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수놓는 마법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시니레네
작품등록일 :
2024.08.30 12:24
최근연재일 :
2024.09.13 22:42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33
추천수 :
0
글자수 :
87,661

작성
24.09.13 22:42
조회
5
추천
0
글자
14쪽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가

DUMMY

“흠, 전처럼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해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아. 신성의 양도 적고. 그리고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럼 애들 보호는 너에게 맡길게. 그리고 저번에 보니까 공백을 다루는 능력도 늘었던데.”


비아나가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백을 아이들 주변에 두른다.


완전히 새로운 것,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이 기존의 것에 불가해한 영향을 준다.


그러나 그 영향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후후. 이제 공백의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 정도는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 나비효과도 어느정도 통제 가능하고.”


“이제 주변이 초토화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비아나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다.

“그런 적 없거든.”



우리는 더욱 깊이 이동했다. 이동할수록 점점 생체 도시를 이루던 생물들의 수가 줄어든다. 이내 우리의 주변에는 어떠한 생물도 보이지 않는다.



이내 하얀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낡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방치된 티가 난다.


하얀 타일로 꽉 채워져 있는 이 공간에는 비눗방울들이 떠다니고 있다. 벽에는 거대한 스크린 하나가 놓여있다. 스크린에 출력되는 어떤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뭔가 의미심장하네.



거대한 욕실같은 풍경을 보고 있자 비아나와의 꿈이 떠오른다.


“비아나, 왠지 익숙한 풍경 같지 않아?”


“그러게. 내 취향이 생각보다 흔한 건가?”


서하는 욕조에 차있는 물을 빤히 드려다 보고 있다. 잘 보니 뭐라 중얼거리고 있다.


‘이게 아직도 남아있다니.’



“서하야, 거기 뭐 있어?”


“...”


서하는 말없이 욕조에 발을 담근다. 그리고 투명한 머리카락을 길게 늘여 몸을 감싼 후 조심스레 욕조에 눕는다. 그러자 어떤 기계음이 울려 퍼진다.


[접속할 수 없습니다.]


서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린다.


“역시, 여기도 알은 깨졌구나.”


그 말을 끝으로 갑자기 서하의 액체로 이루어진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커진다. 이내 공동 전체를 가득 채운다. 우리는 서하의 머리카락 속을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알을 만들겠어.”

.

.

.

“통속의 뇌 이론이라고 들어본 적 있나요?”


지루한 수업시간.


교실의 불은 꺼져있다.


교실은 그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청록색의 햇빛에 의존하고 있다.


교실은 물먹은 것처럼 조용하다.


그나마 불을 꺼서 좋은 점이라면 무언가 고요하고 평안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거다. 그래, 나는 지금 졸고 있는 중이다.



교실은 너무나 고요하다. 생명을 잃은 것처럼, 멈추어버린 정물처럼.



나는 잠을 쫒으려 시도한다.


몸을 움직인다.


물속을 유영하듯 약간의 저항감이 손을 타고 올라온다.


탁, 책상을 친다.

소리가 물에 흩어지며 고요하게 공간을 울린다.


메아리처럼 반복되던 소리는 조금씩 작아지다 이내 물에 완전히 희석되어 사라진다.


그 모습을 감상하고 있자면 정신도 물과 함께 흩어져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나는 그 멍한 정신을 이끌어 여느 때처럼 창밖의 은은한 햇살로 눈길을 옮겼다.


창밖으로 청록색의 빛이 들어온다. 초록유리를 멀리서 봤을 때와 비슷한 색이다.


청록색 창 너머로 색안경을 낀 것처럼 청록색의 풍경이 비친다.


이렇게 창밖을 보고 있노라면 청록으로 뒤덮인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우리는 오감을 통해 세상과 교류하죠. 그리고 그 감각은 전기신호로 뇌에 전달되죠.”


나의 이런 땡땡이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그야 여긴 불하나 켜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어두운 곳에서 무슨 공부인가.


“그런데 사실, 그 오감을 통해 느꼈던 것이 모두 가짜라면 어떨까요? 그저 누군가가 뇌에 전기신호를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이지요.”


선생님의 자장가에 다시 졸음이 몰려온다.


“너무 허무.....겠죠...? ....그러나...우리.....현실.....마찬가...에...”


선생님의 말씀이 띄엄띄엄 들린다.


길게 늘어졌다가, 원래와 다르게 들렸다가, 꿈속의 소리와 섞였다가....



잠결에 누군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 친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그 모습에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잠에서 깼다.


투명한 머리에 파스텔톤의 환상이 떠다닌다. 흠냐, 누구더라....


“맞아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도 통속의 뇌와 다를 바 없어요. 모두 가짜입니다.”


아이고 깜짝이야. 갑자기 왜 소리를 치고 난리지.


고개를 들어올리자 선생님의 무기질적인 눈빛이 눈에 들어온다. 선생은 다시 칠판으로 돌아간다.


그 걸음걸이에서 마치 어설프게 인간을 연기하는 듯한 느낌이 물씬 난다.


