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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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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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1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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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DUMMY

갑자기 의사가 싱글거린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혼자만 멀쩡해서 그러나 싶기도 하고, 부상자들이 제각각 다른 행동을 해서 그러나 싶기도 하다.

“음, 내 친구 중에 강릉 근처에 별장 있는 녀석 있는데 연락해 볼까?”

“강릉 근처면 주변에 다른 집도 있을 거 아냐?”

“아니, 몇 년 전에 가 봤을 땐 아무것도 없던데, 그냥 바다 보이는 산속에 있었어.”

“친구면 일반인?”

“어, 미미 어때?”

대답이 없다. 미미를 보니 어느새 곯아떨어져 있다.

“그냥 전화해봐.”

의사가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댄다. 키티가 담배를 물더니 나를 본다. 어디 숨을 곳도 달아날 곳도 없다. 그냥 이대로 그의 눈빛을 고스란히 받을 뿐이다. 키티가 손가락을 꼽는다.

“야.”

“어?”

“세 번 남았다.”

끄덕인다.

“알고 있어.”

“알면 됐어.”

“야.”

“어?”

“넌 안 자냐?”

왜 묻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심심하면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이나 붙이던지.

“잠 안 오는데.”

의사가 휴대폰에서 귀를 떼더니 키티를 툭툭 친다.

“돈 달라는데? 대여료.”

“얼마?”

“얼마냐고 묻는데?”

의사가 휴대폰에 묻는다.

“월 백이라네.”

“준다고 해. 아, 거기 있을 건 다 있지? 뭐 TV나 전기 같은 거.”

“어. 전에는 다 있었는데.”

“물어봐.”

“거기 예전이랑 같지? 삼 년인가 사 년 전에 갔었잖아. 어. 돈은 그대로 준대.”

“몇 달 있을 거냐는데?”

“모르지.”

“여름에 써야 한다는데.”

“알았어. 그때 비워준다고 해.”

“그래. 비워준다는데? 오케이, 땡큐.”

의사가 폴더를 닫는다.

“관리인한테 전화해 놓는데.”

키티가 나를 본다.

“야 미미 깨워봐.”

미미의 팔을 잡고 흔든다. 그녀가 눈을 번쩍 뜬다.

“부르는데요.”

“어? 왜?”

미미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킨다.

“갈곳 정해졌어.”

“어디?”

“강릉에 별장.”

“어떻게?”

“의사 친구 꺼. 월 백이래.”

“백?”

“어.”

“비싸네.”

의사가 피식 웃는다.

“이미 흥정 끝났어.”

미미가 미간에 주름을 잡더니 끙 소리를 내며 누워버린다. 키티가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야, 가자. 일어나.”

앉은 채로 눈을 감는다. 빌어먹을. 움직이기 싫다.

“가자니까.”

자는척한다.

“그럼 씨발 너 혼자 잡혀가든 말든 혼자 간다?”

눈을 뜬다. 혼자 간다는데 어쩌겠나. 같이 가 줘야 좀 덜 외로울 것 아닌가.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

“이 새끼야, 괜히 이런 데 오래 있다가 걸려.”

옆에 있는 의사가 맞장구치듯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못해 일어난다. 너무 아프다. 어금니가 앙다물어져 턱이 얼얼하다. 잠자던 미미가 눈을 뜨더니 입을 연다.

“나 여기서 좀 자다 갈 테니까, 얘들 좀 부탁해.”

“어?”

의사의 멍청한 대답.

“애들 좀 데려다 주라고.”

“운전 못해?”

“나 다쳤잖아.”

“아니, 너 말고 푸.”

“어, 못한데.”

“아, 요즘 세상에 운전 못하는 놈이 어딨어. 네비나 찍어주고 갈랬더니. 여기서 강릉까지 너무 먼데.”

“어차피 얘들도 둘 다 다쳤잖아.”

“아. 그래도.”

“반 줄게.”

“응?”

“출장비 반 준다고.”

“왕복으로?”

“그쪽에 도착하면 전화해. 그 시간 계산해서 두 배로 줄 테니까.”

“오케이.”

나와 키티는 그들의 흥정을 지켜보다 끝나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간다. 둘 다 절뚝거린다. 좀 웃긴다.


“너희 여기 좀 서 있어, 금방 올게.”

의사가 어디론가 급하게 사라진다. 어디 갈 데도 없다. 여기 있지 말라 해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잠시 후 눈앞에 새빨간 스포츠카가 나타난다. 썬팅 된 창문이 내려가더니 의사의 얼굴이 튀어나온다.

