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반 게임 속 밸런스 파괴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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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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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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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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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적

DUMMY

9. 미지의 적


‘뭘 하기엔 옥상이 적당하겠지.’


나는 하룻밤사이 자가 수리를 시행했을 워치를 점검하기 위해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만에 하나 통제 불능의 사고가 발생했다간 뒷처리가 힘들 테니 말이다.


저벅. 저벅.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

발자국 소리만이 고요하게 퍼진다.


하나하나 계단을 밟으며 올라갈 무렵.

문득 어제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잘 넘기긴 했지만 위험했다.’


하필 에너지가 바닥나 있었을 줄이야.


특수 기능들을 숙지하고 있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의미 없이 시체 한 구만 늘어날 뻔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결과적으로 줄행랑치는 게 제일 좋은 선택이었군.’


워치를 가동할 수 없다는 시점에서 뭘 할 수가 없을 테니까. 적어도 그 상황에선 베스트인 게 확실했다.

물론 이후 덮쳐 올 위험에서 안전을 보장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블랙 프레데터는 괜찮았을까.’


나야 그 원흉을 직접 제거함으로써 위기를 타파했지만. 원작의 남지훈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기껏해야 자기 혼자 살아남은 게 다겠지.’


솔직한 심정으론, 멀쩡히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심각한 정신 질환이 발병했을 수도 있다. 성인이 겪었어도 평생 트라우마가 됐을 일이니까.


‘순탄치 않은 것 만은 확실해.’


그 미래를 살짝만 점쳐보아도 그의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단 걸 알 수 있다.


‘쥐 죽은 듯 웅크린 채 제 목숨만을 연명했겠지. 어쩌면 방구석 폐인이 됐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두고 혼자 도망쳤다는 죄책감에 파묻혔든. 살인 로봇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며 두려움에 사로잡혔든. 어떤 이유에서건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기억이 아니다.


‘매일매일 피가 말라가는 심정이겠지.’


가엾은 녀석. 그 처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동정심이 피어난다.


‘그런데, 용케도 다시 싸울 생각을 했단 말이야.’


블랙 프레데터는 그런 절망 속에서도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과연 어떤 마음으로 가지고 워치를 사용하며, 피 튀기는 전장에 돌아섰을까.

어떻게 그 참담한 현실을 극복했을지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계기야 어찌됐든 상당한 각오가 필요했을 터. 나로선 그 어깨와 가슴에 얹어졌을 짐을 감히 멋대로 재단할 수 없었다.


‘그 불쌍한 녀석을 욕하다니. 참 나.’


새삼 이기적이고 비겁하다는 마녀의 평가가 어이없을 따름이다.


뭐 사실 나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다.

산을 오를 때만 하더라도 워치를 손에 넣어 강력한 힘을 차지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으니까.


‘블랙 프레데터는 워치와 남지훈의 노력이 합산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워치를 얻으면서 그가 겪었을 고난과 역경을 직시하지 않았다.

팬이라 자부해온 내가, 한순간이지만 블랙 프레데터의 위업을 폄하해버린 것이다.


이건 팬으로써 실격. 가슴 깊이 반성해야할 부분이었다.


‘씁. 그래도 마지막 결전에서 나타나지 않은 건 용서하기 힘들긴 한데···. 아씨, 모르겠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

나는 그 감정을 정의하길 포기했다.


어차피 지금 내게 있어서 아무래도 좋은, 상관없는 일. 다른 곳에 정신 팔 것이 아니라, 일단 나부터 신경 써야 했다.


‘안일한 마음부터 버리자.’


영화나 게임에선 표현되지 않은 공백의 시간. 그것이 꼭 아무 사건도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제처럼 언제 어디서 위기가 닥치질 모르니 방심해선 안 된다.


‘한가하게 적응기간을 생각할 때가 아니야.’


거시적으로 보면, 어제의 일은 내게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곳에서 살아갈 마음가짐 같이 기틀을 다질 사건으로 말이다.

물론 다신 경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신경 쓸 것이 늘었어.’


내가 알고 있는 주요 사건과 별개로, 이제 나만의 이야기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게임으로 대입하면, 메인 퀘스트에 서브 퀘스트 또는 개인 퀘스트가 보태진 셈이다.


‘본래 죽었을 운명인 애들이 살아남았다.’


이것이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 섣불리 예견할 수 없다.

캐릭터 각자의 스토리는 독립적인 경우가 많지만. 메인 시나리오와 관련 있는 경우도 간혹 있으니까.


‘영화는 말할 것 없고, 게임하고도 많이 틀어지겠지.’


냉정하게 말하면 영화는 게임을 바탕으로 마녀가 꾸며낸 망상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오히려 방해만 된다고 여길 수 있지만.

나는 실제로 아주 유용할 것이라 확신했었다.


‘영화의 사건은 전부 게임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토대일 테니까.’


마녀는 게임 속의 주역. 직접 체험한 경험자다.

