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이 종말을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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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우(必遇)
그림/삽화
17시 50분 연재
작품등록일 :
2024.09.0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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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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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DUMMY

2.




다시 눈을 뜨니, 공간의 크기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거라고는 앞에 사람이 하나 있다는 거.

그리고, 거울처럼 보이는 물체 뒤에 사람이 네 명 정도 서 있다는 거.


그 정도였다.


“정신을 차렸군요.”


상대는 자기 앞에 놓인 서류를 하나씩 읊었다.


“나이, 34. 이름, 남궁혁. 학교 생활 평범했고, 직장 생활도 평범, 군대는··· 어유 빡쎈데 다녀오셨네. UDT 4년 마치셨고. 맞습니까?”


잠깐, 반항심이 생겨 UDT를 다녀온 것 빼고는 모두 평범했다.


“예, 맞습니다.”


“본인이 왜 여기 있는 지도 아시겠고?”


“알 수밖에 없죠. 집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고, 신고한 것도 저인걸요.”


“예, 정황상 본인이 최대 용의자입니다만···. 다량의 수면제가 검출되었고, 시간상 그쪽이 일을 저질렀을 것 같다는 생각도 안 드는군요. 상대방의 동기가 너무 명백하고 말입니다.”


“동기 말인가요.”


“예, 기록이 꽤 방대하게 남아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약 1년 전부터 당신의 살해를 계획해 왔더군요. 이게 참, 허···.”


형사로 보이는 사람은 날 연민하는 듯한 눈초리로 보았다.


“그쪽이 왜 그렇게 차분한지도 솔직히 이해는 갑니다, 그쪽 같은 사람 몇 번 봤거든요.”


“그런가요?”


“예, 이번 사건처럼 스팩타클하지는 않지만. 예 뭐 가끔 들어오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사건들은.”


똑! 똑!


거울 쪽에서 노크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의미인 듯했다.


“하하, 길이 샜군요. 그래요, 아마 당신은 금방 풀려날 겁니다. 곧 있으면 상황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오거든요.”


형사는 볼펜을 들고 이리저리 허공에 그었다.


“요즘에는 과학 기술이 참 잘 되어 있어요. 상처와 범행 도구만 알면,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거든요. 심지어 죽은 시체의 근육 활성도를 통해서 어떤 움직임이 있는 지도 알 수 있다니까요?”


이런. 그런 기술도 있던 건가.


“아, 나왔나 보네.”


문이 열리고, 아리쏭한 표정을 지은 여자가 한 명 들어왔다.


“반장님, 이거 결과가 좀···.”


“응? 왜 뭐가 이상해?”


두 사람은 기록지를 보더니만 얼굴을 굳혔다.

내 얼굴과 기록지를 번갈아 보았다.


“남궁혁 씨, 내가 질문 하나만 할게요. 뭐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묵비권을 행사하셔도 됩니다.”


“예, 뭐죠?”


“혹시, 방 안에 사람이 하나 더 있었습니까?”


아, 하긴.

저런 질문이 올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두 명이 냈다고 보기에는 기괴한 형태의 상처였으니까.’


연상한다면 팔을 이리저리 꺾어서 상대방을 찌른 모양 아니었을까.

정상적인 움직임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한 명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당연히 수면제를 먹은 나는 제외.

상식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 다른 두 명도 제외했다면, 결국 제 3의 인물을 소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렇게 당황하는 이유.


‘정말 세 명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어떠한 장치도 없을 테니까.


“없었습니다. 저랑 그 두 명뿐이었어요.”


“······미치겠네.”


형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마구 긁었다.


“잠시만 기다려 줄 수 있어요? 이러면 경찰서에 좀 자주 소환될 겁니다. 일단은 피의자 신분에서 벗어나긴 할 텐데··· 하, 이거 곤란하네.”


형사는 잠시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여자에게 뭐라 속닥댔다. 당연히 다 들린다.


‘들린다기보다는 그냥 아는 거지만.’


