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이세계 힐링 라이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새글

장공명
작품등록일 :
2024.09.05 21:00
최근연재일 :
2024.09.18 12:20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1,492
추천수 :
30
글자수 :
75,501

작성
24.09.07 12:20
조회
154
추천
3
글자
12쪽

3화

DUMMY

팔을 들어 산삼이의 머리에 달린 걸 세게 잡았다. 역시나 이 녀석은 여기가 약한 모양인지 내 몸을 휘감고 있던 것이 점차 힘이 풀렸다.


난 그때를 놓치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헤엄을 쳤다.


지금의 난 말랐어도 군대를 나온 남자다. 그것도 자랑스러운 해병대 수색대 출신이었다.


죽어라 헤엄쳐서 물 위로 겨우 기어 나왔다. 한 손에는 물귀신이 된 녀석을 달고서.


물 위로 올라오자, 산삼이는 물 먹은 산삼이 돼서는 나를 원망하는 눈초리로 쳐다봤다.


“너! 내가 생명의 은인이다.”


뭐든 먼저 못 박는 것이 임자다. ‘생명의 은인’이라는 단어는 꽤 효과가 좋았다.


반감 어린 눈빛이 그 말을 내뱉고서는 싹 바뀌었다. 그게 좋아진 건지 아닌 건지는 시간이 지나고 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땅에 발을 디디고서야 물을 토해냈다. 커다란 나무에 몸을 기대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죽다 살아난 기분은 정말 뭐 같구나.


물기 먹은 옷은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지저분하고 무거웠다. 음, 굉장히 찝찝하달까.


고민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햇볕이 있다 보니 그리 춥지도 않고 옷도 이거 하나뿐인데 말릴 생각으로 벗었다.


옆에 있던 산삼이는 손으로 눈을 가리는 시늉을 하기는 했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난 속옷만 입은 채로 옷을 나무 위에 걸쳐 놓았다. 그러자 물먹은 산삼이가 또 거슬리는 말을 해댔다.


“인간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네. 아무래도 확 상한 것이 분명해.”


산삼이를 노려봐주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먹을 것만 있다면 딱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런 날 라면을 끓여 먹으면 딱 좋은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면 봉지 하나가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물먹어서 축 늘어진 산삼이는 심드렁하게 날 쳐다보며 말했다. 


“오, 라면이네. 맛있겠다. 할매가 못 먹게 해서 아쉬웠었는데.”


입맛을 다시는 걸 보면 분명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여기서 이걸 먹었단 말이야?”


“내가 라면도 못 먹어본 드라이어드 인줄 알아? 알아···요? 어허. 인간이 산삼이를 무시한다.”


삐진 건지 고개를 휙 하니 돌리고는 입술이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성격이 참 고약한 산삼 같으니라고.


하여튼 무슨 말을 못 하겠군.


근데 끓여 먹을 휴대용 가스버너랑 냄비도 없이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 하는 거야. 기왕이면 맞춰서 세트로 딱 나오면 좀 좋아.


어떻게 라면이 생겨난 건지라도 알면 좋을 텐데. 아까 내가 어떤 행동을 한 건지 하나씩 재연했다.


라면을 먹고 싶다고 생각했고 무심코 말했었다.


혹시 간절하게 생각을 하면 원하는 게 생기는 건가?


휴대용 가스버너를 떠올려봤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입으로 내뱉어야 하는 건가.


“휴대용 가스버너. 휴대용 가스버너가 필요합니다.”


······.


이번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푸푸푸풉.


삐져서 고개를 돌리고 있던 산삼이 녀석이 옆에서 대놓고 비웃고 있었다. 이 자식이.


“라면 먹을 때 너 하나도 안 준다.”


“허억. 극악무도한 인간.”


“뭐라고?”


“귀는 밝네.”


산삼이는 슬금슬금 나무 뒤에 숨어버렸다. 저 녀석하고 입씨름해 봐야 무슨 소용이야.


어떻게 해야 원하는 걸 얻을지 방법을 아는 게 지금은 더 중요했다. 


이번에는 가스버너를 상상하며 입으로 말해봤다.


“휴대용 가스버너. 제발. 저 진짜 필요합니다.”


두 손까지 모아 공손한 자세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제발. 제발.


투욱.


허공에서 갑자기 휴대용 가스버너가 뚝 떨어졌다.


필요한 걸 상상하며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하는 거구나.


그렇다면 이번에는 냄비다.


온갖 종류의 냄비를 생각하며 말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스테인리스 냄비를 상상하며 말해보았다.


투웅!


양은 냄비, 편수 냄비, 양수 냄비, 아까 스뎅 냄비도 말했었는데.


아무래도 정확한 이름을 말해야 하는 건가보다.


물은 호수에 있는 걸 쓰면 되겠지. 냄비를 들고 걸어가 물을 떠 왔다.


