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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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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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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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07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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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DUMMY

누군가 시뻘겋게 달궈놓은 부지깽이로 팔을 쿡쿡 찔러대고 있다.

아파. 아프다니까. 그만하라고. 네 팔이나 찌르라고. 왜 남의 팔을 자꾸…….

요란한 새소리가 들린다. 어젯밤 꿈이 생각나고, 좋았던 냄새가 생각나고, 또 푸르스름한…….

번쩍 눈을 뜬다. 보이는 것이라곤 갈색뿐이다. 일어나려 팔다리에 힘을 줘보지만 허전하기만 하다.

뭐지, 왜 이러는 거지?

무사한 왼팔로 눈앞을 가리고 있는 갈색을 치워낸다. 마른 나뭇잎을 확인하는 순간 넙죽 엎드린다. 아니, 나는 이미 엎드려 있다.

적어도 오 미터는 떨어져 보이는 맨바닥이 보인다. 몸이 덜덜 떨린다. 무시무시하게 춥기도 하고, 살벌하게 무섭기도 하다. 지난밤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다시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냥 뛰어내릴까 생각하다 단념한다. 눈을 질끈 감는다.

나무에서 내려갔었잖아. 그런데 다시 올라왔단 말인가? 왜? 언제? 여기서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거지?

바람이 분다. 눈물겨운 추위가 몰려오고 팔이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고통이 장난이 아니다. 눈꺼풀에 뭔가 붙은 것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다리는 아프지 않은가? 다리에도 화살을 맞았잖아. 그제야 다리의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다른 건 다 괜찮다. 우선 여기서 내려가는 게 문젠데, 어떻게 내려가야 하나. 머리도 나무에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데. 그래, 비스듬히 기울어져서 내려가는 방법이 있긴 하겠다. 재수 좋으면 등판으로, 재수 없다 싶으면 배로 떨어지겠지.

눈을 뜨고 다시 아래를 본다.

무리다. 빌어먹을. 대체 나무는 왜 기어 올라왔단 말인가. 내 참 어이가 없어서.

난 지금 아래위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 그것까진 좋다. 나체라거나 팬티 바람이 아니라는데 감사할 수 있다. 그런데 눈물 나게시리 맨발이다. TV보다 그대로 자빠져 잤는데 신발을 신고 있을 턱이 있나. 신발만 신고 있었더라도, 몸만 정상이었다면 내려가 볼 용기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정말 말이 안 된다.

팔이 아프다. 다리도 아프다. 온몸의 열기가 어깨와 허벅지로 몰려든 듯하다. 두 부위만 후끈거리며 욱신거리고 나머지 부위는 춥기만 하다. 발가락을 움직여봐도 감각이 없다. 눈을 내리깔고 오른쪽 어깨를 본다. 화살이 푹 박혀 있긴 한데, 이게 얼마나 심각한 건지 모르겠다. 그냥 아프기만 하다. 일단 머리를 떼기로 한다. 멀쩡한 왼팔로 나를 받치고 있는 나무를 꽉 잡는다. 목에 억지로 힘을 넣어본다. 그대로다. 나무에서 손을 떼고 뒷목을 툭툭 두드려본다. 약간의 충격이 느껴지긴 하는데, 손에서인지 목에서인지 모르겠다. 조금 더 세게 목을 쳐본다.

흔들. 이런 빌어먹을 미친 좆같은 경우가 다 있나. 좀 세게 쳤다고 내 밑을 받치고 있는 나무가 흔들린다. 기침을 한다. 몸이 흔들린다. 덩달아 나무도 흔들린다. 왼팔로 흔들리는 나무를 꽉 잡는다. 이제야 내가 몸을 맡기고 있는 이 가지가 그리 굵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당장에라도 부러져 나를 황천길로 데려갈 것 같다. 아니 지금까지 버텨 왔으니 앞으로도 괜찮을까? 판단마저 쉽지 않다. 언제 나무를 타 봤어야지. 언제 이런 가지 하나에 지탱해 있어 봤어야지. 돌아버리겠다.