-이분, 어디 안 가게 잘 감시해야 하는 거 알지?


-예···? 그러다가 걸리면···?


-당연히 안 걸리게 해야지. 어?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어? 요즘 애들이 이것도 몰라?


-···예, 그럼. 일단 내보내겠습니다.


-어어, 그래 근데 바깥이 뭔가 소란스럽던데 뭐야?


-그건 저도 잘···.


그러고 보니, 중간에 비명소리도 섞여 있던 것 같은데.

그냥 경찰서라 그런 소리도 있나 보다, 싶었는데. 뭔가 일어난 모양이다.


‘귀찮으니, 난 빠져야겠다.’


이만하면 성실하게 답도 해줬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대단한 청량감이나 해방감이 들지도 않고, 죄책감이 들지도 않는다.


그냥, 아. 내가 사람을 죽였었구나. 정도.


‘원래 이랬던 건지, 아니면, 마모 되어버린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걸 구분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까.

그냥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집은 엉망진창, 근처 찜질방이나 갈 생각이다.


다른 생각은 그다음에나 하려 한다.


‘출근도 해야 하나.’


그것도 일단 하고 나서 결정하자.


“저···기요, 저는 언제 갈 수 있나요?”


아직도 쑥덕거리는 둘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아아, 미안합니다. 우리 둘이서만 얘기했나요. 신입, 보내드려.”


“예,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드디어 찾아온 자유의 시간이다. 이제, 평범한 삶은 끝이다. 새로운 삶을 사는 거다.



***



“그럼 안녕히 가세요!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수고하세요.”


소름 끼치는 위화감이 계속해서 감각을 건드렸다.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하루 종일 안좋은 예감이 들어 집에 갔더니, 불이 났다던가.

갑자기 교통사고가 난다거나 하는,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감각.


그런 감각이 계속해서 내 머리를 강타했다.


‘PTSD?’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난 배신을 당했고, 사람을 죽였다.

그게 내 정신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 지는 나도 모르는 영역이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세상이 어둠에 들어찼다.

개기일식?

아니다. 그런 게 오늘 있다는 말은 듣지도 않았다.

그리고, 개기일식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이 초록색으로 물들고 있지 않은가.


달이 무슨 크립토나이트로 되어있는 것도 아니거늘. 어떻게 초록색으로 물드는 걸까.

주변의 사람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전화하며 빠르게 뛰어가던 직장인도.

병원을 들른 것인지, 배를 부여잡고 가던 학생도.

지팡이를 짚고 가는 할아버지도.


전부, 하늘을 보고 있었다.


이건 본능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이, 이건 대체···.”


누군가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 사람들의 정신에 파문을 일으켰다.

하나둘 눈의 생기를 되찾았고, 하늘이 아닌 정면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938번 차원의 보호기간이 종료되었습니다.】


【타 차원과 비교해 나약한 차원을 위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나약한 부랑자들을 끌어옵니다. 그들은 행성을 빼앗기 위해 당신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차원을 잃은 방랑자들을 죽이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시스템을 빼앗으십시오.】


차원, 방랑자, 보호 기간, 시스템.

익숙하지만, 익숙할 수 없는 단어들이 무미건조하게 나열되었다.

그저 해야 할 것을 읊고 사라질 것이라는 듯, 허공에 새겨진 글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것만이 다른 차원의 습격에 대비할 유일한 방법입니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지구였습니다.】


허공에 새겨진 글자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사람들은 꿈에서 깨어난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자기가 듣고 본 것들이 현실인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 수가 열을 넘으니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꿈도 아니고, 거짓된 무언가도 아니다.


‘현실이다.’


이 빌어먹을 정도의 현실감. 아까부터 느껴지던 기시감. 저 사람들의 반응.


절대로 꿈일 수가 없다.

꿈이라면 이렇게 딱딱 들어맞을 리 없다, 내 생각도 이렇게 이치에 맞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대비한다.’


