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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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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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2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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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DUMMY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어떻게 이렇게도 시끄러울 수 있을까. 정말 미쳐버리겠다. 이불을 덮어써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불 따윈 없다. 눈을 감은 채 벨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손을 뻗는다. 내 손은 허공을 더듬다 이내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진다. 손가락이 딱딱한 것을 때린다. 통증이 느껴지고 끔찍한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눈을 번쩍 뜬다. 희뿌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내 왼손은 앉은뱅이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 전화기는 여전히 울어대고 있다. 물끄러미 손을 바라보다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 옆 TV에서는 아무 소리 없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까. 저 두 남자는 농아 배역이라도 맡은 건가.

뜬금없는 생각을 하다 여전히 날 부르고 있는 전화기를 본다. 받아야 할까, 아니 받아도 될까. 키티 방을 본다. 왜 나오지 않는 거지? 귀도 밝으면서.

몸을 일으킨다. 가슴 언저리에 얹혀 있던 리모컨이 바닥으로 떨어져 뒹군다. 리모컨을 주워 소파에 던지고 전화기로 다가간다. 시끄럽게 울리던 벨이 덜컥 멎는다.

“씨발.”

절로 욕이 나온다.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싶다. 이딴 식으로 사람을 놀리 는 건가. 이렇게 끊어질 것 같았으면, 십 초만 더 빨리 끊어질 것이지. 그랬다면 내가 일어날 일도 없었잖아.

뒤돌아 소파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는다.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러 TV를 끈다. 어둠이 사위를 집어삼킨다. 테라스를 관통하여 거실로 스며들어오는 은은한 달빛이 어둠에 반항이라도 하듯 어슴푸레하게 사물들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테라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하늘을 본다. 짐승에게 몇 번 베어 먹힌 듯 절반밖에 남지 않은 처량한 달이 보인다. 이제 겨우 일주일 지난 건가.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건드려본다. 조금 아프긴 하지만 충분히 참을 만하다. 손을 내려 옆구리도 만져본다. 이곳도 매한가지다.

겨우 일주일 만에 나을 수도 있는 건가? 아니면 의사가 말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뛰어난 회복력이 있는 건가? 모르겠다.

멍하니 달을 본다. 전화기가 다시 울어대기 시작한다. 걸어가 수화기를 든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여보세요?”

상대가 먼저 말한다. 여자다. 미미의 목소리 같다.

“아, 네.”

“푸?”

“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빠르게 말을 쏟아낸다.

“그게 잔다고…….”

“키티는?”

“모르겠는데, 자고 있지 않을까요?”

“깨워서 전화 바꿔봐.”

“네, 저기 그런데 저 같은 사람 만나게 해주신다고 하셨던 건…….”

“빨리 키티 바꿔.”

미미가 빽 소리를 지른다. 키티의 방문 앞으로 다가가 노크를 한다. 대답이 없다. 문을 열어본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환한 형광등 빛을 거부한다. 눈살을 찌푸리며 눈썹 위에 손 받침을 한 채 침대에 엎드려 있는 키티에게 다가간다. 그의 등을 툭툭 친다. 아무 대답이 없다. 다시 친다.

“뭐?”

이어폰을 뽑으며 뒤돌아보는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키티의 얼굴을 본다.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다. 마치 울기라도 한 듯. 설마.

“미미 씨한테서 전화 왔는데.”

그가 거실로 나간다. 아무도 없는 침대에는 노트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눈을 끔뻑이며 어떻게 된 상황인지 생각한다.

노트북을 챙겼었나? 원래 여기 있었던 건가? 나 몰래 의사나 미미가 와서 전해주고 간 건가?

모니터를 본다. 남자배우가 휠체어에 앉아 무슨 말을 하고 있다. 화면이 전환되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여배우가 나타난다. 키티도 이 여자랑 같이 울었던 건가. 설마.

입을 벙긋거리고 있긴 한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어폰에 귀를 가져다 대본다. 그 순간 와장창 하며 세상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뒤통수를 감싸며 그대로 침대 위에 엎드린다.

뭔가 터진 건가? 뭐가? 모르겠다. 아무튼,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건 분명하다. 가스 폭발? 지진? 전쟁?

슬쩍 고개를 들어본다. 깨진 창문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 깨지는 소리였나? 왜 깨진 거지? 노트북에 귀를 가져다 대면 창문이 깨지나?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하는 동안 박살 난 창문을 통과해 까만 정장 차림의 세 명의 남자가 빠르게 들어온다.

“놈은?”

반사적으로 문밖을 가리킨다. 그들이 날 지나쳐 간다. 곧 와장창 소리가 한 번 더 들린다. 죽은 듯 엎드려 있다가 벌떡 일어난다. 창문으로 다가간다. 깨진 유리 조각들이 발가락을 찔러대도 개의치 않는다.

쥐가 고양이를 보면 이럴까. 가젤이 사자를 보면 이런 느낌이 들까. 저 남자들은 다르다. 마치 천적을 본 듯하다. 키티와 다르고, 미미와도 다르다. 집에서 날 때렸던 택배기사 사칭범과도 다르고, 사냥꾼과도 다르다. 위험하다. 도망가야 한다.

그들이 들어온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본다. 깜깜하다. 창틀로 올라간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제법 높아 보이지만 어쩌겠나. 이곳에 남아 있는 게 훨씬 더 위험하다고 본능이 외치고 있는데. 침을 삼키고 뛰어내린다.

