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이 종말을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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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우(必遇)
그림/삽화
17시 50분 연재
작품등록일 :
2024.09.04 17:33
최근연재일 :
2024.09.1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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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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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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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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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대기만성(大器晩成)

DUMMY

6.




공격을 눈치챈 오크가 몸을 비틀었지만 상관없었다.

난 애초에 드릴을 던진 게 아니었다.

초능력으로 움직이기에, 방향 전환 따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푸욱─!


드릴이 오크의 살과 뼈를 꿰뚫었다.

가까스로 심장을 뚫지는 못한 것 같지만, 내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모든 물체에는 그 중심되는 공간이 있다.


“그 부분을 이렇게 조금만 만지면.”


퍼엉─!


오크의 가슴팍에 박힌 드릴이 폭발했다.

결국 심장은 지켰던 오크의 반신이 날아갔고, 승부는 났다.

동시에 시야를 어지럽히는 푸른 창


【2 위계를 상처 없이 제압하였습니다.】


【상대와의 격차가 심합니다.】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폭발적인 경험치를 얻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총 3개의 자유 스탯을 부여받습니다.】


“후우······.”


초능력을 이렇게 써본 건 처음이었다.

평범하게 물체를 들어 올리는 것과 다르다.

이미지를 현실에 가져오는 일은 온몸을 쥐어짜는 것과 비슷한 감각을 느끼게 했다.


쾌감도 있지만 박탈감도 장난이 아니다.

서큐버스에게 정기를 빨리는 기분이 이런 것 아닐까.

당장이라도 쓰러져 자고 싶은 기분이었다.


“오! 레벨업!”

“뭐야, 경험치 받았냐?”

“그럼요. 싸움에 참여만 해도 기여도에 따라 경험치를 배정받으니까요. 그보다, 아저씨도 레벨 오르지 않았어요? 오크 잡은 거라 엄청 많이 받았을 텐데.”

“3레벨 정도 올랐다.”

“······.”


이현의 몸이 잠시 멈췄다.


“와 씨 3레벨? 미쳤는데요?”

“너도 1레벨 올렸잖냐, 뭐가 문제냐.”

“······지금 상황에서는 각성을 한 사람조차 찾아보기가 어려워요. 레벨업을 한 사람은 더 없을 거예요.”

“음, 어차피 지구에서 날 대체할 사람은 없다며?”


그럼 내가 1등 하는 게 맞지 않나?

뭐 초능력자가 더 있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했지만. 없다는 판정도 받았겠다. 이상할 건 아니었다.


“그보다도, 아까 왜 그렇게 당황한 거냐?”

“아!”


그제야 이현이 입을 크게 벌렸다.

감정 변화가 참으로 빠른 친구다.


“가이아가 만든 시스템에는 문제가 없어요.”

“근데 생겼잖냐.”

“그러니까, 시스템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거죠. 다른 문제는 있을 수 있어요. 처음에 공지 보셨죠?”

“아, 그렇지.”


-타 차원과 비교해 나약한 차원을 위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나약한 부랑자들을 끌어옵니다. 그들은 행성을 빼앗기 위해 당신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차원을 잃은 방랑자들을 죽이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시스템을 빼앗으십시오.


가이아가 시스템을 통해 행한 말이다.


이현도 떠올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아의 말에 ‘부랑자’를 끌어온다고 되어있잖아요?”

“그랬지.”

“부랑자는 결국 자기 차원을 빼앗기고 전 우주를 떠도는 해적? 뭐 그런 거예요.”

“해적치고는 너무 약한 거 아닌가?”


아무도 안 뺏길 거 같던데.


“말이 그런 거지, 사실상 난민이죠.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어요. 차원을 잃었다는 건, 시스템을 잃었다는 것과 같아요. 시스템이 없으면 힘을 잃으니 뭐, 이런 것밖에 없겠죠.”


가이아가 차원 부랑자들을 끌고 온 건 어찌 되었든 상호 합의 하였다는 건가.


“패배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 조그마한 가능성에 부랑자들은 문명의 운명을 걸 수밖에 없죠.”

“그래서 차원을 넘자마자 생명체를 이잡듯이 죽이려든 거군.”

“예, 맞아요.”

“그리고, 갑자기 그런 차원 난민이 늘었다는 건······.”

“다른 차원에서 문제가 생겼을 확률이 높은 거겠죠.”


이현이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는 문제일 확률이 높았다.

떠오르는 정보들을 하나씩 나열했다.

그리고 생각나는 가장 큰 가능성 하나.


“······아니겠지?”