“야, 타.”

타려고 보니 이게 웬걸. 문이 하나뿐이다. 문을 열어 들여다보니 뒷좌석도 없다. 운전석에 앉은 의사를 물끄러미 본다. 그도 나를 본다.

“안 타?”

“저기 의자가…….”

“타기 싫어?”

강력한 힘이 내 등을 떠밀어버리고, 구겨진 채 안으로 밀려들어 간다. 신음도 제대로 내지 못할 아득한 고통에 눈물이 새어 나온다. 오른쪽이 아래 깔리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키티가 씨근대는 나를 밀며 안으로 들어온다. 돌겠다. 건강한 남자 둘이서 의자 하나에 앉아 있으니 금방이라도 의자가 터져나갈 것 같다. 게다가 내 옆구리와 다리의 상처는 키티에게 부대껴 찢어질 것 같다. 이미 찢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키티는 앉자마자 눈을 감아 버린다.

의사가 나를 힐끔 보더니 고고싱, 하고 외친다. 뭐 하는 건가 싶어 그를 본다.

“따라 해. 고고싱!”

설마 내가 따라 하리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어, 안 따라 해? 안 간다?”

“따라 해줘.”

키티가 눈을 감은 채 말한다.

정말 따라 해야 하나?

“고고싱!”

“고고싱.”

“더 크게. 고고싱!”

“고고싱!”

이게 뭐하는 짓이람?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차가 출발한다. 창 밖으로 행인과 가로수들이 빠르게 바뀌더니, 금세 논밭이 나타난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을 감는다. 이제야 졸음이 몰려온다.


눈을 감은 지 채 일 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눈이 번쩍 떠진다. 분명 졸음이 나를 초대하고 있었는데. 위를 보니 차 천장이 있어야 할 곳에 새파란 하늘이 보인다. 찬바람이 나를 죽일 듯 쏟아져 들어와 나를 뚜들겨댄다.

“좋지?”

몸을 더 웅크리며 팔짱을 낀다. 옆구리에서 팔짱 끼지 말라고 발악을 한다. 팔짱을 푼다.

“네?”

“차 좋지?”

바람 소리 때문에 말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아 고함을 지르고 있다. 오픈카라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나 보다.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아, 네.”

그래 당신 오픈카 타고 다닌다. 차 좋아 보인다. 그러니 이제 그만 지붕 닫자.

“지붕 닫아.”

키티가 나 대신 소리 지른다. 의사는 싱글거리기만 할 뿐, 지붕 닫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지붕 닫을 생각이 없으면 히터라도 끄던지 허리를 기준으로 아래서는 뜨뜻한 바람이, 위에서는 차디찬 바람이, 아주 사람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야 이 새끼야, 지붕 닫으라고.”

키티가 내 뒤로 손을 뻗어 의사의 뒤통수를 갈긴다. 가운데 끼인 내 뒤통수도 키티의 팔에 치여 앞으로 숙여진다.

의사는 운전자다. 운전자가 타격을 받으니 차체가 흔들거리고, 반대차선에서 오는 차들이 경적을 마구 울려댄다.

의사는 싱글거리기만 할 뿐 여전히 지붕 닫을 생각은 없나 보다. 들리지 않는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며 흥얼거리나 싶더니, 엉거주춤 서서 야호, 하며 왼팔을 붕붕 휘두른다. 맛이 간듯하다.

“지붕, 닫으라고, 이 새끼야.”

키티가 한마디씩 끊으며 의사의 뒤통수를 세 번 후려친다. 뒤통수를 맞는 의사는 아직도 정신이 나가 있다. 여전히 팔을 휘두르며 환호한다.

혹시 이런 뻥 뚫린 길만 나오면 이렇게 되는 병에 걸린 건가? 그래서 출장을 멀리 안 오려 하나?

키티가 일어서더니 엉거주춤 서 있는 의사의 머리를 마구 때리기 시작한다. 키티에게 부대끼는 내 오른쪽 상처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소란을 부려댄다.

이젠 차가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다. 중앙선을 가운데 두고 S자 주행을 시작한다.

나는 겁에 질린 채, 키티와 의사를 번갈아 본다. 어떤 것에 겁먹었는지 모르겠다. 죽음이 왔다갔다하는 지금 이 상황? 아니면 정신 나간 의사? 죽음이 대체 무슨 말이냐, 하며 의사를 구타하는 키티? 모르겠다. 둘 다 제정신이 아니다. 어쩌자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맛이 갔다. 진짜배기 도라이를 만났다. 한편으로는 뭐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는 도라이 중에 한 놈이 더 추가됐을 뿐이다. 그래도 도라이 둘 사이에 끼어 있다고 내가 이놈들과 같이 죽을 필요까진 없잖아.