뭔가를 밟은 건지 발바닥이 찌르르하면서도 허전하고, 아픈 것 같으면서도 시원한 아주 괴이한 느낌이 든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이곳에서 멀어져야 한다. 숲으로 가려 발을 내딛는 순간, 참기 어려운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아 버린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조심스레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아 왼쪽 발바닥을 들여다본다. 세로로 길게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르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너무 무서워서 만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여기 이렇게 계속 앉아 있을 수는 더더욱 없다.

무릎을 땅에 대고 기기 시작한다. 일단 몸을 숨기고 나서 상처를 들여다보든, 만져 보든, 핥아 보든 해야겠다.


얼마나 기었을까. 손이 시리면서 따갑고, 무릎도 아프고, 발바닥은 부풀어 올라 터져버릴 듯 욱신거리고, 더는 못 가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땅 위로 솟아오른 나무뿌리에 걸터앉아 발바닥을 들여다본다. 아직도 피가 솟아나고 있다. 멈출 생각 따윈 없는 것 같다. 손가락으로 상처 부근의 피를 닦아낸다. 빌어먹을 너무 어둡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발목을 잡고 머리 위로 치켜든다. 서글픈 웃음이 나온다.

젠장, 젠장. 아무래도 미친 것 같다. 나무로 둘러싸인 이곳에 앉아 머리 위로 발을 들어본다고 보일 줄 알았던가. 아니 머리 위로 들면 내가 상처를 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손이 시리고 발도 시리다. 정말 환장하겠다. 나무 위에서 그 추위를 겨우 버텨낸 지 이제 한주 지났나.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피는 어떻게 해야 멈추는 걸까.

입고 있는 트레이닝복 상의를 벗어 소매로 상처 부위의 피를 닦아낸다. 피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대로 죽는 건가.

눈앞에서 섬광이 터진다. 뒤통수에서 시작된 강렬한 충격이 머리 전체를 얼얼하게 만든다.

“야이 씨발 새끼야, 너 무슨 짓 한 거야!”

뒤통수를 감싸며 뒤돌아본다 키티다. 반가우면서도 몹시 짜증 난다. 두 손으로 나무를 짚고 힘들게 일어선다.

“내가 뭐, 내가 뭐했는데, 내가 왜 맞아야 하는데!”

그가 옆구리를 걷어찬다. 뒤로 풀썩 쓰러진다.

“씨발, 왜 때리냐고!”

“개좆 같은 새끼, 너 씨발. 아…….”

발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키티는 온데간데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정말 돌아버리겠다. 울분이 머리끝까지 치솟아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로 몸이 떨린다.

내가 왜 얻어맞아야 하는데? 내가 왜 욕을 들어야 하는데?

뒤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뒤돌아본다. 별장에서 봤던 세 남자 중 두 명이, 말 그대로 바람처럼 달려오고 있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주먹이 꽉 쥐어진다. 이제 진짜 죽는구나 싶다.

하지만 그들은 날 거들떠보지도 않고 반대쪽으로 달려가 버린다. 멍하니 그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 발바닥을 본다.

씨발 괜히 도망친 건가. 저들에게 나는 뭐지. 언제든지 잡을 수 있으니 내버려두는 건가. 아니면 날 잡을 생각이 없는 건가.


작가의말

어제 한 분께 쪽지로도 말씀드렸는데 여기서도 미리 말을 해놓는 게 맞는 것 같아 적겠습니다.

는 앞으로 열 편에서 열다섯 편 정도 더 쓰고 끝내려고 합니다. 처음 제가 했던 구상은 이게 아니었는데, 등장인물의 성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번 겪어봤으니 다음번에 쓰게 될 글에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신경 쓰겠지요.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제 글에서 묘사(묘사라고 해봐야 별것도 없지만 말이죠.), 독백, 글의 스타일 등 고치면 더 나을 것 같다 싶은 곳을 보시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쓰는 글에서는 못하더라도 다음에 쓸 글에서는 고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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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Finale +4 12.05.30 267 1 6쪽
5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2 12.05.24 310 1 12쪽
4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 12.05.15 202 3 11쪽
4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2.05.13 254 1 9쪽
4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2.05.09 206 1 8쪽
4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 12.05.07 209 1 8쪽
4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1. +2 12.05.05 220 8 9쪽
4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1. +2 12.05.02 241 1 9쪽
4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1. 12.04.30 207 2 10쪽
4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7 274 3 9쪽
4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5 209 2 8쪽
»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3 259 2 9쪽
3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3 12.04.21 240 2 10쪽
3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7 265 3 12쪽
3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5 246 3 13쪽
3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3 264 5 9쪽
3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12 324 2 9쪽
3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11 308 4 9쪽
3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5 12.04.10 293 4 9쪽
3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1 12.04.09 287 3 9쪽
3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07 376 7 7쪽
3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6 289 4 9쪽
2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5 427 4 10쪽
2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1 12.04.04 357 5 9쪽
2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3 12.04.03 491 6 8쪽
2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1 12.04.02 484 7 8쪽
2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1 12.03.23 515 5 11쪽
2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2 12.03.22 433 6 9쪽
2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3 12.03.21 355 7 9쪽
2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1 12.03.20 424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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