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 어사 : 물고양이의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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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한톳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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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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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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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강산도 변해버린 세월

DUMMY

#10년 후.

몽란의 시점.


오래전 일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10년 전의 무능력자.


'철이 없었지.'


그 당시의 나는 절박한 바보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때의 코찔찔이는 어느새 다 컸단 말이다.

나는 김새반의 뒤를 이은 수석 제자.

[B-232 타격부대 소속 허몽란 차사.]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순발력과 마법으로 모두의 관심을 사로잡는···.


"그랬어야 했는데···."


나에게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나는 10년째 능력이 없다.

나에게 맞는 기록마도가 없었다.

강산도 변할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단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록마도가 나를 생리적으로 거부한다.


“내가 무능력자라니.”


10년 전 전쟁에서 얻은 고질병 때문인 것 같은데.

영성을 섬기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

어쩐지, 기록마도들이 나를 개눈깔로 야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처음에는 그냥 경계하는 줄 알았는데, 그 자식들은 그냥 내가 싫은 거였다.

그들은 자꾸만 나를 거부한다.


내 계획은 분명 이게 아니었단 말이지.

각종 마력 범죄 현장에 뛰어드는 마법 요원.

분명 마법을 살짝 곁들여야 하는데, 나는 그게 없다.

몽상 연합 내에서 영성술을 쓰지 못하는 영성술사들의 입지는 상당히 어중간했다.

.

.

.

‘김치 없는 김치전.’

‘된장 없는 된장국.’

‘비리 없는 정치판.’

‘소금 못 쓰는 심청이.’

‘몽룡이 없는 춘향이.’

.

.

.

대충 이런 느낌이다.

무능력자는 이도 저도 아니라서 행정업무나 보라고 행정 부서에 던져 놓는 일이 대다수였다.


몽상 연합이 사회주의 체제였다고 가정했을 때, 연합을 좀먹을 불순분자 잉여 인간 중 하나가 바로 나다.

어디다 쓸 데도 없는데 꼬박꼬박 월급을 줘야 하는 공주님인 셈이지.


"어휴···. 할머니 인맥 아니었으면 바로 퇴출이었겠지···?"


나는 다행히 할머니의 보호 덕분에 내쫓기진 않았다.

'망나니'라는 칭호가 붙은 김새반 차사와는 다르게, 그녀는 조직 내에서도 평판 좋은 노장이기 때문이다.

한국 연합의 초대 챔피언을 누르고 30년가량을 정상에 홀로 선 그녀.

이제는 은퇴했는데 아직도 그녀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터벅-

오늘은 그런 할머니의 부름으로 도서관에 가는 길이다.

내쫓기진 않은 대신, 다른 귀찮은 일을 시키시겠지.


“갑자기 부른 이유가 뭐임?”


"김새반이가 또 물고양이 문제로 상경을 했단다. 너가 할 일이 생겼어."


바로 어제였다.

김새반 그 자식이 서울로 올라갔다는 통보를 받았다.

10년 전 쌓인 업보를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녀석.

그 녀석은 오늘도 물고양이 생포를 위해 올라갔단다.


“챔피언이었던 녀석이 이제는 샐러리맨이 다 됐네.”


그런데 그 자식, 올라가면서 나에게 또 임무를 맡긴 모양이다.

하나뿐인 제자에게 행정 잡일만 시키는 녀석.

아무리 능력이 없는 무능력자지만 이건 너무 부당한···.

처우는 아니지.

나는 월급 루팡이니까.

이게 그나마 합당한 업무일 테니까.


“피해 상담 업무라··.”

이번 업무는 아백교에게 피해 입은 사람의 후속 조치였다.

흑영술사의 집단으로 이루어진 테러 단체의 악행.

겉만 종교일 뿐.

속은 흑마법사의 사교회에 불과하다.


10년 전의 악명과는 다르게 이제는 이빨 다 빠진 들개 새끼들인데.

아직도 일부 잔챙이가 살아남아서 소그룹 단위의 포교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아백교]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을 마법으로 풀려 하면 그들이 된다.

영성술의 힘을 사람 망치는 데 쓰는 놈들이라.

솔직히 상종도 하기 싫었다.


“이다음은 말 안 해도 알지? 그의 업무를 니가 대신···."


“김새반더러 하라 그래. 난 바빠유.”

본능적으로 회피 기질이 발동하여 시선을 피했다.

나같이 유능한 인재가 행정 나부랭이가 하는 업무를 도맡아 해야 한다니.

수지타산에 안 맞는 느낌이 들었다.


“이 귀찮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몽란이 너뿐이야. 너만 기록마도가 없는 병신 반푼이니까.”

