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더니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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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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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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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껏 하는 것과 함께하는 것 (1)

DUMMY

평범한 농장, 아버지와의 비범한 계약. 때마침 등장한 노인들의 말. 좌절하던 와중, 호기심이 타올랐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왜 들어가면 안 되는데요?”


진지한 얼굴로 노인 중 하나가 말했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니까.”


가끔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가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예······?”

“사유지 무단침입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야.”


그 뒤를 이어 다른 노인들이 말했다.


“특히 밤에는 야간건조물 침입 절도가 성립될 수도 있지. 그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야.”


그리고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서 백설은 사람이 정도 이상으로 침착해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야간주거침입절도죄에 있어서 침입행위의 객체인 건조물은 사람이 기거하거나 출입할 수 있는 장소를 말해요.”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젊은 친구가 대단하구먼!”

“이렇게 받아치는 사람이 얼마만이여!”

“나는 대성이가 여자가 되어서 온 줄 알았당께!”


어이없는 와중에 익숙한 이름. 다행히도 백설은 그 포인트를 놓치지 않았다.


“대성이요? 방금 대성이라고 하셨어요?”

“대성이를 아는가?”

“당연히 알죠! 여기 이 산 주인 아들이잖아요.”

“잉? 아닌디? 아들이 물려받은 지 한참 돼부렀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다르다. 백설은 일단 자신의 정보와 현장의 정보를 비교하기로 했다.


“예? 제가 알기로 산 주인은 분명······.”

“거참, 젊은 아가씨가 이렇게 세상 물정이 어두워서야. 여기 산 주인은 아들한테 떠넘기고 이태리로 튀었어.”

“예? 튀어요? 이탈리아로요? 왜요?”

“한우는 지겹다고 스테이크 썰러 간다던가 뭐라던가. 근디 이탈리아는 또 뭐여? 이태리라니께?”


몇 번 대화를 나눠본 백설의 머리가 조금씩 아파왔다. 무단침입과 야간침입을 구별하는 법률 지식은 갖고 있으면서 이태리가 이탈리아라는 것을 모르는 거야 둘째치고······


“물려받은 지 한참 됐다는 건 무슨 말씀이세요? 얼마나 한참인데요?”

“한 일주일 됐지?”

“예?? 일주일이요? 한참이라면서요!”


다음 나올 말을 도무지 예상할 수 없다.


“아, 일주일이면 한참이지.”

“여기서는 일주일이면 동네 소문 다 나부러.”

“젊은 사람이 의외로 슬로우 라이프구만~”


일말의 희망을 안고 노인들의 이런저런 대화를 모두 경청했지만, 그 말들이 모두 실없는 잡담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 여기 이 산에 합법적으로 들어갈 방법은 있는 건가요.”

“있지.”


노인 3인방 중에서 비교적 점잖게 있던 할머니가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다. 확신에 찬 얼굴로.


“가족은 들어갈 수 있지.”


이런 식이다. 역시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족 아녀?”

“대성이 각시 아녔어?”

“아, 이 사람아! 각시면 여기서 발만 동동 굴렀겄는가! 볼쌔 드가붓제!”


어쩐지 한숨이 나왔다. 호기롭게 내려오며 모든 것이 잘되리라 생각했던 자신이 한심하고 새삼 원망스러웠다. 재벌 구조 철폐? 사유지 무단침입 따위의 가벼운 법도 못 어기는 주제에 내가 뭘······.


“어르신들! 저 여기 대성씨 꼭 만나야 한단 말이에요.”


서럽다. 만만치 않을 거라는 아버지의 말에도 백설은 ‘설득’에 난항을 겪을 거라고만 생각했지, 만남이나 설명 자체가 차단당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이렇게 장난만 치실 거면······. 후······.”


감정이야 금세 수습했지만, 살짝 삐져나온 감정에 목소리가 잠깐 떨렸다. 그러자 아까까지 서로 시시덕거리던 노인들이 조용해졌다.


그리고는 상황이 조금 묘하게 돌아갔다.


“도와줄라고 이라제.”

“예?”

“도와줄라고. 우리도 대성이랑은 가족 같은 사이니께.”


