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대성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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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타자기
작품등록일 :
2024.09.0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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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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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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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에 들르다

DUMMY

손오공이 감정을 추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우진이 다시 나타났다.

손에는 새하얀 천으로 감싼 무언가를 든 채였다.


“흐음.”


손오공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영혼부터 이어지는 기묘한 끌림을 느낀 탓이다.


하지만 무언가 묘했다.

저건 마치, 그저 매개체에 가까운 느낌 아닌가.


“어어?”


하얀 천이 풀렸을 때, 당황한 건지 무당파 사람들이 기묘한 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현우진은 신중히 손오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게 당신이 찾던 게 맞습니까?”

“···흐음.”


손오공은 손을 뻗었다. 무언가를 쥔 것처럼 손아귀를 말아쥔 채였다.


“꼬맹아. 정말 하는 짓이 어린애 재롱을 보는 것 같네.”

“그게 무슨···”

“아직도 의심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딴 가짜나 내놓고 말이야.”


현우진은 침을 꿀떡 삼켰다.

그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장교진인이 말하길.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으니 시험해 보라 하였다.


‘젠장. 그러니까 맞는 것 같다고 해도!’


현우진의 입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약하게 들려왔다.

그걸 느낀 손오공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보아하니 위에서 시킨 모양이지?”

“···”


현우진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장교진인 아닌가. 무당에서 그 사람을 욕했다간 쫓겨날 수도 있었다.


“그래. 아랫것들이 뭘 말하든 윗대가리는 변하질 않지. 나도 참 많이 겪어봐서 잘 알아.”

“···감사합니다.”


손오공. 그가 부처가 시키는 탓에 했던 짓거리가 대체 몇 번이던가.

부처뿐만이 아니다. 도술을 배울 적에는 수보리조사가 시킨 일 탓에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더랬다.


“걱정하지 마라. 매개체가 될 만한 게 있으니 그 정도는 내가 가져올 수 있어.”

“예?”


현우진이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리 손오공과 함께했던 신기라 하더라도 일종의 무구다.


심지어 본래는 손오공의 무구도 아니지 않던가.

그런데 가져올 수 있다니?


“잘 봐라. 이런 게 가능해야 진짜 신기니까.”


손오공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게, 무슨?!”

“지진! 지진이다!”


땅이 진동한다.

태양이 구름에 숨음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하늘이 어두워졌다.


우마왕을 살리는 데에 힘을 많이 썼다 해도 손오공은 제천대성이었다.


“덩치야. 내 별호가 뭐냐?”

“···크흠! 제천대성, 투전승불이시우!”

“그래. 네 말이 맞다.”


손오공의 웃음소리.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후연은 기절한 강휘를 업은 채로 입을 떡 벌렸다.


무언가가 하늘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에 담긴 기운이 심상치 않다. 그가 보았던 그 어떤 고수보다도 담긴 기운이 많았다.


‘저게··· 진짜 여의.’


가히 신물이라 여길 만했다.

저 여의에 들어있는 기운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일반인조차 강기를 펑펑 써댈 수 있을 정도.


“흐, 오랜만에 보는구만.”


여의의 색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사용자에 따라 녀석은 어떤 색을 할지 결정했으니.


용왕의 손에 있을 적에는 푸른색이었고, 지금은 황금색이었다.


“역시 걸뱅이가 여의를 길들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리고 그건 역대 개방주가 모두 여의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손오공은 그 사실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본래 황금색이 아니었던 겁니까?”

“여의가 인정한 이가 누구냐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보다시피, 나는 황금색이고.”


손오공은 그런 여의를 꽉 잡고는 땅에 박았다.


“조금 기다려라. 내가 여의 안에 넣어둔 기운을 흡수해야겠으니.”


봉인되기 전, 자신의 무구에 기운을 담아둔 손오공이다.

다행히 여의에는 그의 기운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


“...그럼 누구나 진천 나으리의 기운을 회수할 수 있던 것 아니오?”

“틀린 말은 아니지. 물론, 그 대가는 녀석의 선천진기로 갚아야겠지만.”


그 말은 아주 간단했다.

