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이세계 힐링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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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명
작품등록일 :
2024.09.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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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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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DUMMY

걸신들린 산삼이와 호야는 대청마루에 누워서 뒹굴다가 잠이 들었다.


몇 숟가락 먹지도 못했던 난 부엌에 들어가 라면을 끓였다. 국물에 밥까지 말아 먹고 나서야 만족감이 들었다.


이게 뭐라고 콧물이 나냐. 분명 매워서 눈에서 뭐가 흐르는 것뿐이다.


먹은 흔적을 싹 치워두고 밖으로 나왔다. 초여름의 햇살은 제법 뜨거웠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았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되짚어 보았다.


뻐꾸기시계가 7시를 가리키면 이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


그렇다면 이 집은 이세계와 연결된 통로인 셈이라는 뜻이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물건을 떠올리며 외치면 소환되는 시스템 같았다.


좀 전에 부엌에서 발견한 휴대용 가스버너와 냄비가 수상쩍었다. 만약에 이곳이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면···. 그리고 여기 있는 물건을 이세계로 불러올 수 있는 거라면?


내 가설은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지.


그건 그렇고 이게 무슨 냄새지?


쿰쿰한 냄새 때문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어디서 악취가 풍기는 건지 확인해 보니 그리 먼 곳은 아니었다.


“산삼아, 호야. 그만 일어나렴.”


코까지 드르렁거리며 골던 산삼이는 눈을 껌뻑거렸다.


“상···한···인간, 시끄럽다.”


그나마 호야는 앞다리를 쭉 펴더니 일어나는 것 같았다. 산삼이는 참 게으르고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난 산삼이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이래도 안 일어나!


에잇, 모르겠다.


산삼이를 질질 끌고서는 욕실로 향했다. 호야는 얌전하게 내 뒤를 따라 들어왔다.


탁 소리가 날 정도로 욕실 문을 잠갔다. 내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간 건 비밀이다.


샤워기를 틀었다.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나왔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산삼이의 얼굴에 사정없이 뿌려댔다.


“으아아악. 산삼이··· 어푸, 산삼···이 살려.”


물에 푹 젖은 산삼이의 몸에서 뿌리가 순식간에 뻗어 나왔다. 샤워기 헤드를 뿌리로 감아버리더니 박살이 났다.


으아아악!

아호호호오!

아푸우우우!


“이 미친X아, 그걸 으아··· 부숴 버리면··· 어떻게 해.”


“누가··· 물을 뿌···려대서는···. 상한··· 인간···. 아푸푸우!”


사방이 물줄기가 퍼지며 물난리가 났다. 산삼이는 산삼이 대로 놀라서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자라난 뿌리가 미쳐서 날뛰었다.


호야도 마찬가지였다. 털이 푹 젖어서는 욕실을 휘젓고 다녔다.


“수도꼭지···. 둘 다 가만히 좀··· 있어봐!”


눈을 뜨고 앞을 봐야 물을 잠글 수 있는데 얼굴로 날아드는 물 때문에 쉽지 않았다. 바닥을 더듬거리며 간신히 기어가 잡히는 걸 세게 비틀었다.


“으아악. 어딜 만져. 상한 인간!”


아무래도 산삼이었나보다. 어쩐지 느낌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녀석을 밀치고 다시 더듬거렸다.


어렵사리 수도꼭지를 잠그자, 미쳐 날뛰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멈추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상한 인간이 하다 하다 이제는···. 암살 시도까지···. 내가 서러워서 못 산다. 으흐윽. 흑흑.”


“아호호오오-.”


욕실에 가득했던 산삼이의 뿌리는 원래대로 줄어들었다. 난 엉망이 된 욕실을 보고는 망연자실해서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끼이잉, 낑.


축 늘어진 채 앉아 있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호야가 다가왔다.


“난 그저 깨끗하게 목욕 시켜주려 한 것뿐인데. 이게 그렇게나 잘못한 일이야?”


당황한 산삼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감정에 푹 젖어 든 나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이, 인간···. 난 그런 줄도 모르고···. 히이익.”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어째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갑자기 물밀듯이 터져버린 걸지도 모른다.