“이럴 때는 꼭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던 게 정답이더라고요.”


이현과 내가 생각하는 게 똑같은 것 같았다.


‘둠이 회귀했다.’


이현의 이마에서 땀이 줄줄 새기 시작했다.

태연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절대로 태연하지 않았다.

패닉, 혹은 공포에 의한 반응이다.


“현아, 둠이 지구에 온 게 어느 정도 뒤라고?”

“원래는 10년 정도 걸렸었죠.”

“그래서 내가 10 위계도 도달하고 너도 8 위계 끝자락까지 간 거고 말이야.”

“맞아요. 문명도 어느 정도 복구한 상태였어요.”


그러면···.


“녀석이 더 빨리 올 수도 있겠네···?”

“······네.”


오, 이런 신이시어.


“가이아는 둠을 왜 회귀시킨 거지?”


이현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너도 가이아가 과거로 보낸 거라고 했나? 그건 가이아밖에 못 하는 거야?”

“원래는 다른 신이 주관했는데, 가이아한테 모든 권한을 주고 죽었어요.”

“죽었다니? 신이?”

“예.”


잠깐 설마.


“그것도 둠이냐?”

“······예. 가이아가 시간을 주관하는 힘을 받으면서 얻은 제약이 하나 있어요.”

“그것 때문에 둠도 회귀할 수 있던 건가.”

“아마 그럴 거예요. 모든 존재에게 평등하라. 이런 제약이 따라붙었거든요.”


하, 골 때리네.


“잠깐만, 가이아는 왜 자결하지 않은 거지?”


정상적인 물음은 아니었으나. 충분히 이성적으로는 생각해 볼 만했다.


“···할 만했다? 아니, 오히려 둠을 회귀시켜야만 했다? 왜? 어째서?”


가이아가 이현을 회귀시킨 이유를 엿보는 느낌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신은 알고 있던 거다.

이현이 이런 놈이라는 걸. 제한된 정보로 상황을 판단하고, 가장 확률 높은 선택지를 취사선택한다.


둠은 신을 죽였다.

차원을 하나씩 복속했다. 정복자다.

가이아에게 있어서도 둠은 가장 큰 위협이었을 것이다.


‘가이아의 목표는 둠의 말살일 것이다.’


거기에 가장 다가갔던 게 바로 나.

가이아가 이현을 회귀시킨 이유.

내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녀석이기에.


그렇다면,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 봐.”


가이아의 모든 의도가 내게 머물러있을 수도 있다.

둠이 회귀한 것까지 전부 포함해서 말이다.


“아저씨를요······? 잠깐, 그런 건가?”


이현은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입은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고 손가락이 바닥을 툭툭 두들겼다.


“······아, 그래서 그런 거였나.”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이었다.


“알아낸 게 있는 거냐?”

“예, 제가 분명 10 위계까지 설명했죠?”

“그랬지. 내가 10 위계였다고 했잖아.”


이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가 10 위계였던 건 맞아요. 근데 10 위계가 끝은 아니에요.”

“그럼?”

“가이아에게 들었던 설명이에요. 회귀 전날, 갑자기 이걸 왜 말하나 했더니만. 전부 이걸 위해서였군요···.”


이 정도로 말하는 걸 보니, 꽤 자신이 있나 보다.

고개를 까딱하니, 이현이 입을 다시 열었다.


“둠이 원래부터 모든 차원을 재패할 정도의 강자는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흠?”

“물론, 10 위계까지 간 것만 봐도 차원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의 강자인 건 맞습니다. 근데 그 정도의 강자는 말 그대로 차원에 하나씩은 나타납니다.”

“나처럼?”

“음, 아저씨는 그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편이죠. 아무튼, 네 아저씨처럼요.”


SS, 혹은 SSS가 행성에 하나 있을법한 강자.

EX 급이 차원에 하나 있을법한 강자다.


“차원이랑 행성이랑 다른가?”

“비슷한 데 달라요. 우리는 신경 쓸 게 없지만요.”

“왜?”

“그야, 우리 차원에는 다른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 없거든요.”


우주의 비밀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버린 듯했다.


“아무튼, 이게 중요한 건 아니니 넘깁시다.”

“그런 차원급의 강자도 전부 10 위계에서 멈추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난 모르지, 너처럼 회귀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 한 번 생각해 봐요.”


10 위계에서 멈춘다?

F급부터 EX 급까지 생각하면 10 위계에서 멈추는 게 순번상 맞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다······?


“EX 급이 끝이 아닌 건가?”

