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수놓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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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레네
작품등록일 :
2024.08.3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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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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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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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DUMMY

골목의 풍경은 환각의 시전자의 취향을 반영하는 듯 밤의 신비로움을 담고 있다. 골목의 벽은 색이 입혀진 유리로 이루어져 있다.


온갖 종류의 처음보는 식물이 그 유리벽을 장식한다. 반딧불이가 어두운 골목을 노랑과 초록으로 은은하게 빛낸다.


거리 가장자리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신기한 잡동사니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골목을 감상하며 걸어나가자 곧 근원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노란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가게이다. 가게 문을 열자 문에 달려있던 종을 비롯한 자개와 여러 소리를 내는 것들이 서로 부딪혀 각자의 개성을 세상에 퍼뜨린다. 우웅 울리는 내 머리 위의 그것들이 내 정신을 한층 몽롱하게 만든다.


나는 진열대를 꽉 채운 여러 신비로운 물건들을 지나 카운터에 다달랐다. 서하는 물건들에 한눈팔려서는 머리카락으로 물건들을 감싸며 둘러보았다.


“한밤중에 꼬마 손님들이 찾아왔네요. 어서오세요.”


카운터에 앉아있는 고깔모자를 쓴 작은 체구의 여성이 말한다. 무언가 잊은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그녀가 내게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한다. 그 손짓이 무슨 명령이라도 되는 듯 공간이 우리 사이를 축소시킨다. 서로 가까이 밀착되자 여성이 나의 양어깨에 손을 올린다. 여성이 마음대로 상황을 통제함에도 무언가 저항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역시. 미약하게나마 신성이 느껴지는군요. 그것도 아무도 신성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이질적인.”


한순간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에 다른 이와는 다른 이미지가 비친다. 그건 범인이 담을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그건 나의 눈동자에만 비치는 풍경이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꿈속에서 깨어있는 자의 시선이다.

잠깐. 깨어난다? 깨어남....뭔가 관련된 중요한걸 잊은 것 같은데...


맞아 여긴 꿈이었어. 나는 이 꿈에서 깨어나려 했지.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것을 잊을 수가 있지?


“저기 혹시 꿈에서 깨워줄 수 있어? 여긴 내가 살던 곳이 아니야.”


“살던 곳이 아니라니요? 여기도 엄연한 현실이랍니다. 그리 다르지 않아요.”


“아닌데...뭔가 다른데...”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자 여기 사탕 먹을래요?”


그녀가 구슬사탕 하나를 건넨다. 나는 아무런 경계 없이 그 사탕을 입에 던져 넣었다.


“어때요, 사탕이 정말 달죠? 여기가 현실하고 다를 게 뭔가요?”


“그치만 이건 가짜잖아.”


그러자 여성이 갑자기 인형처럼 무기질적인 모습을 하고서는 눈을 크게 뜨고 말한다.


“정말 그게 가짜인가요? 주위를 둘러보세요. 여기서 이곳을 꿈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신밖에 없어요.”


그럴 리가. 여긴 누가 봐도 누군가의 상상 속이야. 뭐야 어느새 손님이 이렇게 많아졌지? 마침 잘됐네. 사람들한테 여기가 꿈인지 물어보자.


“저기요, 여기가 꿈인 걸 아시나요?”


“무슨 말이니 꼬마야. 여긴 현실이야.”


“이유가 뭔가요?”


“음, 여긴 가게잖니? 필요한 물건을 사는 곳이지. 그런데 여기서 산 물건을 현실에서 쓸 수 없다면 왜 사람들이 이 가게를 찾아왔겠어?”


아니야. 분명 이 사람은 착각하고 있어. 뭘 착각하고 있는 걸까? 아, 맞아. 이거야.


“당신의 현실도 꿈이라면요? 그러면 여기도 꿈이 맞잖아요.”


말이 끝나자마자 가게의 손님들이 소녀를 향해 고개를 획 돌린다. 순식간에 소녀가 눈을 크게 뜨고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에 둘러싸인다. 소녀는 꺼림찍함을 느끼곤 도망친다.


아, 저기 비아나다!

“비아나! 물건 고르고 있어?”


“응! 여기가 환각이라 그런지 신기한 물건이 정말 많아. 근데 여기는 현실이기도 하잖아? 그러니 여기서 산 물건은 분명 현실에서도 쓸 수 있을거야!”


비아나도 여기가 현실이라 생각하고 있어. 그럴 리가... 너마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니?


“비아나, 벌써 잊은거야? 여긴 꿈속이잖아. 빨리 깨어나야해!”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긴 환각과 현실의 벽이 무너진 곳이잖아. 현실이기도 하다구. 꿈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러면

“왜 여기에는 가짜밖에 없는 거야?”


비아나가 나의 말을 듣자 순간 굳었다. 그리고 이내 살짝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너는 여기가 꿈처럼 느껴지는구나.”


“...”


비아나가 주변을 한 번 빙 돌아 살펴본다. 그리고 소녀를 등지고 말한다.


