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대성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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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타자기
작품등록일 :
2024.09.0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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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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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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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천대성이 돌아왔다

DUMMY

달칵···달칵···


부엉이조차 잠든 밤, 자물쇠를 따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그 소리가 한 치의 거리도 벗어나지 않았다.


가히 달인급에 오른 도둑질.

그 고요한 적막을 깬 건 그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간 다음이었다.


“시부럴. 대체 보안이 얼마나 철저한 건지.”

“아무래도 소문이 사실인가 보군.”


목소리는 건물 안에서만 조용히 맴돌았다.

과연 도둑질을 일생의 업으로 삼은 이들답다고 해야 할까.


“무슨 소문 말이우?”

“미후왕. 그 괴물의 유해가 잠들어있다는 소문.”

“···1호. 그게 진정 사실일 거라 생각하는 거요?”

“오히려 되묻고 싶군. 14호는 어찌하여 아닐 거라 생각하지?”


서늘한 1호의 시선에 14호는 몸을 움츠렸다.


“아니, 미후왕이라면 결국 손오공 말하는 거 아니오. 해봐야 동화 속 존재일 텐데?”

“그러니까 네가 열 손가락 안에 들지 못하는 거다.”

“···끄응. 설명이라도 해주시오. 내가 알아도 되는 만큼.”


1호는 14호를 흘기다 말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14호가 느끼기엔 한숨에 가까웠지만.


“이걸 읽어봐라. 나는 봉인진을 해주하고 있을 테니.”

“···내가 읽어도 되는 것 맞수?”

“···”


1호는 손을 휘적이곤 앞을 바라보았다.

적색 쇠사슬과 부적. 그리고 황금 동아줄로 칭칭 감겨있는 커다란 문.


“···해봐야 유해 하나에 이 정도 봉인이라니.”


1호는 작게 읊조리고는 동아줄 위에 손을 올렸다.


터엉!


꽤나 강력한 반탄력에 1호의 손이 퉁겨졌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꽤 고달픈 해주 작업이 될 것이라고.


“진짜 읽어도 되는 거 맞지? 읽겠소?”


멍청한 14호의 말은 신경 쓰지 않은 채였다.

그보다 봉인을 해주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14호는 돌아오지 않는 반응에 망설이면서도 두루마리를 펼쳤다.


“···개방의 설립 이유? 진짜 내가 읽어도 되는 것 맞소?”


하여튼 조심성 많은 놈이다.

1호는 혀를 차곤 손을 휘저었다.


저걸 읽는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으니.


그제야 14호는 본격적으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



개방은 어째서 정파이고 하오문은 어째서 사파인가.

그 차이는 알 수 없다. 그저 개방이 무언가를 전수 받았다 전해질 뿐.


그러면 대체 무엇을 전수 받았는가?

개방은 어떤 이유로 설립되었는가?


답은 간단했다.

누가 자신이 거지들의 왕임을 자처했다.


초대 걸왕.

봉법에 능하며, 영물을 타고 다녔다 했던 존재.


그 이후로 걸왕의 칭호를 받는 이들은 영물을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그럼 하오문 또한 영물을 데리고 다닌다면 정파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아니다. 더 근원적인 게 있다.

초대 걸왕이 숨기고 제갈가가 나서서 은닉한 사실.


이상할 정도로 거지들이 요물이 나왔다는 곳에 몰려간다는 것.

···그럼 왜 거지들이 요물에 거친 반응을 보일까?



===



“···1호. 이거. 아무리 봐도 내가 봐선 안 되는 정보 같은데.”


거기까지 읽은 14호의 목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버림패라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아니. 어쩌면 1호조차도.


“알아챘으면 움직여라. 나도 이 일을 끝으로 잠적할 생각이니.”

“시부럴! 이럴 줄 알았으면 이 임무 맡는 게 아니었수!”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14호는 손에서 차오르는 식은땀을 닦아내고 봉인을 해독하기 시작했다.


“진짜 여기에 미후왕의 유해가 있는 건 맞소?”

“모르지. 그냥 금은보화가 있을 수도 있고.”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요. 나는 이 안에 뭐가 들어있건 암시장에서 호구 하나 잡아서 팔아버리고 뜰 거요!”

“누구는 안 그러고 싶을까.”


1호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이제 해주의 막바지였다.


“···참으로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 말이오?”

“왜 이리 낡은 법진을 사용해서 봉인한 거지? 시대가 지나면서 봉인술식도 발전했을 텐데.”


1호가 보기에 이 봉인은 원류에 가까웠다.

봉인이 되어있긴 하나, 해주 방법을 알기만 하면 누구나 해주 할 수 있는 원류.


하지만 그렇기에 안에서는 절대 풀 수 없는 봉인.


“···설마.”


어떤 생각이 1호의 머리에 스쳤다.

동시에 1호는 손을 물렸다. 손에 연막탄을 든 채였다.


“14호. 물러나.”