노인들의 조금 당황한 모습. 한 줄기 희망이 비친다.


“그···럼 저 들어가게 해주실 수 있어요?”

“그건 안 되제.”

“예?”

“가족 같은 사이지 가족은 아니니께······.”


아까까지와 같은 패턴인가 생각이 들었지만


“아예 안 된다는 건 아니고, 바로 당장은 안 된다. 이 말이제. 사유지니께······. 설령 가족이라도 갑자기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믄 기분 나쁜 거 아니간······.”

“그라제, 노크 정도는 해야제.”


변명하는 폼이 아까와는 전혀 다르다. 갑자기 태도가 바뀐 이유야 전혀 알 수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당황스러움? 미안함? 이런 종류의 감정이 묻어 나온다.


“그래도 방법은 있응게. 너무 그리 풀 죽지 말어.”


아까의 흔들렸던 목소리가 유효했던 것일까? 아무래도 어떤 사연을 안고 이곳에 도달한 여자라 생각한 것 같다.


“그래, 아가씨. 뭐 사연이 있는 모양인디······.”

“거 가만보니 거짓말 할 사람은 아닌 것 같구만!”

“산에를 들어가는 거이 아니고 대성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거 같은디. 그거라믄 방법이 있제.”


마지막 말은 어쩐지 핵심을 찔러왔지만, 백설은 내색하지 않고 다시금 생각을 정리했다. 어찌 됐든 여기 산 주인은 이 마을 출신일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은 방금,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도와주실 건가요?”

“꼭 만나야 한다. 이 말이제?”


살짝 눈치를 보는 듯, 풀이 죽은듯한 모습이다. 지금의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방법.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한도내에서 백설은 최대한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말을 꺼냈다.


“네! 꼭 만나야 해요. 저희 아버지께서······.”


그리고 상황은 여지없이 백설의 예상과는 다르게 돌아갔다. 그러니까, 너무 잘 돌아갔다.


“아, 그려? 아버지랑 관련이 있다고?”


백설의 말에 노인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불과 몇 초 전까지 살짝 풀 죽은 듯 했던 태도가 사라졌다.


“아버지 일로 온 거였어? 효녀구만!”

“아! 도와줘야제! 효녀 아가씨가 도와달란디!”

“걱정 말어. 우리가 대성이 불러내는덴 도사여 도사.”


어라, 이게 맞나. 싶을 정도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 다시 아까의 정신 없는 패턴으로 이어지기 직전, 백설은 가까스로 이들이 어디에 반응했는지를 캐치했다.


‘꼭 만나야 한다? 아버지? 아버지라는 말에 반응했다.’


왜? 물론 자신이 아버지 때문에 온 것은 사실이었고, 백설의 아버지라면 나는 새도 떨어뜨릴만한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 아마 국내에서 ‘아버지 문제로 왔습니다.’라고 한다면 협조하지 않을 사람이 오히려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왜? 나를 아는 것도, 아버지를 아는 것도 아닐텐데? 말 그대로 효녀 같아서? 기특해서?


무언가 조금 이상하다. 그러나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는 노릇. 백설은 보이는 것을 곧이 곧대로 믿는 순진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보이지도 않는 것을 의심하느라 실리를 놓칠 사람도 아니었다.


‘어찌 됐건, 받을 도움은 제대로 받는다. 이 일만 잘 처리해서, 보상을 확실히 드리면 되겠지. 이게 서로 윈윈하는 길이야.’


만약 이 자리에 대성이 있었다면 자신의 눈에는 빤히 보일 이들의 행동을 곧바로 제지했을 것이다. 물론, 백설 또한 조금 후에는 그걸 깨닫게 된다.


“자! 말이 나온김에 바로 시작하자고!”

“예?”

“그래, 사람들 전부 불러 모으자고.”

“예??”


산에 사는 한 사람을 불러내는게 이렇게까지 사람이 동원 되어야 하는 일인가? 산에 집이 없나?


만약 이 노인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백설은 침착한 마음으로 산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대성을 기다리는, 그럭저럭 심심한 작전을 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 저기,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저녁은 드셨는가?”

“아뇨··· 아직.”

“그럼 판도 벌릴겸 이장님 댁으로 가세.”

