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이 종말을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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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우(必遇)
그림/삽화
17시 50분 연재
작품등록일 :
2024.09.04 17:33
최근연재일 :
2024.09.1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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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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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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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둠(DOOM)

DUMMY

4.




이름을 묻는 말에 소년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하핫, 그러네. 이름을 말한 적이 없었네요. 이것 참, 쑥스럽네.”


얼굴을 붉히는 게 딱 그 나이대의 학생 같았다.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현입니다. 성은 그냥 가장 흔한 ‘이’ 씨를 썼어요. 그래서 본관은 없고, 빛날 현(炫)자를 썼어요. 한때 빛나고 싶었거든요.”

“······그러냐.”


이름만 알면 되었거늘, 꽤 많은 사실을 내게 들려줬다.


“아 맞다! 아저씨도 각성해야죠.”


그런가.


“흠.”


주변을 둘러봤다.

고블린의 시체 두 개가 근처에 있기 때문인지, 녀석들은 우리를 목표로 삼지 않았다.

대신 약해 보이는 여성이나 아이, 혹은 어설픈 남성을 상대로 무기를 들었다.


‘어디 보자··· 하나, 둘··· 아홉 마리네.’


각성에 필요한 고블린은 여덟.

한 마리가 오버 되지만 괜찮다. 딱히 힘든 작업은 아닐 테니까.


“영 힘들 것 같으면 말해주세요,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요!”


이현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웃었다.

새하얀 이가 드러나는 게 꽤 훈훈해 보였다.


“딱히 필요는 없는데.”


주변에 있는 아홉의 고블린이 허공을 날았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무게는 소형차 하나 정도.’


대략 1T이다.

고작해야 30kg이나 될까, 싶은 고블린을 들어 올리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끼에에에엑─!


녀석들은 영문도 모른 채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대략 10M 상공, 녀석들은 몸을 버둥거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이게 각성도 하기 전의 힘이라고······? 역시 이 정도는 돼야 정복자를 상대할 수 있는 건가?”


정복자는 또 뭐야.


“호수에 빠트리죠?”

“꽤 무서운 소리를 덤덤하게 하네.”

“무서운 소리인가요? 이 정도면 어비스에서 호상이죠.”


어비스?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구먼.

그래도 일단 그걸로 낙찰이다.


“그럴까.”


가꾸로 바닥에 박아버릴 수도 있지만, 미관상 썩 좋은 건 아니니까.

저어어기 공포에 물든 눈으로 이쪽을 보는 꼬맹이들도 있다.


‘괴물이라도 발견한 거냐.’


아무리 그래도 그런 눈빛은 상처받는다.

상처받은 것과 하려는 행동을 멈추는 건 또 다르기에 손을 내렸다.


빠르게 강에 잠수한 아홉의 고블린.

물의 표면에 공기 방울이 여럿 떠올랐다.

어느 순간, 공기 방울이 떠오르지 않았고. 내 시야에 보이는 푸른 창의 숫자가 하나씩 올라갔다.


【고블린을 처치하였습니다.】

【미션 부여: 고블린 2/10】


【고블린을 처치하였습니다.】

【미션 부여: 고블린 3/10】

···

···

···

【고블린을 처치하였습니다.】

【미션 부여: 고블린 10/10】


이윽고, 그들을 옥죄던 힘을 뺐다.

두둥실 떠오르는 초록색 널빤지 아홉.


“이제 각성하는 거냐?”

“예, 아마 그러겠지요.”


그 말마따나, 강에 널브러진 고블린들에게서 푸른 입자가 또다시 두둥실 떠올랐다.

물과 닿아 무언가 반응이라도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각성 시도만으로 이만한 양······.”

“궁금한 게 있는데, 고작 고블린 아니냐? 어떻게 이런 애들을 가지고 각성이 가능한 거냐?”

“가이아 덕분이에요.”


꽤 종교인 같은 미소를 띠는 이현이었다.


“가이아?”


아까 침범이 시작할 때도 비슷한 단어를 들었다.


‘그거 제우스 할머니 아닌가.’


“가이아는 이 행성을 말해요. 정확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차원이죠. 지금까지 우리가 침범을 안 당하고 평화로웠던 것도 전부 그 덕분이에요.”


“그래? 근데 결국에는 뚫렸잖아.”


“어쩔 수 없죠. 과학이 발전해서 차원의 등급 자체가 올랐으니까요. 그건 가이아도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흠?”

“그래도, 이만하면 엄청난 축복이라니까요? 전 차원으로 보면 시스템을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이현이 열변을 토했지만 딱히 와닿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삶을 고수하던 나였다.

이제 와 가이아니, 각성이니, 침범이니 말해봤자···.


‘영화를 보는 것 같네.’


“그보다, 슬슬 느낌이 오지 않나요?”


아, 그래 온다.

