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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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24,590
추천수 :
215
글자수 :
207,496

작성
12.03.22 00:17
조회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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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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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DUMMY

오늘 하루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또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은 모르는 것투성이다. 알고 싶지도 않다.

벽에 기대서서 배를 문지른다. 감았던 눈을 뜬다.

“너 뭐야?”

“원훈.”

“씨발, 누가 좆 같은 네 이름 물었어, 뭐 하는 놈이야?”

“집주인인데…….”

몸이 솟구쳐 올랐다 내려온다. 입에서 토사물이 쏟아져 나온다.

뭐하는 놈인가 물어봐서 집주인이라고 했다. 백수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어엿비 너겨 때리지 않았을까.

“더러운 새끼.”

온몸에 힘이 빠져 주저앉는다. 한 번 더 게워 낸다. 눈물이 흘러 시야를 가린다. 기침도 나온다. 위가 자꾸 입 밖으로 기어나오고 싶어한다.

“그놈 어딨어?”

그놈이라면 키티겠지. 말해주고 싶다.

입을 여니 억억대는 소리와 함께 헛구역질만 나온다. 택배기사가 발끝으로 내 무릎을 툭툭 건드린다. 이것을 신호로 받아들인 건지 내장이 격렬하게 몸부림친다.

“우억 우억.”

더 튀어나올 것도 없는지 멀건 액체만 입술을 타고 흘러내린다. 실 같은 침줄기는 덤이다. 저 멀리에서 잔잔한 음악이 들려온다.

“저기 있나 보네요.”

두 명이 신발을 신은 채 걸어 들어간다.

신발 신고 가면 안 되는데. 키티가 화내는데.

고개를 들어 그들의 뒤를 쫓는다. 초점이 제대로 맞춰지지 않는다.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뜬다. 그들은 키티의 방 앞에 서서 뭐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곧 졸로 보이는 녀석이 끄덕이더니 방문을 열어젖힌다.

문을 부수지 않아 다행이다.

두 놈은 방안으로 뛰어들어간다. 툭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제발, 누가 이기던지, 날 때리지는 말았으면 한다. 말 잘 듣는 아이가 될게요.

몸을 비틀어 차가운 벽에 얼굴을 대고 다리를 옆으로 쭉 뻗는다. 미끌미끌한 토사물 위를 쭉 미끄러지는 다리가 느껴진다. 썩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지만, 움직이기가 너무 힘들다. 눈을 감는다. 여전히 속은 메슥거린다.

짝짝. 퍽퍽. 손뼉 치는 것 같은 소리와 오리털 파카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뒤섞여 귓속으로 파고들어 온다. 고개를 숙이고 한 번 더 토하려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위장을 돌덩이로 눌러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 엄청나게 피곤하면서 고통스럽다.

다시 말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방 안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게 더 무섭게 느껴진다.

제발, 나를 건드리지 말았으면. 제발. 춥다. 너무 춥다.

발소리가 들린다.

구두굽 소리가 아닌 걸 보면 키티 같기도 한데, 장판 바닥이라 그런 소리가 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내 귀가 쫑긋거리는 게 느껴진다. 눈을 뜨고 싶지만, 눈꺼풀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단두대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사형집행인이 밧줄을 끊기만을 기다리는 심정이 이럴까.

“야, 저놈들 뭐야?”

있는 힘껏 눈을 뜬다. 어렴풋이 보이는 그것은 역시 키티다.

설마 날 때리진 않겠지.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몰라?”

“택배기사.”

내 입에서 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택배?”

고개를 끄덕인다. 눈에 힘을 주고 초점을 맞춘다. 코가 한쪽으로 비틀린 채 콧구멍에서 피를 흘리는 키티의 얼굴이 보인다.

“맞았냐?”

끄덕인다.

“이거 네가 오바이트한 거냐?”

끄덕인다.

“좀 치워.”

끄덕인다.

“저 새끼들 뭐지?”

그걸 나에게 물어보면 어쩌자는 건지. 아 미친 택배.


잠시 졸았나 모르겠다.

“저놈들 누구야?”

“어? 네가 줬잖아.”

“뭐야?”

“왜?”

“아, 씨발 미치겠네.”

“내가 왜 너한테서 일 받는데?”

“당연히 네가 해줘야 하는걸.”

“씨발, 미안하다면 다야?”

“어쩌라고?”

“몰라, 둘.”

“죽었지.”

“몰라, 씨발 나는 몰라. 알아서 해.”

키티의 목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상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혼자 뭐하는 걸까. 귀신이라도 들린 건가. 아니면 모노드라마라도 찍는 걸까.

눈을 감고 있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 빙글빙글, 뱅글뱅글.

“야야.”

뺨을 두드린다.

“네.”

웅얼거리는 소리.

“치워.”

“네.”

“치우라니까. 냄새나잖아.”

“네.”

눈을 뜰 힘이 없다.


차가운 공기가 몸을 감싼다.

“뭐야, 얘 왜 이러고 있어?”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미미? 미미구나.

“야, 치우라니까.”

키티의 짜증 섞인 목소리.

“네.”

여전히 눈꺼풀은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영영 붙어버린 건 아닌가, 겁이 난다.

“얘 왜 이래?”

“맞았다는데.”

“그놈들은 어딨어?”

“방 안에. 뱀은?”

“바쁘다던데.”

“다른 놈들은?”

“전화 안 해봤어.”

“그럼 저건 어떻게 해.”

“음, 어떻게 할까?”

모든 것이 꿈만 같다. 그래 제발 꿈이어라.


