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마스터. 일어나실 시간이야.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새글

mot
작품등록일 :
2024.09.08 13:10
최근연재일 :
2024.09.19 09:02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93
추천수 :
0
글자수 :
115,012

작성
24.09.10 15:00
조회
10
추천
0
글자
11쪽

8. 메딕은 언제나 옆에 있었다

DUMMY

위험하다.


진짜 위험하다.


온 몸의 털이 거꾸로 서는 것만 같았다.


차갑게 등골에 달라붙는 한기에 몸을 떤다.


쿵쾅쿵쾅. 망가진 시계태엽처럼 심장이 날뛴다.


다리에서 힘이 빠진다.


그러나 앞으로 튀어나가는 관성으로 나아간다.


‘뭐야? 뭐야? 뭐야? 저건 뭐냐고!’


괴물의 붉은 안광이 뇌리에 스친다.


길게 늘어진 침.


악어처럼 촘촘히 박힌 이빨.


융기한 근육 위로 맥동하는 힘줄.


모든 상식이 괴물을 부정했다.


네가 알고 생물체가 아니라고. 그렇게 고하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그것이 달려와 목을 물어뜯을 것만 같아, 앞을 향해 무작정 뛰었다.


“어?”


갑작스럽게 찾아 온 부유감.


그제야 오직 앞만 보이던 시야에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 돌아 온 것일까?


나는 이미 산 정상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알아챘다.


“읏, 으아아앗!”


산 정상을 이미 지났노라고.


정상을 지나 비탈길 너머 허공까지 뛰어 오른 것이었다.


이미 모든 것은 늦었다.


팔다리를 허우적거리지만 쓸모없는 반항이었다.


뱃 속에 중력의 가벼운 압박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낙하했다.


몇 초의 낙하 후, 땅에 발이 닿았을 때 대나무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마치 고전압이 발바닥부터 전신으로 퍼지듯 고통이 밀려닥쳤다.


비명조차 내뱉지 못하고 그대로 비탈에서 굴러 떨어진다.


빙글뱅글 쳇바퀴처럼 눈 앞이 돌았다.


콰득.


아프다.


콰드득!


머리를 감싸고 있던 팔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부딪친 감각이 들었다.


쿵! 쿠득!


아프다. 아프다.


등도, 팔도, 다리도, 허리도 전신이 아프다.


구르고 굴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분간이 되질 않는다.


다만, 회전하던 세계가 점차 완만해져 가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드디어 세상이 멈추었다.


푸르른 창공에 구름이 흘러간다.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며 그다지 아프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알고 있던 바이다.


마녀 비르기스의 시련에서 불타 죽을 때 경험하지 않았는가.


아픈 것이 낫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비된 것이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카학···.”


울컥울컥 비릿하고 걸쭉한 것이 목에서 역류해 나온다.


뱉을 힘도 생기지 않아, 숨을 쉬는 요량으로 입 밖으로 날숨과 함께 밀어냈다.


쇠의 맛과 냄새.


나는 한탄하면 좋을까?


왜 조심성 없이 행동했느냐고.


이 상황이 억울하고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에게 반박하고 싶다.


조심성 있게 행동했다면 이세계에 전이한 그 날.


넬슨을 발견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심성 있게, 계획성 있게, 안전하게.


중요한 요소이지만···.


나는 생각했다.


부주의하게 말을 걸고 화살에 미간이 꿰뚫리거나,


시련 클리어를 위해 무작정 실험에 참여하고 불타버리거나,


부주의하고 별 생각 없이 호기심에 사로잡혀도.


할 때는 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엔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 생각을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



바람을 타고 다가 온 행복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언제의 기억일까?


내가 어렸던 시절이란 것만큼은 분명했다.


다만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산의 허리 부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봉긋 솟은 언덕들.


그 언덕의 앞에는 네모난 돌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서 있는 네모난 돌.


누워있는 네모난 돌.


돌 위에 꽃이나 작은 항아리가 올려져 있다.


그리고 나의 눈 앞 누워 있는 네모난 돌.


무엇인가 돌에는 글씨가 써져 있었지만 흐릿해서 볼 수 없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고사리같이 작은 손으로 찰싹찰싹 두드리자, 나를 껴안는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뒤를 돌아 엄마를···.


‘엄마?’


아니다.


분명 내 기억 속에···.