“꿈처럼 느껴지더라도 현실로 받아들여 줄 수는 없을까?”


“하지만 이건 누군가의 상상일 뿐인걸.”


소녀가 허공으로 손을 뻗는다. 소녀가 뻗은 손은 분명 무언가를 붙잡았다. 하지만 소녀의 손은 여전히 허공에서 허우적댄다.


“모두가 꿈이 만든 이야기에 몰입하여 살아갈 때 나만이 깨어있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소녀가 자신의 감정을 어쩔줄 몰라하며 호소한다.


“모든 게 그저 누군가의 한낱 망상 같아. 모든 게 가짜처럼 느껴져. 그런데 정작 꿈의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건 나 뿐이야. 사실은 내가 가짜가 아닐까?”


비아나가 부드럽게 말한다.

“나도 꿈속의 인물일 뿐이었지만 친구가 되었잖아. 너는 누구보다 허상에 가까운 나를 진짜로 받아들여줬어. 나는 지금도 그게 너무 기쁘고 실감이 안 가. 이곳도 마찬가지 아닐까?

분명 꿈도 누군가에게는 현실이야. 그리고 분명 너에게도 현실이 될 수 있을 거야.”


비아나가 나를 돌아본다.

“그래도 만약 너가 끝까지 여길 삶의 무대로 생각하지 못한다면...”


비아나가 나의 두 손을 마주 잡는다.

“그저 꿈이라 생각해도 좋아. 우리의 한밤중 상상놀이 인거지. 정 힘들다면 굳이 현실을 살아갈 필요는 없다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비아나의 작은 목소리의 뒷말이 얼핏 들린다.


“그러다 보면 적어도 언젠간 자신의 삶 정도는 진실되다 느낄 수 있을테니.”


비아나가 금세 신나는 말투로 돌아와서는 나에게 질문한다.


“그나저나, 마음에 드는 물건은 골랐어?”


“아니, 난 가게 주인과 할 말이 있어서.”


“흠? 뭔진 모르겠지만 잘해봐.”


나는 여전히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 나를 쳐다보는 손님들을 지나쳐 카운터로 향했다.


“이곳에서 내보내줘.”


“왜죠? 여기가 당신이 살아가는 현실이에요. 아직도 모르시겠나요?”


“내가 있던 곳은 여기가 아니야. 무슨 말 하는지 알잖아.”


카운터의 그녀가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려 손을 깍지끼고 고개를 내민다.


“당신은 꿈을 꾸고 싶은 건가요, 꿈에서 깨어나고 싶은 건가요? 정말로 진짜를, 초월을 원하세요?”


“나를 꿈에서 깨워달라는 게 아니야. 그저 내가 꾸고 있던 꿈으로 보내달라는 거지.”


내 대답을 듣자 그녀가 만족스럽게 웃는다.


“꿈속을 마음에 들어 하면서도 여전히 진실됨을 원하는군요. 그런 당신에게 매력적으로 들릴 제안을 하나 해드릴 수 있습니다.”


여성이 잠시 텀을 두고 말을 잇는다.


“좀 더 이곳을 진실되게 만들 방법이 있답니다.”


“나는 지금도 충분해.”


“일단 들어 보시죠.”

“우리가 있는 현실은 말하자면 한 신의 꿈 내지는 상상입니다. 그래서 한차원 높은 당신이 이곳을 꿈이라 느끼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 명의 상상은 그저 허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여럿이 같은 상상을 하면 그것은 진짜가 되지요.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것을 흔히 발견할 수 있어요.


예를들어 돈이나 사상이 있겠네요. 비록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진짜라고 느낄 겁니다. 신성은 그걸 위해 강림한 것입니다.”


“이곳을 여러 신의 상상으로 만들기 위해. 그래서 더욱 진실되도록.”


“필요없어. 그런 궤변보다는 이곳이 안전한게 더 중요하거든.”


“궤변일 것까지 있나요? 결국 진짜라는 건 절대적인 것이 아닌 그저 느낌일 뿐이걸요.”


“뭐래. 그리고 너희 때문에 지금 얼마나 비상사태인지 몰라?”


여성은 나의 거절에도 일말의 아쉬움을 내비치지 않는다. 무언가 확신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가요? 나중에라도 마음이 바뀌면 말해주세요. 저희 가게는 항상 열려있어요.”


가게가 점점 옅어진다. 모순된 환각에 갇혀있던 정신이 서서히 우리의 현실로 떠오른다. 여성의 말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머지않아 분명 다시 찾아올거예요.”

***



우리는 평범한 환각에 빠졌던 사람처럼 그저 하굣길 한복판에 서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아이들의 웃음소리.


우리가 그 신비로운 장소에 갔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주변에 남아있지 않다. 내가 감상에 잠겨있는 사이 서하가 얼빠진 표정으로 두리번 거리더니 충격받은 표정으로 말한다.


“내 물건!”