“비슷해요. 정확히는 필멸자의 한계가 10 위계까지인 거예요. 태어날 때부터 그 이상의 가능성을 부여받은 존재들이 있죠.”

“가이아.”

“예, 가이아와 같은 신족들이 바로 그런 존재죠. 차원의 등급에 얽메이지 않는 존재들.”


그런 존재를 둠이 죽였다.


“둠은 필멸자의 한계를 넘은 건가?”

“넘었죠, 그것도 단 하나뿐인 능력으로. 아저씨가 말했던 그 특성 이름이 뭐라고 했죠?”

“대기만성(大器晩成).”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의 사자성어.


“뭐, 둠이 봤을 때는 또 다른 뜻이었겠지만. 아무튼 능력은 같겠죠.”

“같다고? 잠깐, 그런 건가?”


전에 이현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특성이 두 개라고···? 그럴 수가 있나?


여기에 더불어 시스템이 말한 정보.


‘알 수 없는 개입.’

‘전 차원에 처음 있는 일.’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


“둠의 특성이 내게 들어왔군.”

“······그런 것 같네요. 정황상.”

“좋은 일인가?”

“저도 여기서부터는 잘 모르겠어요. 가이아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저라고 해서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냥 일상이나 좀 즐기려 했더니만 점점 스케일이 커져만 갔다.


“하아아아······ 죽겄다, 죽겄어.”


······쿠우웅─!


밖에서 커다란 발소리가 이리저리 들렸다.

동시에 들리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소리.


타다다다다당─!


총. 그것도 단발이 아닌, 연발.


“이야, 연발은 쏘기 쉽지 않은데.”


웨에에에엥─!


건물 안에도 울리기 시작하는 경보음.

고블린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때도 재난 안내가 나왔지만, 지금처럼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종말이 앞당겨지겠네요. 앞으로 문명은 빠르게 파괴될 겁니다. 인간들은 자기 생존을 위해 도덕을 버리겠죠.”


그럴 거다.

내가 생존을 위해 아내를 죽인 것처럼 사람들도 점점 그런 괴물이 되어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얼 해야 할까요.”

“······잘 모르겠네.”

“그게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각성자가 해야 할 일은 딱 하나입니다.”

“사냥.”


걸리는 건 단 하나다.


“너와 난 반드시 정부의 눈에 띄겠지.”

“반드시요.”


총을 쏴도 잘 죽지 않는 괴물들을 손쉽게 해치우는 인간, 그것도 한국인이 있다면 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해 볼 상황은 많았다.


“넌 어떻게 하고 싶냐.”

“이런 구시대적인 국가 따위는 어떻게 되던 알 바가 아닙니다. 그냥 이 차원만 지킬 수 있으면 됩니다.”

“그래, 그렇군.”


정부가 국민들을 어떻게 다루던,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그저 날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뿐이다.

내게 줄 수 있는 것. 내가 줄 수 있는 것.

그 아슬아슬한 선 사이에서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과연 그 노괴들이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힘들게 간 UDT를 제 발로 나온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상부의 정치질에 팀원이 사용되었다는 것.

그것 하나에 환멸을 느꼈기에 나왔다.


그때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에 얽매여 그 이상 무언가를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눈앞에 총알 세례를 버티는 오크를 향해 이전의 드릴을 날렸다.


쾅─!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얻은 스탯으로는 마력과 신체를 골고루 올렸다.

원래, 초능력의 사용에 소모되는 것은 정신력과 체력이었지만. 각성 이후 달라졌다.

마력, 체력, 그리고 정신력.

마력과 체력이 전부 떨어졌을 때 정신력을 쓰는 것이다.


‘점점 강해지고 있다.’


초능력과 육신의 힘이 성장한다.

숨을 헐떡이는 오크는 이현이 신속하게 다가가 목숨을 끊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쪽을 보는 군인들.

그리고 무표정하게 그들을 보는 나와 이현.


“어디, 이제 어떤 반응을 보여주려나.”

“어떻게 되던 우리가 을이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래야지.

반드시 그래야 할 것이다.


‘을’이라는 단어에는 이제 신물이 나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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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99 치킨생맥
    작성일
    24.09.17 16:19
    No. 1

    걔도 회귀했으면 저렇게 느긋하게 알아서 이루어지겠지 그럴틈이 어디있나요.
    미친듯이 랩업해야지..
    진짜 그랩에 잠이 오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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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미지 24.09.07 893 15 13쪽
4 둠(DOOM) 24.09.06 940 19 13쪽
3 미성년 회귀자 24.09.05 1,008 21 12쪽
2 각성 +2 24.09.04 1,108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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