다시 눈을 뜨고 아래를 본다. 아까는 당황해서 높게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담아. 중력이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내 발목을 잡아당기는 것 같다. 점점 눈앞으로 다가오는 땅. 안 돼, 안 돼. 퍼뜩 고개를 든다. 이게 웬일인가. 가지에 딱 달라붙어 있던 머리가 떨어졌다. 내 머리도 나만큼 겁에 질렸나 보다. 천천히 몸을 돌려본다. 내 밑에 깔린 가지보다는 훨씬 굵은, 그래서 믿음직한 몸통이 보인다. 이대로 가지를 끌어안고 부러지길 기다리는 것보다, 몸통을 끌어안고 있는 게 훨씬 안심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반대편으로 돌아앉아야 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니 언제는 용기가 있었다고. 일단 이대로 뒤로 움직이기로 한다. 이러면 그나마 떨어질 것 같지도 않을뿐더러, 엉덩이가 나무 몸통에 붙어 안정을 되찾으면, 뭔가 기발한 수가 떠오를 것 같다. 손에서 힘을 풀고 몸을 뒤로 움직인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양쪽 허벅지가 가지를 꽉 물고 놔주질 않는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도 힘을 주고 있는 건가. 다시 한번 움직여 본다. 악어. 먹이를 물어버린 악어. 왼손으로 허벅지를 툭툭 건드려본다. 느낌이 없다. 더 세게 쳐볼 용기도 없다. 한 번 더 흔들리면 부러질지도 모른다.

그냥 이대로 있자. 낮이 되면, 날이 풀리면, 허벅지도 풀리겠지.


눈을 뜨고, 겁에 질리고, 후회하고, 걱정하고, 눈물을 글썽이고, 한숨 쉬고, 오줌을 싼다. 이젠 춥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그냥 처음 눈을 떴을 때 무슨 수를 냈어야 했나 보다. 죽는 한이 있어도, 그때 떨어졌다면 반쯤은 살 수 있었겠지만, 이젠 내 앞에 죽음밖에 보이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난 늘 이랬다.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그때이랬다면, 저랬다면 하며 후회하고. 되새김질하는 나 자신을 질책하고…….

사람은 다 그런 걸까. 나 말고 다른 사람도 그럴까.

이제 나는 얼어 죽든 굶어 죽든, 죽기만을 기다린다. 기다림이 싫다면 떨어져 죽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만에 하나 죽지 않는다면 찢기고 부러져 지금보다 처참한 몰골로 죽음을 기다리겠지. 그건 싫다. 정말 싫다.

어깨가 굳고, 몸이 굳는다. 다리가 굳고, 몸속의 장기까지 굳어간다. 추위에 얼어버린 건지, 허기에 지쳐버린 건지. 둘 다인지. 둘 다 아닌지. 그저 자고 싶다. 잠든 채 죽고 싶다.


“어이.”

“어이, 총각.”

소리가 들린다. 내 목소린가.

총각. 총각김치. 총각 귀신. 총각무. 총각파티. 눈이 떠진다. 멀리해 가 보인다. 저물어가는 해인지, 떠오르는 해인지. 내가 자다 일어났나, 아니면 눈만 감고 있었나, 눈도 뜨고 있었나?

“살아 있소?”

저 목소리. 빌어먹을 잠든 채 죽을 수 있었는데, 저 목소리 때문에.

젠장!

“총각, 살아 있소?”

조용히, 좀 조용히 하라고.

입을 벌린다. 떡 하며 턱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온몸을 치달린다.

좀 그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총각.”

좀 조용히. 살아 있으니 좀 조용히 하라고.

팔에 힘을 주고 흔든다. 잘 흔들어졌는지 모르겠다.

“어, 살아있네?”

씨발, 살아 있으니 좀 조용히.

곧 조용해진다.

대체 뭐였는지 모르겠다. 앵무새라도 와서 떠들다간 건가.


다시 소리가 들린다.

말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기 잠깐만 기다리보이소.”

잠깐이 아니고 온종일, 수십 년도 기다릴 수 있다. 돌아와 주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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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7 274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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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3 259 2 9쪽
3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3 12.04.21 241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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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5 247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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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11 309 4 9쪽
3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5 12.04.10 293 4 9쪽
3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1 12.04.09 288 3 9쪽
»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07 377 7 7쪽
3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6 289 4 9쪽
2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5 427 4 10쪽
2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1 12.04.04 358 5 9쪽
2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3 12.04.03 492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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