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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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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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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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7,496

작성
12.04.02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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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DUMMY

벌써 이주가 흘렀다. 따분하다. 지루하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싶다. 언제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이곳에서 영영 늙어 죽을 때까지 지내야 하는 건 아닌지. 그것도 키티라는 놈과 같이. 이럴 줄 알았으면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집에서 버텨봤어야 했는데. 이곳에 오기 전 보았던 사이트의 글들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을지, 그저 궁금하기만 하다.


“야, 나와.”

이야기를 끝낸 미미가 집에서 나가고 삼십 분쯤 지났을까. 키티가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더니 험상궂은 얼굴을 디밀고 다짜고짜 말하는 것이었다.

“어디 가는데?”

“그냥 따라와.”

나는 트레이닝복만 입은 채로 그에게 질질 끌려나갔다.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다. 산속으로 들어가 잠수를 탄다고 해도 식량이나 옷은 챙기고 갈 걸로 생각했다. 여행 간다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끌려나갈 때도, 잠수 준비물이라도 사러 가는 건가 싶어 지갑 하나만 달랑 챙긴 상황이었다. (휴대폰도 챙기지 못했다.) 그런데, 변해가는 상황은 내 짐작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었다.

키티와 나는 택시에 탄 채, 서울 관광을 온 외국인처럼, 시내를 빙빙 돌다가 밤늦게서야 안의라는 곳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사실 버스를 타기 전까진 키티가 왜 이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서울땅에 작별인사라도 하나 싶었던 것이다. 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격렬하게 항의해봤지만, 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터미널 부근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낸후(하룻밤이라고 해도 키티와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 대화조차 몇 마디 없었다.)아침일찍 버스를 타고 황산리에 도착했다.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는 버스에서 내려 근처를 둘러보았다. 생각했던 것만큼 두메산골은 아니다, 라는게 마을의 첫인상이었다. 상점도 있고 민가도 생각보다 많았다. 지낼만하지 않겠나 싶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시 한 번 무너지고 말았다. 키티는 마을을 관통해서 저 멀리 보이는 산을 향해서 묵묵히 걸었다. 물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반쯤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산속에 비밀기지라도 되는 듯 검은 천으로 덮어놓은 작은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민가 하나 없는 곳에 틀어박혀 있는 비닐하우스 한 채. 키티는 그 앞에 서서 잠시 서성이더니 하우스로 다가갔다.

“여기 전기는 들어와?”

나의 첫마디였다.

“어.”

키티가 출입구로 가 왼편의 부직포 사이로 손을 넣었다. 잠시 후 부직포를 빠져나온 그의 손에는 열쇠가 하나 들려있었다.


슬쩍 창문을 열어본다. 허연 구름이 둥실둥실 떠있는 새파란 하늘이 보인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좀 후련해질 줄 알았더니, 웬걸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 버렸나 보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만 더 간절해진다.

창문을 닫고 뒤돌아본다. 화면이 꺼져 있는 아날로그 TV가 보이고, 그 아래 대자로 뻗어 눈을 감고 있는 키티가 보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키티가 되고 싶다. 키티가 되어서 나보다 약한, 가령 나 같은 누군가를 흠씬 패 주고 싶다. 그러면 좀 덜 지루하려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조용히 일어선다. 이대로 있다간 제 명에 못 살 것 같다. 이대로 며칠만 더 지났다가는 관절에 녹이 슬어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것 같다.

발소리가 나지 않게 온 신경을 집중하며 문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손잡이에 손을 올린다.

잠깐만, 아주 잠깐만 나갔다가 오는 거야. 잠깐 나갔다 오는데 무슨 일이 생기기야 하겠어? 아니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산속에서 길을 잃는다 해도 여기 이렇게 갇혀 있는 것보단 행복하지 않을까?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민다. 끼익. 귀속을 긁는 소리가 난다. 뒷덜미에 자리 잡고 있는 솜털들이 일제히 곤두선다. 그다지 큰소리는 아니었다. 내 귀에만 벼락 치는 것 같이 들렸을 뿐이다. 슬쩍 뒤돌아본다. 키티는 미동도 없다. 다시 문을 민다. 끼이이익.

정말 싫다. 제 놈이 뭐라고. 조금 열릴 때마다 꼭 이렇게 신호를 보낼 의무가 있는 건 아니잖아. 금으로 만들어진 문도 아니고, 기껏해야 쇳덩이 따위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누가 자기를 훔쳐갈까 봐 고함이라도 지르는 모양새다.

“어디가?”

젠장. 윗입술을 까뒤집으며 이마에 힘을 준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고, 당황하면 어릴 적부터 그렇게 된다.