만약 그가 숨겨둔 기운을 훔쳐 갔다면 상대는 목숨을 잃었으리라.


그렇기에 오천명은 식은땀을 흘렸다.

후계자 교육에 왜 그런 내용이 있었는지 깨달은 탓이다.


[절대 여의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 그저 단순한 봉으로만 여겨라. 그러지 않는다면···]


그 뒤에 있던 글자는 지워져 있었다.

오천명은 괴담의 실체를 보는 기분에 숨을 길게 내쉬었다.


‘초대 개방주께서 왜 그런 말씀을 적어두셨나 했더니.’


그는 눈을 감은 채로 서 있는 손오공을 바라보았다.

본래라면 무인이 가장 취약할 상황이었으나, 그가 느끼기에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손오공을 기습할 생각을 못 했다.


‘아.’


머지않아 이유를 깨달은 오천명은 쓴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사는 곳이 다르기에 그런 것이다.

그들은 같은 땅을 밟고 있으나, 다른 곳을 밟고 있었다.


그것이 손오공과 그들의 차이였다.


“...후우.”


손오공이 여의에 있는 기운을 전부 소화했을 땐,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그가 눈을 뜸과 동시에 금색 안광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적어도 사 할은 돌아왔나.”

“...지금이 겨우 사 할이란 말입니까?”


현우진은 놀라서 손오공을 바라보았다.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다름 아닌 경외감이다.


아예 다른 존재라는 느낌.

절대적인 강자라는 점에서 오는 압도적인 경외감.


그런데 겨우 사 할밖에 회복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본래는 대체 어느 정도의 힘이 있었단 말인가?


“왕후연. 강휘를 앉혀봐라.”

“예?”

“잔말 말고.”


왕후연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몸은 손오공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왕후연 또한 강휘와 마찬가지로 이젠 그를 믿고 있기에 그렇다.

사실상 손오공은 이제 그들의 스승 아니던가.


물론, 손오공이 그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이었지만.


“여기 있습니다.”


손오공은 곧바로 강휘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것만으로도 강휘는 실핏줄이 가라앉고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던 유청운은 손오공을 빤히 바라보았다.


“...”


담담한 눈으로 강휘를 내려다보고 있는 손오공.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분명 인간을 개미처럼 여기던 손오공 아니던가.

어째서 인간을 치료해 주고 있는 걸까?


“으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휘는 정신을 차렸다.

오히려 무당산을 오르기 전보다 회복된 모습으로 깨어난 강휘는 놀란 표정으로 손오공을 바라보았다.


“이건···?”

“왜. 문제 있냐?”


문제?

없었다. 없어서 오히려 문제였다.


그의 몸이 한층 성장했다.


막혀있던 기도가 뚫렸고 손바닥까지 이르는 기맥이 열렸다.

절정에 올랐단 소리다.


본능적으로 그가 검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렇다.


“...진천 나리.”

“징그럽게 쳐다보지 마라. 그냥 네가 날 도왔으니 나도 널 도와줬을 뿐이야.”


손오공의 질색하는 표정과 덤덤한 말투.

이제는 익숙한 대우에 강휘는 처음으로 즐겁게 웃었다.


손오공은 아직도 무림의 기준을 잘 몰랐으나, 참된 주인이었다.


‘...너무 노예처럼 생각하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한 강휘는 이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그걸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사실상 수년 동안 일류에 머물러 있던 그다.


그렇기에 강휘는 다짐했다.

손오공을 은인으로 여기겠노라고.


“아니, 진천 나으리! 저는 안 해주십니까?”

“내가 왜 너한테도 해줘야 하는데? 넌 한 거 없잖아?”


손오공은 어이없다는 듯이 왕후연을 바라보았다.


“일을 한 것도 없는데 보상부터 바래? 하여튼 인간들이란.”


손오공은 혐오를 감추지 않은 채로 왕후연을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인간밖에 불과한 수준에서 남는 거다.”


손오공은 강휘를 쳐다보았다. 그의 몸 안에 깃든 기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그래서? 이 나와 같은 기운을 갖게 된 기분은 어떻지?”

