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이 종말을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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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우(必遇)
그림/삽화
17시 50분 연재
작품등록일 :
2024.09.0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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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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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미성년 회귀자

DUMMY

3.




뜨거운 수은이 혈액을 돌아다니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난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크윽─!”


【시스템을 받아들입니다.】


푸른 연기가 영혼처럼 고블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연기는 허공을 배회하는 척하다, 순식간에 방향을 틀었다.

향하는 것은 내 몸.


스으으으─


피부로, 호흡으로 푸른 연기가 들어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초능력으로 반응할 수도 없었다.

순식간에 몸은 푸르딩딩하게 물들었다.


온몸의 피가 들끓었다.

입이라도 열면 연기가 나지 않을까.

그 정도의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시스템 등록 중······.】


【등록 완료.】


【내재 된 특이 체질 발견. 시스템에 편입 시도.】


【시도 중······. 성공.】


【각성에 필요한 타키온의 양 측정 중···.】


【최소 열의 개체를 잡아야 할 것으로 판단.】


【각성을 중지합니다.】


【미션 부여: 고블린 1/10】


시야를 가득 채운 메시지 때문인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최근 유행하는 여러 매체를 보면 이런 상황은 왕왕 나오고는 하니까.


“아저씨 괜찮으세요?”


“넌?”


소년은 순식간에 다른 고블린의 멱을 딴 뒤 내게 뛰어왔다.

그 속도가 범상치 않았기에, 이 녀석도 각성이라는 것을 했으리라 예상할 수 있었다.


초능력으로 녀석을 밀어내려 했지만.


“맞다, 아저씨는 가까이 가는 거 싫어했었지.”


밀리기도 전에 먼저 걸음을 뒤로 가져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녀석에게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아는 거냐?”

“네 알아요. 남궁혁 아저씨잖아요. 무뚝뚝하고, 때로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요.”


내가?


“회귀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 군.”


수많은 매체를 섭렵한 한국인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소재. 회귀.

그 단어가 꺼내지자, 녀석의 몸이 움찔했다.


‘아니지?’


“······.”


잠시, 정적이 흘렀다.

소년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이 아저씨는 감이 좋단 말이야. 맞아요, 저 회귀했어요.”


담백했다. 생각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어차피, 아저씨가 이걸 가지고 뭘 할 사람은 아니잖아요?”


뭐 이걸 안다고 써먹을 만한 곳도 없다.

여기 회귀자가 있다고 소리쳐서 어디 써먹나.

쌀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차라리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게 낫겠지.

이 녀석도 나한테 나쁜 감정을 품은 게 아닌 것 같으니까.


“아! 아저씨, 각성하려면 앞으로 몇 마리 남았어요? 7마리? 8마리?”

“9마리.”

“역시 대단하네요.”


“뭐 문제라도 있는 건가?”

“아뇨 그게 아니라, 각성에 필요한 고블린이 10마리나 필요한 경우는 처음 봐서요.”

“너는 한 마리만 잡고 각성한 것 같다만?”


“아, 저는 원래 여덟 마리였어요. 이건 회귀 특전 같은 거죠.”

“···여덟? 많은 건가?”

“당연하죠! 여덟 마리를 잡아서 각성해야 한다는 건, 저 괴물들을 각성도 안 한 채로 여덟 개체나 잡아야 한다는 거라고요! 전에는 진짜 각성 하나 하려고 얼마나 개고생했는지···.”


“그게 어려운가?”


방금도 꽤 쉽게 잡던데.

고블린인가 뭔가 하는 놈들도 잡고자 하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

움직임을 대충 보아하니, 대략 12살 어린아이 정도의 힘이다.


“아아, 또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신다. 당연히 어렵죠. 저길 봐요.”


그나마 나뭇가지나 돌을 들고 고블린에게 대항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고블린이 접근하지 못하게 나뭇가지를 휘적이지만, 너무나도 엉성하고 허접한 움직임이다.


그나마도 양반이지, 헐레벌떡 도망 다니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허접하게 짜인 개그처럼 엉성한 그 모습이 내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저러는 거지? 차분하게 목이나 간장 쪽을 노리면 되지 않나?”

