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이 종말을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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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우(必遇)
그림/삽화
17시 50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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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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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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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압박

DUMMY

9.




책임자.

보통 이런 상황에서 책임자라면, 다들 비슷한 자리를 떠올릴 것이다.

내가 떠올린 건 대통령이었다.


아니었지만.


“누구시죠?”

“하하, 모르실 만도 합니다. 전 이런 사람입니다.”


대통령은 아니었다.

정말 예상외의 인물이었다.


-S 전자 첨단 개발소장 김창식


“오랜만이네···.”

“아는 사람이야?”

“예, 뭐··· 그 초전도체 개발한 사람이 이 사람이에요. 천재죠 천재.”

“하하, 감사합니다.”


김창식은 이현의 말에 감사를 전했지만, 표정은 묘해졌다.


“근데 제가 그걸 공론화한 적이 없을 텐데요?”

“다 아는 방법이 있습죠.”


태연한 이현의 표정에 김창식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하, 그렇죠. 예, 세상은 변했으니까요. 갑시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아까 들었던 그 높으신 분들···?”

“뭐, 직접 보면 나이만 먹은 노인들입니다.”


허허, 그 인간들을 이렇게 묘사하는 건 또 처음 본다.


“하하, 그런가요.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 가능한가요?”

“예, 물론이죠. 귀한 분들이신데.”


우리 높으신 분들은 노땅이고 우린 귀한 분이라?

상황판단이 빠른 사람이다.

어디에 선을 대야 더 이득인지 이미 계산이 선 듯했다.


“왜 정치인들이 사기업의 공간에 있는 겁니까?”

“아, 그런 거라면 쉽죠. 여긴 우리 기업 단독으로 만든 게 아니라, 나라의 지원을 받아서 만든 겁니다.”


김창식은 실실 웃으며 덧붙였다.


“저희가 단독으로 만든 거였으면 그 인간들 안 들여보냈죠.”


꽤 오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발언이었지만, S 전자의 첨단 개발소장.

거기에 이름을 보아하니 회장과 비슷하다.


“혹시, 여기 회사의 회장과는 혈연관계입니까?”

“아 예, 뭐 대충 그렇죠.”


대충 그렇다?

묘해지는 내 표정에 김창석이 허허 웃었다.


“아버지는 같은데 어머니가 다릅니다. 그래서 경영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실정이죠. 그래도 뭐 재능이라도 있어서 이 자리에는 올 수 있었네요.”


자조적이었지만, 제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하기야, 초전도체를 개발하셨는데.


이런 뒷배경을 듣고 나니, 김창식이 정치인들을 껄끄럽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딱히 꿇릴 일이 없는 거다.


대한민국 1위 기업.

더 나아가 초전도체 개발 기업.

한때 아슬아슬했던 반도체 사업도 어느 순간 다른 기업과 다른 기술력으로 압도적인 1 황이 되었다.


이 회사가 없으면 세계가 멈춘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인데.


그곳 회장의 혈연이자, 핵심 연구 개발소장이 꿀릴 게 무엇 있겠는가. 대통령이라 해 봤자 귀찮은 노인이지.


“재밌네요.”


그렇기에 재밌었다. 저런 인간이 지금 이쪽에 선을 대려고 한다.

저 명석한 머리로 모든 주판을 돌리고 정답을 이끈 것이다.

달라진 세상.

각성. 상태창. 차원 부랑자들.


지금까지의 권력 구조와 모든 게 달라질 것이다.


“역시 전 틀리지 않았습니다.”

“뭐가 틀리지 않았다는 겁니까?”

“제 배경을 듣고 아무런 반응이 없지 않았습니까? 그게 뭘 의미하겠습니까? 자기 확신입니다. 상대방보다 위에 있다는 자신의 믿음.”

“그냥 미친놈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김창식은 내 말에 폭소했다.


“흐하하핫! 당신이요? 아니요, 저는 당신처럼 이성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미쳤다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상당히 직설적이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현도 별다른 말이 없는 걸 보니, 문제는 없어 보였다.