“응? 뭐라 했수?”

“이런 젠장.”


빙신 같으니.

1호는 조용히 읊조리고는 완전히 풀린 봉인을 바라보았다.


끼이익-


“어엉? 이거 왜 자동으로 열리는···?!”


그곳에는 커다란 돌이 세워져 있었다.

크기는 적어도 8척은 넘어갈 크기.


“···”

“···1호. 튑시다.”


1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불안하던 마음이 불안하던 차였다.


“천천히 물러나는 거요. 저 안에 뭐가 있던 신경 쓰지 않고.”

“알겠으니까 닥쳐라.”


그들의 발밑에 서늘한 기운이 깃들었다.

은형술의 묘리였다. 발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 깜박할 사이에 그들의 기척조차 사라졌다.


‘···3.’

‘2.’

‘1.’


쩌적!


처음부터 버림 패로 보내진 탓일까.

아니면 진작에 눈치채지 못하고 봉인을 해주한 탓일까.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들이 도망칠 틈조차 사라졌다는 건 분명했다.

커다란 돌이 부서지기 시작했으니!


“이런 씨부럴! 나 먼저 가겠수!”

“흥.”


14호가 등을 돌렸을 때, 1호는 이미 도약하고 있었다.

14호가 배신감에 입술을 깨물 때, 1호는 저도 모르게 몸이 굳는 걸 느꼈다.


“흐아암.”


분명 돌이 부서졌을 장소.

절대 인기척이 없어야 하는 곳.


그곳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정보에 따르면 미후왕의 유해가 봉인되어 있다고 한 곳에서.


[이야. 이게 대체 몇 년 만의 세상 구경이냐?]


쾌활한 어투.

당나라 언어로 추측할 뿐, 현대에 이르러선 해독이 불가능한 고어.


[으응? 인간이잖아? 야야. 너희 이리 와봐.]


1호가 눈을 깜박였을 때, 청년의 얼굴이 시야에 가득 찼다.


“허억!”

[왜 그렇게 놀라? 보답하려는 거야, 보답. 이 빌어먹을 봉인을 풀어줬잖아?]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본능적으로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1호와 14호의 무위는 해봐야 일류 나부랭이.

일평생을 봉인식 해주 하는 데 사용했으나, 인제 와선 그 사실이 애석할 따름이었다.


그 탓에 도망칠 생각조차 못 했으니.


[···알아듣질 못하네. 설마 언어가 바뀐 건가?]

“당, 당신은 대체 누구요?”

“14호!”


14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 계속 말해봐. 형과 본을 분석해야 할 것 같으니.]

“대체, 대체 뭐라고 말하는 거요? 아니, 이게 아니지. 별호가 미후왕이 맞으시오?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요?”

“14호! 조용히 해라!”


14호는 1호의 말에도 계속 주절거렸다.

그제야 1호는 14호의 눈에 초점이 잡히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크.”


술법이었다.

만약 정말 이 사내가 미후왕이라면 신선에게 배웠다던 도술을 사용한 걸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가정이 맞다면 그와 1호의 목숨은 사내에게 잡혀있다 해도 무방했다.


“음음. 이렇게 인가? 야. 알아들을 수 있겠냐?”

“···어떻게?”


가만히 서서 14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내.

분명 알 수 없던 고어로 말하던 사내의 입에서 제대로 된 문장이 튀어나왔다.


마치, 그 짧은 사이에 언어를 습득했다는 듯이.


“쉽지. 너희 인간들이 본과 형을 바꾸지 않았으니 더더욱.”


그러니까 사내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고어에서 지금의 언어를 유추해 말하고 있다고.


“이런 미친···”

“이봐. 내가 땡중하고 같이 다녀서 그게 나쁜 말이라는 건 알고 있거든.”


사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동시에 1호는 사내의 금안이 1호의 몸을 낱낱이 파헤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신은 대체 누구요?”

“나?”


사내는 자신을 가리키며 고개를 기울였다.

1호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 참. 정말 시간이 많이 흘렀나 보네. 이런 질문도 다 받고.”


사내는 싱글싱글 웃으며 팔짱을 꼈다.


“제천대성, 투전승불.”


무력만으로 천상 위에 올라, 옥황상제와 동등한 격을 지닌 존재.


“손오공이시다.”


사내, 손오공의 금안이 조용히 휘었다.



***



“음흠흠.”


이게 대체 얼마만의 바깥세상인가?

손오공은 모닥불에 익어가는 생선을 보며 콧노래를 불렀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


화과산에서부터 삼장과 여행을 했던 일까지.

하다못해 부처 그년이 자신을 돌에 다시 한번 가두었을 때도.


뭐라고 했더라.

나는 천계에 오르기에는 한참 부족해 인간계로 다시 떨군다 했던가.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아암.’


그 부처가 싸도 돌던 삼장은 울보.

저팔계는 힘만 센 머저리.

