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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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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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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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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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7,496

작성
12.03.23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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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DUMMY

웃으니 광대뼈가 욱신거린다.

“너 엄청 멍청하구나.”

해줄 말이 없다. 그래, 그땐 내가 멍청했다. 엄청나게.

“택배 왔다고 문을 막 열어주면 어떻게 해? 모르겠으면 경비실에 맡기라고 하던지.”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렇다고 내 잘못은 아니잖아.

백정이 딸깍거리며 모니터를 보다 뒤돌아본다.

“야, 이거 봐. 너 죽었다는데?”

무슨 말인가 싶어 다가가 모니터를 본다.

제목 앞에 검은 리본을 붙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적힌 글이 모니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게 왜 난데?”

“여기 봐.”

그녀가 지인이라고 검색한다.

- 바운스클로의 지인입니다. 클로는 교통사고로 입원 중이었는데 어젯밤 그만…….

눈을 끔뻑인다.

“이 새끼 누구지?”

알 턱이 있나. 뜻 모를 영어로 갈겨놓은 아이디인데.

- 현피당한 거 아님?

-뺑소니였음.

댓글까지 달려 있다.

- 헐, 이제 렙업 할 수 있는 건가.

- 몇 살이었음?

- 잘 된 건가. 기뻐해야 하는 건가.

너무 기가 막혀 헛웃음만 나온다. 백정도 큭큭대며 웃는다.

“야, 비켜봐.”

그녀를 밀어내고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린다. 사이트에 가입하려고 별명을 만들려는데 바운스클로라는 별명이 등록되질 않는다. 클로도, 키티도. 이미 있단다. 백정을 본다.

“너 여기 아이디 있어?”

그녀가 키보드를 빼앗아 로그인해 준다.

- 야이 새끼들아, 나 바운스클로 본인이다. 좀 바빠서 며칠 접속 안 했다고 죽은 사람으로 만들면 되냐, 이 미친 새끼들아. 그리고 내 지인이라는 영어 새끼 너 누구냐, 씨발 좆같은 새끼야. 그리고 왜 바운스클로라는 아이디로 가입할 수가 없냐. 어느 새끼가 나 사칭하고 돌아다닌 적 있냐? 이건 친구 아이디다, 개새끼들아.

글을 올리고 나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든다.

“좋아?”

백정이 물어온다. 돌아본다. 팔짱을 낀 채 한심한 듯 보고 있다. 머리를 긁고 모니터를 본다.

“너 악플러야?”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비켜.”

무시하고 새로 고침을 눌러본다. 댓글이 하나 달려 있다.

- 뭐임? 죽은 사람은 왜 사칭함? 님 그러다 지옥 감.

“비키라고.”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옆으로 팔을 뻗는다.

“저쪽 방에 컴퓨터 하나 더 있어. 거기 가서 해.”

“싫어,”

“비켜.”

“이거 내 컴퓨턴데, 내가 왜 비켜.”

“내가 먼저 하고 있었잖아.”

“싫어.”

딱. 백정이 내 뒤통수를 때린다. 덜컥 겁이 난다. 뒤통수를 만지며 돌아본다.

“머리 때리지 마.”

모니터로 눈을 돌려 새로 고침을 누른다. 댓글이 두 개 더 생겼지만, 먼젓번의 글이랑 비슷한 내용이다.

“비켜.”

백정이 언성을 높인다.

“에이 씨.”

비켜준다.


화장실로 가는 도중 현관 구석에 말라붙어있는 허여멀건 흔적을 본다. 한가운데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내가 토해 놓은 흔적을 누군가 밟았나 보다. 아니, 저건 내 발자국인지도 모르겠다.

욕실에서 젖은 걸레를 가져와 문지른다. 이러고 있자니 서글픔이 몰려든다. 뱃속에서 울분이 솟구친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키티를 만난 후부터 온통 뒤죽박죽되어버렸다. 아니, 키티가 아니다. 시작은 빌어먹을 꿈부터다.

주먹이 꽉 쥐어진다. 그 주먹으로 토사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걸레를 두 번 내리친다. 애써 모아놓은 건더기들이 사방으로 튕긴다. 현관문을 연다. 차가운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들어온다. 한숨을 쉬며 걸레를 밖으로 내밀고 남아있는 조각들을 털어낸다. 다시 걸레로 건더기들을 훔치고 턴다.

병신이 되어버렸다. 억울해도 아무 말 못 하는 병신.

현관문을 닫고 욕실로 가서 걸레를 구석에 던져버린다. 거실로 가서 TV를 켜고 소파에 드러눕는다. 쿠션을 얼굴에 가져다 대고 길게 숨이 찰 때까지 고함을 지른다.

