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이세계 힐링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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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명
작품등록일 :
2024.09.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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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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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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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쿠우우우웅!


활짝 열린 대문은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저절로 닫혔다. 


···뻐꾹, 뻐꾹.


문이 닫히기 전 농구의 버저비터처럼 뻐꾸기시계 소리가 들렸다. 


“아호호호오오-.”


아기 늑대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산삼이의 찡얼거리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아이고 산삼이 죽네. 상한 인간 때문에 산삼이 골병 들어서 죽네.”


“이게 진짜. 머리통이나 치우고서나 말해.”


아기 늑대는 바닥에 착지할 때 혼자서 늠름하게 네 발로 디뎠다. 하지만 산삼이 녀석은 운동신경은 꽝인 모양이었다.


먼저 떨어진 산삼이는 어째선지 나를 쿠션으로 사용했다. 그 바람에 내 허리는 작살이 날 뻔했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 다만 한동안 근육통에 시달릴 것 같지만 그게 어디인가.


사실 이리 떼를 만나서 죽을 뻔한 걸 겨우 모면한 꼴이니. 이 정도야 감지덕지 아닌가.


내가 산삼이를 매몰차게 밀어버리고 몸을 일으켰다. 날이 밝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지?


뻐꾸기시계는 7시 정각이 지나 있었다. 해를 봐서는 아침인 거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니 핸드폰이 대청마루 근처에서 진동했다. 낯설지 않은 번호였다.


“니 벌써 올라간 것이냐?”


이장님 목소리였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뭐가 아니여?”


“지금 할머니 댁에 있어요.”


“아, 난 또 짐도 놓고서 사람이 없으니 올라간 줄 알았제. 언넝 와. 아침 먹어야지.”


“아, 그게···. 어르신 좀 더 둘러보고 갈게요.”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끼니를 잘 챙겨야 하는 법인디. 그려.”


내가 대답도 마치기도 전에 통화가 끊어졌다. 이장님과 통화를 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이곳이 어디인지 헷갈렸을 듯싶었다.


괜스레 마음을 졸이며 대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야?”


“아휴, 깜짝이야. 예고 좀 하고 끼어들어라.”


“칫. 나만 미워해.”


산삼이는 입으로는 툴툴거려도 대문 밖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산삼이도 여기는 처음인 건가?


“인간 세상은 처음이야?”


산삼이의 커다란 눈동자가 더 커졌다. 이 녀석 얼굴에 티가 나는구나. 덕분에 나는 알기 쉬워서 좋지만.


“똑똑한 산삼이는 모르는 게 없다. 인간 세상 따위 별거 아니다.”


“누가 뭐래. 그래도 다시 돌아와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이리가 우리를 잡아먹었을지도 모르지.”


꼬리를 흔들며 이곳저곳 쑤시고 돌아다니던 아기 늑대는 흥미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어느새 대청마루 위에 올라와 몸을 웅크리고는 누워 있었다.


산삼이는 통통거리며 아직도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기력도 좋아.


난 갑자기 허기가 져서 부엌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처음 왔을 때랑 변함이 없었다.


뭘 먹을지 둘러보다가 익숙한 걸 발견했다.


“이거 휴대용 가스버너 아냐? 여기 스테인리스 냄비도 그렇고. 그냥 똑같은 건가?”


설마? 아니겠지. 무언가 머릿속을 스치듯 떠오른 것이 있었다. 여기 있는 물건을 소환할 수 있다던가···.


에잇. 그럴 리가 없지. 그건 너무 판타지 스럽잖아.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데 안으로 들어온 산삼이를 보는 순간.


방금까지 이세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세계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면 믿을 사람이 있으려나. 아마 미친 사람 취급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단 배부터 채우고 보자. 이제는 딸린 식구가 있다 보니 여러모로 신경을 쓸 게 많았다.


라면은 이미 먹었으니 뭘 해 먹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고모할머니께서 동물을 키우신 건지. 쌀이 담겨 있는 곳 근처에 강아지 사료와 간식이 있었다. 혹시 몰라서 유통기한도 확인하니 넉넉했다.


깨끗한 그릇에 사료를 담고 시원한 물을 가지고 대청마루로 향했다. 누워있던 아기 늑대가 나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꼬리를 흔들어댔다.