그나마 사오정이 나았는데 녀석도 자신보단 부족했다.


그냥 누가 보아도 손오공이 꼬았던 거다.


적어도 손오공은 그렇게 생각했다.

진정 자신에 대해 잘 알았다면 이렇게 돌에 봉인할 리가 없다고.


“아니, 그러면 우리는 부처의 봉인을 푼 게···?”

“에이, 너희 인간 따위가? 부처의 봉인을?”


손오공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예 박장대소였다.


“그건 인간들의 봉인이지. 달마였나. 그 녀석 후예가 도왔다고 했던 거 같기도 하고.”

“설마 소림···?!”


14호라 불렸던 덩치가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하여튼 보는 데 재미가 있는 녀석이었다.


“헌데, 제가 알기로 미후왕께선.”

“쓰읍.”

“···?”

“제천대성이라 해라. 격 떨어지게 미후왕이 뭐냐.”

“···제가 알기로 제천대성께선 옥황상제께 벼슬을 받아 천계에 머물렀다 들었습니다만.”

“그에엑. 구와아악!”


손오공은 곧바로 헛구역질을 했다.

역겨운 소리를 들은 것처럼.


“누가 그런 소리를 하든? 땡중이지? 땡중일 거야.”

“···아뇨. 거지들입니다만.”

“거지? 그,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그 걸뱅이들?”

“예.”

“···시벌. 내가 대체 뭘 들은 거지?”


손오공은 황급히 귀를 팠다.

그런다고 나오는 건 없었지만.


“그게 사실이면 내가 그딴 돌에 갇혀 있었겠냐?”

“···실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1호는 빠르게 사과했다.

과연 얍삽하게 생긴 놈다웠다. 사과는 참 빨라.


“됐다. 그래서 지금 나라는 명나라라고?”

“예. 예!”

“내가 살던 시기는 당나라였지, 아마?”

“그렇습죠!”

“적어도 수백 년은 흘렀네?”

“예!”


하여튼 재밌는 덩치다.

적어도 어디서 객사할 녀석은 아니었다. 지금도 도망칠 기색을 풍기는 걸 보면 용기가 가상할 정도였으니.


‘그나저나···’


이 인간들의 말이 맞다면 자신은 꽤 오래 갇혀 있었다는 소리였다.


“이제 뭐 하지?”


그럼 적어도 자신이 알고 지내던 이들은 모두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신선인 스승이라고 해도 인간인데 오래 살 것 같지도 않고.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아, 그래. 뭔데?”


14호와 1호는 서로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현 개방주가 쓰는 봉이 여의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듣자 하니 초대 개방주부터 쓰던 법보라고.”

“잠깐.”

“예.”

“개방주가 뭐냐?”


손오공의 질문에 1호와 14호는 입을 떡 벌렸다.

마치 상식조차 모르는 무지렁이를 보는 듯한 눈빛.


“눈 똑바로 안 떠?”

“···아, 거지들의 왕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손오공은 잠시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거지? 거지들의 왕이 여의를 들고 다닌다고?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녀석들이 어딜 감히 자신의 무구에 손을 댄단 말인가?


“···대성님! 제천대성님! 제발 살기를 거둬주십시오!”

“아.”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14호라던 덩치가 게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아. 미안미안. 그래서? 내 여의를 걸뱅이가 들고 있다고?”

“···”

“대답이 늦다?”

“그렇습니다!”


손오공은 오랜만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뭐, 오랜만이라 해도 그동안 봉인되어 있었지만.


여의는 자신의 영성이 깃들 정도로 오래 휴대한 무구였다.

그런데 그게 한낱 거지의 손에 들어가?


“···찾아야겠네.”

“찾아옵니까?”

“응? 너희가?”


손오공은 웃음을 터트렸다.


“됐어.”

“예? 하지만··· 저희만큼 훔치는 것에 능한 사람은 찾기 힘드실 겁니다.”


1호의 자신감 서린 의문에 손오공은 박장대소했다.


“그치만, 너희 약하잖아.”


1호의 얍삽한 얼굴이 와그작 찌푸려졌다. 14호는 아직도 기절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손오공은 배를 잡고 웃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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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삼장과 함께 24.09.13 21 2 12쪽
11 삼장과 함께 24.09.12 32 1 12쪽
10 삼장과 함께 24.09.11 36 2 12쪽
9 무당에 들르다 24.09.10 32 3 12쪽
8 무당에 들르다 24.09.09 34 2 13쪽
7 무당에 들르다 24.09.08 35 3 12쪽
6 하남에 들르다 24.09.07 45 2 12쪽
5 하남에 들르다 24.09.06 49 3 11쪽
4 개방주를 대령하라 24.09.05 61 3 12쪽
3 개방주를 대령하라 24.09.04 82 4 12쪽
2 제천대성이 돌아왔다 24.09.04 101 6 12쪽
» 제천대성이 돌아왔다 24.09.04 14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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