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대성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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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타자기
작품등록일 :
2024.09.0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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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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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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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에 들르다

DUMMY

“언제든지 출발해도 좋소. 준비야 우리가 전부 끝내면 그만이니 몸만 오시오!”

“그럼 바로 출발해도 되나? 더 미적거리고 싶진 않아서 말이야.”

“아유. 얼마든지 그래도 되오!”


손오공은 오독천이 어디론가 전음을 보내는 것을 느꼈다.

분명 자신의 부하들에게 연락을 보내는 거겠지.


감청하려면 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굳이 감청하진 않았다. 만약 그와 싸우려 한다 해도 재밌기만 할 테니까.


“그럼 빠르게 준비해서 출발하도록 하겠소. 그동안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요청하시면 되오.”

“아, 그러면 옷 좀 줄 수 있나?”


그제야 오독천은 손오공의 옷차림을 바라보았다.


설화 속 존재를 만난다는 것 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손오공의 차림이 절대 평범한 차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겉보기에는 평범하다.

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평범한 옷이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안법을 발휘하여 살핀 지금은 저것이 옷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도술, 이오?”

“그래. 사실상 알몸이란 소리지.”


손오공은 씨익 웃으며 가슴팍을 두들겼다.

절대 옷이 몸을 덮고 있다면 날 수 없는 소리에 오독천의 표정이 희게 질렸다.


“당장 준비하겠소!”

“소매가 큰 거면 더 좋을 것 같은데.”

“내 명심하지!”


황급히 오독천이 자리를 뜨고 난 뒤, 강휘는 손오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처음 볼 때부터 옷을 입고 계시길래 옷인 줄 알았습니다만.”

“아니, 분명 옷 질감이 느껴졌는데? 설마 그것도 도술이었수?”


왕후연은 당황스러워 보였다.

본인이 느낀 게 사실인지 이해가 안 가는 듯한 모습.


그런 그들을 보며 손오공은 씨익 웃어 보였다.


“이게 잡기다. 원한다면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도 있지.”


손오공의 외형이 순식간에 노인이 되었다 돌아왔다.


‘···이건 당가의 역용술보다도 두려운 수준 아닌가?’


역용술과 축골공.

그 둘을 같이 사용한 결과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너무나 자유롭다는 것이 끔찍했다.

찰나의 시간 동안 노인이 되었다가 돌아왔으니.


“···사실상 진천 나리가 도망치려 한다면 잡을 수 있는 이가 없겠군요.”

“그것도 이 무림 한정이지. 선계에선 그다지 쓸모가 많진 않아.”


옥황상제나 부처의 눈에 외형이 다르다고 다른 사람이겠는가?

그들은 본질 자체를 꿰뚫어 본다.


“일반적인 신선들에겐 통하지 않습니까?”

“···아, 그거 말이냐.”


손오공은 저도 모르게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신선들이 다 착하단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예?”

“그런 게 있어. 더 알려고도 하지 마.”


그가 삼장과 여행하면서 얼마나 많은 인간군상을 보았던가.

적어도 그는 신선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강한 힘은 법칙을 만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질서를 만드니.

아무리 강한 법칙이더라도 신선에게는 그저 넘을 벽에 불과했다.


“그런데 도술은 참 신기하군요. 옷을 만들어낼 정도라니.”

“음. 그런가?”


손오공은 착의 도술을 만든 이를 떠올렸다.


‘만들어진 이유가 노출증 때문이었던가.’


미개한 인간들 사이에서 알몸으로 돌아다니고 싶은 욕망.

그 탓에 도술 하나를 창작했다고 했다.


설마 그가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걸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말할 내용도 아니었으며, 알리고 싶은 내용도 아니었다.

본래 신선의 치부는 드러내는 게 아니다. 그랬다간 그 신선이 찾아올 수도 있었으니.