분명 부랑자인지 뭔지 하는 것들이 우리를 습격한다고, 하였다.


주변이 소란스러웠고,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변이 뻥 뚫린 공원. 숨을 구석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년과 눈을 마주쳤다. 녀석은 내게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날, 아나?’


아니, 그럴 리가. 평범한 인생이었다. 저런 소년과 연을 맺을 기회는 없었다.

한데, 저 소년에게서 엿보이는 연민과 그리움과 같은 감정은 무엇일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사태로 인해, 모든 게 뒤엉켰다. 사람도, 내 생각도.


전부.


쩌적─! 쩌저적─!


허공이 깨지고 있었다.

마치 게임의 트레일러 같은 모양새지만, 저건 현실이었다. 현실에 놓인 비현실 속 상황은 머리를 굳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입을 벌리고 균열의 아래에 멈춰 섰고.


“끼에에에엑!”


콰직─!


안에서 나온 괴생물체에 의해 머리가 짓이겨졌다.


가진 완력 자체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지만,

허공에서 떨어지며 가진 돌도끼를 휘둘렀기에 사람들의 머리는 손쉽게 깨어졌다.


거꾸로 하는 피냐타 게임이었다.


무언가의 여파인지, 녀석들은 어지러워하는 듯 보였다. 이질적인 차원에 적응이라도 하는 듯 머리를 흔들었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공포가 들어찬 사람들의 눈빛이 그것들이 기세등등할 수 있게 만들었다.


“끼, 끼헤헤헥!”


녀석들은 기쁜 듯 침을 흘렸고.

아주 천천히 사람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발짝, 앞으로.


한 발짝, 뒤로.


‘죽이고, 빼앗아라.’


허공의 글자는 분명히 그리 말했다.

그렇다면 저 관계는 오히려 역전되어야 맞는 것일 거다.

그 예로 소년은 어디선가 가져온 식칼을 들고 있었다.


소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무기였다.

왜 저딴 걸 어린 소년이 들고 있는 건가.


그건 둘째치고,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슬슬 생겨난다.

새 인생을 살겠다 마음먹은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다.


“쯧.”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고 촛불을 분 게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탄생의 날, 두 피가 솟구쳤고.

두 번째 날. 세상이 망했다.


자의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확실한 건 하나였다.


‘평범은 이제 확실히 갔군.’


받아들이는 것만이 남았다.

평범하지 않은 나를 말이다.


한 발짝, 내디뎠다.


소년과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나의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건 사람만이 아니라, 괴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소년도.

녀석은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언가 그리운 느낌도 드는군.’


영화나 소설을 그리 많이 읽은 것도 아니건만.

공포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 익숙했다. 군대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되는 걸까?


아니, 아니다.

그냥 간단한 사실이다.


‘나는 녀석들이 무섭지 않다.’


인간이 개미를 무서워하지 않듯, 나도 저것들이 무섭지 않다.


그저 갈증이 났다.


‘바뀌었어.’


무서워해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저 녀석들이다.


“끼에에엑─!”


괴물 하나가 괴성을 내지르며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소년은 팔을 몸에 붙여 방어를 위한 자세를 취했다. 꽤 정석적이고, 실전적인 자세.


‘요즘 애들은 배움이 빠른가?’


뭐, 상관은 없겠지.


손가락을 앞으로 뻗었다.

괴물의 몸이 멈췄다. 그대로 엄지손가락과 검지를 붙여 튕겼다.


탕─!


괴물은 덤프 트럭에 맞은 것처럼 튕겨져 나갔고.

뒤에 있는 소화전에 머리를 부딪혔다.

소화전이 터졌다.


쏴아아아아─!


소화전과 같이 괴물의 머리도 터졌기에, 분수처럼 푸른 피가 쏟아졌다.

동시에 시야를 가리는 푸른 창에 검은 글씨가 생겨났다.


【 [최초의 고블린 슬레이어]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시스템을 빼앗습니다.】


【각성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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