난 병신이다.

“우아.”

난 쓰레기다.

“우아.”

“왜 그래 어디 아파?”

방에서 들려오는 백정의 목소리.


“씨발, 그러니까 그게 왜 나 때문이냐고요.”

“그놈이 도망갈 수도 있었는데, 네가 막았잖아. 그러니까 너 때문이지.”

어처구니가 없다. 키티의 얼굴을 본다. 한 점 부끄럼 없는 얼굴이다.

“형이 죽였잖아요.”

“그래, 내가 죽였지.”

“잠깐 형?”

미미가 끼어든다.

“올해 스물여덟이라고 하지 않았어? 너 몇 년생인데?”

“81년요.”

“키티랑 동갑이네. 왜 형이라고 해?”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동갑?”

“그래, 키티도 81년생인데.”

키티를 본다.

“당신……81이었어?”

그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왜 나한테 형이라고 했냐? 웃긴 놈이네.”

맙소사!

“네가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말문이 막혀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새끼 좆나게 어리게 생겼네. 뭐 먹으면 그렇게 되냐?”

내가 어리게 생겼단 소리는 처음 듣는다.

“네가 늙어 보였나 보지.”

미미가 나를 대변해 준다. 그녀의 말이 맞다. 나는 그가 적어도 나보다 다섯 살은 많은 줄 알았다.

미친 저 얼굴이 동갑이라니, 상상도 해본 적 없다. 같은 나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지금까지 그에게서 느꼈던 공포가 옅어지다 못해 억울함으로 탈바꿈한다.

“그쪽이……. 네가 죽여놓고 그게 왜 나 때문이냐고.”

“아, 진짜 멍청하네. 몇 번이나 이야기해? 그러니까 네가 그놈 못 나가게 막았잖아. 그래서 내가 그놈을 봤지. 모르겠어? 네가 보내줬으면 내가 죽일 일도 없었잖아.”

정말 개념이 없다. 변호사한테 상담이라도 해야 하나.

“네가…… 죽였잖아. 네가 그놈을 보고도 안 죽였으면 됐잖아. 또 네가 그 문 앞에서 지키고 있으라고 했잖아.”

“너 내가 똥 싸라면 싸고, 싸지 말라면 안 싸는 놈이야?”

“미쳤어? 그 말이 아니잖아. 그놈 도망가면 나 죽인다며.”

울분이 폭발해 소파 아래 앉아 있는 키티의 등을 한번 걷어차고는 뒤로 기대앉으며 팔짱을 낀다.

“이 새끼가.”

키티가 주먹으로 내 무릎을 때린다. 나는 키티의 팔뚝을 걷어찬다. 그가 내 다리를 잡고 소파 아래로 끌어내린다. 내 엉덩이에 깔린 감자 칩이 부스러지며 비명을 질러댄다. 키티가 헤드락을 건다. 나는 발버둥친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찾아가서 맞아 죽던지, 도망가던 지하라니까.”

“내가 왜?”

“내가 왜요?”

키티와 내가 동시에 소리친다.

한참을 티격태격하다가 키티가 벌렁 드러누워 버린다. 미미는 잠깐 날 쳐다보더니 입을 연다.

“강남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놈들이 있어. 걔들이 제일 머릿수가 많아.”

“우리 같은 사람요?”

“일단 들어봐.”

“네, 말씀하세요.”

“동대문부터 해서 종로까지 활동하는 놈들도 있어. 얘들이 두 번째로 많아.”

미미가 내 눈을 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준다.

“우리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야. 그냥 프리랜서라고 할 수 있어.”

끄덕.

“이쪽이나 저쪽에서 자기네들이 하기는 귀찮고, 중요한 일도 아니고, 별 돈도 안 되고, 하는 일들은 프리랜서들한테 맡겨.”

끄덕.

“며칠 전에 강남 쪽에서 일을 하나 받았어. 그 일이 너랑 키티가 했던 거야.”

“약쟁이 집에 갔던 거요?”

“그래. 프리랜서들은 그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조사를 해보고 해. 잘못했다가 둘이 싸우는데 끼어드는 건 아닌지, 그런 걸 중점적으로. 괜히 일 한 번 잘못했다가 인생 끝장났던 애들이 제법 있어서. 강남이나 동대문 쪽 애들도 웬만하면 그런 일은 안 맡겨. 지네들도 알거든. 괜히 일 시켰다가 잘못되면 지네들도 곤란해지니까. 프리랜서들이 자기들이 주는 일 안 받으려 하는 경우도 생기고 하니까. 이번 일 받을 때도 내가 조사도 해보고, 이쪽저쪽에 연락도 해보고 했는데, 별문제는 없었어. 그래서 키티 보고 하라고 했지.”