손오공은 너무나 긴 봉인으로 약해진 이 순간, 신선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됐다. 그래서 언제 옷은 준다는 거냐? 그냥 창고에서 아무 옷이나 가져오면 되는 거 아냐?”

“아, 조금 걸릴 겁니다. 보다시피 개방은 거지 소굴 아닙니까?”

“그래서?”

“옷도 거지란 소리죠.”

“···아하.”


손오공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거지들의 수장이라 불리는 이들까지 다 헤진 옷을 입고 있지 않았던가.


충분히 멀쩡한 옷이 없을 만도 했다.


“헉. 허억! 오랜만입니다!”

“음? 천명이 아니냐. 그동안 얼굴도 안 비추더니.”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거지가 들어왔다.

그 사실에 손오공은 인상을 찌푸렸으나, 아는 이임을 알아채곤 미소를 지었다.


“아, 하하. 바빠서 그랬습니다. 제가 이래 보여도 후개 아닙니까?”


오천명은 식은땀을 잔뜩 흘렸다.


‘망할 스승. 아무리 내가 팔았다 해도 그렇지, 손오공을 나한테 맡겨?’


오천명.

스승, 걸왕의 명으로 손오공 일행을 무당산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손오공은 배를 부여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자식, 생긴 건 멧돼지 같더니 도망치는 건 토끼 같구만!”

“스승이 멧돼지요?”

“아니냐?”

“멧돼지가 뭡니까? 그냥 돼지지.”


퉁명스레 대답하는 오천명의 말에 손오공이 2차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 정도면 운동은 열심히 하지 않았냐. 그러면 멧돼지라 부르는 게 맞지.”

“으음. 확실히 그럴지도···”


오천명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로 자신의 스승을 떠올렸다.


사자 갈기 같은 머리칼에 둔탁해 보이는 덩치.

그러면서 외모는 쉰여섯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중년에 불과했다.


‘그게 왈패처럼 생겨서 그렇지.’


외모로도 동냥에 성공하던 오천명과는 달랐다.

개방주가 어렸을 때 한 동냥은 거진 협박이리라.


“하여튼 이 옷으로 갈아입으시면 될 듯합니다.”

“오. 하얀색 옷이네?”


손오공은 옷의 자태에 감탄했다.

장식이라곤 허리를 감싸는 황금빛 밧줄을 제외하면 없다시피 했다.


“예. 스승님이 꼭 장식을 최소화하라 하셔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귀해 보여야 한다고 잔소리했었다.

오천명은 옷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녔던 가게 수를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도 마음에 드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고맙다. 꽤 안목이 나쁘지 않군.”


손오공은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었다.

오천명은 손오공 몸에 선명히 새겨진 잔근육을 보며 혀를 찼다.


분명 돌에 갇혀있었다 들었는데 어떻게 근육이 단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단 말인가?


단 하루도 훈련을 빼먹어 근육이 늘지 않으면 개방주에게 혼나던 오천명으로서는 속상할 정도였다.


“왜 그러냐?”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좀 억울해서요.”


손오공은 잠시 고개를 기울이곤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오천명의 시선과 말을 듣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외공과 신선의 외공을 달리 봐라.”

“예?”

“인간의 경전과 부처의 경전이 완전 다른 것과 같다. 왜 차이가 나는 걸 억지로 보려 하냐?”


오천명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게 말하기엔 손오공은 인간의 무술을 모르는 것 같던데.


“당연한 것 아니냐?”


그 말을 들은 손오공은 피식 웃었다.


“내가 인간의 무술 따위 알아서 뭐 해?”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오천명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자존심이 그리 높지 않아 다행이었다. 보통 무인이었으면 그 말에 미친 듯이 달려들었을 테니.


“그래서?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아, 안 그래도 그 점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뭔데?”

“가면서 절경이라 불리는 풍경을 위주로 돌아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미식을 위주로 돌아보시겠습니까?”

“호오?”


손오공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오천명이 그리 말하는 바를 이해했기에 그렇다.


“그래. 내 재미도 챙겨주겠다 이거지?”

