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대성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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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타자기
작품등록일 :
2024.09.0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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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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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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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에 들르다

DUMMY

“저도 이곳에서 행자님을 만날 거라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한데 뒤에 일행께선?”

“아, 아아! 내가 지금 수행하고 있는 귀빈이야!”


명진.

그의 외형은 누가 보더라도 투승이었으나, 눈동자가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실눈이라는 점이 달랐다.


“반갑습니다 행자님들. 저는 묵권이라 불리는 명진이라 합니다.”


동시에 스님이라는 점까지.

그는 기본적으로 손오공이 싫어할 요소를 전부 갖춘 이였다.


그렇기에 오천명이 계속 눈치를 줬으나, 명진은 못 알아챈 것처럼 고개를 기울일 뿐이었다.


“성함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머리가 반딱반딱한 게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순간 명진은 자신이 들은 게 맞나 싶어 눈을 끔뻑였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손오공이 자신이 한 말을 취소하진 않았다.


“야. 반짝아. 내가 묻잖아.”

“크윽?!”


갑자기 기운이 그의 몸을 내리찍듯이 내리꽂힌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기운이 너무나 익숙하다는 것.


그렇기에 명진은 분노했다.


“불경을 익힌 자가, 어떻게 이리 사마외도 같은 짓을!”


불법을 정통했어야 흘러나오는 법력으로만 구성된 기운이다.

명진이 답답함보다도 아늑함을 느낄 기운이 그를 강제로 짓누르고 있었다.


“꿇어라.”


쿠웅!


기운이 강해짐과 동시에 명진의 무릎이 꺾였다.


“숙여라.”


이번엔 고개가 땅을 향했다.


“아무리 법당에서는 만민이 평등하다 한들, 너와 나는 아니다.”


강휘는 눈동자를 굴려 손오공의 얼굴을 보곤 입을 꾹 닫았다.


화안금정.

손오공의 절세안법이 다시 발휘되었다.


“당,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제야 강휘는 손오공이 평범하지 않은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런 기운을 방장에게서도 느껴본 바 없었다.

아니. 지금 느끼고 있는 기운에 비하면 방장 스님의 기운도 한참은 부족했다.


“혹, 등선하신 분이십니까?”


그렇기에 물었다.

이미 부처가 되신 분이냐고.


하지만 그걸 들은 손오공의 표정은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이 자식이 누굴 죽이려 해?”

“예?”

“난 엄연히 살아있다. 그리고 내가 물었다. 저 아이들을 데리고 어딜 가고 있는 거지?”


손오공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두려움을 품고 있던 아이들을 가리켰다.


지금은 은은하게 퍼진 손오공의 기를 좇으며 돌아다니고 있는 아이들을.


“설마 아이들을 법당으로 데려갈 셈이냐?”

“...그렇습니다.”


손오공은 미간을 좁히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거기서 무슨 교육을 할 건데?”

“몸에 새겨진 피를 지우고 불법을 익히게 할 것입니다. 사람을 해치는 건 옳지 않으니까요.”


그 말에 손오공의 화안금정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처들이 툭하면 살계를 여냐?”

“···예?”

“아니, 아니다. 이런 건 너한테 말할 게 아니지.”


손오공은 조용히 눈을 감고 화를 다스렸다.


부처들이 툭하면 마왕들을 상대로 살계를 여는 것.

그게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새싹의 잘못은 아니지 않던가.


그렇기에 지금 그가 하는 행동은 잘못된 짓이었다.


“···불법을 익히고 싶어 하는 애한테만 해라. 인의예지. 그걸 가르치는 걸로 충분해.”

“하지만 살아가는데 불법을 익혀서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소림에 소속된 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아이들의 인생에 충분히 도움이 될 겁니다.”


그 말에 손오공의 고개가 홱 돌아가 오천명에게로 향했다.

오천명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대협께서 소림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넘쳐나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알기로 직전 제자가 일을 벌이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역사를 뒤져봐야 할 정도죠.”

“그래?”


손오공은 명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직도 명진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손오공이 그를 억누르고 있기에 그렇다.


“···소림이라고 했었지.”

“예. 그렇습니다.”

“거기 초대 방장이 누구냐.”

“그건···”

“아니지. 계율이 뭐냐.”