“씨발 문제 있었잖아.”

키티가 누운 채 중얼거린다.

“그래, 문제가 있었어. 조사가 잘못된 건 아니었어. 그 약쟁이랑 그놈 아빠가 문제였던 거지. 강남 쪽에선 자기네 본거지 바로 옆에 약쟁이가 사니까 처리하라고 한 거야. 이쪽에 문제는 없었어. 동대문 쪽에서도 그런 놈이랑 관계없으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했어. 그런데 죽은 약쟁이랑 약쟁이 아빠가 동대문 사람이었어. 아빠는 자기 아들이 약하고 다닌다는 게 쪽팔리니까 말 안 했던 거고, 설마 다른 놈한테 죽겠냐는 생각도 했겠지. 그런데 키티하고 네가 죽였어. 그 아빠는 어떻게 했을 거 같아? 쪽팔린 건 쪽팔린 거고, 이젠 아들도 죽고 없으니 열 받겠지. 열 받으면 복수해야지. 누구한테 복수하겠어? 당연히 죽인 놈한테 복수해야지. 그래서 여기로 동대문 놈들이 왔던 거야.”

“그럼 됐잖아요. 그쪽에서 온 놈들도 죽였다면서요.”

“답답하네. 얘 원래 이렇게 멍청해?”

“좀 답답해.”

“두 번째로 크다고 했잖아. 당연히 또 보내겠지. 그런 놈들을 더 많이. 더 센 놈으로.”

“강남 쪽에서 시켰다면서요. 그럼 그쪽이 잘못한 거 아니에요?”

“그래, 나도 강남 쪽에 전화도 하고 만나러 가기도 했었어.”

“그런데요?”

“잠수타래. 자기들이 나서봐야 전쟁밖에 더하겠냐고.”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럼 어쩌게, 싸우게?”

“그거야…….”

“어디랑? 동대문? 강남? 프리랜서들이 숫자는 제법 되기는 해도 말 그대로 프리랜서야. 같은 편이 아니라는 말이야. 강남이나 동대문하고 싸우자! 그러면 좋아해 보자! 그럴 거 같아? 아니면 우리끼리, 셋이 게릴라전이라도 할까?”

결국, 도망치는 게 최선이란 소리다.

“어떻게 어디로 잠수타라는 거죠?”

“산이나 바다 중에 하나 골라, 둘이 의논해서.”

지금은 춥다. 산으로 가면 추울 것이다. 바다로 가도 그럴 것이다.

“하와이.”

중얼거린다.

“하와이? 비행기 타려다 잡힐걸.”

키티를 본다.

“너는 어디로 가고 싶은데?”

“몰라.”

짜증을 내며 방으로 가버린다. 미미를 본다.

“왜 정해줘?”

“네.”

미미가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연다.

“너네들은 차가 없어서 문제네. 면허증 없지?”

“면허증은 왜요?”

“면허증이라도 있으면 움직이기 좋잖아. 차야 뭐 아는 사람 차를 빌리든지, 대포차를 하나 사든지 하면 되는데.”

“네.”

“면허증 없지?”

“네.”

“그럼 한군데 박혀 있어야 하는데, 너 덕유산 알아?”

“이름은 들어본 거 같은데요.”

“거기서 조금 더 가면 황석산이라고 있는데, 거기 하우스 하나 있어. 그리로 갈래?”

“또?”

키티가 벌떡 일어나며 크게 소리친다.

“전에 거기 있었는데 안 들켰잖아. 들킬 때까지 써먹어야지.”

“아, 거기 한 시간이나 나가야 슈퍼 하나 있잖아.”

“사람 시켜서 과자 같은 거 보낼게.”

“저번에도 보낸다고 해 놓고 안 보냈잖아.”

투덜대는 키티를 무시하고 미미가 나를 본다.

“어쩔래?”

어깨를 으쓱한다.

“가죠, 뭐.”

“보내줘야 해.”

키티가 한마디 더 붙인다.

“알았어. 일주일마다 보낼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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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2.05.30 20:18
    No. 1

    아, 이제 좀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까 구역을 잘못 건드렸다는 거네요, 정보가 부족해서. 미미 말 잘하네요...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예요 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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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7 274 3 9쪽
4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5 209 2 8쪽
4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3 25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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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07 376 7 7쪽
3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6 289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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