“예. 가는 길 지루하지 않게 성심성의껏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오천명은 첫 만남 때 보여주었던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싹싹 비볐다.

그제야 손오공은 그의 웃는 얼굴이 저딴 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외모를 외모대로 못 쓰는 자식이군.”

“예?”

“아니야. 그보다 미식도 좋은데 인간들이 어떻게 싸우는지도 보고 싶어서 말이지.”

“아하.”


오천명의 얼굴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에 손오공의 미간도 좁혀졌다.


“왜 그래?”

“아뇨. 대협께서 원하시는 수준은 보기 힘들어서 말입니다.”

“내가 뭘 원하는 줄 알고?”


손오공은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그저 인간들의 싸움을 보고 싶다고 말했을 뿐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오천명은 저 정도로 애매하단 표정을 짓는 걸까?


“진천 나리. 아주 단순한 이유입니다.”

“뭔데?”

“절정 이상의 후지기수가 모이는 경우는 드뭅니다. 용봉지회 같은 경우가 아니고서야 등장하는 법이 없지요.”


손오공은 강휘의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면 그 이상은? 초절정에 달하는 녀석들도 어느 정도는 있을 것 아니냐.”

“그 이상은 정말 모이는 경우가 드뭅니다.”


손오공의 표정이 어이없다는 듯이 괴상하게 변했다.

그걸 본 왕후연이 황급히 손오공에게 바나나를 건넸다.


“아이고 진천 나으리. 간단한 이유가 있수다.”

“뭔데?”

“경지가 높아질수록 엉덩이가 무거워지기 때문이우. 그게 아니면 제 문파 밖을 나오지 않을 리 없지 않수?”


한 마디로 제 권력에 취해 경험 쌓기를 게을리한다는 소리였다.

그 말에 손오공은 헛웃음을 내뱉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보자고 했나?”

“아, 그래도 일, 이류의 대회는 주기적으로 열리는 편입니다. 저희가 가는 길에도 몇몇 대회가 열릴 예정이고요.”

“그래?”


그 말에 손오공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본래 싸움은 들개들의 싸움만 보아도 재밌다 했다.


그런데 일, 이류에 불과한 인간?

정말 개밥들의 싸움 아니던가.


“좋아. 그 정도면 충분히 관람할 맛이 날 것 같네.”


손오공의 말에 오천명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여행 계획이 세워졌기에.


“그런데 식사는 뭘 할 거기에 진미로 차리겠다는 거냐? 내가 알기로 인간들은 지역에 따라 빈부격차가 심한 걸로 아는데.”


오천명은 그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개방에도 속하지 못한 왈패들이 사는 골목도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는 혀를 쯧쯧 차며 등 뒤에서 행낭을 내려놓았다.

그걸 본 강휘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뭡니까? 금자가 왜 이렇게 많습니까?”


왕후연의 빛나는 눈과 손오공의 감탄사.

그것을 즐기듯이 미소를 지은 오천명은 행낭 입구를 꽉 닫았다.


“이게 다 대협과 여행을 가니 스승님이 제공해 주신 겁니다.”

“허어. 이 정도까지 해줄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손오공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좋아. 내가 개방의 노력은 잊지 않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 감정이 없어지지 않으려면 네 노력이 중요하겠지?”

“물론입니다. 쾌적하고 안전한 여행으로 모시겠습니다!”


손오공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출발하자.”


손오공은 무당산으로 향하는 여행길에 올랐다.


그렇게 손오공 일행이 하남에 진입할 무렵, 그들의 여행길을 막아서는 존재가 있었으니.


“나무아미타불. 오천명 행자님이 아니십니까?”

“···오랜만이네. 명진. 널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오천명과 같은 소림의 후지기수, 명진.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손오공의 표정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제발 그대로 떠나줘!’


오천명은 간절히 빌었다.

그의 친우가 자신의 뒤에 있는 손오공은 신경 쓰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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