“평범하니까요. 닭 하나 잡아본 적 없는 사람이 자기 가슴까지 오는 이족 보행 생물을 어떻게 죽여요. 그게 쉬우면 더 이상하죠.”


흠, 그렇다고 한들.


“안 죽이면?”


뭘 할 수 있는데.


“저 사람들은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초반에는 사람이 많이 죽었죠.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살아남는 건 사이코일 지도 몰라요.”

“그렇군.”


근데, 저렇게 말하면 제 얼굴에 침 뱉기 아닌가.

자기도 그 부류에 들었다는 걸 수도 있는데.


“그거 알아요? 아저씨는 무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 무표정에도 표정은 있어요.”

“······.”

“대충은 알아볼 수 있다는 거죠. 멸망한 세상에서 버티려면 변해야만 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죠.”


평범한 중학생이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거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냐. 그보다도 사람마다 잡아야 하는 고블린 수가 다른 건가? 아까 보니, 넌 여덟 마리라며.”

“달라요, 각성할 때 잡아야 하는 고블린의 수가 곧 태생 등급이랑 같거든요.”

“태생 등급?”


“네, 태생 등급. 한 마리를 잡고 각성하면, F급이 되는 거죠. 저기 있는 고블린들이 F급이에요. 거기서 한 마리가 늘어날수록 등급이 늘어나는 거죠. F에서 시작해서 EX까지 있어요.”


F부터 EX까지.

10마리를 잡아야 하는 난 EX 급인가?


“EX 급은 얼마나 있지?”

“없는데요? 애초에 SS 급도 전 세계에 다섯밖에 없어요. SSS는 저기 미국에 하나 있고요.”


그 정도인가?


“SS 급인 네가 회귀한 거면 그 미국에 있다는 SSS 급도 회귀한 건가?”

“아, 그건 아니에요. 저는 좀 특이한 경우라.”

“혹시나 해서 묻는데, 각성하면 뭐가 좋냐?”

“특성을 얻을 수 있어요. 신체 능력도 각성 전과 후는 엄청난 차이도 있고 말이죠.”


특성?


“이런 것처럼?”

“···네, 그런 것처럼요. 자, 잠깐만요 생각해 보니까, 아저씨 각성 아직 안 한 거 아니야? 그거 어떻게 쓰는 거예요? 뭐야, 뭐지? 진짜 뭐지?”


학생은 제 머리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뭐야, 회귀했다면서?”

“그건, 맞는데··· 이게 아저씨 특성이 아니었다고? 이거 뭐예요?”

“뭐냐니?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초능력인데?”

“그게 뭐야? 태어날 때부터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무서워···.”


“초능력자 더 없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내가 말 안 해줬어?”

“아저씨랑 대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걸요? 거의 제가 유일했어요.”


“왜?”


“아, 그··· 있잖아요. 아저씨 아내분. 그 사람 때문이죠.”

“아···.”


범죄자라고 안 어울려 줬나 보네.

그럴 만도 하지.


평범했던 시기의 나였어도 범죄자와 엮이는 건 최대한 피했을 거다.

거기다가 살인이라니?


‘쩝.’


“그 사람의 정치질이 엄청났어요. 아저씨가 주변을 막는 사이, 그 인간은 내부를 점령했고. 결국 아저씨는 생존자 그룹에서 쫓겨났어요. 그 이후로는 말하는 걸 본 적이 없긴 해요.”


잠깐.


“그 여자가 정치질을 했다고?”


그럴 리가.

이게 회귀라면,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예···, 충격이겠지만. 알고 계셔야 해요. 그 사람 지금 바람 피고 있어요.”


파람을 ‘폈었지’. 지금 피는 건 불가능할 텐데?


"···그럴 리가 없는데.”

“진짜라니까요! 믿으셔야 해요! 그렇게 평범하던 아저씨가 그 이후로 훼까닥 돌았던 걸 보면 그 여자만 아니었어도!”


평범하던 내가 훼까닥한 건 지금이랑 비슷하네.

근데, 뭔가··· 뭔가 이상하다.


“아니, 그 여자 죽었는데···?”

“···네? 죽어요? 그 인간이?”


멍하니 입을 벌린 소년의 뒤에서 고블린이 달려왔다.

고블린의 손도끼가 닿기 직전.