‘여기서 말을 꺼낼 이유가 없는 걸지도.’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전 올해로 서른다섯입니다.”

“아, 비슷하네요. 전 마흔하나입니다.”


젊다.

마흔하나가 마냥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저 어깨에 달린 무게를 생각하면 젊은 게 맞다.

아니 잠깐, 전 회장의 아들이라 하지 않았나?


그 인간이 하늘로 떠난 지가 어언 10년.

90에 가까운 나이에 갔으니, 그 30년 전이면 60이다.


“와우.”


늙은이가 힘도 좋아.


“아마 들어가시면 남궁혁 씨를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을 읊을 겁니다.”

“예, 그렇겠죠.”


경찰서에서도 털렸는데 여기라고 다르겠나.


“아마, 아내의 사건에 대해서는 남궁혁 씨가 범인이 될 겁니다. 그걸 빌미로 압박하려 하겠죠.”

“제가 범인이 맞습니다.”

“······아? 아, 예, 그렇군요.”


약간 당황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나 보지.


본인도 직설적인 편인데, 내가 이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어?


“참고로 불륜이었습니다.”

“아, 예 봐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봤다니.

그런 정보를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시네.

사람에 따라 기분 나빠할 수도 있을 텐데.


“제가 서자인 사실은 아까 말해서 알고 계시죠?”

“예, 그런데 갑자기 왜···?”

“별 건 아니고. 그 생활 덕분에 제 눈치가 좀 발달했거든요.”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대충은 알 수 있었다.


“아무한테나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라는 거군요.”

“남궁혁 씨라면 받아줄 것 같았거든요. 자, 이제 도착했습니다.”


김창식이 두 팔을 하늘로 쭉 뻗었다.

태양 만세라도 하는 듯한 자세였다.


그 뒤에 있는 것은 커다란 문이었다.

들어가기도 전부터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다.


‘거 참, 이게 기세라는 건가.’


자기가 최고라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저 안에 가득하다.

이 기분 나쁜 공기도 그 때문이겠지.

내 인상을 보고는 김창식이 묘한 웃음을 지었다.


“기대하겠습니다.”

“뭘 기대하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뭐. 해보죠.”


철컥─


김창식의 문 옆에 손바닥을 대니 커다란 문이 열리고 그 안의 면면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허이고, 익숙한 얼굴들이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뉴스만 켜면 나오는 인간들이다.

내가 멀뚱히 있자, 불편한지 헛기침을 하는 사람도 나왔다.


“흠흠, 거 젊은 사람이 말이야··· 먼저 인사도 하고 그래야지.”

“예, 뭐 고생하십니다?”

“쯧, 이래서 일개 시민은 안된다니까.”


배 따스한 곳에 있다가 이런 차가운 시설에 어떻게 오셨나 몰라.

마력을 담은 시선에 헛기침을 뱉은 인간이 고개를 돌렸다.

알 수 없는 중압감이 느껴졌을 거다.


‘외교부 장관. 넌 내가 기억했다.’


마음속의 블랙 리스트에 그 이름을 올렸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실례했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이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일단은 한국의 총리로 있는 사람입니다.”

“남궁혁입니다.”

“예,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뭘 부탁한다는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하하······.”


총리의 눈이 희미하게 움찔했다.

감히 나 같은 일반인이 제 말에 시치미 뗄 줄은 몰랐던 건가?


‘너구리 같은 할아범이네.’


얼핏 인자해 보이는 웃음과 말투 뒤에 숨겨진 가시가 뭐 저리도 많은지.

속이 뒤틀릴 지경이었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죄다 웃는 얼굴 속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그대로 물어뜯을 기세였다.


물론 제가 가진 힘과 말로 말이다.


‘저런 인간들이니 저 자리에 올랐겠지.’


역설적이다.

나라를 우선 해야 할 자리에 오른 자는 결국 제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들이 오른다는 게.


의외인 건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은 이 노괴들과 다르게 젊은 편이었다.


최연소 대통령이라고 했을 거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50대 초반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렇기에 국민들도 여러 걱정을 많이 했지만.

