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 게임 속 영웅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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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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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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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1)

DUMMY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검으로 꿰뚫어 죽였다.

그 생생한 감각이 아직도 손끝에 머무는 듯했다.


몬스터를 죽이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그것이 나를 한층 더 괴롭게 만들었다.


[ 고요 (상)이 발동 중입니다. ]


더군다나 숨이 끊어져 갈 때의 그 눈빛.


“빌어먹을.”


기분이 더럽군.


나는 주변을 쓱 훑었다.

모두 죽은 사람뿐이었다.


이곳에 살아있는 사람은 나뿐.

그래, 아무도 모른다.


내가 그녀를 죽인 것도.

그녀가 모두를 죽인 것도.


“아니, 내가 알고 있잖아.”


벽에 등을 기대고 쭉 미끄러졌다.

마력이 바닥나서 그런지,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 스킬 : 고요가 해제됩니다. ]


잠깐만, 아주 잠깐만 쉬자.



***



10분 정도 휴식을 취한 나는 인간 사냥꾼에게 다가가 도끼를 챙겼다.

허리춤에 있던 도끼 주머니도 챙겼다.

검을 뽑을 수는 없고, 양손 검은 써본 적이 없으니 가장 합당한 선택이었다.


그나마 멀쩡한 인간 사냥꾼 놈들의 배낭을 챙기고, 짐들을 챙겼다.


“미안합니다. 제임스 씨.”


새까맣게 불타고 역한 냄새를 풍기는 제임스의 시신.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는 살았을까.


하지만 이미 선택을 내린 상황.

후회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당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생존.


나는 그의 등에 깔려 있던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챙겼다.


“멀쩡하군.”


그것은 그을림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건 없고.”


그것 외에는 건질 것이 없었다.

모조리 불타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식량은 인간 사냥꾼 배낭에 있었으니······.

대충 4일은 버틸 수 있겠지.


마무리로 마법이 새겨진 지팡이들도 챙겼다.

마법사로 나아갈 건 아니지만 마법이 새겨진 물건들은 비싸게 팔리거든.


그러니 챙겨가는 게 좋겠지.

파이어의 지팡이, 그리고 바인의 지팡이도 가방에 챙겼다.


후, 피로가 산처럼 쌓인 느낌이군.

우선은 안전 구역으로 가서 휴식을 취해야겠어.


이제 혼자가 된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제임스의 시신을 지나, 마리의 시신을 지나, 모리츠의 시신을 지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안전 구역.


대충 40분 정도 사용했었나.

시간도 꽤 지났으니 얼추 회복이 됐겠지.


왼손을 신관 위에 얹었다.

이렇게 하는 거였나?


신관의 기능을 사용하는 것을 생각했다.

그러자 신관이 황금빛 섬광을 흩뿌렸다.


섬광이 주변을 휩쓸기 무섭게 오른손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화상이 치료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것도 다 치료하는구나.

굉장한 물건이로군.


이런 게 현대에 있었으면 얼마나 하려나.

웬만한 외상은 흉터도 없이 다 고치는 거 같은데 꽤 나가겠지?


대충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잠시 눈을 붙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카가각. 카각.


“케르륵.”


기괴한 소리들이 나의 달콤한 잠을 깨웠다.


아, 망할 고블린.


혼 고블린들이 안전 구역 바깥을 열심히 긁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참, 여기 던전 안이었지.

그리고 빌어먹을 게임 안이었고.


잠시 잠들었다고 잊었다.

아니, 자고 일어나면 모두 꿈이었길 바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돌아가서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싶군.

이런 돌바닥에서 쪽잠이 아니라.


나는 가방을 뒤져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30분의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곧 신관이 꺼진다.


깨어난 게 다행이군.


허리춤에 차둔 도끼를 꺼내 오른손에 쥐었다.

화상은 신관이 치료해줘 모두 사라졌다.

이제 아주 잘 쥐어지는군.


“께륵?”


안전 구역 끝자락에 다가가자 혼 고블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봐, 그래도 하나도 안 귀여워.

너는 못생긴 고블린이라고.


쩌억.


새카만 도끼의 날이 혼 고블린의 뿔을 가르고, 머리를 파고들었다.


“하나.”


남은 것은 넷.


“케에에엑!”


동료가 당하자 고블린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전 구역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황.

도끼 한 방에 한 마리씩 숨을 거두며 친구의 곁으로 다가갔다.


“후.”


얼마나 됐다고 몬스터를 잡는 게 익숙해진 건지.


혼 고블린을 모두 처리한 후, 짐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비스킷을 꺼냈다.

