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이 종말을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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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우(必遇)
그림/삽화
17시 50분 연재
작품등록일 :
2024.09.0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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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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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오늘은 내 생일이다

DUMMY

1.




“후우······ 젠장.”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그렇기에 더욱 집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평범한 인생.


평범한 직업.


평범한 직장.


평범한 결혼 생활.


내가 죽는 날, 지금의 삶을 비석에 새겨넣는다면 어떤 글귀를 넣게 될까.

아마 이렇지 않을까 싶다.


《평범한 삶이라는 건,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내 삶이 처음부터 평범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다.


평범한 삶.

그 시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유언이 있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특별함을 드러내지 않고, 그들 속에 스며들어 살아라.

-······네.


개성을 죽였다. 생각을 그만뒀다.

평범하게 이만하면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과 결혼했다.


살 만은 했다.


평범하다는 것은 규격이 완만한 삶의 ‘틀’과 같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개성을 죽이면 들어갈 수 있는 ‘틀’ 말이다.

어떤 사람이던 간에 몸을 꾸기면 충분히 평범해질 수 있다.


아무리 잔인하더라도, 아름답더라도, 똑똑하더라도,

굳이 티를 내지 않으면 평범한 인생이 된다.


쏴아아아─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만 기어코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네.”


마지막 돛대를 펴고 들어가려 했더니만.

하늘이 그걸 막아섰다.

하필이면, 불이 붙어있는 곳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치이익─


“쯧.”


엄지로 녀석을 부러트리고는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결국 그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들어가자.”


생일을 맞이해야지.


나보다 먼저 비를 맞으며 뛰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뭔가 익숙하게 보이는 뒷모습.


그 모습에 조금은 느긋하게 비를 맞아가며 걸었다.

중앙 현관에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엘리베이터가 멈춰있는 층이 거슬렸다.


“······.”


내가 가야 할 층에 멈춰있는 엘리베이터.


‘하필이면.’


애써, 감정을 지우고 평범하게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에는 방금 남자가 탔었는지, 바닥이 흥건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물길을 따라갔다.


물길이 끊긴 곳에 멈춰, 정면을 바라보니. 익숙한 호수가 보였다.


1404호.


물은 그대로 집까지 이어졌다.

문을 열었다.


“왔어? 오늘은 좀 빨리 왔네?”


아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날 맞이했다.

한쪽 무릎을 쪼그린 채, 무언가를 서둘러 집어 들고 있는 자세였다.


“뭐야?”

“아니, 너무 사용감이 짙어서 오래돼 보이는 신발이 있길래. 버려두려고.”


아내는 구두 하나를 집어 들어, 뒤로 숨겼다.

축축하게 밑창이 젖은 갈색 구두.


뚝─ 뚝─


지금도 밑창에서는 물이 떨어지고 있다.


‘내 구두가 아니잖아.’


난 언제나 검은 구두를 선호한다.

하지만 갈색에 무늬가 그려진 구두라니?

저런 건 사용한 적도 없고 받은 기억도 없다.


그런 신발에 사용감이 많아서 버려야만 한다, 라···.

그뿐만일까, 바닥에는 어설프게 닦은 자국들이 보였다.


예상해 본다면, 누군가 비를 맞았고. 그대로 집안에 들어왔다. 그 존재를 아내는 맞이했고.


증거를 지웠다.


‘너무 소설인가?’


라고 하기에는 뒷목이 싸했다.

그 감각이 내게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징조로 느껴졌다.


무심하게 아내를 봤다.

아내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고, 손뼉을 쳤다.


“아, 아! 맞다! 여보 오늘 생일이잖아! 좋아하는 미역국이랑 제육 해놨으니까, 얼른 와서 앉아.”


미역국이랑 제육이라.

항상 배달만 시켜 먹던 사람이 웬일로 그런 상을 차렸을까.

생일이라 차렸다고 하기에는 4년째 그녀의 집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


갑자기, 4년 만에 생일상.


‘그러고 보니, 오늘부터 내 사망 보험금이 늘어나던가.’


설마, 하는 상상이 머리를 스쳤지만.

애써 무시했다. 이런 생각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실례일 수 있으니까.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내게 그런 소설 같은 일이라니.


‘아니겠지.’


그나저나, 미역국이라니.


“오랜만이네.”