센터페시아에 손을 뻗어, 이 버튼 저 버튼 마구 누르고 돌린다. 라디오가 켜지나 싶더니 창문이 올라가고, 스피커에서 귀를 찢어버릴 소리가 나오더니 히터가 에어컨으로 바뀐다. 그리고 천천히 지붕이 닫힌다. 지붕이 닫히면 당연히 둘은 앉아야지.

두 도라이는 한순간에 조용해진다. 들리는 소리라곤 여자 소프라노의 꾀꼬리 같은 소리뿐. 그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의사가 나를 힐끔거린다.

“무서웠나 보네.”

어이가 없다. 미친놈들 둘 사이에 있다고 나까지 미친 것처럼 보인단 말인가?

의사가 센터페시아에 손을 뻗는다. 절망에 빠지려던 나는 음악이 바뀌는 것을 듣고 안도 한다.

어디선가 들어 본 음악이 흘러나온다.

“I dreamt I dwelt in marble halls…….”

당신은 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을 꾸었던가요? 씨발, 나는 지랄 같은 꿈을 꾸었어요. 온통 도라이들이 나오는 그런 악몽인데, 깨어나 지지가 않아요. 언제까지 꿈을 꾸고 있어야 할까요. 빌어먹을 꿈. 코리안 퍼킹 드림.

의사를 본다.

“저기 그쪽은 뭐예요?”

“나? 친구.”

“아니, 그거 말고. 무슨 동물이에요?”

무슨 동물이길래 이런 미친 지랄병에 걸렸나 물어보는 거다.

“음, 어, 그게.”

머뭇거리는 의사 대신 키티가 대답한다.

“이놈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사람이야.”

“사람이 왜?”

“미미가 어디서 주워왔어.”

의사를 본다. 낄낄대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또 미치려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웃음을 그친다.

“레지던트 때 별거 아닌 일이 있었는데, 이것들이 제명하더라고.”

“별거 아닌 일 좋아하네. 처방전 빼돌리다 걸려 놓고는.”

“그러다 미미한테 홀렸지.”

키티가 한마디 보탠다.

“홀려요?”

“돈에 홀렸겠지. 한번 치료하는데 오십, 출장한 시간에 삼십씩 받아쳐 먹는 의사가 어딨어?”

“왜, 비싸? 비싸면 다른 데로 가든지.”

“미친 새끼.”

음악이 끝나고 다른 음악이 시작된다.

“영감, 가다가 마트에 좀 들려. 먹을 거 좀 사 가게.”


라면 열 박스. 과일통조림과 물고기 통조림 한 박스씩 그리고 과자 세 박스. 계산 앞에 쌓여가는 박스들을 멀뚱히 본다. 나는 의사와 키티를 돕지 못하고 계산대에 기대 있다. 박스 드는 시늉을 하다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통증을 음미하고 있자니, 키티가 너 빠져, 하길래 잽싸게 빠졌을 뿐이다

점원이 리더기로 박스의 바코드를 찍기 시작한다.

“야, 카드.”

“어?”

“카드 달라고.”

몸을 더듬는 척한다. 물론 카드가 없다는 것은 안다. 지갑이 없으니 카드도 없다.

“어, 지갑이 없네?”

“이 새끼.”

“진짜 없어.”

주머니의 안감을 끄집어내 보여준다.

“돈 줄게.”

깡패 같은 자식. 다시 몸을 더듬는 척한다.

“없다니까.”

키티가 의사에게 고개를 돌린다.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의사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낸다.

“나중에 미미랑 통화하면서 이것도 말해.”

키티가 쌓인 박스를 들고 가려 한다.

“이거 그냥 배달시키면 안 되나?”

“새끼 좀 빨리 말하지.”

의사는 히죽거릴 뿐이다.


다시 차를 타고 간다. 너무 아파서 미치겠다. 아, 그러고 보니 노트북. 노트북들은 어디로 갔지. 빌어먹을. 또 TV와 친해져야 하는 건가.


작가의말

제가 어느 잔칫집 문앞에 서서 들어가진 못하고 얼쩡거리고만 있더군요.
잠시 후 어떤 남자 두 명이 건들거리며 제 앞으로 오더니, 들어가서 같이 놀자고 하는데 그게 왜 그렇게 웃겼던지 한참 웃다가 깨어나 보니 실제로도 제가 웃고 있더군요.

이게 무슨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게 조금 우스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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