마루 위에 사료와 물그릇을 올려주었다. 녀석이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아댔다. 의심도 많네.


아니면 입 맛에 안 맞는 건가?


내가 사료를 몇 개 집어서 입가에 들이밀었다. 그러자 마지못해서 먹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물을 먹더니 얌전하게 자리에 누웠다. 


어째 반응이 영 시큰둥하단 말이야.


“뭘 해줘야 잘 먹을까나?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없구나. 뭐가 좋으려나.”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건지. 아기 늑대는 눈을 껌뻑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들었다. 


그러고는 하울링을 하듯 소리를 냈다.


아호호호호오!


“호오? 호야?! 호야 어떠니?”


“앙! 앙앙!”


좋다는 건가? 


“호야가 마음에 들어? 그러면 두 번만 짖어볼래?”


“앙앙!”


이럴 수가. 이 녀석 혹시 천재 아니야?


“이제부터 네 이름은 호야. 호야다. 반갑다, 호야.”


호야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으며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러자 기분이 좋은지 아예 드러누웠다. 부드러운 배를 한참 쓸어주며 힐링하고 있는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언제 나타난 건지. 분명 산삼이겠지. 역시나 녀석은 팔짱을 낀 채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거 확 먹어버릴까보다.


꼬르르륵.


배도 고픈데 정말 먹을까. 눈치는 빠른 녀석이 시야에서 도망을 쳤다.


괜히 입술에 침을 발랐다.


비상식량은 아껴두는 법이지.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일단은 냉장고를 열어봐야지 했다가 옆에 김치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고모할머니 손맛이 좋으셨는데. 


김치냉장고에는 잘 익은 김치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일단 배추김치를 꺼냈다. 옆에서 산삼이가 유심히 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건 김치냉장고라고 하는 거다.”


“김치? 산삼이 김치 좋아한다. 히히힛.”


“김치도 먹어봤어?”


산삼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무 요정이 김치를 알고 있는 게 신기해서 물어본 것뿐인데. 


“뭐, 라면도 먹어본 녀석이니. 김치쯤이야, 당연히 먹어봤겠지.”


슬쩍 산삼이의 표정을 살폈더니. 가슴을 내밀고는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코웃음을 날리고는 김치 뚜껑을 열었다. 숙성된 김치의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그래, 이거지!


먹지 않아도 맛있어 보이는 색이었다. 


도마를 물로 헹구고는 손을 깨끗하게 씻었다. 그러고는 김치를 도마 위에 조심스레 올려 놓았다. 그러고는 얼른 김치통 뚜껑을 닫아 김치냉장고에 넣었다. 


식칼로 김치를 반은 먹기 좋게 썰고 반은 잘게 썰었다. 다 썬 김치를 옮겨 담으려고 하는데 산삼이의 손이 쭉 다가왔다.


내가 얼른 산삼이의 손을 쳐냈다.


“어딜 어른이 먹기도 전에 먹어.”


그러고는 내 입속으로 김치를 넣었다. 


매콤하면서도 약간은 새콤한 맛이 좋았다. 산삼이가 울상을 짓더니 입술을 삐죽였다. 눈치껏 하나를 입에 넣어줬다.


“매운 것도 잘 먹네.”


아그작 씹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흥얼거리듯 말을 내뱉었다.


“산삼이는 김치를 조아해-. 조아해애-.”


“그래?”


머리에 달린 줄기가 춤추듯이 요동쳤다. 괜스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자, 산삼아, 이제는 나가서 놀아라. 여기는 어른의 영역이니까.”


“쳇. 상한 인간 같으니.”


녀석은 금방 토라진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내 손은 어느새 분주해졌다.


작은 냄비를 꺼내 달걀을 삶았다. 입이 짧은 호야에게 이거라도 먹일 심산이었다. 


주방을 뒤져 프라이팬을 꺼내고는 인덕션을 켰다. 잘게 썬 김치를 프라이팬에 넣고는 들기름 한 숟가락을 넣었다.


신맛을 잡아주기 위해 설탕을 약간 넣어주고는 고춧가루가 든 통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내 입맛은 청양고추까지 넣어주면 좋겠지만 혹시 모르니 생략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간장을 한 숟가락 넣고 즉석밥을 꺼냈다.