씁쓸하게 읊조리는 모습을 본 아내는 잠시 몸을 움찔거렸다. 눈도 수상하게 굴리는 것이,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새였다.


왜? 왜 죄책감을 느끼는 거지?


생일상을 너무 오랜만에 차려준 것에 대한 죄책감일까?

아니, 아니다.


난 알고 있었다.


‘···제발.’


“손 좀 씻고 올게.”

“응······.”


대답하는 아내의 시선은 어느 한쪽을 향해 있었다.

굳게 닫힌 아내의 방.

내가 괜한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지금 저기를 보는 걸까. 왜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을까.’


왜 현관에서 시작된 얼룩은 저 방으로 이어진 걸까.

아내가 방 앞에 놔둔 구두는 왜 사라진 걸까.


잠시 궁금증이 일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딱 한 대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인가가 아니었다.

단 한 까치의 담배.


머리를 가득 채울 니코틴이 필요했다.


끔찍한 상상들이 현실이 아니길, 그저 현실에 지친 내가 하는 망상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쏴아아아─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았을 때는 아내가 준비한 음식이 한가득 준비되어 있었다.


“생일이라고 이렇게 차린 거야?”

“응, 그동안 내가 너무 소홀했잖아. 그래서 이렇게 준비해 봤어.”


아내는 애석한 듯 웃음을 지었다.

그것마저 내게는 어색하게 보였다.


‘피곤한가.’


난 계속되는 단서를 무시한 채.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평범하게 살았고, 앞으로도 평범할 것이다.


그런 내게 소설과 같은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않나.


그래야만 했다.


‘쓰다.’


미역국을 처음 마시고 난 뒤의 감상이다.

미역국이 쓰다니?

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


한 입을 먹고, 가만히 있는 나를 아내가 뚫어져라 봤다.

수많은 감정이 엿보이는 눈이었다.


“왜 그래? 맛이 없어?”


지금까지 먹은 미역국 중 가장 씁쓸한 맛이다.


“···아니야, 응 맛있네. 자기도 얼른 먹어.”

“···난 괜찮아, 아까 먹었거든. 오빠 많이 먹어. 난 배불러.”


‘거짓말.’


싱크대에 설거지한 흔적도 없고, 그릇도 수저도 없지 않나.

현실은 점차 부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녀석은 내 머리를 붙잡아 강제로 현실에 처박았다.


미역국을 한 술 한 술 계속 떠먹었다.

점점, 눈꺼풀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 무게감과 비례하게 내 슬픔 또한 무거워졌다.


‘어머니, 아버지. 이게 평범한 삶의 말로입니까.’


-건우야, 너의 힘은 너무나도 위험하단다. 그러니, 숨기거라. 숨기고, 평범하게 살아. 그게 엄마랑 아빠의 마지막 소원이야. 들어줄 수 있지?


부모님의 마지막 유언.

날 옥죄던 사슬이 점점 끊겨가는 것이 느껴졌다.


‘더는 못 해 먹겠군.’


미역국에서 점차 짠맛이 느껴졌다.


내 눈물의 맛이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몽롱한 시선으로 그녀에게 의문을 던졌다.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어.”


그녀에게서 들려온 답변은 내가 원하는 종류의 답이 아니었다. 저건 내게 하는 말이 아니다.

자기가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정당화, 변명, 자기 합리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녀의 방문이 열렸다.

아는 사람이다.

그녀가 동창회에 간다고 말할 때마다 만나던 그 남자다.


비가 오는 순간, 아파트로 뛰어 들어간 남자.

설마 그 사람일까, 했지만. 애써 무시했었다.


‘진짜, 그 사람이었을 줄이야.’


남자는 무표정한 눈으로 내게 아무런 가치 없는 위로를 건넸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당신은 평범한 인생에 불평이 많았고. 결국, 생일 미역국에 다량의 수면제를 타 마시다가 죽은 걸로 될 겁니다.”


“그게 내 사인인가? 은혜야. 그게 네 뜻이니?”


“···미안. 오빠 같은 평범한 사람이랑 만나는 거. 난 너무 힘들었어, 오빠의 평범함이 나한테까지 묻을 것 같았다고. 내 개성이 점점 사라지는 게 난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았어!”


겨우.


겨우 그딴 게 사람을 죽이는 데에 대한 변명인가.