태양의 역광에 드리워진 그림자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황금색 머리칼과 어린 시절 나의 손보다 큰, 그러나 기억 속 엄마보다 작은 손은 왠지 그리운 기분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그녀는 나의 머리를 상냥히 어루만져 주었다.


안심감이 온 몸에 퍼졌다.


행복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그 행복한 향기에 눈을 감았다.



——————◇——————



“커흑···.”


몸 전체가 송곳에 쑤셔진 것처럼 통증이 달렸다.


호흡은 거칠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렀다.


서둘러 땅을 짚고 일어서려 손을 들어 올리자, 팔꿈치 앞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덜렁거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이해가 미치질 않았다.


팔이 왜 반대 방향으로 꺾여 있는 것인지.


왜 힘이 들어가질 않는 것인지.


나는 반대쪽 팔을 들어 올려 비교해 본 뒤 이해하고 말았다.


팔이 부러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살아오면서 손가락 한 번 부러져본 적 없었기에 뼈가 부러지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 모르고 있었다.


꽤 시간이 흐른 듯, 분명하게 반대쪽 팔보다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꺽여버린 팔은 보는 것만으로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아 보이지 않도록 시선을 돌렸다.


빨대를 이빨로 누르고 바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호흡소리가 거칠다.


짧게 끊어가며 호흡한다.


빨리 안전한 장소에서 몸을 치료하고 싶다.


그러나 이대로 샘까지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부목 같은 걸 찾아야 하지 않을까싶어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황량한 적갈색 땅과 융기한 바위들만이 즐비하게 있었다.


아무래도 초목이 우거졌던 곳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굴러 떨어졌으리라.


목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갈증이 느껴졌다.


입을 헹구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싶다.


허리춤을 확인해 보았지만 코코넛 물통은 없었다.


주변 그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이건 답도 없이 막혔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때 번쩍하고 떠올랐다.


왜인지 아버지의 무덤이 떠올랐다.


무덤 앞에 놓인 비석.


다른 사람들의 무덤 앞에 세워진 비석만큼 크고 당당히 서 있진 않았지만, 초라하게 바닥에 놓여 있던 아버지의 비석을 어머니는 성묘 때면 정성스럽게 닦곤 하셨다.


왜 갑자기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이 기억이 구사일생이 되었다.


나는 눈을 감고 빌었다.


‘석판 소환’


쿵.


갑자기 떠오른 비석의 기억처럼 석판도 갑작스럽게 세상에 나타났다.


나른하고 춥다.


안 좋은 징조이리라.


서둘러 찾아내야 했다.


분명 있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진 않았다.


다만 아까워서 외면했고, 그 이후로 쳐다보지도 않았을 뿐.


나는 부러지지 않은 팔로 힘껏 땅을 밀쳐내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머리를 들어 바로 앞에 소환된 석판을 향해 있는 힘껏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기··· 동······>.”


석판 위로 빛나는 선으로 그려진 메뉴들.


[샵] [인벤토리] [서번트 소환]


삐걱삐걱 울리는 고통을 씹어 죽이고 팔을 뻗어 [샵]을 누른다.


<저품질 침구류> 15,000 크리스탈 <교양서 초급> 10 크리스탈 <검술 초급> 구매 불가······.


찾는 것이 나올 때까지 다음 버튼을 누른다.


계속 넘긴다.


그리고 다음을 누르기 전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손가락이 멈추었다.


[치유의 물약<하급> 3,000 크리스탈]


이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아이템.


떨리는 손가락으로 물약 항목을 클릭한다.


[치유의 물약<하급>을 3,000 크리스탈에 구매하시겠습니까? Y / N]


나는 주저 없이 Y를 눌렀다.


[해당 구매하신 물품은 인벤토리에 수납되었습니다]


나는 인벤토리 열어 물약을 소환했다.


손바닥 위에 소환된 막대형 유리 용기 안에는 빨간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썩 맛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물약을 쥐고 입까지 옮겨 입구를 막고 있는 코르크를 이빨로 뽑아냈다.


곧바로 물약을 들이켰다.


강한 쓴 맛과 떫은 맛.


미간을 모으는 맛이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지금은 이 방법이 부디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키길 빌 뿐.


그리고 나의 소망은 긍정의 신호로 되돌아왔다.


[축하합니다. <회복 물약으로 치료해보자>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미약하게 <재생력 상승>이 부여됩니다.]


분명···.


이전에 한 번 본 적 있다.


서번트 소환 당시 <10연차 10회>를 달성해 업적을 완료했다는 메시지가 나온 적이 있었다.