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휙 하니 돌리니 산삼이가 뒤에 떡하니 있었다.


“뭐야?!”


“아니, 뭐 잘 하나 못 하나 걱정이 되기도 하고···.”


“뭔 소리야.”


녀석을 무시하고 물을 냄비에 담아 일어났다.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신경을 껐다.


라면 한 입도 안 주리라.


나무 밑 그늘에 앉아 바닥이 평평한 곳에 휴대용 가스버너를 놓고 장착 레버를 딱 소리가 나도록 조작했다.


점화장치를 돌리니 화르륵 가스 불이 켜졌다.


여기서 휴대용 가스버너를 사용할 수 있다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지만 다행이었다.


나무에 불을 붙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뭐, 하려고 한다면 하겠지만. 


가스버너 위에 냄비를 올려놓으려고 하는데 불쑥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있었다. 허여멀건 게 딱 산삼이 팔 같은데···.


“야! 미쳤어!”


내가 화를 버럭 내자 산삼이는 놀라서 뒤로 나자빠졌다. 그러고는 원망이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가스 불이 얼마나 위험한데. 거기에 손을 집어넣어. 불이라도 붙으면 어떡하려고.”


“흐윽. 나는 그냥. 신기해서···. 호기심에 그냥···. 해본 거 가지고···. 나쁜 인간 같으니···. 인간이 산삼이 구박한다요···.”


어휴, 저 자식. 지가 잘못하고 뭐라고 했다고 또 훌쩍거리기는 거봐.


서럽게 우는 걸 보니 좀 안쓰럽기도 해서 마음이 약해졌다.


“산삼아, 불은 정말 위험한 거야. 가뜩이나 나무인데 불이라도 몸에 붙으면 어떻게 해. 몽땅 타버릴 거 아니야.”


“훌쩍. 나무 아닌데. 산삼이인데. 흑흑.”


어린아이도 아니고. 달래줬더니 더 울고 자빠졌다. 이놈 자식이 등짝을 후려칠 수도 없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훌쩍거리고 있는 산삼이의 등짝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산삼아 네가 다칠까 봐 그런 거니 용서해 줘.”


흘러내린 콧물을 들이마신 산삼이는 내 눈치를 쓱 보더니 말을 꺼냈다.


“그럼 나도 라면 좀···.”


“그래, 당연히 너도 줘야지···. 어라?”


무심결에 대답해 버렸다. 이 자식 고단수잖아.


냄비를 다시 가스버너 위에 올려놓고는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여기에 젓가락만 있다면 딱 좋은데.


“나무젓가락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때 기다랗고 하얀 풀뿌리가 쓱 나타났다. 


“···이거 써라.”


툭 건네주길래 받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이건 뭔가 좀.


“어디서 났어?”


산삼이는 쑥스러워하면서 몸을 비비 꼬다가 나무젓가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줬다. 


신기하게도 몸에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걸 보면 역시 나무 정령은 맞구나.


짜식, 쓸모는 있군.


“고마워, 잘 쓸게.”


산삼이는 굉장히 뿌듯해하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마치 도움이 된 것에 흐뭇한 거 같았다.


라면 끓이면 안 주려고 했더니 이러면 안 줄 수가 없잖아. 이거 이거 고단수라니까.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난 배운 사람답게 라면수프를 먼저 넣었다. 그러고는 면을 투하했다.


산삼이가 만들어준 젓가락으로 면발을 살살 풀어주며 고르게 익혔다.


“얼마 만에 맡아보면 냄새냐.”


매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입에 침이 고일 정도였다. 산삼이 이 녀석은 아예 내 옆에 바짝 붙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달걀은 안 넣어?”


지금 라면을 먹는 게 얼마나 다행인데 이 와중에 달걀 타령이야.


“달걀이 있어야 넣지.”


“아, 그렇군. 미안, 미안.”


“근데 넌 라면에 달걀을 넣는 걸 어떻게 알아?”


“왜 몰라? 라면에는 달걀이지. 파 송송 달걀 탁이란 말도 있다.”


“그것도 알아?”


산삼이의 커다란 눈이 가늘어졌다.


“인간이 산삼이 무시한다.”


“무시하기는 정령이 라면을 알고 있다는 거 자체가 이상한 거···.”


“인간, 라면 불어. 라면은 불어 버리면 맛없다.”


“앗, 불면 안 되지.”


산삼이 녀석 말대로 어느새 알맞게 라면은 익어 있었다. 얼른 가스버너 불을 끄고는 냄비 뚜껑에 라면을 덜었다.


후후-


뜨거운 라면이 입속으로 직행했다.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꿀맛 같은 라면인가.


적당히 매콤한 맛의 인스턴트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인스턴트 만세!