정 여사는 책을 덮고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따분한 점심 공기를 뒤섞는다.


“뭐요? 나도 바쁘다니까. 또 언제 아백교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몽란은 눈살을 찌푸리며 정 여사를 흘겨보았다.

그녀 특유의 앙칼진 눈동자는 예의도 없이 상급자의 얼굴을 향했다.

몇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예절은 없었다.


“그 말만 1000번 넘게 우려먹는군. 넌 도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냐.”


“양심적 병역 거부 같은 거.”


“영성술도 못 쓰는데, 밥만 축내고, 이 고얀놈아."


"미운 오리 새끼는 원래 유년기 때 빛을 발하지 못하는 법이야."


"10년째! 그것도 1000넘게! 날마다 미운 오리 새끼 타령이야! 그냥 빨리 행정 부서로 꺼져 버려!”


“헤헤~. 불쌍해서 못 쫓아내지~.”


촤르륵-

정 여사의 품에서부터 강렬한 종이 마찰음이 들려왔다.

그녀가 품고 있던 펜던트가 술사의 부름에 응한 것이었다.


술자에 부름에 응한 마도.

술자의 영성과 공명하고 그 공명은 표상이 된다.

이윽고 표상이 현실에 작용한다면, 그것이 '영성술'이었다.


후우웅-

그녀의 주먹은 태산처럼 커졌다.

정 여사가 가볍게 힘을 주며 몽란을 압박했다.

이내 몽란을 현관문 앞까지 밀어뜨린다.


정 여사가 가슴에 품고 있던 펜던트가 밝게 빛났다.

그녀가 기록마도의 영성술을 발휘한 것이었다.

펜던트 속에는 기록마도 페이지의 일부가 붙어 있을 터.

몸집을 배로 부풀리는 거인화 마법.

정 여사는 [마고할미] 신화의 계승자였다.


“치사하게 마법을? 가련한 전쟁고아한테···!”


명령을 거부할 용기가 사라진 몽란.

상당히 늦게 체념하고 짐을 챙겼다.

더 질척거리면 저 거대한 손길에 짓눌려 오리 방석이 되고 말 거다.

그 전에 도망치는 거였다.


끼익-

몽란은 김새반을 대신하여 검은 제복을 입고 정 여사 자택의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그녀가 괜히 힘 풀린 눈으로 정 여사를 바라보았다.

약간의 거부감과 귀찮음이 투영된 듯한 눈빛.

상당히 예의 바르지 못한 행동이었다.


"눈깔에 힘 줘라. 뒤지게 패는 수가 있어."


정 여사는 약에 취한 듯한 몽란의 눈매를 흘끗 보더니 강한 경고를 남긴다.

이에 몽란은 눈살을 찌푸리며 정 여사를 흘겨보았다.

확실히 힘이 들어가긴 했으나 여전히 아니꼬운 행동거지.

개폐급 병사 특유의 앙칼진 눈동자는 예의도 없이 늙은 상급자의 얼굴을 향한다.


“다녀오겠습니다···. 아아아···. 아아아아아악~~!!”


“뭘 다녀와. 일 끝나면 집으로 도로 기어들어 가. 피해자는 지금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하니, 정체 들키지 말고 신중하게 행동하렴.”


덜컥-

현관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굳게 잠겼다.

몽란은 정 여사님 집 대문을 나섰다.

복고풍의 담벼락에는 [타격부대 B-232동]이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있다.

몽란이 지나치자, 간판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정미자’라는 문패가 나타났다.

결계 마법이 정상 작동 중이라는 증거였다.


스윽-

몽란이 골목 모퉁이에 설치된 볼록거울을 바라보았다.

현재 입고 있는 흰색 후드티 계열의 일상복.

그것은 거울 안에서 검은 제복의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있었다.

제복의 변장 마법도 잘 작동하고 있는 모양이다.

앞뒤로 돌아가며 모양 빠지는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확인한 뒤, 만족스럽게 골목을 나섰다.


흠흠~.

몽란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꼴에 포부만 큰 미운 오리 새끼.

그게 10년 후의 몽란의 모습이었다.


“오. 거울이 이쁘네.”


거울이 이쁘다는 소리를 거리낌 없이 중얼거린다.

그녀는 자신감 하나 만큼은 넘쳤다.

푸릇푸릇한 무능력자 스파이는 오늘도 열정적으로 몽상 어사의 하루를 시작했다.

사뿐사뿐 걷는 모습을 얼핏 보면 그녀도 도시 미인처럼 보였다.

[허리춤에 숨겨진 와이어로프와 권총만 없었다면 말이다.]


#

오늘 들어온 임무는 사이비 폭동 피해자의 후속 조치.