수분기가 하나도 없어 퍼석한 보존 식량.

사냥꾼 놈들이 들고 있던 식량이었다.


하긴 오랜 시간 던전에 있을 수도 있으니 이런 식량이 좋겠지.

어차피 물도 있으니까.


이걸 먹고 있자니 제임스가 줬던 육포가 그리워지는군.


간단히 식사를 처리한 나는 배낭을 도로 메고 발걸음을 옮겼다.

신관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한 곳에 있는 것은 좋지 못하다.


던전은 몬스터가 계속해서 소환되거든.

실제론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지.


더군다나 게임에선 볼 수 없던 인간 사냥꾼이라는 존재도 있는 상황.


최대한 생명체가 없는 곳, 혹은 반대의 경우를 찾아 남은 시간을 보낸다.

지금 상태로는 깊숙한 층으로 가기도 어려우니, 후자가 좋겠지.


휴식을 취하던 안전 구역이 있는 곳은 일자로 뻗은 길의 정중앙.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그 난리가 난 길이며, 반대로 간다면 던전 바깥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번에도 내가 선택한 선택지는 후자.

제임스가 이 뿔로도 충분한 수입이 된다고 했으니 빠져나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나가서 정보를 얻고, 새 파티를 꾸리고 다시 와야지.


그렇게 홀로 던전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미싱 피스 산 던전인가. 더럽게 많네.”


가는 길에도 혼 고블린들이 나타나 내 앞길을 방해했다.

물론 아까의 안전 구역 같은 수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거슬렸다.


최소 둘 혹은 셋으로 활동하는 고블린들.

한 마리를 죽이고 있으면 다른 한놈이 달려드는 것이다.


그 때문에 팔꿈치가 갈라지며 상처를 입었다.

더럽게 아프다.


이 비겁한 놈들.

다굴빵이 그리 좋더냐.

그 대가는 목숨으로 받아가라!


나는 배낭을 뒤져 약초와 붕대를 꺼냈다.

이 사냥꾼 놈들은 없는 게 없네.


이거 어떻게 쓰냐.

현대인인 나는 약을 발랐지 약초를 쓴 적은 없다.


그냥 대충 짓이겨서 바르면 되겠지.

약초를 대충 짓이겨 상처 부위에 올린 후, 붕대를 감았다.


하필 팔을 다쳐서 약초를 올리고 붕대를 매는 것도 한참이 걸렸다.

자꾸 떨어지는데 잡을 손이 없다고!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상처까지.

진짜로 죽을 맛이다.


입구 쪽이라 안전 구역도 없을 텐데······.

이거 다시 돌아가야 하나?


하긴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안전 구역 주위에서 빙빙 도는 게 더 확실할 지도.

그런 생각을 품으며 이동을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저벅저벅.


저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

나는 반사적으로 도끼를 뽑아 들었다.

그야 이곳에 와서 만난 인간 중에 정상을 본 적이 없거든.


그나저나 무언가 이상하다.

발소리가 들리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그 발소리가 단 하나다.


보통 던전은 파티를 꾸려서 오지 않나?

인간 사냥꾼도 그렇고, 내가 빙의한 하다르도 그렇고 모두 파티를 꾸리고 있었다.


물론 게임에선 솔플 위주라서 혼자도 들어오긴 했는데······.

NPC들을 파티로 데려갈 수 있기에 보통 채용하는 편이었다.

후반이면 몰라도 초반엔 던전 난이도에 비해 캐릭터가 너무도 나약했으니 말이다.


던전이 무료로 개방된 지 얼마 안 됐으니 맛보러 온 초짜인가?

초짜면 오히려 더 자기들끼리 뭉쳐서 파티로 오지 않나.

얘 파티도 그랬던 거 같은데.


저벅저벅.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던전 곳곳에 걸려 있는 횃불에 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릿빛 피부, 하나로 묶인 새하얀 머리칼 그리고 황금빛 눈동자.

그 모든 것이 현대에선 쉽사리 볼 수 없는 모습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눈에 담기지 않았다.

남자의 덩치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었다.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키.

근육으로 가득한 거대한 덩치는 이 널널한 던전의 복도가 좁아 보이게 할 정도였다.


저런 조건들에 저 덩치라.

나는 그런 남자를 한 명 알고 있었다.


토마 테투스 타우러스.

이 던전의 주인이자, [미싱 피스]의 [열두 영웅] 중 하나.


얘가 왜 여기 있냐?


나를 발견한 토마가 말을 걸었다.


“음? 자네는 왜 혼자 있나?”

“······.”


나는 침묵을 유지했다.