“예? 판이요? 이장님이요?”

“자자, 얼른 가세.”


하지만 이 마을에서 외지인이 이 노인들의 눈에 띄지 않기란 불가능했고, 이들은 심심한 작전을 눈감아 주기엔 너무 지나치게 심심한 사람들이었다.


“잘 됐구만. 손님이 올 정도니까, 그거 써도 되긋제?”

“암! 되제! 잘 됐제. 정말 잘 됐어.”

“써보지도 못하고 죽나 싶었는디, 참 다행이여.”


* * *


“아저씨. 윙윙이. 완전히 이해해써.”


쓸데없이 비장한 윙윙이의 표정.


“윙윙이가 이번엔 뭘 이해했을까?”

“많이 먹는 게 꼭 좋은건 아니어써.”


과식은 해롭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5살의 깨달음치고는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눈 앞의 이 아이는 육체가 없다.


“응?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저씨도 저번에 산삼 먹고 아야했잖아.”

“오, 그래서?”

“산삼을 많이 먹어서 그런거지?”

“···조금 다르긴 한데. 비슷하지.”


대성은 새삼 감탄했다. 많이 먹어서 탈이 난 것은 아니지만, 섭취 후 넘치는 기운 탓에 지난 사흘간 은근히 고생했던 것도 사실. 그 사실을 이번 토마토와 연결 지은 발상이 놀라웠다.


“윙윙이는 오늘 반짝 뽀바들에게 그거를 알려줄 거야.”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조금 다르긴 한데, 비슷해.”


윙윙이의 어딘가 결의에 찬 듯한 얼굴, 대성은 웃음이 피실피실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럼 오늘은 아저씨가 책 안 읽어줘도 되는거야?”

“으···응. 오늘 윙윙이는 바빠. 책은 나중에. 두 번······.”


며칠간 틈만 나면 책을 읽어달라 졸라대더니, 그새 어휘가 많이도 늘었다. 기특하다.


“그럼 아저씨도 아저씨의 일을 해봐야겠네?”


토마토를 노려보며 ‘무언가’를 하는듯한 윙윙이를 잠시 지켜보던 대성은 이내 옥수수 앞으로 향했다.


스스로 ‘과식’하다가 터져버린 토마토와 달리 이 녀석은 시들하긴 해도 그럭저럭 두고볼만한 옥수수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아까의 튼실한 토마토를 본 이상, 왠지 이 옥수수도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예상대로 흙이 바싹 말라 있다. 잡초도 많아.’


어마어마한 지력 소모를 단기간에 이뤄낸 옥수수는 비옥했던 검정색 흙을 거의 흰색으로 바꿔 놓았다. 오랜 시간 구워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바싹 말라 있는 흙. 주의 깊게 만져보니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지력 소모, 지력이란 그 모호한 단어와 달리 오컬트의 영역이 아니다. 질소, 햇볕, 잡초, 흙의 수분. 이들의 상호작용까지. 지력이란 정리하고, 정의할 수 있다.


‘아, 혹시 윙윙이가 알려준다는 게······.’


많이 먹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기보다는, ‘혼자서 많이 먹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어쩌면 이 옥수수 농사는 윙윙이에게 새로운 가르침이 될만한 소스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두근거림을 안으며 대성은 윙윙이 몰래 옥수수 밑에 무언가를 뿌렸다.


옥수수가 갈아마신 양분과 물을 다시 채워주고, 옥수수와 함께 실시간으로 자라는 잡초들을 혼자 뽑아준 후, 대성은 다시금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네, 아저씨. 오늘따라 전화가 자주 오네요?”


아버지의 절친 장인호. 장인 아저씨였다.


“네? 정말입니까?”


반갑게 전화를 받았던 얼굴이 조금씩 굳어져 갔다.


“네, 가야죠. 네, 위치도 압니다. 걱정 마세요. 안 그래도 조만간 가 볼 예정이었어요.”


쓴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끊은 대성은

옷을 갈아 입고 마을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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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화만사성 +1 24.09.08 148 13 11쪽
4 아버지와 아들 +1 24.09.07 159 13 11쪽
3 뽀바 +1 24.09.06 177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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