내 입속으로 라면이 후루룩 들어갈 때마다 산삼이는 점점 울상을 짓고 있었다. 한 봉지 가지고 나눠 먹기에는 아쉽지만,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할 수는 없지.


크게 면발을 들어 올려 산삼이에게 내밀었다. 아무래도 손가락이 없으니, 젓가락질할 수가 없지···. 이놈 자식 손가락이 생기네.


내밀었던 젓가락을 채가더니 후루룩거리며 라면을 흡입했다. 


“이거 어느 회사야? 햄 맛이 느껴지는 걸 보면 XX라면 같기도 하고.”


“네가 그것도 알아?”


산삼이의 눈깔이 또 가늘어졌다. 


“산삼이는 모르는 게 없다. 쳇.”


삐진 척 굴더니 냄비에 남은 면발을 아무렇지 않게 떠서 제 입속으로 처넣었다. 저거 아무래도 고단수야.


결국에 난 맛만 보고 산삼이 녀석이 라면을 다 해치워 버렸다. 먹을 거 가지고 야박스럽게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아쉬운 마음에 쩝쩝거리고 있는데. 


“라면 국물에는 쌀밥을 말아야 더 맛있는데···.”


“그건 어떻게 알아?”


“인간. 삼삼이를 무시하지 말라고 했다. 산삼이는 모르는 게 없다!”


“너 솔직히 말해봐. 라면에 밥 말아 먹는 민족은 한국 사람밖에 없다고. 그걸 안다는 건 여기에 나 말고 누군가 왔었다는 거 아니야?”


“······.”


“라면에 즉석밥이라도 말아먹으면 맛있다는 거 누가 알려줬어?”


갑자기 머리통을 무언가 때리고 떨어졌다. ‘갓 지은 밥’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이득이었다.


도대체 무슨 원리인 거지. 구체적으로 원하는 걸 떠올리면서 이름을 말하면 되는 건가?


냄비를 떠올릴 때 보면 그렇지도 않은데. 차차 어떻게 해야 할지 실험해 봐야겠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산삼이는 익숙한 손길로 즉석밥을 뜯어 냄비에 넣었다. 그러고는 젓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하는 모양새를 보면 인간이랑 알고 지낸 것이 분명하단 말이야.


자기 딴에는 숨기려고 하는 걸 보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나로서는 알아야 했다. 


만약 여기에 들어온 인간이 내가 처음이 아니라면.


분명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내가 잠시 생각에 잠긴 동안 산삼이 녀석은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고 있었다. 이 자식 숟가락은 언제 만든 거야.


“야, 내 것도 좀 남겨.”


내 목소리를 듣더니 입으로 들어가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러다가는 한 입도 못 먹고 다 빼앗기게 생겨서 얼른 몸을 움직였다.


냄비 뚜껑으로 산삼이 녀석의 입을 막고서 다른 손으로는 냄비를 사수했다.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돼지 같은 녀석. 거의 다 처먹었네.”


“돼지라니! 어딜 봐서 내가 돼지야!”


냄비 뚜껑으로 방어막을 친 것이 소용없었다. 산삼이의 몸에서 뿌리가 뻗어 나와 냄비를 에워쌌다.


“넌 많이 먹었잖아. 난 얼마 못 먹었다고. 이 돼지 녀석아.”


정말 화가 난 것인지 산삼이는 포효했다. 마치 괴물 같았다.


힘 대 힘으로 냄비를 사수하던 난 결국 라면에 미친 요정한테 지고 말았다. 내가 팔에 힘을 급하게 풀어버리자, 상대방 쪽으로 냄비가 넘어졌다.


산삼이 얼굴은 라면 국물과 밥이 어우러져 몹시 지저분해졌다. 


“매, 매, 매워-!”


라면 국물이라도 눈에 들어간 건지 녀석은 맵다고 난리가 났다. 그러게, 왜 욕심을 부려. 


호수로 급하게 튀어가는 산삼이를 보면서 비웃고 있는데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머릿속에서 위험하다는 신호가 들렸다.


살려줘!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혼남의 이세계 힐링 라이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낮 12시 20분에 연재합니다. 24.09.05 66 0 -
14 14화 NEW 18시간 전 38 1 12쪽
13 13화 24.09.17 45 2 12쪽
12 12화 24.09.16 64 1 12쪽
11 11화 24.09.15 74 1 11쪽
10 10화 24.09.14 82 1 12쪽
9 9화 24.09.13 80 1 12쪽
8 8화 24.09.12 98 2 12쪽
7 7화 24.09.11 100 2 13쪽
6 6화 24.09.10 110 2 12쪽
5 5화 24.09.09 120 2 12쪽
4 4화 24.09.08 137 3 12쪽
» 3화 24.09.07 155 3 12쪽
2 2화 24.09.06 178 5 12쪽
1 1화 24.09.05 211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