나는 이 어색한 상황에 조금씩 기시감이 피어올랐지만 어딘가에 홀린 듯 그 느낌을 흘려넘긴다.


나는 본래의 관심사로 다시 신경을 집중했다.


다시 그 아이를 흴끗 바라보니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손을 작게 흔들며 입모양으로 말한다.



안 녕, 잘 왔 어



무슨 뜻일까? 참, 첫마디부터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도 재주다. 뭐, 원래 저런 애니까.


아니 잠깐, 무슨 말이야. 처음 보는 애인데 왜 알던 것처럼 생각하는 거지.




하교 시간. 나는 학교 기숙사로 향했다.


오늘은 방학까지 D-1. 내일이면 드디어 이 기숙사를 탈출할 수 있다.


참고로 기숙사도 불이 안들어온다. 창이라도 잘 나있어서 다행이지. 이 학교는 전기세가 그리도 아까운 모양이다.



기숙사로 향하니 그 익숙한 듯 낯선 아이가 방에 있다. 나의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아나, 얘는 누군데 우리 기숙사에 있어?”


“오늘 전학 온 아이인데 몰랐어? 수업시간에 맨날 잠만 자니까 그러지.”


그럼 전학 온 주제에 나보고 잘왔다고 말한 거였어? 정말 괴짜네.


“아무튼 정말 재미있는 아이야. 너도 친하게 지내봐.”


“음, 이름이 뭐니?”


아이는 잠시 뜸들이다 말한다.


“반딧불.”


특이한 이름이다. 단어를 이름으로 쓰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말이다.


“그래 반딧불아 만나서 반가워.”


나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나도.”


아이가 수줍게 웃으며 손을 잡는다.


한차례 새 친구의 환영이 끝난 후 바닥에 이불을 펴서 다 함께 누웠다.


우리는 내일 있을 방학식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무서운 이야기를 거쳐 우리의 주제는 어느새 연애 이야기에 도달했다.


“우리 반에 잘생긴 애가 없어서 실망했지? 반디는 이렇게나 이쁜데 말이야.”


“그래도 여자애들은 다 예쁘더라. 마음에 들어.”


“그건 그래. 예를들어 비아나나 얘도 그렇고.”


“그치, 우리 비아나 귀엽고 하얗고 예쁘지.”


“아니, 예쁜 건 너지. 나보다 더 하얗고. 눈송이 같이 말이야.”


내가 비아나보다 하얗다고? 몸이 비누같은 공백으로 된 애가 할말인가.



서은이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더니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에휴, 그래그래. 내가 괜한 말을 했네.”


“헤헤, 너희 되게 친한가 보다.”


“히히 너하고도 친해질 거니까 걱정 마.”


“...고마워.”


창밖에서 별빛이 흘러들어와 반딧불이의 머리카락을 비춘다. 나는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생각한다.


어쩌면 다음 날 잊어버릴 잠결의 순간에서.


반짝거려.

반딧불처럼, 사라질 듯이.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 치고는 너무 어두운 지금 우리는 알람소리에 간신히 일어났다.


“오늘 꿈에 너가 나왔어. 혹시 진짜 찾아간 거는 아니지?”


비아나가 일어나자마자 기분 좋은 얼굴로 말한다.


“글쎄, 모르겠네.”


나는 어제의 생각을 까맣게 잊은 채 말한다.


“모두 부모님과 방학 잘 보내길 바랍니다.”


방학식이 끝난 후 반딧불이 와서 말한다.


“우리 집에 놀러오지 않을래?”


우리는 모두 기대감에 부풀어 고개를 끄덕였다.


반딧불을 제외하면 우리는 이미 서로 집에 가본 적이 있어서 새 친구의 집에 간다는 사실에 들떴다.



어제 만난 사이에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원래 그렇다.


금방 친해져서 집에도 부르고 하곤 한다.



우리는 학교 밖으로 나왔다. 청록색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나는 그 풍경에서 기시감을 느꼈지만 금세 떨쳐냈다. 아마 착각이겠지.


친구들을 돌아보니 그들만 색을 가지고 있다.

"..."


다시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하다. 지나가는 저 사람도 시대를 가늠할 수 없는 생김새의 저 건물도 모두 청록색이다.


게다가 시간이 정지 한 듯이 역동적인 모습 그대로 멈춰 있다.


그들은 그저 이야기의 배경에 불과하다는 듯이, 마치 우리를 제외한 모두가 가짜이기라도 한 듯이.


나는 불안감에 비아나의 손을 꼭 쥐었다. 비아나가 그걸 알아차리고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인다.


“무슨 일이야?”


“아니, 아무것도.”


“그럼 그냥 내 손이 잡고 싶었던 거야?”


“...아니거든.”


반딧불의 집에 도착하니 거실에 아주 큰 해파리 하나가 빛을 내고 있다.


반딧불의 부모는 어느새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잘왔다며 우리를 들여보냈다. 무언가 어색한 움직임으로 말이다. 멈추어버린 사람을 억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우리는 반딧불의 방에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했다. 그러다 비아나가 엄청난 것을 발견했다.