“···무언가 이상하더라니.”


강휘는 멍하니 기운을 일으켰다.

하오문의 무공을 익힌 탓에 칙칙한 색이었던 그의 기운.


그 기운은 완전히 탈피해 버렸다.

황금색까진 아니지만 노란색.


그것이 강휘의 새로운 색이었다.


“이제부터는 그 잡기는 쓰지 말고 내가 알려주는 거나 제대로 습득해라.”

“그, 어째서 이런 걸 알려주시는 건지.”


강휘는 고개를 기울였다.

단순히 부적 쓰는 것을 도와준 대가라기엔 너무 과하지 않은가.


지금 손오공이 말하는 것.

그건 그가 제자를 받아들이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착각하지 마라. 정말 신선 자리에 오를진 나 또한 알려줄 수 없으니까.”

“예? 그럼?”

“형님 말에서 무언가를 느꼈을 뿐이야. 나 혼자서는 좀 힘들 것 같거든.”


손오공은 미간을 좁히며 우마왕의 말을 떠올렸다.

무려 자신의 본진인 화과산을 언급하며 했던 말.


그건 재정비해서 다시 강탈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와서 배신자라니.”


겨우 수백 년이다.

남들에겐 긴 시간이나, 화과산에선 까짓거에 불과한 시간이다.


그의 위엄이 죽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하단 소리.


그렇다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외부의 습격.’


원숭이 요괴들이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을 터.

변한 게 있다면 외부에서 찾아온 요인이리라.


“예? 배신자요?”

“널 말하는 게 아니야. 그냥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


손오공은 나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필수적으로 회수해야 할 건 용포와 근두운.

그리고 그중 하나가 화과산에 있었으니.


‘이거, 조금 힘들어질지도 모르겠어.’


정말 예측대로 외부에서 습격이 온 거라면 그의 용포 안에 있는 기운도 회수했을 터.

그렇다면 그와 똑같은 기운을 가진 녀석이 탄생했을 터였다.


“···그거, 상대할 수 있는 겁니까?”


강휘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절정에 오른 그다.


동시에 초절정도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던 그다.

그런데 손오공과 같은 기운을 가진 적을 상대하라고?


그건 불가능했다.

아니! 완벽히 자신의 생존 모토와 어긋나지 않던가.


“걱정 마라. 넌 그냥 보조니까.”

“예?”

“삼장을 데려와야 해.”


손오공은 덤덤하게 옛 동료를 언급했다.

격렬히 떨리는 감정을 애써 감춘 채였다.


“···그럼, 소림으로 향하시겠습니까?”

“그래. 더 이상 이 가짜들 사이에 있을 필요는 없으니.”


도사란 것들이 도사답지 않다.

감히 제 말을 의심하는 꼴이 한탄만 나올 지경이다.


그의 명성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인간의 세상에서 수백 년은 너무나 긴 세월.

하지만 손오공에게 그건 고려 요소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의심했다는 것. 그게 중요할 뿐이다.


“···아니! 제천대성 님! 사죄할 기회를 주십시오!”


사실상 신조차 능멸하던 존재가 그들에게 실망했다.

그걸 깨달은 현우진이 사색이 된 채로 손오공의 바지를 붙잡았다.


“저희 무당이 큰 잘못을 저지른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몇몇 장로와 장문인이 문제일 뿐입니다. 날이 갈수록 차기 장로들이 상황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손오공은 그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들이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는 현우진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걱정하지 마라. 어린애한테 화날 정도로 막장은 아니니까.”

“그럼···”


현우진의 표정이 다시 밝아질 즈음, 손오공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 윗 대가리들은 처분을 할 필요가 있겠네.”

“명심하겠습니다!”


현우진의 표정이 결연해졌다.

사실상 멸문을 당해도 당연한 상황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신선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제 멋대로 행동하는지.


그렇기에 손오공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다음에 방문해 주신다면 완벽하게 변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하지.”


손오공은 씨익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는 알까.

만약 손오공이 삼장 때문에 감정이 고조된 게 아니었다면.


그들은 멸문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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