‘갓 지은 밥’ 요거는 진짜 살아가는데 필수 아이템이다. 전자레인지에 2개를 돌려놓고는 김치를 잘 볶아주었다. 매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어흑, 군침이 돈다.


삐익 삐익. 


전자레인지가 울리자, 난 얼른 즉석밥을 꺼냈다. 일부만 뜯었던 겉면을 제거하고 프라이팬에 넣어 마구 비벼 주었다. 


김치와 어울러진 밥은 어느새 잘 볶아졌다.


그릇에 잘 담아놓고는 약간 작은 프라이팬을 꺼냈다.


이왕 하는 거 맛있게 먹자.


예열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걀을 깨트렸다. 김치볶음밥 위에 달걀프라이는 못 참지. 


금세 달걀흰자가 익어가고 노른자가 다 익기 전에 인덕션을 껐다. 달걀프라이를 조심스럽게 김치볶음밥 위에 올렸다.  


수저를 챙기고 컵에 물을 담았다. 그리고 잘 삶은 달걀도 챙겼다.


상을 들고 밖으로 나가니 녀석들은 저희끼리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난 들고 있던 상을 대청마루에 놓고는 녀석들을 향해 소리쳤다.


“밥 먹자.”


어찌나 신나게 놀았는지 둘 다 먼지투성이였다. 화장실에서 수건에 물을 묻혀왔다. 그러고는 산삼이와 호야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었다.


산삼이 녀석은 때가 밀려 나온다. 설마 껍데기가 벗겨지는 건 아니겠지?


평소에 얼마나 안 씻으면 내가 썩은 표정을 지었더니 산삼이 녀석이 귀신같이 알아챘다.


“산삼이는 깨끗하다. 상한 인간과는 차원이 다르지.”


“어련하시겠어요.”


비꼬듯이 한마디를 내뱉어주고는 얼른 산삼이의 손에 숟가락을 쥐여줬다. 그리고 김치볶음밥을 주려고 하는데.


산삼이 녀석은 이번에도 그릇을 집어 들더니 뒤로 돌아서 마구 퍼먹었다.


내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정말 못 말리는 녀석인데 맛있어서 머리에 달린 줄기가 요동을 치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삶은 달걀을 잘 까서는 호야에게 내밀었다. 이번에도 냄새를 맡더니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이번에도 싫다고 할까 싶어 내심 조마조마했는데 잘 먹어주니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이래서 부모는 자식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꼬르륵.


비록 내 배는 고팠지만, 마음속 배는 부르구나.


크흠. 


내가 만든 김치볶음밥을 크게 떠서 입속에 집어넣었다.


크흐, 이 맛이지.


달걀노른자를 터트려 잘 비벼서 또 먹었다. 이번에는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 게 느껴졌다.


희한하네. 아무리 김치가 맛있다고 해도 내가 이 정도로 음식을 잘하는 편은 아닌데.


뭐, 맛만 있으면 되지. 무슨 걱정이야.


“앙, 앙앙앙!”


“응? 호야, 달걀 다 먹었어요.”


호야의 눈이 상 위에 올려진 김치볶음밥으로 향했다. 설마 아니겠지. 


그때 산삼이도 다 먹은 것인지 뒤로 돌아서 내 김치볶음밥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입가에는 밥풀이 묻은 채였다.


“야, 이건 내 거···야.”


그것은 순식간이었다. 


호야가 상 위로 몸을 날리고 산삼이의 팔이 쭈욱 길어졌다. 


물론 승자는 호야였다. 녀석은 김치볶음밥에 고개를 처박고는 마구 먹어댔다. 산삼이가 끼어들 틈도 조금도 없을 정도였다.


내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어벙하게 이들을 지켜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안돼! 호야, 안돼!”


하지만 이미 늦어버리고 말았다. 김치볶음밥은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흔적도 없이.


호야는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헥헥거렸다. 녀석 매웠구나. 맛은 있었니?


산삼이는 화가 나서 자리에서 통통 뛰어다니고 뭐라 뭐라 지껄이긴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호야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물이 담긴 그릇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난 몇 숟가락 먹지도 못했다. 뭔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내 김치볶음밥!”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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