고블린의 몸은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아, 감사합니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

“아니··· 그냥 이게 무슨 일인가 해서요. 그 인간, 아니 아내 분은 어쩌다가···?”


소년은 미안하다는 듯 눈을 깔았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슬프면 안 되지 않나?’


그쪽이 더 무서운 거 같은데.


“음··· 사고가 있었지.”


어설프게 내연남을 데려와서 날 저승으로 보내려 했지.

아쉽게도 난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고, 결국 뭐.


‘그래도 사이좋게 보내줬으니까.’


내로남불이지 않나. 자기들이 하는 건 로맨스인 거다.

그래서 로맨틱하게 보내줬다.


동시에 죽는 것만큼 로맨틱한 게 무어 있겠나.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년이 침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어디 사고라도 당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


“아, 그래서 경찰서에서 나오고 계셨던 거군요.”


“그걸 보고 있었어?”


“예, 이쯤에 사신다고 들었거든요.”


그럼, 처음에 눈이 마주친 건 우연이 아니었나 보구먼.

애초에 날 찾아온 거였어.


“네 부모는 어쩌고 나한테 왔냐?”


“그런 건 없는데요?”


“······그러냐.”


“그보다도, 빨리 각성부터 해치웁시다. 사람도 구하고, 더 강해질 수도 있고. 초반에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게 중요··· 쓰읍 중요한가?”


식량도 빨리 축날 거고, 쓸모없는 다툼은 계속 일어날 것이며, 권력을 얻으려는 쓰레기는 생기고··· 또···.


와, 이거 답 없는데?


잠시 생각하던 소년은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음, 일단 머릿수부터 줄일까요?”

“왜 그런 말을 상큼하게 하는 거냐.”

“슬프게 말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요.”


그것참 납득할 만한 이야기로구나.


“그나저나, 넌 왜 회귀한 거냐.”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다.

이름도 모르는 소년 알 바인가? 그럼에도,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세상이 망했으니까 했죠?”

“그러니까, 왜?”


세상이 망하면 망하는 대로 살면 되는 게 아닌가?

왜 굳이 가시밭길에 걸어든 걸까.

자기를 기억하는 사람 하나 없는 볼모지에 왜 다시 발을 디딘 걸까.


‘그것도 저 어린 나이에 말이야.’


궁금했다.


“······음.”

“난 평범했다. 아니, 평범한 틀에 나를 맞춰 살았지.”

“아, 그랬죠. 다들 처음에는 아저씨만큼 평범한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랬을 거다. 기이할 정도로 ‘평범’이라는 틀에 얽매여 있었으니까. 근데, 지금은 어때 보이지?”

“평범하고는 좀 멀어 보이죠?”

“그래 난 이제부터 나를 찾아갈 생각이다. 어찌 보면 너랑 똑같겠군.”

“똑같다고요?”


“드디어 제대로 된 사춘기를 맞는 거니까.”


소년은 그 말에 잠시 입을 오물거렸다.

주변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아저씨한테 자주 듣던 말이 있거든요.”

“내가?”

“네, 항상 찜질방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어요. 그냥 만날 때마다, 아 찜질방 가고 싶다! 이것만 계속 얘기하셨죠.”


“그러냐.”


안 그래도 원래 내 행선지는 찜질방이었다.

평범한 삶을 살면서 그나마 버틸 수 있던 건 찜질방 덕분이었을 거다.

고된 삶에 지칠 땐 목욕 바구니 하나만을 챙겨 떠났다.


‘한증막에서 나오고는 마시는 식혜가 아주 기가 막힌다.’


“저, 살면서 찜질방에 가본 적이 없거든요. 혹시 회귀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갔냐?”

“아직요, 오자마자 아저씨부터 찾았거든요.”


“그럼 가볼까?”

“영업하려나 걱정이 되긴 하네요······.”

“쩝, 그러네.”


주변에 사이렌이 울리고, 군인들이 출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금방 진화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그러면 별생각 없이 영업하는 곳도 아직은 있지 않을까.’


아직도 고블린에게 쫓기는 사람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얘 이름 모르지 않나?’


“그보다도, 너 이름이 뭐냐?”


난 그제야 소년의 이름을 물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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