마치 지금의 샤워기 헤드처럼 박살이 난 것이 마치 나와 같이 느껴졌다.


젠장! 꼴사납게시리.


욕실에서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한참을 뛰었다. 


심장이 터져 나갈 것처럼 숨이 차오를 즘에서야 다리가 멈추고는 허리가 꺾였다.


“미친 XX!”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댔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외치고 외쳐댔다.


한참을 미친 사람처럼 굴다가 몸에 힘이 빠졌을 즘이었다. 내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놈···. 아니, 어르신이 있었다.


“니 여서 뭐 하는 기고?”


그제야 잃어버린 정신이 돌아왔다. 


“어, 어르신 그게···. 죄송합니다.”


어르신은 몇 번 혀를 끌끌 차시더니 말씀하셨다.


“젊은 놈이 힘을 내야지. 살다 보면 억울한 일도 생기고 그러는 겨. 앞 일은 어느 놈도 모르는 기다. 못 나가던 놈이 잘나가기도 하고 잘나가던 놈이 못 나가기도 하는 거여.”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애정이 담겨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디 물 속이라도 기어들어 갔다 온겨? 아주 꼴이 가관이여. 어휴. 이 꼴로 데리고 갈 수도 없고.”


어르신에게 목덜미가 잡힌 채 끌려가듯이 걸어갔다. 어르신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마을 회관이었다. 회관 안에는 다행히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이런 꼴로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큰아버지 여기는 웬일이세요?”


“남는 옷 있제?”


“옷이요? 아, 잠시만요.”


어르신은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고는 팔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가서 씻어라. 옷은 영수가 가져다줄 테니.”


“전 괜찮···.”


으악.


결국에는 머리통을 얻어맞았다.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단단히 화가 나신 목소리로 어르신은 말씀하셨다.


“그지꼴 맹키로 다니면서 뭐가 괜찮아. 잔말 말고 깨끗하게 씻어. 갈 곳이 있으니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서는 어르신이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예상한 대로 욕실이 맞았다. 


마을 회관 안에 이런 시설이 있는 줄 몰랐다. 커다란 욕조며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을 위한 시설도 있었다. 


우리나라 살기 좋아졌구나.


몸에 달라붙은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버리고 샤워기 물을 틀었다. 뜨끈한 물줄기가 금세 나왔다. 


뭘 하는지도 모르고 욕실로 들어와 물세례를 받은 아이들이 생각났다.


좀 잘해줄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내가 별이 아빠가 되려고 했으니. 별이가 일찍 떠난 걸까?


못된 생각.


머리통을 욕실 벽에 박았다.


대충 비누칠하고는 머리와 몸을 싹 씻었다. 그러는 동안 욕실 문이 살짝 열리더니 옷가지가 쑤욱 들어왔다.


세심한 성격인 모양인지 젖지 않도록 바구니에 옷이 담겨 있었다. 평범한 티셔츠와 작업복 같은 바지였다. 


속옷은 판매하는 것 같은 비닐에 든 새것이었다. 


후다닥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탈탈 털어댔다.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근육질 몸매의 청년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편히 입으세요.”


친절이 몸을 배어 있는 사람 같았다. 아까 어르신께서 ‘영수’라고 했었던 거 같은데. 마침 회관 안으로 이장님이 들어오셨다.


“영수야, 시원한 거 좀 내와라.”


“네에-.”


영수의 둔해 보이는 몸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그러는 동안 이장님은 내게 손짓하셨다.


“거기 멀뚱하게 서 있지 말고 이리로 와서 앉아라.”


커다란 상이 놓여 있는 곳을 가리키셨다. 난 그쪽으로 걸어가 어르신 맞은편에 앉았다. 


얼마 안 지나 영수 청년이 미숫가루에 얼음을 넣어서 가지고 왔다.


“잘 먹을게요.”


“네에.”


이번에도 영수는 쑥스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고 있었다. 순박해 보이는 인상이 보기 좋았다.


어르신은 미숫가루를 단숨에 들이키시고는 입가를 훔치셨다.


