진심으로 너희를 가족으로 생각하며 지은 이름이란다. 기쁘게 받아주면 더할 나위 없겠구나.”


비누소녀가 그 말을 듣고 약간 멍한 표정을 짓더니 그림자씨의 말을 곱씹는다. 가족, 가족. 어감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비아나.”

그림자씨가 고심 끝에 정한 이름을 읊는다. 한자, 한자에 상대를 축복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한자, 한자 의미를 꾹꾹 함축하여 정성스레 포장해 아이에게 선물로 건넨다. 그 짧은 한마디가 마치 어떤 의식처럼 느껴진다.


“밤의 신비로운 신기루, 꿈처럼 녹아 사라지는 비누이지만, 운명을 거스르고 이상에 다다르려 하는 존재. 아이처럼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반항적이지만 그렇기에 결국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존재. 너의 이름이란다."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깊은 의미와 섬세한 마력이 담겨 있다. 보통은 이런 추상적인 바람은 마력으로 이룰 수 없지만 기적을 일으키는 그녀는 다를지도 모른다.


“으, 뭔가 오글거려.”


비누소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분 좋은 듯 배시시 웃는다. 선물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눈동자에 과거가 잠깐 반짝이다 사라진다. 이름에서 그동안의 일을 느끼는 듯하다.


“그래도 좋은 이름 아니니?”


비누소녀 아니, 비아나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한다.

“흥, 진심이 느껴지니까 이번만 봐줄게.”


“고맙단다...이번에는 방관자가 아닌 너희를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주고 싶어. 나를 받아주겠니?”


그림자씨가 결연한 어조로 말한다. 그녀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어우러지니 강인함보다는 오히려 잡힐 듯 말 듯 한 어떤 주문이나 계약처럼 들린다.


가족이라. 누구도 상대방으로 대하지 못했던 나이기에 이런 관계는 생소하다. 그러나 그녀의 진심이 느껴진다. 우리는 정말로 가족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왠지 좋은 예감이 든다.


“좋아.”

“좋아요.”


우리의 짧지만 생기 넘치는 그 한마디에는 강한 긍정과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래, 우리는 정말로 가족이 될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꿈을 수놓는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가 24.09.13 6 0 14쪽
15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24.09.12 6 0 13쪽
14 가게 24.09.11 7 0 13쪽
13 가게 24.09.10 8 0 13쪽
12 가게 24.09.09 9 0 12쪽
11 입학 24.09.08 11 0 11쪽
10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7 12 0 12쪽
9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6 10 0 13쪽
»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5 12 0 12쪽
7 시작 24.09.04 14 0 14쪽
6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3 12 0 13쪽
5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2 11 0 11쪽
4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1 14 0 10쪽
3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1 16 0 11쪽
2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0 34 0 10쪽
1 평범한 누군가 24.08.30 57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