그의 정체를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메인 스토리 퀘스트 : 영웅의 자격이 진행 중입니다. ]

[ 획득한 조각 0 / 12 ]

[ 잃어버린 조각 중 하나가 근처에 있습니다. ]


나도 알아.

바로 앞에 있잖아.


“말을 못 하는 건가?”


토마가 덩치처럼 거대한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취급은 좀 그런데.


“······할 줄 압니다.”

“역시나 그렇군. 그런데 왜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지?”


[ 스킬 : 고요가 발동됩니다. ]


“이런 곳에서 영웅을 뵙게 될 줄 몰랐으니 말이죠.”

“하하하, 그런가? 너무 어려워할 필요 없네. 요새 인간 사냥꾼이 문제라고 해서 확인 차 나와본 것이니 말이야.”


토마가 고개를 숙여 나와 시선을 맞췄다.


“자네가 인간 사냥꾼만 아니라면 말이야.”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이글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 눈동자를 보니 알 수 있었다.


이놈, 나를 의심하고 있다.


하긴 나도 던전에 혼자 있는 걸 수상히 여겼는데, 주인 씨는 오죽하겠는가.

거기다 나는 짐도 두둑하잖아.


“왜 혼자 있지? 그리고 가방에 있는 그 지팡이 내가 아는 것과 닮았는데 말이야.”


[ 고요 (하)가 발동 중입니다. ]


지팡이? 뭘 가리키는 거지?

파이어? 바인?

설마 마리가 얘 제자라도 되는 설정인가?

내가 아는 한 그런 건 없는데.


이거 어떻게 대처해야 한담.


지금 스펙으로는 결단코 토마를 죽일 수 없다.

그와의 나의 격차는 땅과 별의 차이 정도라고 해야 할까?

얘가 주먹만 휘둘러도 나는 그냥 죽을걸?


그냥 미친 난이도의 게임이다.

이런 괴물을 열둘이나 쓰러뜨려야 하니 말이다.


어쩔 수 없군.

그동안 숨겨오던 배우로서의 면모를 보이는 수밖에.

사실 나는 배우 지망생이었어.

인상 깊은 영화를 본 날, 화장실에서만 그랬던 거지만.


“······하나는 동료의 것, 하나는 사냥꾼의 것입니다.”

“보아하니 전위 같은데 왜 지팡이를 지니고 있지? 죽이고 빼앗았나?”

“동료가 모두 죽었으니까요.”

“모두 죽었다고?”

“네, 영웅께서 말씀하신 인간 사냥꾼에 의해서요.”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손에 힘을 실으며 바르르 떨어준다.

그리고 머리를 열심히 굴려 생각한 대사를 내뱉는다.


[ 고요 (하)가 발동 중입니다. ]


스킬 덕에 머리는 잘 굴러가는군.


“왜 이제 오신 겁니까······? 이미 모두가 죽었는데!”


토마가 몸을 슬쩍 물렸다.

하지만 아직 의심은 거두지 않은 듯했다.

눈빛이 딱 그렇거든.


나는 가방에서 지팡이를 하나 꺼내 그에게 건넸다.

바인이 새겨진 지팡이였다.


“이건······?”

“······놈들이 쓰던 지팡이입니다. 제 동료가··· 목숨을 걸고 쓰러뜨렸죠.”


토마가 지팡이를 넘겨받아 그것을 살폈다.


“몇 명이었는지 알고 있나?”

“네 명이었습니다. 칼을 든 놈 둘, 도끼 하나, 그리고 그 지팡이 하나였죠.”

“유명한 놈들이군. 자신들을 식물의 학살자라 부르는 놈들이라네. 내가 잡으러 온 사냥꾼 중 하나지.”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이미 다 죽었는데. 걔네도 그리고 우리도.”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전력으로 눈을 부라렸다.

그에게 깊이 원망하듯이 말이다.


아, 혹시 눈빛이 건방지다고 죽이진 않으시겠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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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던전 탈출 (1) 24.09.13 27 2 12쪽
11 죽거나 죽이거나 (2) 24.09.12 31 2 12쪽
10 죽거나 죽이거나 (1) 24.09.11 33 2 12쪽
9 영웅 (3) 24.09.10 40 2 11쪽
8 영웅 (2) 24.09.09 45 3 12쪽
» 영웅 (1) 24.09.08 50 3 12쪽
6 아무도 모른다 (3) 24.09.07 53 3 12쪽
5 아무도 모른다 (2) 24.09.06 5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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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데스 게임 (3) 24.09.04 79 4 12쪽
2 데스 게임 (2) 24.09.03 95 4 12쪽
1 데스 게임 (1) 24.09.02 133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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