차가운 바람이 나를 깨운다.

춥다. 엄청나게 춥다. 아까도 추위 때문에 일어났었나 보다.

“야.”

여자다. 여자가 뺨을 건드린다.

“왜 이래?”

미미의 목소리는 아닌데.

“아 진짜, 신발에 다 묻었어. 이거 뭐야, 더럽게.”

들어본 목소린데.

“술 취했어?”

고개를 젓는다.

“맞았데.”

미미의 목소리.

“얘가 이래 논 거야?”

“그렇다네.”

부연 설명이라도 하듯이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깨어 있나 보네.”

한 번 더 끄덕인다.

“자다가 깨다가 계속 이러네.”

“야, 클로, 클로.”

실눈을 뜬다. 빛이 새어 들어온다. 세 개였던 실루엣이 차츰 둘로, 하나로 합쳐진다.

백정이구나.

다시 눈을 감는다. 엄청나게 어지럽다. 토할 것 같다.


누군가 발끝을 툭툭 건드린다, 눈을 뜬다, 키티가 서 있다, 벌떡 일어난다, 현기증이 밀려온다. 휘청거린다.

“어, 이 자식 이거 왜 이래?”

키티쪽으로 넘어지긴 싫었는데.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다.

“야 미미. 이리 와 봐. 이놈 죽으려고 하는데.”

눈을 끔뻑인다.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리고 키티가 내 어깨를 잡고 벽에 밀어붙인다. 세상이 비틀거린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미미가 다가오더니 내 뒤통수를 살핀다.

“혹 났네. 뇌진탕인가 보다. 또 토할 거 같아?”

“모르겠는데요.”

기껏 대답했더니 썩은 목소리가 나온다.

“일어나. 일어나서 방에 들어가서 자. 의사 부를 테니까.”

미미가 구원의 말을 전해준다. 그 소리를 기다린 것처럼 온몸이 녹아내린다. 비틀거리며 방으로 걸어간다.

“야, 이건 누가 치워?”

키티의 목소리.

“네가 치워.”

미미.

“씨발 내가 이걸 왜 치워.”

“그냥 놔두던지.”

“아, 미치겠네.”

더럽게 몽롱한 의식 속으로 그들의 말이 빨려들어 온다.

택배기사의 정체는 뭐였나?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내가 키티 대신 얻어맞았다는 것이다. 택배. 씨발 택배.


“야 일어나. 의사 왔어.”

팔을 툭툭 건드리며 키티가 말한다.

“자게 놔둬.”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다시 잠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눈을 뜬다. 환하다. 천장을 보고 형광등을 본다. 형광등은 꺼져 있다. 아침이나 낮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눈을 감는다. 자려고 노력한다. 성공은 구십구 퍼센트의 노력과……. 난 잠이 드는 데 성공한다. 노력하지 않아도 성공하는 일이 있다.


반복해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힘겹게 눈을 뜬다. 그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눈을 감는다.

그녀인가. 정말 그녀인가. 그녀가 돌아와 준건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눈을 끔뻑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은 건지 그녀가 고개를 돌린다. 돌아가는 고개를 보며 마른침을 삼킨다.

뭘 기대했던 걸까?

나의 그녀가 아니다. 백정이다.

“일어났어?”

끄덕인다.

“괜찮아?”

황송하게도 걱정이라는 것을 해주는 건가.

끄덕인다. 침대 밖으로 발을 내밀고 일어선다.

“너 때문이라던데?”

뭐가, 뭐가 나 때문이지? 물어보려 하지만 메마른 목에서 그륵거리는 소리만 새어 나온다.

목은 맞지 않은 걸로 아는데, 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걸까.

부엌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물을 들이켠다. 그제야 내가 목이 엄청나게 말랐다는 걸 깨닫는다.

“아아.”

목소리가 나온다. 물을 몇 번 더 마시고 거실로 나간다. 아무도 없다. 키티의 방으로 다가가 노크를 한다. 대답이 없다. 문에 귀를 대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슬며시 문을 열어본다. 아무도 없다. 내 방으로 가서 백정 옆에 선다.

“사람들 다 어디 갔어?”

“그쪽 사람들 만나러.”

“그쪽?”

“응, 저쪽.”

그쪽이고 저쪽이고, 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닌데.

“나 때문이라고 했지?”

백정이 나를 본다.

“응.”

“뭐가 나 때문이야?”

“나도 잘 모르겠네. 너 때문에 그놈 잡았다며? 그러니까 너 때문이라고 하던데.”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키티에게 물어보는 편이 낫겠다.

“너 왜 여기 있는데?”

“혹시 모르잖아, 또 그쪽 놈들 올지.”

“또, 택배?”

“택배?”

백정이 되묻는다.

“그 사람이 택배 왔다고 하던데.”

“그 사람?”

“어. 나 때린 사람.”

백정이 미친 듯이 웃어 재낀다.

괜히 기분이 나쁘다. 기분이 나쁘다면서 따라 웃는 나는 또 뭔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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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82 파인더
    작성일
    12.03.23 01:03
    No. 1

    택배드립ㅋㅋ
    근데 아직 뭐가뭔지 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2.05.30 20:16
    No. 2

    처리라고 함은 당연히 그 두 사람을 말하는 걸 테고... 일은 역시 지난번의 그 일이겠죠? 으아아아 머리에 과부하가 걸릴 것 같아요 너무 꼬였어 ㅠㅠ 그래도 다음 편 보면 이해될 거라 믿고 넘깁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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