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24,605
추천수 :
215
글자수 :
207,496

작성
12.04.21 00:12
조회
240
추천
2
글자
10쪽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DUMMY

재수가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복권에 당첨되었다거나, 사 놨던 주식의 가격이 수직으로 상승해서 돈벼락을 맞았거나 하는 그런 천운을 말하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애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절망하고 분노하다가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옆에 해결책이 떡하니 놓여있는 그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사흘 동안 화살을 네 대나 맞고, 새로 산 노트북은 곧바로 잃어버리고, 몸도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진 채 이곳에 도착했다. 이곳이 제법 경치가 좋은 곳이라는 것도, 방도 몇 개나 있어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는 것도, 거실이 넓어 TV 감상할 때 키티에게 치이지 않는다는 것도, 따뜻한 물도, 풍족한 먹을거리도, 그 어떤 것도 상처입은 나를 치유해 주진 못했다.

하지만 키티가 먼저 거실과 가장 가까운 방을 선택하고, 남은 방을 둘러보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컴퓨터를 발견하고 나서는(연식이 제법 된 컴퓨터라 아주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귀신같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게 재수가 좋은 게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지난 사흘 동안 각종게시판과 신문기사들만 아무 생각 없이 넘겨대기만 했다. 잃어버린 지난 한 달의 시간을 보충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동안 게임은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내가 게임에 중독되어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컴퓨터에, 인터넷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와 이 세상을 연결해주는 하나밖에 없는 끈이라 그런지도. 아니, 끈이라기보다 세상을 비춰주는 창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일방적으로 내가 그 속을 들여다보기만 할 뿐이니.


주민등록번호를 적어 넣고, 이름도 적어 넣는다. 또 별명이 문제다. 고민하고 고민한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 뜻 없는 알파벳 몇 자를 적어넣는다. 사용할 수 있는 별명이라고 한다. 허무하다. 뭐 이딴 걸로 고민하고 있었나 싶다.

문이 벌컥 열린다. 고개를 돌린다. 키티가 멀뚱히 나를 보고 있다.

“또 컴퓨터 하냐?”

한심하다는 투로 들리는 건 자격지심 때문일까.

“아, 어.”

“라면?”

“어, 먹어.”

그의 모습이 사라진다. 시선을 모니터로 옮긴다. 회원 가입 완료를 누르고 바로 글쓰기를 누른다.

- 나다. 이 미친 새끼들아. 할 거 없으면 태안에 가서 기름이나 좀 치워주던지, 엊그제 대통령 취임식 했다는데 편지라도 써서 취직 좀 시켜 달라고 구걸이라도 하든지 하지. 새끼들이 밥 먹고 할 짓이 없으니까, 어떤 새끼는 내가 원양 어선에 팔려갔다고 하고, 어떤 새끼는 내가 자살했다고 하고, 어떤 새끼는 내가 군대 끌려갔다고 하고. 지금 뭐하는 짓들이냐? 이 씨발놈들아. 나 라면 먹고 와서 보자.

확인 버튼을 누르고 거실로 나간다. 어떤 리플들이 달려 있을지 기대된다.


“그래, 그쪽에는 말해봤어?”

키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린다. 전화 중인가 보다. 소파로 걸어가 앉는다.

“뭐라고 해? 어, 그래. 잘됐네. 그럼 두 배로 받을 수도 있겠네. 조건은 뭐 없어? 공짜는 아닐 거 아냐?”

두 배로 받는다고? 조건이 뭐냐고? 뭘 받는다는 건지, 무슨 음모를 꾸미는 건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음,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쪽에서야 뭐 돈 아니면 받을 게 없잖아. 일단 만나기 전까지는 계속 알아봐.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알면 헛돈도 안 쓰고 좋잖아. 그래, 어디 그게 일이천도 아니고.”


잠시 후 키티가 양손에 주방 장갑을 낀 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를 앞세워 나타난다. 훅 끼쳐오는 라면 냄새에 내장이 일제히 꿈틀댄다.

“어, 너 여기 언제부터 있었어?”

“조금 전에 나왔어.”

“이 새끼 통화 엿들었지.”

“엿듣고 말고 할 게 어딨어. 다 들리던데.”

키티가 앉은뱅이 테이블 위에 냄비를 내려놓더니 나를 본다.

“먹자.”

키티가 끓인 라면은 맛있다. 라면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먹어보면 대체 뭘 넣은 거지? 하게 된다.

라면을 흡입하고 설거지를 한 후방으로 돌아간다.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본다. 새로 고침을 누른다. 리플이 세 개 달려 있다.