나는 드디어 얻은 것이다.


신체 능력을 올릴 수단을.


그러나 기뻐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추후에 능력을 검토하기로 기약한 채, 나는 마신 물약과 증가한 재생력 상승이 부디 생명줄이 되어 좋은 결과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



물약을 마신 후, 고통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우드득.


여기저기 부러진 뼈가 움직이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약 반각의 시간동안 나는 그저 누워서 눈을 감고 기다렸다.


어느새 숨은 편하게 내쉬어지고, 부러졌던 팔은 감각이 생생히 느껴져 손가락 하나하나 제대로 잘 움직였다.


나는 슬슬 눈을 떴다.


“하아아···. 진짜 죽을 뻔 했다.”


진짜 이번엔 위험했다.


통상 시즌 2호의 죽을 위기.


아니, 한 번은 이세계에 전생 당할 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이번엔 죽을 위기였으니 통상 시즌 1호 죽을 위기이다.


죽음 관련 체험은 통상 시즌 4호째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세어나왔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까지 손가락 한 번 부러져 본 적 없던 사람이.


단지 2주도 지나지 않아 이렇게나 죽음에 가까이 있던 것이다.


“제정신으로 살아가긴 글렀네.”


왠지 사선을 넘어 살아남았다는 그 달성감에 피식거리던 웃음은 커져갔다.


불합리하지 않은가?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건가.


매번, 매번 왜 죽음의 구렁텅이로 떨어져 가는 건가.


나는 반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하하하하! 아르테! 도대체 뭐가 문제야?! 어째서 날 이세계에 부른 거야?! 던전마스터라면서 마스터다운 건 하나도 없잖아! 그 어느 게임도 듀토리얼이 이따위면 똥망겜이라고 누구라도 욕한다고!”


사실 모른다.


아르테가 나의 상황을 계획했는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결과에 의한 것인지는.


그런 것에 깊게 사색해 본 적도 없고, 철학자처럼 이것저것 해답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나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반골 기질이 크게 꿈틀 거렸다.


나의 근성을 얕잡아 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려운 건 몰라. 일단은 하던 대로, 서번트 소환부터 할 거니까! 두고 보라고! 네가 말한 것처럼 귀여운 아이들과 하렘을 쌓고 하하후후하면서 절대 행복해질 거니까!”


절대로 아르테가 눈살을 찌푸릴 만큼 제대로 살아볼 테니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던전마스터. 일어나실 시간이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20. 그대의 희생은 숭고했느니라 NEW 16시간 전 1 0 12쪽
20 19. 고요한 평화는 비탄의 외침에 깨진다 24.09.17 2 0 14쪽
19 18. 마스터, 메이드는 힘든 일이야 24.09.17 4 0 12쪽
18 17. 의심과 오해의 해소는 어렵다 24.09.16 7 0 12쪽
17 16. 따스한 봄볕에 황혼은 춤춘다 24.09.15 7 0 12쪽
16 15. 잠자는 숲속의 메이드x2 24.09.14 6 0 12쪽
15 14. 공격적인 입사 면접에 대하여 24.09.13 10 0 13쪽
14 13. 어미새 또한 아기새였다 24.09.13 11 0 12쪽
13 12. 후회에서 비롯된 각오 24.09.12 11 0 11쪽
12 11. 세번째 맛. 공(空)의 맛 24.09.12 9 0 13쪽
11 10. 파멸의 가챠는 심연으로 향한다 24.09.11 8 0 12쪽
10 9. 진화하는 능력, 퇴화하는 지능 24.09.11 8 0 12쪽
» 8. 메딕은 언제나 옆에 있었다 24.09.10 11 0 11쪽
8 7. 고도의 고고한 고고학자 24.09.10 10 0 14쪽
7 6. 두 번째. 고통과 슬픔의 맛 24.09.09 11 0 12쪽
6 5. 첫 가챠는 보라색맛이 났어 24.09.09 10 0 13쪽
5 4. 알고 있는가? 석판은 도구다 24.09.09 9 0 11쪽
4 3. 이세계에 유기당해 버렸다 24.09.09 11 0 13쪽
3 2. 안녕히 지구, 어서와 이세계 24.09.08 13 0 12쪽
2 1. 투자 제안은 사기일 수 있다 24.09.08 14 0 12쪽
1 空. 과거의 기억과 라비린스 24.09.08 21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