그의 신상을 조사하고 상담에 들어가는 상담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로 했다.

오늘은 또 어떤 사람이 휘말렸을까.

이런 업무는 익숙하다.

피해자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부 내 과거를 보는 것 같단 말이지.


덜컥-

사설 도서관을 빠져나와 쭉 걸으면 나오는 골목 카페.

나는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피해자를 기다리며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했다.


"음?"

또 주변의 시선이 느껴진다.

나도 이런 시선이 싫다.

하지만 타고난 팔방미인의 운명이란 가혹한 법.


“저 여자 봤어? 리필 설탕을 6봉지나 쌔볐어···.”


“봤어. 거지인가 봐···. 존나 신기하다.”


저 민간인은 내 알뜰살뜰하고 경제적인 면모에 매료된 모양이다.

자신의 여자친구와 비교되었는지, 상당히 질투하는 모습.

명백한 하수다.

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이것은 [공공재 로테이션 활성화]라는 것이다.

무능력자에게 떨어지는 월급은 턱 없이 적으니까 별 수 있을까.

가뜩이나 요즘은 장비 점검 시기와 겹쳐 돈 나갈 일도 많아졌단 말이다.


띠링-

그때였다.

품위 있게 카푸치노를 기다리던 나에게 다가온 한 명의 여자.

분명 오늘 상담 예약이 잡혀 있던 흑영 세뇌의 '간접 피해자'일 거다.


또각-


또각-


“저기···. 허몽란 상담관님?”

그녀가 쭈뼛쭈뼛 서서 눈치를 보다 말고 내게 말을 걸었다.


“아, 오셨네요.”


“상담관님은 상당히··· 젊으시네요. 저보다도···.”


"아 예, 엘리트에게 조기 교육은 상식이죠. 그것보다 이름이 어떻게 되실련지?"


"저 이현주입니다."


“현주 언니, 어서 앉아요.”

물론 나는 타격부대지만, 행정 부서의 대본을 철저하게 외운 몸.

이런 피해자 상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게 바로 반전 매력.

외유내강의 표본이란 것이다.


#10분 후.


“음? 아백교의 일원이 본인 연인이었다고요?!”


“네. 연인···이었죠. 근데 이젠 아니야. 이젠···.”

치가 떨리는 듯한 피해자의 모습.

그녀는 가해자가 되어버린 ‘전’ 연인에게 커다란 한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상대를 죽이고 싶을 정도의 한을 말이다.


“한 가지 묻죠.”


“네. 얼마든지.”


“그 연인이라는 남자 말입니다. 혹시, 마법을···. 썼습니까?”


“마, 마법이요? 그게 무슨···.”


현주라는 이름의 젊은 처자는 나보다 여섯 살 정도 많은 언니였다.

서울살이에 지쳐 B-232에 내려왔다는 커플.

그녀와 미래를 기약하고 함께 내려온 남자가 사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백교단의 손을 잡은 것이었다.

남자는 아직 마법의 세계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얇게 세뇌된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안전한 것은 아니지.

언제 아백교단 흑영술사로 전직해서 우리 연합을 위험에 빠뜨릴 지 모를 일이니까.

경계할 이유는 충분했다.


이런 경우는 가끔 있다.

변별력이 부족한 앳된 청년의 경우, 간혹가다 이교도의 현혹에 이끌려 납치당하다시피 딸려 오는 경우가 말이다.

아백교의 일원이 되거나.

흑영 마법의 재물로 던져지거나.

오염체가 되거나.

혹은, 몽상 연합에 의해 제때 구출되거나.

넷 중 하나일 것이다.


"휴. 주변 사람들만 낭패지. 가족은 무슨 죄냐."


나는 한숨 쉬며 피해 여성을 옆집으로 들였다.

원래는 비어 있던 곳인데 임시로 들인 거다.

아. 내가 임무 땡땡이 칠 때 쓰던 비밀 기지도 이제 안녕이구나.

얼마 안 가서 저기로 이사 가려고 했는데 말이다.


“피해자 보호는 제발 행정 부서로 넘기란 말이야. 돈 쓸 줄 모르는 할망구 같으니.”

.

.

.

#한 편


B-232동에서 원래 이현주 양의 상담을 맡기로 했던 김새반.

그는 전국에서 선출된 다수의 몽상 어사들의 집회에 참여했다.

전쟁이 끝나고, 10년 만의 이례적인 소집이었다.


“이 짓거리도 못 해 먹겠군.”


김새반이 담배를 물고 중얼거렸다.

그는 다 태운 담배꽁초를 수거함에 던졌다.

이내 구령대를 바라보았다.

구령대에는 10년이 지나도 기운 넘치는 신 사령관이 서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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