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와이번 요툰의 둥지가 숨긴 비밀은 무엇인가? 2
“그, 그 새끼에요, 율 아가씨···!!”
멀리서 그들의 광경을 봤다면 과연 어떻게 보였을까.
일단 아치를 등에 업고서 상공으로 날아오른 율 생도는 아마도 그저 자그마한 점으로 보였으리라.
하지만 만약 그들의 코앞까지 날아든 저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거대한 생명체가 점으로 보이려면, 아무래도 저 높이 우주에서 내려다보는 수밖에는 없지 않았을까.
그 짧디짧은 찰나의 순간 만에, 율은 자신의 눈앞에 있던 그 와이번 요툰이 불과 조금 전 자신이 저 아래 부서진 막사 속에 숨어서 몰래 지켜봤던 바로 그놈임을 알아차렸었다.
다만 그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던 네 눈 중 왼쪽의 두 개가 완전히 망가진 채 황금빛의 체액만을 내뿜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휘황찬란한 생명체가 필사적으로 자신을 향해, 보다 정확하게는 율 자신과 아치 아래의 둥지를 향해 날아들고 있음 또한 간단히 직감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찰나의 판단이 이미 내려진 어린 율의 빠르고 간결한 결심을 흔들지는 않았다.
도리어 이를 더더욱 굳건하게 굳혀낼 뿐이었으니.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던 죽음의 검은 그림자를 똑바로 응시하던 율 생도는 잠시 제 등 뒤의 아치가 잘 매달려 있는지를 힐끔 돌아보고서, 이내 그 그림자를 향해 자신의 양손을 활짝 펼쳐 보였다.
“···종자 나리!! 꽉 잡아!!”
“아, 아가씨!?”
― “새, 생도!! 대체 무슨 짓을···?!”
“···불(Brand)!!! 최대로!!!”
― ···촤하아악―!!!
과거의 전승에 따르면, 드래곤 즉 용들은 그 아가리에서 강력한 불꽃을 내뿜을 수 있다고 했다.
드래곤이 실존하지 않던 시대의 사람들은 절대로 육안을 통해 볼 수 없었을 광경이리라.
하지만 그와 유사한 요툰들이 이 지구를 앗아간 이 시대의 사람들조차,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파덴베르크 산 정상에서 피어오른 저 거대한 불꽃과 같은 광경은 단 한 순간도 올려다본 적이 없었을 터.
“하아앗―!!”
“으, 으악―!!”
세이드 슈트의 출력을 최대로 올린 채, 율 생도는 아주 거대한 화염을 내뿜어 이로써 자신에게 다가오던 그 거대한 와이번 요툰을 에워싸버렸다.
그녀의 등 뒤에 매달려 있던 종자 아치는 비록 온몸을 전사자에게서 빌린 구르얀 갑주로 둘러쌌음에도 그 엄청난 열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말 그대로 용이 내뿜는 불꽃과도 같은 그 거대한 화염 방사로 인해, 율과 아치는 그 반작용으로 빠르게 둥지 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반면, 불의의 기습을 받고서 필사적으로 자신의 둥지로 돌아오려던 그 거대한 와이번 요툰으로선 그야말로 설상가상의 사태에 빠진 격이었는데.
― “캬하아악―!!! 캬하아아아악―!!!”
“···타올라라, 이 빌어먹을 자식···!”
삽시간에 온몸의 깃털들에다 화염을 뒤집어쓴 와이번 요툰이 하늘을 찢어놓을 듯한 비명을 지르며 결국 자신의 둥지 속으로 추락하자,
그 요툰을 원수로 삼았던 지상의 퍼시 소령이 그놈에게 겨누었던 가우스 소총을 거두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한편 그 거대한 불꽃이 점차 잦아들자, 퍼시 소령은 다시 한번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두 젊은이들에게 무전을 보내려 했는데.
― “···생도!! 종자!! 무사하냐!?”
“크흑···! 씨, 씨발···!”
“아, 아가씨!! 괜찮으세요!?”
“슈, 슈트가···, 더는 버티질 못했어···.”
퍼시 소령의 무전이 자신들의 헬멧 속으로 전해졌음에도, 율과 아치는 미처 그에게 답을 전하지 못했다.
율의 당부대로 그녀의 등에 단단히 매달려 있던 아치는, 그런 율 생도의 두 손을 보고서 헬멧 속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율 생도가 입은 발키리 특임대원 전용 구르얀 갑주는 그 안에 받쳐 입는 세이드 슈트와의 호환성을 최우선으로 중시했다.
세이드 슈트의 모든 활동은 그 두 손과 발에서 일어나는데, 그 때문에 발키리 전용 갑주의 손 부위는 세이드 슈트의 그것이 사실상 그대로 바깥에 노출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리고 율 생도의 바로 그 부위가, 지금 갈가리 찢기고 또 조금 녹아버리기까지 했었다.