발끝부터 간질간질해지며 내 근본적인 무언가를 건드는 느낌.

하지만, 그게 또 싫지만은 않다.


태아 시절의 기억을 되찾은 것처럼 포근함이 온몸을 감쌌다. 처음 시스템을 받아들일 때의 고통은 없었다.


“괜찮네.”

“그죠?”


씨익 웃는 녀석은 무언가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소년처럼 의기양양했다.


‘정신은 늙었어도 몸이 어리다는 건가.’


또 모른다, 저 미소 안에 어떤 감정이 숨겨져 있을지.

나는 모르는 일일 것이다.


몸이 점점 후끈후끈해졌고.

시야를 가리는 푸른 창의 문자들이 하나둘 변하며 새로운 정보를 나열했다.


【10개체를 사냥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완전한 각성을 시작합니다.】


【확인한 능력을 시스템에 편입시킵니다. 아카식 레코드의 기록에 존재하는 능력입니다.】


【특성을 부여합니다. 가장 빛나는 재능만이 특성으로 변합니다.】


【알 수 없는 개입을 확인했습니다. 두 개의 특성을 부여합니다.】


【전 차원에서 일어난 첫 번째 일입니다.】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합니다.】


【특성, 초(超)능력[F / EX]을 부여합니다.】


【특성, 대기만성(大器晩成)[F / EX]을 부여합니다.】


【대기만성은 10 위계에 도달하기 전까지 비활성화됩니다.】


“이건 또 뭐야.”


비활성화할 거면 왜 주는 거야?


【제, 1 위계가 되었습니다.】



남궁혁

레벨 : 1

위계 : 1

육체: 1, 마력: 1

잔여 스탯: 0

특성 : 초(超)능력[F / EX], (비활성) 대기만성(大器晩成)[F / EX] 』



“위계?”

“자기가 몇 위계이냐에 따라서 할 수 있는 게 달라져요. 특성 등급도 다르고, 받는 스탯도 다르죠.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그것만 알면 돼요.”

“시작은 다 1 위계인가?”

“그렇죠? 9레벨까지는 1 위계, 10레벨부터 2 위계에요.”

“회귀 전의 넌 몇 위계였는데?”


“8 위계였어요. 딱 79레벨까지 찍었었죠.”


듣기만 해도 뭔가 높아 보이네.


“궁금해서 그러는데 특성이 두 개인 사람도 있냐?”

“없죠? 그나마 가장 높은 재능을 특성으로 만드는 거니까요. 근데, 그건 왜······ 아니죠?”


이현은 눈을 크게 끔뻑거렸다.


“두 개 맞아.”

“······!”


두 눈동자가 진동했다.

그렇게나 충격적인 일인 걸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게 이런 건가.’


나야 처음부터 두 개를 받아버렸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만 이현도 그럴까.


“특성이 두 개라고···? 그럴 수가 있나? 아니······ 대체 이런 사람을 두고 왜 인류는.”


이현은 제 머리를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또 자기만의 세상에 빠지는구먼.’


일부러 이현의 눈 바로 앞에서 손을 튕겼다.


딱─


“나도 좀 알자.”

“아, 그렇죠. 말해야죠.”


녀석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지금 우리 지구는 막 1단계에 돌입한 차원입니다. 최근 초전도체니 뭐니 하는 뉴스가 뜨지 않았나요?”

“아, 어 그랬지. 설마, 그게 1단계야?”

“예, 그게 1단계입니다.”


초전도체가 1 단계······?


“단계는 4단계까지 있습니다. 4단계까지 가면 거의 뭐 신계라고 할 수 있죠. 과학으로 따지면 한 우주를 손에 넣고 굴리는 수준이 되어야 4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정복자 ‘둠’이라는 놈이 있어요. 지금쯤 3단계일 것 같은데, 곧 있으면 4단계에 돌입하고는 모든 차원을 정복하려는 녀석이죠.”


둠···?


“혹시 네가 회귀를 한 이유가 그 녀석 때문이냐?”

“예, 둠 때문입니다. 간발의 차이로 성공했죠. 하마터면 회귀도 못 하고 끝낼 뻔했다니까요? 아니, 애초에 우리 중 한 명이라도 아저씨를 대체할 수 있었다면, 애초 여기까지 안 왔겠지만요.”


“나? 나한테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둠을 막기 위해 혼자 녀석의 차원에 가셨습니다.”


혼자 녀석의 차원에 갔다고?


‘그건 희생 아닌가?’


“내가? 왜?”

“몰라요. 누구도 아저씨와 대화를 못 했으니까요. 저도 아주 조금밖에 못 해봤어요. 아내에게 배신당한 아저씨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했으니까요.”


그래,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근데 지금은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없다.

내게 충격을 안겨줄 아내는 이미 세상에 없으니까.

이현이 회귀한 탓인가?