- 뭐냐, 넌?

- 관심병자네.

- 먹이를 주지 마시오.

새 글을 쓴다.

- 이 새끼들아, 니들이 장례식까지 한 바운스클로가 나다, 등신 새끼들. 내가 지금 들어가서 다 쳐죽여 줄 테니까 기다려라.

막상 그렇게 적긴 했는데, 이 컴퓨터에는 기본적인 것 말고는 깔린 게 없다. 공식 홈페이지로 들어가 게임을 설치한다. 손가락 끝으로 무릎을 톡톡 두드린다.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본다. 멀뚱히 혼자 서 있는 나무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보인다.

문득 내가 뭐 하고 있는 지,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지, 불안한 마음이 든다. 헛웃음이 나온다. 바보가 된 기분이다. 아니 원래 바보였는데 이제야 깨달은 건가.

설치 취소를 누른다.

- 정말 취소하시겠습니까?

마우스 포인터를 빙글빙글 돌리다 아니오를 누른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가. 나는 삼 개월 뒤 죽더라도 게임을 하겠다. 게임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답답해져 온다. 게임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고 할 것도 없다. 왜 이제야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시한부 인생 삼 개월, 대학 중퇴자, 할 줄 아는 건 게임뿐.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동굴에 갇힌 기분이다.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 진짜가 나타났다.

- 뭐가?

- 여기 진짜가 나타났다고.

- 여기는 가짜가 나타났다, 인마.

- 아니 여기 바운스클로.

- 뭐?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새빨간 글들이 모니터 위를 빠르게 지나간다. 여기저기서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하며 외쳐대며 캐릭터들이 몰려든다. 길드원의 인사는 그들의 외침 속에 속절없이 사그라진다. 내 캐릭터를 도시 구석으로 이동시킨다. 떼인 돈 받으러 몰려드는 빚쟁이들 같다. 형광등 빛을 본 한여름의 모기처럼 새까맣게 몰려오는 이 꼬맹이들. 이놈들은 대체 어디까지 따라오려는 거지?

- 꺼져 새끼들아.

기도 차지 않는다. 꺼지란 말이 언제부터 웃으라는 말이 된 건지 곳곳에서 ㅋㅋㅋ, ㅎㅎㅎ, 하고 있다. 꼬맹이들은 계속 몰려들어 이젠 렉 때문에 캐릭터를 움직이기도 어려울 정도다. 빌어먹을 똥컴.

-꺼지라고 더러운 새끼들아.

-ㅋㅋㅋ.

-ㅎㅎㅎ.

길드 창을 열어 누가 접속해 있는지 본다. 스파가 있다.

- 야, 나 다른 캐릭 하나 만들어올 테니까 길드 초대 좀.

- 네, 진짜 형이세요?

- 그럼 나지, 누구겠냐. 혹시나 말고 다른 사람이 접속한 적 있냐?

- 아니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 그럼 접해서 귓주세요.

- ㅇㅇ.

대충 정리하자면 이렇지만, 날 따라다니는 놈들의 채팅과 따라오지 못한 놈들의 귓속말, 그리고 렉때문에 발생하는 버벅임에 정말 힘든 상황이었다.

접속을 종료하고 새 캐릭터를 만든다. 무슨 이런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다. 게임을 현실 세계로 치자면 나는 유아, 아니 청소년 연쇄살인마쯤 되겠다. 한참 사냥하며 레벨을 높이려는 캐릭터들 뒤로 은신상태로 접근해 죽이는 것이 내 취미이자 특기였으니. 종종 나에게 귓속말로 욕을 해대는 경우는 있어도, 수십 명이 나를 따라다니는 경우는 처음이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뜻 없는 알파벳조합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접속한 후 스파에게 길드 초대해 달라고 귓속말을 한다. 금세 초대가 오고 수락을 누른다.

- 와 진짜 이거 다 뭐냐?

- 한 달 전에 형 장례식 했는데요.

- 그래, 그건 예전에 글 봐서 알아. 누가 나 죽었다고 했잖아.

- 네, 보셨나 봐요.

- 누가 그랬는지 아냐?

- 모르겠어요.

답이 나오는 게 좀 늦다. 딴 일을 하며 키보드를 누른다거나, 한 번 썼던 대답을 지우고 새 대답을 쓴단 소리데.

- 누가 그랬냐?

- ……모르는데요.

- 아니, 너 알 거야 누가 그랬어?

- ……k모씨가.

- k모씨면 기호겠네. 왜 그랬데?

- 그냥 장난이었다던데요.

- 아 씨발, 이거 아무것도 못하겠던데.

