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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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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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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변의 시[전투]꼬마, 도살자, 그 여인..

DUMMY

무리의 선두,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중년인을 보며 중얼댄 명진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외눈을 번들거리며 사선으로 그어 올린 우 장검이 중년인의 몸통을 가를 때, 나란히 달려오던 청년의 일격을 슬쩍 흘리고 목에 대검을 틀어박았다.


‘엽인.’


그는 우후죽순으로 몰려드는 시너를 보며 손잡이를 틀었지만, 대검을 뽑지는 않았다. 그대로 들어서 몸을 가린 채 청년을 방패 삼아 무리의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곤 이리저리 휘젓고 두들기며 보란 듯 악을 써댔다. 이는 스스로 포위되는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충분히 시너들을 자극했기에 그들은 눈에 불을 켜고 마귀에게 몰려들었다.


“쓸데없이 눈알 돌리지 말고 이리와. 내가 바로 이단이고 적이니까.” 그는 어느새 너덜너덜해진 고기 방패에서 대검을 뽑아냈다.


짧게 호흡을 고르며 주변을 살피니 모든 시너가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어 흐린 미소를 머금었다. 번들거리는 외눈에 아직은 쓰러져 있지만, 적의 관심으로부터는 멀어진 여인이 비친다.


‘그래, 이거면 됐어.’


선두에 선 덩치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뒤 목을 우 장검으로 내려쳐 끊고 지그시 이를 악문 채 가장 움직임이 둔한 노인에게로 쇄도해가며 검을 휘둘렀다.


‘약한 놈부터 친다.’


단칼에 잘려나간 머리통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매서운 바람 소리를 내며 얼굴로 죽도가 날아든다. 풀썩 주저앉아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고 바로 허리를 틀며 죽도의 허벅지를 베고 무너지는 적의 심장에 대검을 꽂아 넣었다.


‘단박에 죽이는 게 유일한 배려다.’


그대로 검병을 비틀며 일어서던 중 대검에 꿰뚫린 자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앳된 얼굴의 소년이 피를 쏟고 있었던 것이다.


‘씨팔, 이런 씨 팔!’


한 사회의 구성원이자 지극히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살아왔기에 가지는 죄책감이 잠시나마 그의 몸을 경직시킨다. 그러자 사방에서 주먹과 발, 쇠꼬챙이와 장도리, 심지어 깨진 유리벽과 방금 잘라낸 머리통에 시체까지 날아들었다.


‘빌어먹을!’


절대다수와의 전투에서 집중력을 놓친 대가로 순식간에 궁지로 몰리니 눈앞이 깜깜해진다. 기다린 듯 들려온 스승의 일갈이 단 하나의 돌파구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결코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놈! 후회는 마지막 숨결에 섞어라. 그간의 노력을 믿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거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명진은 얼굴과 허리로 날아드는 주먹과 발, 시체 등의 타격은 허용하기로 하며 검을 되잡았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무기만 걸러 낸다면 죽음은 피하리라는 생각에 숨을 들이쉬며 이를 악물었다. 이 한 번의 호흡에 생사가 결정되리라.


‘그간의 노력을 믿자.’


들숨을 머금는 순간 목표를 포착해서 대검을 던지고 우 장검의 검병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곤 혼신의 힘을 다해 휘두른 검신을 어설프게나마 그린 흐름에 실어냈다.


‘이 흐름에 모든 걸 건다.’ 그래도 썩 괜찮은 궤도를 그린 우 장검이 미간을 후려쳐오는 쇠꼬챙이와 부딪힐 때, 날아간 대검은 성인의 상체만 한 유리 파편을 깨뜨리고 어느 여인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그를 확인한 명진은 쇠꼬챙이를 놓친 대머리의 목을 우 장검으로 훑은 뒤 바로 휘돌아서 코앞까지 날아든 일본도를 가까스로 튕겨냈다. 그리곤 손아귀가 찢어진 채 괴성을 질러대는 청년의 입에 검을 쑤셔 넣었다.


'이제 버틴다.'


그는 검병에서 손을 놓고 팔을 모아 최대한 상체를 방어했다. 목을 당기고 살짝 허리를 숙여서 근육에 최대한 힘을 준 채 어금니를 악물었다.


‘버텨, 무조건 버텨!’


한데, 예상했던 타격음과 충격, 속이 뒤틀리는 통증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둔탁한 총성이 귓가를 긁는 게 아닌가?


‘이건 또 무슨..?’


이어지는 총성 속에서 슬그머니 눈을 뜨니, 자신을 에워쌌던 무리의 머리통이 연이어 터져나가는 게 보였다.


‘누구?’


생각지도 못한 구원의 손길에 놀라 시선을 옮기는 찰나 간에 탄창을 교체한 총성의 주인은, 시야에 잡히는 모든 표적의 행동을 예측한 채 놀라울 정도로 안정감 있게 조준점을 잡았다.


‘앞으로 열둘..’ 부드럽게 내뱉은 날숨을 따라서 검지를 당기는 순간 조준선상에 놓인 타깃의 머리가 MP5에 연사당하며 일제히 터져 나간다.


30발들이 탄창은 이번에도 순식간에 비었고 시너는 아직 일곱이나 남은 상태였다. 물론 30발에 다섯이라면 꽤 괜찮은 성적이었지만, 머리에 총알을 서너 발 씩은 박아야 쓰러지는 적이 코앞으로 쇄도해오는데 어찌 만족할까? 꼬마를 구한 도살자는 미련 없이 mp5를 떨궜다.