“아, 맛 좋다. 니도 맛이 좋제?”


오랜만에 맛보는 시원하고 고소한 맛이었다.


“네, 참으로 맛있습니다.”


“여기 마을에서 난 곡물로 만든 거여. 맛이 없을 수가 없겄제. 으하하하!”


호탕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홀짝이며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입가에 묻은 걸 닦으려는데 티슈가 불쑥 눈앞에 들어왔다.


영수 청년이 건네주길래 받아서 입가를 대충 닦았다. 


“맛있게 잘 먹었어요.”


“헤헤헤. 다행이네요.”


“해 떨어지기 전에 인나라.”


이장님의 목소리를 듣자,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여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장님을 따라 움직였다. 내 뒤를 영수 청년이 따랐다. 그의 손에는 검은 봉다리가 들려 있었다.


어디를 가는지 이장님께 묻고 싶었지만, 표정이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어르신이 가시는 길을 뒤 따랐다.


구부러진 숲길을 거닐다가 점점 가팔라졌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동안 엉망으로 살아온 탓이리라.


체력이 예전만도 못하니 칠순을 바라보는 이장님 체력만도 못했다. 헉헉거리며 따라 올라가다가 쭉 미끄러졌다.


하마터면 꼴사납게 굴러떨어질 뻔한 걸 영수 청년이 팔을 붙잡아 줘서 간신히 면은 살렸다.


내려가면 매일 운동을 해야지 하고 속으로 다짐하는데 이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뭣들 하는 겨. 얼른 올라와.”


“형님 조금만 더 가시면 되세요. 힘내십쇼.”


“어, 그, 그래요.”


영수는 가뿐하게 먼저 올라갔다. 내가 그 뒤를 따라 올라가는데 고개를 돌리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꽤 높이 올라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풍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정신 놓지 말고 어여 와.”


“네, 지금 갈게요.”


벌써 저만치 가신 이장님을 뒤따라 뛰었다. 얼마 안 가서 무덤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이장 어르신이 뒷짐을 지고 하늘을 올려다보셨다. 영수 청년은 신문을 바닥에 깔고 검은 봉다리에 싸서 온 것들을 하나둘씩 꺼냈다.


도시락통 같은 곳에 전과 반찬 과일 그리고 밥이 들어 있었다. 영수 청년이 준비를 마치자, 이장님이 말씀하셨다.


“할매 무덤이다. 인사해라.”


난 무덤 앞에서 두 번 절을 했다. 이장님이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서 주셨다. 무덤가에 소주를 조심스럽게 부었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땅만 보고 있는 사이 이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님요. 드디어  현준이가 왔어라.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소.”


내 등을 토닥이는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이 녀석이 힘든 일이 좀 많았겠소. 누님이 이해하시오. 이제라도 왔으니 실컷 보이소.”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어흐흐흐윽. 


“그동안 힘들었지. 고생 많았다. 옛날 일은 싹 다 잊어 뿔고. 새 인생 살아라. 할매도 그걸 바랄기다.”


이장님은 주저앉아 울고만 있는 천치의 등짝을 토닥이셨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가슴에 응어리진 것이 풀린 것인지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해가 조금씩 기울어가고 있었다. 


뒷짐을 지고 이장님이 먼저 나서자, 영수도 아무런 말도 없이 길을 따랐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돌아가는 길은 조용했다. 오로지 숲속에 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과 동물의 움직이는 소리 외에는 고요했다.


입구에 다다랐을 즘이었다. 이장님이 무언가 내게 내미신 것이 있었다.


그것은 열쇠였다.


“이건···.”


“할매가 너한테 꼭 집을 물려주고 싶다고 했으니. 그동안 내가 보관하고 있었다. 자, 가지고 가라. 이제 네 집이다.”


손에 들린 낡아 빠진 열쇠를 보았다. 언젠가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어린 시절 고모할머니 댁에 놀러 왔을 때 가지고 놀다가 혼이 났던 기억이 있었다.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신 적이 없던 분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혼을 내셨다.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되는 물건이라고 말씀하셨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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