즉, 영화는 마녀와 보조 작가들이 머리를 맞대어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결과를 예측한 내용이란 소리였다.


만약 그 과정에 터무니없는 비약이 섞여있다면 아무 소용없겠지만.


‘내가 플레이 해봤을 때, 두 작품의 설정이나 배경에서 큰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어.’


적어도 내가 아는 지식에선 두 작품은 처한 상황만 바뀌었을 뿐, 사건 자체는 같았다.

그건 마녀가 인물들을 최대한 똑같이 표현했단 뜻일 터. 그렇기에 최종적으로 ‘유용한 참고서’라고 판단을 내렸었다.


이상적인 흐름의 영화와 비극적인 결말의 게임.


나는 어제 어느 방향으로 손잡이를 돌린 걸까. 아니 어쩌면 돌렸다고 착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길게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 잡다한 고민은 그렇듯 명쾌한 해답 없이 끝이 났고. 나는 목적지인 옥상에 도착했다.


끼이익-.

문은 소름끼치는 소음을 내며 열렸고. 녹색 페인트로 칠해진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메마른 토지처럼 쩍쩍 갈라진 페인트 자국과 ㄷ자로 꺾인 배관.


오랜만이지만 그 위치는 무척이나 눈에 익었다.


가끔 와서 하늘을 보곤 했었는데. 참 간만이다.


어렸을 적 추억을 떨쳐내고 워치로 시선을 돌린다.


“블랙. 자가 수리 결과 알려줘.”


[자가진단 실행. 손상 부위를 파악합니다.]

[점검 시간 동안은 명령 수행이 불가능하니. 그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워치에겐 ‘블랙’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내게 애착 있는 물건에 이름을 붙이는 취미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생각과 명령을 구분 지어 명령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서였다.


‘워치의 명령 인식 시스템은 처음 설정된 상호작용이 적을 뿐. 고성능AI와 크게 다를 게 없지.’


전투에 집중할 수 있게 주인을 보조하고. 또 주인의 습관이나 애용하는 무기 등을 학습한다.

병기(兵器)라는 용도에 걸맞은 훌륭한 파트너라 할 수 있다.


[동력 저장장치와 파워 보조 모듈에서 손상을 발견했습니다.]

[점검 결과. 기존보다 자원이 빠르게 고갈되고 출력이 저하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다행이라도 해야 할까. 워치는 정확히 예측했던 대로 고장 나 있었다.


그러나 손상된 부위를 알고 있더라도 내겐 워치를 뜯어 고칠 기술이 없었다.


‘수리도 해야 하고 업그레이드도 해야 하고, 할 게 많네.’


ver.0 초기 모델 상태로는 내가 기억하는 블랙 프레데터 본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대로는 어디 가서 블랙 프레데터라고 자랑스레 말할 수도 없을 지경.


‘일이 적당히 정리되면 엔지니어부터 찾아야겠군.’


그래도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본래 블랙 워치를 전담했을 엔지니어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영화나 게임에서도 블랙 프레데터가 워치를 무리하게 가동한 적이 제법 있다.

그럴 때 마다 망가질 것 같던 워치가 다시 멀쩡해져서 돌아오곤 했으니. 그에게 담당 엔지니어가 있다는 점은 쉽게 추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엔지니어에 관해 공식적으로 풀린 정보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엔지니어는 어디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된 적이 없는 인물. 단지 그럴 것 같다는 이유로 팬들이 유추해낸 존재였다.

물론 나는 그들과 달리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8회차였나. 그때부터 서서히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지.’


이후 14회차까지 철저한 분석이 더해진 끝에 단서를 발견하며. 몇몇 요인들을 특정해냈다.


‘20대 중반으로 추정. 성별은 여성. 그리고 신장은 평균 이하. 마지막으로 초능력자라는 것, 정도였나.’


더 있긴 하지만 정확한 것만 꼽자면 이렇다.


대다수의 관객은 그 힌트들을 대수롭지 않은, 별 의미 없는 발언으로 치부했지만. 나는 말실수란 걸 눈치 챌 수 있었고.

18회차 쯤 되니 블랙 프레데터의 엔지니어의 대략적인 위치 또한 추측해낼 수 있었다.


초령시.

바로 양성 기관 해태가 위치한 그곳이다.


‘입학하고 틈틈이 찾으러 다녀야겠네.’


늦어도 마지막 주에 면접을 보고 4월 달에 입학하게 될 테니. 초령시에 가는 건 시간문제.

거기서 엔지니어를 찾으면 수리와 업그레이드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럼 블랙. 기본 변용 전투복부터 시작하자.”


나는 이어서 워치 점검을 재개했다.


곧바로 주위에 검은 장막이 펼쳐지고. 내 의상은 집을 나왔던 후줄근한 차림에서, 블랙 프레데터의 코스튬(영화나 게임에서 등장한 의상보단 다소 밋밋한 복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전투복도 초기 외형인가.’