들고 있는 수저를 조용히 내려놨다.


“오늘은 내 생일이야.”

“알아, 이날만을 기다렸으니까. 오빠 그거 알아? 오늘이 지나면 사망 보험금이 삼천이나 차이 나는 거?”


알고 있었다.

약 1년 전부터 내 명의로 된 보험에 가입할 때 그 순간부터 내 머리를 쑤시는 위화감은 시작됐다.

모든 계획은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


이제는 더 이상 할 말도 없다.

아내는 날 보며, 죽은 눈의 미소를 보였다.


“날 위해 죽어줘.”


피식─


날 위해 죽어달라니, 어딜 그런 삼류 로맨스 같은 문장을 이런 상황에서 내뱉는 걸까.


“쓰다···.”


난 이미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

뭘 기대하고 집에 와서 쓰디쓴 미역국을 들이켠 걸까.

뭘 위한 눈물이었던 걸까.


갑자기 아내가 반성하고, 무릎을 꿇어 나에게 사죄하길 바라는 걸까.


아니, 아니다.


그저, 내겐 필요했다.


뭐가? 뭐가 그리도 필요했을까.


부모님의 저주와도 같던 그 대화를 깨어버릴 충격이.

수십 년의 평범을 깨부술 계기가.


철컹─


날 옥죄던 마지막 쇠사슬이 풀려났다.

그리고, 부엌에 놓인 칼도 하늘을 날았다.


칼이 향하는 곳은 남자의 폐.


푸욱─!


“컥─!”


갑자기 날아든 식칼에 폐가 찔린 남자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꺄아아아악─! 이게 뭐야!”


죽은 표정을 짓고 있던 아내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니, 이제는 전 와이프였던 그녀는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들을 하나둘 꺼내 들었다.


꽤 다채로웠다.


아내의 머리 회전은 꽤 빨랐나 보다.

같이 살면서 모르던 사실을 오늘 많이 알게 됐다.

아내는 곧장, 시선을 돌리고 무릎을 꿇었다.


“다, 당신이 그런 거야? 아니, 당신이 그런 겁니까···?”

“그렇다면.”

“사, 살려줘 당신이 하라는 대로 다 할게, 이, 이 계획도 전부 여기 있는 남자가 시켜서 한 거야. 자, 자기도 알잖아.”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없는 지는 이 여자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뭐 방법도 없겠지.


갑자기 일어난 폴터가이스트 같은 현상.

그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있는 전 남편.

죽은 공범.


어떤 생각들이 저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을까.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다.


“잘 가.”

“아, 안 돼! 안 된다고!”


칼은 그녀의 폐에도 바람구멍을 내주었다.

당연히, 폐에 찔린 사람은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한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진정한 죽음의 얼굴을 짓는 그녀를 보며.

내 입꼬리는 아주 조금 올라갔다.


바지 주머니 속에 꺾여 쓰레기처럼 있는 꽁초를 꺼내 들었다. 라이터 따위는 없지만, 상관은 없다.


손가락을 펼쳤고, 그 위에 작은 불꽃이 일었다.


“후우우우─.”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식칼은 자연스럽게 남자의 손에 들어갔다.


난 수면제를 먹고 곧 있으면 잠에 빠지겠지.

내가 살인자로 몰릴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난 분명히 사람을 죽였다.


“난 뭘 위해 살아가야 하지.”


그렇다면.


“난 죽어야 하는 건가?”


저들과 함께하는 방법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이기적인 인간의 생존 욕구인가?


아니, 그런 것보다는 조금 근본적인 것이었다.


평범한 삶을 고르지 않았을 내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난 꽤 이기적인 사람이었군.’


곧장 휴대 전화를 꺼내 들었다.


“예, 여보세요. 거기 112죠? 여기 정의 아파트 1404호입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예, 빨리 와주십시오.”


이딴 식으로 말하면 장난 전화라고 생각할 법도 하겠지만, 살인 신고다.

확인은 하러 오겠지.


“후우우우─.”


마지막 연기를 내뱉고는 미역국에 꽁초를 집어넣었다.


“Happy Birthday.”


to me.


그대로 모든 미역국을 마셨다.

세상 있을 수 없는 역겨움이 밀려왔지만, 미역과 함께 흘려보냈다.


점점 흐려지는 시야, 감정, 기억 그리고 감각.


'나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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