“얘들아 이리와봐!”


“뭔데?”


비아나의 손에 들린 것은...


“와, 사진첩이잖아!”


“안 돼, 보지 마.”


“싫은데~”


반딧불이 비아나를 잡기 위해 침대와 쇼파 위를 뛰어다니다 지쳐서 포기했다.


“에휴. 그냥 마음대로 해.”


사진첩에는 반딧불의 어렸을 때 사진, 가족여행에서 찍은 사진 등이 붙어있다. 반딧불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볼만했다.


“자, 이제 뭐하고 놀까?”


글쎄 잘 모르겠네. 더 할 게 있나? 잠시 고민하며 주변을 둘러본 순간, 갑자기 모두 정지한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이변을 눈치채고 바깥으로 나갔다. 반딧불의 부모님이 멈춰있다. 울렁이던 거실의 거대한 해파리도 빛을 잃고 축 늘어져 있다.


그리곤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어느 방향에서 나는 건지 구분할 수가 없다.


“정말 깨우는 게 맞을까?”


“곧 가상현실 서버가 닫힐거야. 여기서 죽게 놔둘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차라리 여기서 최후를 맡는 게 나을 지도 모르지.”


“본인 일이 아니라고 너무 무책임하네.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생명의 죽음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럼 내가 묻지. 너는 무슨 자격으로 누군가의 현실을 깨려고 하는 거지?”


“...”


“어쩌면 이대로 가상현실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누구든 태어나려면 하나의 세계을 파괴해야 한다.] 이 말에 반대한 건 너잖아. 너무 비윤리적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이 시설을 없애러 온 거고.”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하군.”


다시 대화에 정적이 흐른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 한 후 다시 말을 잇는다.


“...후, 폐쇠를 시작하지.”


그 순간, 가상현실에 잠들어 있는 것이 분명한 아이가 갑자기 깨어난다.


“이럴 수가, 혼자 힘으로 깨어난 사례는 없는데.”


“...아마 이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프로젝트의 최초이자 최후의 성공 사례가 되겠군.”


아이는 갓 태어난 새처럼 두리번 거린다.


“여긴 어디인가요?”

.

.

새는 꼭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가?

.

.

“웁, 파하”


공동을 가득 채우던 물의 수위가 내려간다. 우리는 수면에 둥실 떠올라 숨을 골랐다.


“뭐야, 여긴 어디지? 우린 분명 반딧불의 방에 있었는데? 모두 꿈이었던 거야?”


나는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비아나는 멀쩡히 말하고 있고 서은이도 숨을 고르고 있다.


그리고...서하는 여전히 자신의 머리카락에 감싸여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로 된 머리카락 속이라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하는? 무사한거야?”


“괜찮아. 잠들었을 뿐이야.”


“이제 생각해 보니 반딧불은 서하였네. 정말 꿈이었구나. 허무해.”


서은이가 비아나의 말에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도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잖아. 그럼 된거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괜찮은 것 같아.”


그럼 서하는?

나는 깨어나기 직전에 들었던 대화를 복기해 보았다.


서하는 분명 가상현실에서 혼자 깨어났다. 누구도 그 속에서의 서하의 일생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공허함을 누가 채워줄 수 있을까.


계속 마음속에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날 서하는 어째서 처음보는 나에게 자신의 기억을 보여준 것인지 이해가 안되었다.


아마 그 아이는 나의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에서 가상현실에서 현실로 갖 나왔던 자신을 비춰봤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만이 알고 있는 가상현실에서의 일생을 나에게 보여준 것이다.


아주 작은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그러면 사라져버린 세계에 대한 허무감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것이라고.


또 자신만이 알고 있는 세계에 대한 외로움이 덜어질 것이라고.


나도 언젠가 꿈에서 혼자 깨어난다면 이렇게나 허무할까.


왜 신들이 필사적으로 이 꿈에 동참하려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들도 혼자 꿈에서 깨어나기 두려워서일 테다.


나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가상의 세계는 이렇게나 허무하다.


서하는 그 허무함에서 아직도 허우적 대고 있다.


자신이 태어나기 위해 깼던 세계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에 감싸여서.



원래의 것과 덮어씌운 것.

과육과 껍질.



과육은 이미 물러서 사라져 버렸으며,

거기에는 생기를 잃은 껍질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꿈을 수놓는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가 24.09.13 6 0 14쪽
15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24.09.12 6 0 13쪽
14 가게 24.09.11 7 0 13쪽
13 가게 24.09.10 7 0 13쪽
12 가게 24.09.09 9 0 12쪽
11 입학 24.09.08 10 0 11쪽
10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7 11 0 12쪽
9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6 10 0 13쪽
8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5 11 0 12쪽
7 시작 24.09.04 13 0 14쪽
6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3 12 0 13쪽
5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2 11 0 11쪽
4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1 14 0 10쪽
3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1 16 0 11쪽
2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0 34 0 10쪽
1 평범한 누군가 24.08.30 57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