이대로 도망쳐버릴까. 도망치면 잡히겠지. 잡히면 어떻게 될까? 불현듯 예전에 읽었던 시가 떠오른다. 제목이 나비였던가. 죽어서 저승에 갔을 때 부모, 친구들을 만나면 주머니 속에서 부스러진 나비의 잔해를 꺼내 보여주며, 이것을 좇다 왔다고 말하겠다던 시였다. 나 역시 잡혀서 맞아 죽는 일이 생긴다면, 저승에서 기다릴 엄마 아빠에게, 혹시나 만날 아는 사람에게, 난 자유를 쫓다가 죽었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 가냐고.”

키티의 언성이 높아진다. 이게 다 이 빌어먹을 문 때문이다. 천천히 돌아본다.

“밖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러면 밖으로 보내 줄지도 모르니.

“밖에 어디?”

“그냥 바람 좀 쐬러.”

“어디?”

어깨를 으쓱한다.

“나가지 마.”

“왜?”

“죽을지도 모르니까, 나가지 마.”

“왜 죽어?”

“재수 없으면 약쟁이들 만날지도 몰라.”

“약쟁이?”

“어.”

“전에 서울에서 네가 죽였던?”

“아니, 그런 놈은 아니고. 아 모르겠다. 그냥 나가지 마.”

“뭐가 위험한지 말을 해줘야 자꾸 나갈 생각이 안 들 거 아냐.”

“아, 정말 귀찮은 새끼네.”

그의 말을 기다린다.

“너 전에 왜 우리가 약쟁이를 잡으러 다니냐고 물었지?”

“어.”

“우리 같은 놈들은 약 맞으면 돌거든. 좀 약한 약은 괜찮은데, 센 걸로 맞으면, 네가 꿈 꾸는 것처럼 그렇게 된다고 들었어. 괜히 경찰한테 잡히면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우리가 약쟁이들을 미리 없애는 거고.”

“그런데 약쟁이들이 왜 이런데 돌아다녀?”

“아 씨발, 가만히 좀 들어. 지금 말하려고 하잖아.”

고개를 까딱한다.

“진짜 사람 중에도 약 맞으면 우리가 보이는 새끼들이 있어. 그 새끼들은 우리 같은 놈들을 찾아다니면서 죽여.”

“우리가 보여, 뭐가, 어떻게?”

“속에 있는 게 보인다고 들었어.”

“속에 있는 게 보인다고?”

“어.”

“어떻게 보인다는 말이야?”

“나도 몰라.”

“내 꿈처럼 그렇게 보인다는 말이야?”

“네 꿈이고 지랄이고, 몰라, 모른다고. 씨발 내가 상상해서 말해줘?”

키티가 날 힐끔 보더니 그 자리에 드러누워 버린다.

“끝이야?”

“어, 끝이야.”

“그러니까 여기서 나가면 약 맞고 돌아다니는 놈을 만날 수도 있다, 그거야?”

“그래.”

“우리를 왜 죽이는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 새끼들한테 물어봐.”

“사냥꾼 같은 그런 거네.”

“어, 맞아. 사냥꾼이라고 하는 애들도 있어.”

“서울에서는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괜찮았잖아.”

“그거야, 그놈들이 경찰한테 잡혀가니까 그렇지.”

“응?”

키티가 몸을 일으킨다. 그의 얼굴에서 짜증이 묻어나온다.

“아 진짜,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던데, 씨발 네 머리가 나쁜데 왜 내 입이 고생하는 거냐.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고. 약 처맞고 서울에서 돌아다니면, 그럼 경찰이 가만 있겠냐? 경찰은 어떻게 넘어간다 쳐도, 그놈들이 우리 같은 놈들 죽이려고 한다 했잖아. 네가 아무 생각 없이 길 걸어가는데 어느 미친놈이 너 때려죽이려고 해. 어쩔래?”

“도망가야지.”

그가 한숨을 쉰다.

“도망갈 데가 없으면?”

“그럼……. 싸워야지?”

“그래, 싸워. 보통 사람이랑 우리랑 싸우면 누가 이기겠냐?”

“우리가?”

키티가 끄덕이더니 머리를 북북 긁는다.

“그럼 그놈들은 어쩔 거 같아? 총이든지 폭탄이든지 우리 같은 놈들 만나면,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걸로 가지고 다녀야지. 그런 거 들고 다니는 놈들이 경찰들이 득실거리는 서울로 올라오겠어?”

나는 키티와 조금 떨어진 곳에 드러눕는다. 죽기는 싫다.


작가의말

생각했던 한 주보다 조금 더 걸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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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2.05.30 20:20
    No. 1

    아... 그렇게 된 겁니까? 그렇게 동물로 변하는 이들을 사냥하면 무슨 메리트가 있는 건가요? 동물들만 따로 담을 수 있는 주술이라도 있나...? 한 주보다 조금 더 걸린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말씀하시면 저는 뭐가 됩니까...!!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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