‘이놈이 회귀한 거랑 내가 큰 결심한 거랑 무슨 상관이지?’


솔직한 말로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이 녀석이 한 거라고 하기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이고 말이다.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생긴 거지?”

“혼자였음에도 생존자 그룹을 다 합친 것과 같은 위용을 보여주셨죠. 그래서 다들 아저씨한테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나 보군. 거 참 쓸쓸한 삶이네.”


“아저씨의 삶인데요?”

“이제 그럴 일은 없지 않나? 그럼 남이지.”

“그렇······ 그런가? 되게 덤덤하게 받아들이네요.”


딱히 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가.

그 당시의 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공감하겠나.


“그래서? 내가 왜 둠을 막으러 갔는데?”

“글쎄요. 그건 아저씨만 알겠죠. 사람들은 각각의 논리로 아저씨의 행동을 분석했지만, 글쎄요? 거기 정답이 있으려나요?”


“대충이라도 있을 거 아니야?”

“음, 그러면 하나만 예시로 들어볼게요. 둠이 지구를 발견하고 선언한 게 있거든요?”

“말해봐.”


━내 차원의 노예가 되어라, 그렇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어떠한가?


흠, 정복자라는 별명에 맞는 발언이네.


“하나는 이 선언을 보고 빡돌았다는 의견이에요.”


저런 의견도 수용하는 거야?


“나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한평생을 얽매여 살았는데, 또?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사실 이게 가장 유력하긴 했어요. 나머지는 죄다 좀 이상했거든요.”


이현이 제 머리를 향해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둠이 남궁혁을 끌어들였다, 부터 시작해서 사실은 저쪽 차원이 궁금했다, 둠과 남궁혁은 사실 한 몸이다. 등등 미친 의견도 많았어요.”


진짜 들어줄 필요도 없는 의견들이네.


“근데, 네가 여기 있는 걸 보면 내가 실패한 모양이네.”

“예, 그렇긴 하죠. 그때 아저씨가 둠을 끌고 녀석의 차원으로 들어갔죠. 그 뒤로 1년.”

“1년?”

“예, 1년이나 지났습니다. 다들 그 일을 잊을 무렵, 둠은 다시 나타났습니다. 오른팔을 잃은 채로 말입니다.”


정황상 내가 한 일 같다.

도대체 1년을 싸우고 오른팔을 잃을 정도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미래의 내가 어떤 강함을 가지고 있던 건지도 이해가 안 되고, 그걸 제압한 ‘둠’이라는 것도 좀 궁금했다.


“그래서? 그만하면 내가 할 건 다 해준 것 같은데.”


오른팔 떼줬으면 됐지, 거기서부터는 알아서 지켜야 할 것 아닌가.


“······죄송합니다. 저희 인류는 그런 둠을 상대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허.

그렇게나 무력했던 건가.


“참고로 그 둠이라는 놈은 몇 위계냐?”

“10 위계··· 아니, 그것보다도 높아 보였습니다. 저희 중 10 위계는 아저씨밖에 없었고요.”


거 참 암울한 세상이로구먼.


“아니 그런 상황에서 회귀는 어떻게 한 거냐? 그게 신기하네.”

“가이아의 도움을 받았어요. 최후의 5인, 그중에서 제가 과거로 가기로 결정되었죠.”

“거, 미국에 SSS 급인 놈도 있다며?”


“그 사람이 회귀한다고 한들, 둠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은 아저씨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물론, 아저씨가 돌아가는 게 가장 최고의 상황이었겠지만···.”


회귀할 당시에는 내가 없었기에 불가능했다는 건가.


“아저씨와 같은 국가에 살며, 회귀 이후 가장 빠르게 접촉할 수 있는 제가 선택됐습니다. 원래라면 가장 큰 목적이 아저씨를 그 여자로부터 떨어트리는 거였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졌으니까요.”

“없어졌지.”


죽었으니까.


“거기다가, 특성이 두 개라는 건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아마 정복자 둠마저 특성은 하나일 겁니다.”

“나한테 뭐 들은 건 없어?”


현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슬슬 설명도 적당히 들은 것 같았다.


“······어디 가세요?”


“몰라, 일단 걷게.”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회복원이라고 해 봤자, 크게 문제 생긴 것도 없어 보이고 전파도 터진다.


“···아, 맞다. 거기나 가볼까?”

“거기요?”


자기가 말해 놓고도 까먹은 건가.


“사우나.”

“오!”


이현의 눈빛이 달라졌다.

빤딱빤딱한 것이 그 나이대의 소년이었다.


“빨랑 가자고.”


망하기 전에.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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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기만성(大器晩成) +1 24.09.08 838 19 12쪽
5 이미지 24.09.07 894 15 13쪽
» 둠(DOOM) 24.09.06 941 19 13쪽
3 미성년 회귀자 24.09.05 1,009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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