- 시간 좀 지나면 조용해지겠죠.

- 한 달 지났다며.

- 죽었다고 장례식 한 사람이 보이니까, 반가워서 그런 거 아닐까요?

- 아, 돌겠네, 진짜.


하릴없이 마우스를 꾹꾹 누르다 보니 절로 레벨이 올라간다.

- 야.

귓속말이 온다. 나와 아이디가 비슷하다. 의미 모를 알파벳조합. 그 알파벳이 다짜고짜 반말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 ㅇㅇ?

- 야.

- 누구?

- 백정.

- 오랜만이네. 이 캐릭은 어떻게 알았냐?

- 스파가 가르쳐 주던데. 너 때문에 나 칼춤백정 못하잖아.

- 왜?

- 그거 접속만 하면 애들이 죽여서.

- 널 왜?

- 전에 네가 내 아이디로 글 썼잖아.

- 아, ㅋㅋ. 사칭했다고?

- 뭐해?

- 뭐하긴 사냥하지.

- 어디야?

- 어스름 둥지.

- 아니 진짜로 어디냐고.

- 여기?

- 어.

- 왜 오게?

- 내가 거기 가서 뭐하게.

- 그럼 왜 물어.

- 궁금하니까 묻지. 어디야?

- 여기 강릉 근천데.

- 강릉?

- 어.

- 강릉 어디?

- 잘 모르겠는데. 너 의사라는 사람 알아?

- 어, 알지.

- 그 사람 친구 별장이라는데.

- 그래?

마지막 어라는 글은 입력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접속을 종료했다는 메시지만 화면 구석에 뜬다.

인터넷이 끊겼나.


작가의말

이렇게 해도 재미가 없는 것 같고, 저렇게 해도 재미가 없는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다 지우고 다시 썼는데도 똑같고, 정말 돌아버리겠네요. 줄거리 자체를 뜯어고쳐 볼까 싶다가도 그렇게 되면 뒤에 어떻게 될지 겁이 나고, 슬럼프에 빠졌나 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60 세마포
    작성일
    12.04.21 00:50
    No. 1

    초반에는 분명 흥미롭습니다 ... 몽유병처럼 꿈속에서 살인을 거듭하는 주인공. 주인공 안에 있는 또다른 인격인지 뭔지 모를 존재. 그런데 ... 갈수록 난잡해지면서 뭔가 집중할 수 가 없는 분위기가 되더군요. 주인공에게 몰입하자니 ... 먼가 정신없달까? 주인공이 시종일관 끌려가고 아무것도 모르게 진행되니 어떤 인물에 이입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세마포
    작성일
    12.04.21 00:52
    No. 2

    최소한 설정과 세계관에 대한 설명을 중간중간 곁들이시거나 아예 처음부터 나오게 하시는게 나을듯 하네요.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졌어요. 처음에 사람 안의 동물은 뭐지? 주인공은 왜 꿈속에서 살인할까? 이런게 흥미롭게 잡아끌었는데 ... 막상 뚜껑열고 진행되는건 지지부진하고 김빠지는 느낌이에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스사가미프
    작성일
    12.04.21 23:39
    No. 3

    제 고민을 잘 정리해 주신 것 같습니다. 이런 댓글을 기다리고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몇 가지 여쭤 볼 것도 있고 좀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쪽지로 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면수심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Finale +4 12.05.30 268 1 6쪽
5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2 12.05.24 311 1 12쪽
4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 12.05.15 203 3 11쪽
4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2.05.13 255 1 9쪽
4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2.05.09 206 1 8쪽
4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 12.05.07 209 1 8쪽
4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1. +2 12.05.05 221 8 9쪽
4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1. +2 12.05.02 241 1 9쪽
4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1. 12.04.30 207 2 10쪽
4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7 274 3 9쪽
4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5 209 2 8쪽
4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3 259 2 9쪽
»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3 12.04.21 241 2 10쪽
3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7 266 3 12쪽
3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5 247 3 13쪽
3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3 264 5 9쪽
3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12 324 2 9쪽
3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11 309 4 9쪽
3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5 12.04.10 293 4 9쪽
3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1 12.04.09 288 3 9쪽
3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07 376 7 7쪽
3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6 289 4 9쪽
2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5 427 4 10쪽
2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1 12.04.04 358 5 9쪽
2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3 12.04.03 492 6 8쪽
2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1 12.04.02 485 7 8쪽
2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1 12.03.23 515 5 11쪽
2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2 12.03.22 433 6 9쪽
2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3 12.03.21 355 7 9쪽
2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1 12.03.20 424 5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