명진은 가만히 땅을 바라보다가 숨을 길게 내쉬곤 입을 열었다.


1. 어떤 일이 있어도 산문 내에 여자를 들이지 않는다.

2. 소림사에서 내친 제자, 반역도, 말없이 떠난 이들을 절간에 다시는 들이지 않는다.

3. 스승을 정식으로 모시지 않고, 무학을 스스로 터득하거나 훔쳐 배우는 것을 금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내용이 있었으나, 그건 손오공에게 중요한 계율이 아니었다.


“···여자를 들이는 게 안 된다고?”

“예. 그 탓에 여승은 절간에서 자체적으로 공부한다고 합니다.”

“그래?”


손오공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삼장, 그 녀석은?’


분명 절간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렇다면 매일 힘들다고 울었던 게 이해가 간다.

육체를 단련하기도 힘들었을 테니 불경을 찾기 위한 강행군은 꽤 힘들었겠지.


‘···그런데도 그 정도의 법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손오공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몸이 안 터진 게 용하다. 그릇을 그저 호수 위에 띄워둔 꼴 아닌가.


“하. 만나면 외공부터 알려줘야겠네.”

“···혹여, 찾으시는 여승이 있습니까?”

“네가 알 필요는 없다.”


동시에 알려줄 생각도 없었다.

그의 뭘 믿고 알려준단 말인가.


손오공이 찾는 건 삼장이다.

심지어 환생한 지금은 이름을 모르는 삼장.


찾는다 하더라도 그건 여의를 되찾은 이후가 될 것이다.

그녀를 만나는데 최소한의 무장은 필수였으니.


“후우.”


만날 날이 걱정되었다.

그녀가 잘 먹고 지냈을지도 걱정이었으나,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약속 탓에 그렇다.


[다음에는 너를 위해 불경을 얻어줄게.]


울보답게 엉엉 울면서 잠긴 목소리로 한 말.

그때만 해도 필요없다 말했다.


그래. 그녀가 제 존재를 걸지만 않았어도 지금조차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너라면 내가 환생해도 찾을 수 있겠지?]


까득.


손오공의 이빨이 갈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주변에 있던 모두의 어깨가 움찔거렸으나, 상념에 잠긴 손오공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기억을 더 침잠시켰을 뿐.


“저, 진천 나으리.”

“아.”


그가 정신을 차린 건 보다 못한 왕후연이 그를 불렀을 때였다.

그제야 너무 생각에 침잠해 있었음을 깨달은 손오공은 한숨을 내쉬었다.


“엇?”


손오공이 손을 터는 것과 동시에 명진을 누르고 있던 기운도 흩어졌다.


그제야 일어선 명진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미간을 좁혔다.


“됐다. 소림은 다른 것 같긴 하네. 네가 규율을 어기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그 말씀은···?”

“알아서 해. 난 너희가 선을 넘지만 않으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손오공이 그 길로 떠나려 할 때, 명진이 머뭇거리다 그의 팔을 붙잡았다.


“왜?”

“···저, 식사라도 하시겠습니까?”


강휘가 조용히 입을 떡 벌렸다.

어떻게 저리 험한 상대에게 식사를 권유할 수 있단 말인가?


‘저게 부처의 마음인가?’


손오공이 들었다면 분노했을 생각이다.

하지만 손오공은 지금 어이없는 감정을 수습하고 있었다.


“왜?”

“결국 빈도와 같은 스님 때문에 피해를 보신 분 같아서 말입니다. 적어도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손오공은 명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내 피식 웃은 그는 명진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래. 한 번 가봐라. 이상한 곳으로 안내하기만 해봐.”

“물론입니다. 맛있는 장소로 안내해 드리죠.”


손오공은 생각했다.

제게 이런 짓을 당하고도 친절을 잃지 않는 녀석이라면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아까는 미안했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님을 알고 있었는데 너무 감정이 흔들렸어.”


수백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갇혀있었기에 그렇다.

결국 그를 가둔 것도 소림의 초대 방장 아니던가.


사실상 선계의 술식을 빌려온 초대 방장이 한 일이 없음을 알고 있으나, 감정이란 무서운 법이다.

년 단위로 감정은 쌓이고 썩어 문드러져 고독이 되었으니.