아치는 금방 사태의 심각성을 깨우치고서 당장 율에게 목소리를 드높였다.
“···아가씨!! 당장 착륙하세요!! 지금 당장!!
저걸 그대로 놔두면 아가씨 손이 화상으로 완전히 망가질 거라고요!!”
― “생도!! 종자!! 크흑···! 일단 피해라, 어서!!”
“교, 교관님?! 그게 무슨···!?”
“조, 종자 나리!! 꽉 잡아!! 이얏!!”
아치의 모든 신경이 율의 두 손만을 향하고 있을 무렵, 또 하나의 미처 생각지도 못한 사태가 새로이 벌어지고 말았다.
율의 비명을 듣고서 저도 모르게 다시 한번 그녀의 등에 단단히 매달렸던 아치는, 바로 그 자신의 코앞을 스쳐 날아가는 불타는 통나무 파편에 다시 한번 깜짝 놀라버렸다.
온몸에 불을 끼얹은 채 자신의 둥지 속으로 추락했던 와이번 요툰,
그 모두에게 안타깝게도 그놈은 그렇게 단번에 절명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 “캬하아악!!! 캬하아아악―!!!”
“크흑···! 저, 저 새끼가···!?”
“난동을 부리잖아요?! 아가씨, 일단 아래로 내려가야···!
···으악!!”
“무리야! 저 새끼가 제 둥지를 완전히 산산조각내고 있잖아!”
와이번 요툰의 둥지는 수많은 통나무들을 단단히 엮어 만들어졌었다.
하지만 이미 그 자신이 거대한 불덩이가 된 채 그 안에 떨어졌던 요툰 때문에, 그 거대한 둥지에도 불길이 옮겨붙은 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여전히 숨통이 끊어지지 않았던 와이번 요툰이 그 둥지 안에서 난동을 부린 탓에, 둥지의 파편들이 불붙은 채로 여기저기로 날아가 버렸다.
그 모습은 또한 마치,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하나의 거대한 유성우와 같았다.
“크핫! 비, 빌어먹을···!”
그 유성우의 불길은 둥지가 세워졌던 통신탑 아래에도 그대로 미쳤었다.
퍼시 소령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자 부서진 막사에 그대로 남아 저격 포지션을 잡고 있었지만, 그러한 유성우만큼은 그조차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심지어 그 불타는 통나무 파편들이 막사 자리로 떨어져 그 잔해마저 박살 낼 지경에 이르자, 퍼시 소령도 어쩔 수 없이 가우스 소총을 집어 던지고선 빠르게 막사 바깥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꽉 잡아, 종자 나리! 일단 하나하나 피하고 보자고!”
“네, 아가씨! 카, 칼은 잘 잡고 있어요!”
“칼 말고! 날 꽉 잡으라고! 이얏!!”
간단한 실랑이조차 벌일 틈도 없이, 율 생도는 구르얀 카타나를 단단히 쥐고 있던 아치를 등에 진 채 무차별적으로 날아들던 둥지 파편을 피해 이리저리로 날아들었다.
또한 그 모두에게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고통의 순간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 쾅!! “캬하아악!! 캬하악···!!”
“흐읏···! 끄, 끝난 건가···!”
잠시 후 통신탑의 부서진 접시형 안테나가 불에 잔뜩 그을린 것이 다 드러날 지경이 되어서야, 와이번 요툰은 자신의 둥지를 부수는 것을 겨우 멈추고서 그 안테나 위에 널브러졌다.
율과 아치는 그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 요툰이 타버린 소름 끼치는 누린내를 헬멧 너머로 똑똑히 맡을 수 있었다.
온몸의 깃털이 망가진 채 점차 움직임이 잦아들던 그 거대한 생명체는, 마침내 그 중앙의 무언가를 감싸는 듯한 자세로 드러눕고서야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이제야···, 죽은 건가요···?”
“저 새끼···, 일부러 저렇게 발광한 거였어···!”
“무, 무슨 말씀인가요, 율 아가씨···!?”
“저길 봐···! 저 새끼가 마지막까지 뭘 감싸려 드는지를 말이야···!”
망가진 세이드 슈트의 장갑 속 율 생도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화상을 입은 고통이 그토록 막심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작열통조차 까맣게 잊을 정도로 율은 크나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녀의 등 뒤에 매달려 있던 아치는 그런 율 생도의 떨리는 손가락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알아보고서, 그제야 그 자신 또한 똑같은 충격을 받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아, 알···!
자, 자기 알을···, 보호하려 했던 건가요···?!”