아무런 추가 장비나 옵션이 없다보니 전술 마스크를 제외하면 군복보단 좀 더 일상적인 옷차림. 트레이닝복에 가까웠다.

옵션 추가는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성능을 체크했다.


‘좋아. 딱히 불편한 곳은 없어.’


어색하게 주먹을 말아 쥐며 허공에 펀치를 날리고. 체조하듯이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본다. 제자리에서 가볍게 점프하며 성능을 확인했다.


마음 같아선 근력이나 강도 테스트도 해보고 싶지만. 소란스러워질 것 같아 생략하려는데.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소음이 발생하는 건 다른 장비들도 마찬가지라는 점이었다.


‘그냥 처음부터 뒷산으로 갈 걸 그랬군.’


뒷산에서도 할 수 있는 걸 번거롭게 옥상으로 올라오다니 생각이 짧았다.


일어나자마자 급하게 움직인 탓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내심 시신 처리를 저만치 뒤로 미루고 싶었던 모양이다.


‘······가야겠지.’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 내 손으로 깨끗이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마음 편하게 시신부터 정리하기로 결심하며 옥상을 내려갔다.


*


‘아마 이쯤이었을 텐데.’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산기슭을 올라갔다.

손에는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모종삽을 쥔 채로 말이다.


‘이걸로는 꽤 시간이 걸리겠네.’


작디작은 모종삽을 보자 쓴 웃음이 나왔다.


이것도 베란다에서 겨우 발견한 것이다.

집안을 아무리 뒤져도 내가 원하는, 큼지막한 기구는 가정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당장의 상황에선 이게 최선. 내겐 철물점에 들려 삽을 구매할 돈조차 없었다.


‘거의 다 왔다.’


어제 피곤에 절어 돌아간 탓에 시신은 정상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을 터.

운이 나쁘면 산짐승이 시신을 훼손했을 수도 있기에, 사뭇 끔찍한 광경을 상상하며 단단히 각오했다.


마침내 눈앞에 정상의 풍경이 드러난 순간.


“씨발.”


나는 반사적으로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훼손된 시체를 보고 한 말은 아니다. 차라리 그랬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돌겠네 진짜. 분명, 분명 여기 있었잖아?”


방금 내가 각오한 것이 무색하게 정상 지역은 말끔했다. 시체는커녕 땅에 남아있던 핏자국마저 사라져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장면과는 다른 광경. 보고도 믿지 못할 풍경이었다.


‘아주 깔끔하게 소멸했다.’


이후 긴 시간동안 심혈을 기울이며 주위를 샅샅이 조사했지만. 끝내 아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마치 어제 일이 없던 것처럼.’


밑동만 남은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고민에 빠졌다.


두 사람의 시신이 행방불명되었다.

시체뿐만이 아니다.

워치가 들어있던 보급품 상자. 치열한 격전을 벌인 끝에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을 곳으로 던져버린 스케빈저의 잔해까지.

전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사이 놈의 동료가 와서 정리했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비록 청소부라는 뜻의 이름이 붙긴 했지만. 놈들은 대게 현장을 신경 쓰는 족속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정리했다 하더라도, 핏자국을 지우려 땅을 뒤엎는 등의 세세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손목에 있는 워치만 아니었어도 꿈이라고 착각했겠군.’


분명 어제 이곳에서 큰일이 있었지만. 그것을 뒷받침해줄 증거는 깡그리 증발해버렸다.


내 짧은 식견으로도 이것이 보통 솜씨가 아니란 게 보였다. 속칭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진다고 할까.


‘워치를 노린 다른 세력이 몰래 뒷수습을 했나?’


그렇다면 무슨 목적으로 그랬을까.

당장 생각나는 건, 워치의 존재를 감추려는 것 정도.

이곳을 정리한 정체불명의 존재는 워치를 찾아내서 독차지하려는 속셈일까. 지금으로선 그것을 밝혀낼 수 없다.


‘어쨌든 비상사태란 건 확실해.’


그 정체 모를 세력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아직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보이지 않는 미지의 적이 근처를 배회하며 나를 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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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기사회생 NEW 6시간 전 2 0 11쪽
15 심해의 괴물(2) 24.09.17 5 0 12쪽
14 심해의 괴물 24.09.16 7 0 13쪽
13 질문 타임 24.09.15 10 0 12쪽
12 대화 자세 24.09.13 11 0 12쪽
11 등장인물 24.09.12 11 0 12쪽
10 훌륭한 스타트 24.09.11 16 1 12쪽
» 미지의 적 24.09.10 16 0 13쪽
8 불쾌한 기억 24.09.09 17 0 12쪽
7 전리품 24.09.08 24 2 13쪽
6 특별 상품 목록 24.09.06 22 0 12쪽
5 역할 24.09.05 23 0 13쪽
4 다섯 24.09.04 26 0 12쪽
3 괴한 24.09.03 29 0 13쪽
2 기가 막힌 우연 24.09.02 35 0 17쪽
1 프롤로그. 취미 + 1. Movie licensed game. 24.09.02 41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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