‘그분이 왜 검을 들었는지 알겠어.’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리는 순간 어느새 뽑아 든 베레타로 무리의 선두에 선 남성의 미간에 총알구멍을 만들며 무리 안으로 파고들었다.


손바닥 위에 놓인 대검의 검신을 중지로 쳐서 한바퀴 휘돌려 잡은 뒤에 자신만의 맹렬한 기세를 실은 채 춤추듯 시너 여섯을 도살해 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겨우 한숨 돌린 명진을 그를 보다가 탄성을 흘렸다.


“와, 스승님처럼 대검을 쓰는 사람이 또 있었네?”


물론 그만큼 강렬하고 섬뜩하며 한 호흡에 모든 걸 그려내지는 못했다. 하나 마지막 광신도가 휘두른 주먹을 어깨 위로 흘리며 파고들어서 울대 어림에 대검을 꽂아 넣은 뒤, 그냥 검병을 틀고 뽑는 게 아니라 목의 절반 이상을 잘라낼 때 보인 날카로움은 단순한 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설마, 기를..?”


그가 반쯤 넋을 놓고 중얼댈 때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서서 핏물을 피한 도살자는 꼬마를 보며 묘한 미소를 그렸다.


‘움직임을 봤을 때 짐작은 했는데, 기까지 알아보는 것을 보면 역시 그분의..’


내 스승과 꼬마의 관계를 대충이나마 추측해 본 그는 대검에 묻은 피를 시너의 옷에 닦아내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꼬마, 좀 전의 공격에서 일본도를 첫 번째 타깃으로 하고 빼앗아 쌍검으로 맞섰다면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웅크리고 어금니를 악물 힘으로 검을 한 번 더 휘두르는 거야. 네 몸뚱이는 강철이 아니거든.”

“예?”


조금 벙찐 얼굴로 대답한 명진은 그가 주차장에서 봤던 백인이라는 걸 알아차렸지만, 이상하게도 머릿속을 맴도는 건 오래전 극장에서 봤던 할리우드 스타였다. 터프가이로 유명했던 액션 배우였는데, 분위기나 외모가 비슷해 보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남자다운 얼굴에 차분하면서도 건드리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눈빛을 가진.. 남자가 좋아하는 사내 말이다. 또 눈앞의 저 터프가이에게는 이 피비린내 나는 공간이 이상할 정도로 잘 어울렸다. 마치..


‘스승님과 비슷해.' 분명 판이한 외모와 분위기였음에도 어떤 면에선 놀라울 정도로 흡사했다.


자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만으로도 표현키 어려운 위압감을 줘서 주눅이 들게 하는 것부터 말이다. 꼬리 만 강아지는 길게 숨을 뱉고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런데 뭐라고 한 거지?’ 그가 풍기는 냄새가 위험하고 섬뜩한 건 분명했지만, 재미있게도 명진은 이 전장에 와서 처음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눈앞의 터프가이가 선 공간은 자신을 지겹게 옭아매던 살의와 광기가 침범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 전장의 베테랑들이 가지는 여유라는 걸 알리 없어 당혹스럽기까지 했지만, 뭐 어떤가? 죽다가 살아났는데.


‘이거, 뭐라고 인사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의 어리벙벙한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 도살자는 습관처럼 주변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꼬마, 지금부터 너와 나는 한 팀으로 움직인다. 임무는 생존, 1차 목적지는 최초에 도착해서 만났던 주차장이다. 나는 1조의 선임요원이고 코드네임은 도살자다. 지금부터 내가 명령하면 그대로 하면 돼.”


그러자 명진의 눈살이 자동으로 찌푸려진다.


‘뭐? 키드, 팀, 퍼스트, 오더? 좆도 같은 편이라는 말 같은데.. 아, 토익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이게 뭐야!’


외국어를 시험 치려고 배운 사람들의 고질병이었다. 귀는 분명히 알아들었건만, 외국인을 만났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단어가 하나로 뭉쳐서 완성된 문장이 되질 못하는..


‘좆 같은 거.’


우물우물하던 명진은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눈치를 살폈다. 묻고 싶은 건 많은데 어떻게 물어볼 수가 없는 이 빌어먹을 놈의 상황이 싫어서 등에 식은땀까지 흐른다.


‘그래도 그분과 함께 있었으니까, 적은 아니겠지.’


주차장의 미인이 통역해준 말을 되짚어보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도와주려는 것 같으니까, 일단은 내 몸부터 살피자.' 갑작스럽게 찾아온 여유를 허투루 보내는 건 스승의 말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허리부터 살피려던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보곤 다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어쨌든 살려낸 여인이 생각난 것이다. 지금이라도 교회 밖으로 데려가면 목숨만은 부지하리라. 그런데, “어?” 그녀가 보이질 않았다.


‘혹시 놈들에게..?’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의 동선을 되짚어보던 그는 도살자의 낮은 음성이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꼬마, 혹시 젊은 여자와 노인을 찾는 거라면 저기 저쪽으로 갔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꼬마가 애써 구한 여인이 어이없게도 노파를 부축해 본관으로 뛰어가는 걸 본 것이다.


멍하니 그의 말을 듣던 명진은 여자라는 단어와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곤 욕설을 뱉어내며 본관으로 달렸다.


“좆도, 자살할 거면 애초에 살려달라고 하지를 말던가!”


작가의말

웬 무서운 분들이 감금 모의를 하는 것 같아서, 부제에 맞게 조금 짧게 끊어서 3연참 갑니다.

군만두 패밀리, 덜덜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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