그런 감정을 저도 모르게 명진에게 푼 셈이다.


“괜찮습니다. 그 정도로 법력이 뛰어난 행자님이 사사로이 힘을 행사한 게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고맙다.”


손오공의 표정이 기묘하게 뒤틀렸다.


정확히 반대되었기에 그렇다.

누가 보더라도 사사롭게 힘을 행사하지 않았던가.


그 뒤에 있던 손오공 일행 또한 썩은 표정을 지었으나, 손오공의 눈길 한 번에 표정을 바로 했다.


“여깁니다.”


손오공은 순간 묘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돌리자 한숨을 쉬는 오천명이 보였다.


‘···원래 이런 놈이군.’


선택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여기가 고깃집이라서 그렇지.


대체 왜 스님이 외공을 단련하는 것도 아닌데 고기를 먹는단 말인가.


“안 들어오십니까?”

“아, 들어가야지.”


심지어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모양.

오천명만이 그런 친우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지는 걸뱅이면서.’


손오공은 피식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고기 맛은 스님이 고르고 고른 맛이었다.

맛있었단 소리다.


“넌 나중에 파계하면 주점 차려도 되겠다.”

“하하. 그렇습니까? 제가 주도도 조금 합니다.”

“···”


손오공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생각했다.


이 자식은 등선하면 분명 신선이 될 아이라고.


“우리는 가보마. 애들 잘 데리고 가라.”

“좋습니다. 그럼 저도 이만 떠나보겠습니다.”

“그래! 빨리 가라고! 우리도 갈 길이 바쁘거든.”


명진은 오천명의 등살에 밀려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떠나면서도 고개를 기울였다.


‘···분명 어디선가 들은 외양인데.’


금발에 살짝 탄 피부.

동시에 고귀해 보이는 듯한 외형.


하지만 성격은 장난스럽다.


그게 명진이 본 손오공이었고, 어디선가 들어본 모습이었다.


“···아하.”


두 시진이 흘러 숭산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가 돼서야 명진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큰어른에게서 들은 정보 중 하나 아닌가.

동시에 아는 여승에게 들은 말이기도 했다.


왜 이제야 생각났는지 의문일 정도였다.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기울이는 명진의 목에는 부적이 사라지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조용히 지나가서 다행이군요.”

“스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아이가 명진에게 물었다.


투승 특유의 분위기 탓에 명진을 꺼려했던 아이들.

하지만 손오공 일행을 만난 지금은 그를 친근하게 대하고 있었으니.


‘이 또한 부처님의 은혜겠지요.’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힘들어했던 그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제 추측이 맞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뵐 행자님이군요.”


명진은 소림의 기록 어딘가에 있을 명칭을 떠올렸다.


손행자.


손오공이 불교의 인물에게 불렸던 이름.

그리고 한 여승이 즐거이 부르는 이름을.



***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요?”


여승은 명진의 말을 들으며 차를 홀짝였다.


부처의 자비일까.

그녀는 예상과 달리 기억을 잃지 않았다.


그렇기에 손오공과 함께했던 기억을 전부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주 찾아오는 명진에게 그녀의 여행을 떠들었고, 그 덕에 명진이 찾아오지 않았는가.


“이 또한 부처님의 자비이겠죠.”

“나무아미타불.”


여승은 자신의 기다란 머리칼을 매만졌다.


스님이라 하기엔 어울리지 않은 행실.

그렇기에 항상 자를지 고민하는 머리카락이었으나, 지금까지 자르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네가 머리를 기른 걸 보고 싶네.]


손오공이 흘러가듯이 말했던 말.

거기에 그녀가 뭐라 답했더라.


[모든 일이 끝나면 꼭 보여줄게!]


그래. 그리 활기차게 말했더랬다.

손오공이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손행자와 만날 날이 기대되네요.”

“다음에 찾아오시면 이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변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과연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사실상 이미 부처의 불경을 얻은 그녀에겐 그와의 약속이 더 중요했으니.


“당신에게 불경을 다시 한번 안겨드릴 거에요. 손행자.”


여승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명진 또한 미소를 지었다.


“나무아미타불.”


오늘도 계속해서 베틀은 돌아간다.

전생에서 시작된 끈은 미래의 연까지도 이어지리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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