그게 니꺼냐. 서하가 물건을 찾으려는 듯 길게 늘인 자신의 머리카락 속을 헤집는다. 서하의 머리카락에서 가게의 여러 물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머리카락으로 물건들을 감쌀

때 챙겨온 모양이다.


“...너 그거 계산도 안하고 가져왔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제일 가지고 싶었던 걸 못가져왔다고!”


그러고는 열심히 쏟아낸 잡동사니 산을 헤집는다. 훔친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니 커서 대도가 되려나. 딱 봐도 가져온 물건 하나하나가 가치있는 것들이다.


우리를 납치했던 가게 주인한테는 쌤통이다. 자신의 작품들이 이런 잡동사니 취급 받는 것을 알면 거품을 물지 않을까. 그때 서하가 갑자기 찾는 것을 멈추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디갔다 온거야? 분명 우리 하굣길 주변에는 그런 골목은 없는데. 벽이 색유리로 된데다가 처음 보는 식물들이 많았잖아. 그렇게 기이한 곳인데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어.”


이걸 이제야 떠올리다니 얼마나 물건에 정신팔려 있던걸까.


“사실 우리는 환각에 빠져있었거든.”


“정말? 근데 왜 나한테 말 안했어.”


“너가 환각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깨우면 위험할 수 있었어. 그리고 나도 가게에 들어간 이후로는 환각에 완전히 빠져버려서 말이지.”


서하에게 말을 하던 비아나가 휙 하고 나에게 고개를 돌린다.


“그러고 보니 너 환각 시전자하고 대화하던데 무슨 말이었어?”


“너하고 대화하고 나서 환각이 좀 깨서 내보내 달라고 했어.”


나는 비아나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가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이 나에게 제안을 했었어. 자세한 건 이따 집에서 알려줄게.”


귓속말을 하고 나서 문득 서하를 돌아보았다. 오늘만 서하를 빼놓고 귓속말을 한 게 두 번째다. 혹여나 소외감을 느낄까봐 걱정이 된다. 서하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너희 사이 되게 좋네. 내가 아는 형제자매 중에 너희가 제일 각별한 것 같아.”


우리가 그렇게 비칠 정도로 가깝게 지냈었나? 남들 앞에서 꽁냥거리는 걸로 보였을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니 괜스레 볼에 열감이 올라온다. 비아나가 빠르게 화제를 전환한다.


“근데 너는 가게에서 뭐 안가져왔어?”


“사탕을 받았어. 그것도 녹지 않는 사탕.”


나는 사탕을 뱉어 내 손 위에 올려놓았다. 사탕은 하나도 녹지 않아 동그란 구의 모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우와, 진짜네. 하나도 안녹아 있어.”


그러곤 비아나가 내 손에서 사탕을 집어들어 자신의 입 속에 넣는다.


“야, 그, 그걸 왜먹어!”


“왜, 닳는 것도 아니잖아?”


...아직 애라서 이런거에 별로 거부감이 없나?


“웅, 진짜 단맛이 나네.”


서하도 궁금한 지 눈을 빛낸다.


“나도 먹어볼래.”


“흠... 안 돼.”


“왜?”


서하가 무표정하게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냥 안 돼.”


“...알겠어.”


표정변화는 크게 없지만 몸짓과 분위기에서 무언가 실망한듯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참 이런 쓸데없지만 신기한 장난감 좋아할 나이지.



나도 틀어박히기 전에는 문방구에 가면 저런 걸 사곤 했다. 아무래도 서하에게도 줘야겠다.


“비아나 사탕 다시 돌려줘.”


“그래그래.”


비아나가 사탕을 뱉어 그대로 손을 나에게 내민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나는 그걸 넘겨받으려다...


“뭐어...읍.”


갑자기 입안에서 은은한 비누향이 퍼진다. 내가 당황하는 사이 귓가에 간지러운 속삭임이 들린다.


“바람피면 안 돼.”


오소소 몸에 소름이 돋는다. 설마 내가 이런 어린 애를 좋아하겠니? 나도 정신연령은 아이가 맞지만 그정도는 아니야.


서하를 보니 이미 사탕에는 관심을 끈 듯 하다.


“서하야, 내가 나중에 빌려줄게.”


“응.”


그때 나의 입안에서 달칵, 하는 소리가 들린 후 위이잉 하는 전자음이 들린다. 그러고는 형형색색의 연기가 입에서 뿜어져 나온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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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가 24.09.13 6 0 14쪽
15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24.09.12 6 0 13쪽
14 가게 24.09.11 7 0 13쪽
» 가게 24.09.10 8 0 13쪽
12 가게 24.09.09 9 0 12쪽
11 입학 24.09.08 10 0 11쪽
10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7 11 0 12쪽
9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6 10 0 13쪽
8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5 11 0 12쪽
7 시작 24.09.04 13 0 14쪽
6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3 12 0 13쪽
5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2 11 0 11쪽
4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1 14 0 10쪽
3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1 16 0 11쪽
2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0 34 0 10쪽
1 평범한 누군가 24.08.30 5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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