“온 둥지가 불타버리면 알도 무사하기 힘드니까···, 일부러 제 한 몸을 다 불태워가면서···!”
이미 숨이 멎었던 와이번 요툰은 그렇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알을 품은 채로 쪼그라들었다.
그 모습을 상공에서 내려다보던 율과 아치는 그런 요툰의 최후를 보고서 심지어 경건함마저 느끼고 말았으니.
그들이 그렇게 자신들이 겪고 있는 상황과 고통 모두를 잊은 채 그러한 경건함 앞에 굳어버렸을 무렵,
다시 한번 퍼시 소령의 무전이 율과 아치의 헬멧 속으로 전해졌다.
― “···생도, 종자. 상황이 종료된 모양이로군.”
“···교, 교관님···! 무사하십니까···?”
― “난 괜찮다. 저놈이 난동을 부린 탓에 일단 막사 바깥으로 피해야 했지만.
내 검은? 내 검은 잘 들고 있겠지?”
“여, 여기는 아치! 물론입니다! 제가 잘 들고 있습니다!”
― “잘했다, 종자. 그럼 생도? 어서 내려오도록.
좀 전에 무전으로 들으니, 네 슈트가 망가지면서 부상까지 입었다면서?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네가 오는 대로 내가 가능한 한 빨리 네 상처를 봐주마.
그리고···, 너희는 이대로 생도대장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면 된다.
고생들 했다. 너희들의 임무는 이대로···.”
···콰직···!!
“···교관님? 퍼시 교관님?
들리십니까? 교, 교관님···?”
그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퍼시 소령의 무전이 뚝 끊기고 말았다.
그에 당황한 율 생도가 급히 자신의 무전 상태를 확인했지만, 정작 문제는 자신에게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문제의 정체를 가장 먼저 알아챘던 그녀 등 뒤의 아치가, 엄청나게 떨리는 손을 겨우겨우 들어 저 멀리 아래의 전진 기지 쪽을 가리켰다.
“···아, 아, 아가씨···.”
“조, 종자 나리? 왜 그래!?”
“저, 저, 저, 저기···!”
“···이, 이럴 수가···.
하, 하나가···, 아니었다고···?”
― “···캬하아아아악―!!! 캬하아아아아악―!!!!!!”
불과 조금 전 절명했던 그 와이번 요툰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생명체.
바로 그것이 전진 기지 아래로 내려앉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절규하고 있었다.
그런 또 다른 와이번 요툰의 눈은 무려 좌우로 세 쌍, 도합 여섯 개의 눈이 자신의 불타버린 둥지와 그 위의 자그마한 점을 노려봤었다.
바로 그 자그마한 점, 율과 아치는 공포와 절망에 그대로 잠식당한 채 그대로 상공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바로 그 거대한 또 다른 와이번 요툰의 흉측한 발톱 아래로, 너무나 익숙한 구형 구르얀 갑주의 잔해가 깔린 채 명예로운 자의 붉은 피로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와이번 요툰은 그 누가 자신의 원수인지를 너무나도 똑똑히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퍼, 퍼시 교관님···.”
“이, 이럴 수가···. 대, 대체 저렇게나 큰놈이···, 대체 무슨 수로 교관님을···?”
― “···캬하아아아악―!!!” 훙···!!
‘···나, 날갯소리가···. 조금 전 그놈보다 훨씬 작아···!?
“···생도, 종자. 그거 아나? 내가 처음 저 녀석에게 습격당했을 땐 말이다.
저놈은 저렇게 거센 날갯소리를 내질 않았어. 즉 저 거대한 놈도 나름 은엄폐에 능하다는 말이겠지···.”’
“···이, 이럴 수가···. 종자 나리···.
아무래도···, 우린 엉뚱한 요툰을 상대하고 있었나 봐···.”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저 우아하게 날아올랐던 이 세 쌍의 황금빛 눈을 지닌 거대한 생명체.
와이번 요툰은 그렇게 날아올라선 순식간에 망가진 둥지 위로 올라섰다.
아마 그 자신의 반려(伴侶)였을까. 이 유령 같은 무음의 와이번 요툰은 불타 죽은 와이번 요툰을 내려다보며 그 거대한 부리를 꾹 닫은 채 이로써 그 시신을 툭툭 밀어보고 나섰다.
그러나 이미 절명한 이가 무어라 반응할 이유는 없었기에, 이 유령 같은 요툰은 그저 다시 한번 분노 어린 절규를 하늘에 내뱉을 뿐이었다.
― “···캬하아아아악―!!! 캬하아아아아악···!!!!!!”
***
끝
- 작가의말
전체 28, 2장 10화입니다.
오늘도 부득이하게 연참이 없습니다. 내일 계속됩니다.
연휴 마지막 날도 즐겁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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