여기 대통령은 그나마 청렴하고 자기 증명을 끊임없이 해냈다.


‘실제로 어떨지 궁금했는데.’


어디 대마왕보다는 마을 촌장이 어울리는 기세였다.

그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이호입니다.”

“남궁혁입니다.”


서로의 오른손을 맞잡았다.

대통령은 거기에 더해 왼손까지 올려 제 절박함을 드러냈다.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대통령이 일개 국민에게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그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설명이 좀 필요한 것 같군요.”


대통령이 저자세로 나오자, 각 자리의 인간들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모습이었다.


“각하, 살인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이유가 뭡니까?”


아는 얼굴이었다.

야당 대표 신창호.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본인이 자리에 맞는 사람이라는 걸 어필하기보다는 상대의 약점을 잡아 물어뜯는 쪽의 사람이다.

어딘가의 대표보다는 장수가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어떤 자리던 이런 사람이 마음에 들진 않겠지만.’


상대를 끌어내리고 자기가 그 자리에 오르는 유형의 사람이다.

한마디로 최악이다.


그런 그가 대통령에게 발언했다.

그것도 나를 비하하며. 그게 무슨 의미를 가질까.


‘주도권을 잡아보겠다, 이건가.’


그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현아.”

“예.”


이현이 손바닥만 한 단도를 만들어 내고는 야당 대표의 목에 가져다 댔다.

이마에 흐르는 한 줄기의 땀방울.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무, 무슨···!”

“그쪽이 직접 말하지 않았습니까? 살인자라고.”


한 번도 했는데, 두 번을 못 할 이유가 있나?


“절 어떻게 압박해 보시려고? 겨우 그런 일 하나로?”


아쉽지만, 난 이미 도덕성을 일부 내려놓은 상태다.

그딴 수작이 먹힐 리가 없다는 거지.

이현? 이현은 뭐 아포칼립스에서만 십여 년을 살던 놈이다. 이걸로 말 다 했다.


거기에 곧 사라질 국가라는 존재.

굳이 정치인들의 입맛에 맞게 내가 움직여야 할 이유가 있는가?


‘없다.’


1%도 그럴 마음이 없다.


“나, 남궁혁 씨 잠시 진정을···!”

“전 딱히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저쪽에서 주도권을 가질 바에야 제가 가지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있을 뿐이죠.”


너희들도 같은 상황이면 그랬을 것 아닌가.

아니, 더욱 잔인하고 징그럽게 했겠지.


가족이 있다면 가족을 인질 잡아서.

직장이 있다면 그걸 인질 잡아서.

약점이 있다면, 그것을 쥐고 흔들며 징그러운 웃음을 보였을 것 아닌가?

제 발끝에 입술을 맞추라며.


“당신들이 잘하는 거지 않습니까? 인질 잡기.”

“그게 무슨 소리요!”


거,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도 잘도 소리치네.

보아하니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잘 보니 목이 점점 은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각성은 또 언제 하셨대?’


방심을 일으키고는 어떻게 해볼 생각인 것 같은데, 그건 오답이다.

오히려 잘 됐다.


이현의 단도에 일렁거리는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고작해야 갓 각성한 인간이 절 막아보시려고?”


스으윽─


야당 대표가 어떤 수를 썼든 간에, 우리에게 통하지 않는다.

다른 인간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제각각 능력을 쓰는 듯했다.


“이야, 건강해지는 건 알아 가지고.”


세상에 이 인원이 다 각성했을 줄 누가 알았겠나.


“후회할 짓은 하지 마시게나.”


아까 예의범절이니 뭐니 하던 외교부 장관의 손에서 냉기가 피어올랐다.

저걸로 날 얼려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현아, 원래도 이랬냐?”

“놀랍게도 생존자 그룹의 수장 자리에는 전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많았어요.”

“허허.”


대단한 인간들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권력을 계속 쥐고 있으려는 그 욕망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그러면 말이다.


“각성자도 많은 데 한 명 정도는 줄어도 되지 않을까?”

“사실 아저씨만 있으면 다른 각성자는 다 필요가 없어요.”

“그래? 그럼, 죽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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