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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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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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11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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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DUMMY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 게 있어야지. 그렇지만 키티가 그런 소릴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내가 뭐 물어보기만 하면 줘 패 놓고는.

“너 어느 병원에 있었어?”

“어떻게 아세요?”

“아까 환자복 보여줬잖아.”

“아, 제가 걸어온 데서 제법 가면 좀 큰 병원 하나 있는데 거기…….”

“멀리도 왔네.”

“그래요? 여기가 어디쯤이에요?”

“한 삼사십 분 더 가야 하우스 있는 데야.”

“아.”

정말 멀리도 왔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키티가 너 찾으려고 어제 종일 돌아다녔는데 없다고 하데.”

“키티가요?”

“응, 전화로.”

의외다. 키티가 나를 찾아 헤매다니.

“그러더니 오늘 아침에 전화해서는 뉴스에 나온 게 너 같다고, 올 때 근처 병원에 들러보라는 거야.”

“뉴스에요?”

“그래. 그래서 다른 병원 두 군데 가 봤다가, 방금 너 있었다던 병원으로 가던 참이었지.”

아 빌어먹을. 그냥 있었어도 나올 수 있었다는 소리다. 형사에겐 뭐라 둘러댔을지 모르지만, 이 추위 속에서 정신 나간 놈처럼 슬리퍼 한쪽만 신고 논바닥을 구르고,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소리다. 뭐 어쨌든.

“고마워요.”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는 라디오 소리에 묻혀버린다. 키보드로는 미안함이나 고마움을 허무할 정도로 쉽게 표할 수 있는데, 말로는 너무 어렵다. 왜 그럴까? 내가 키보드 워리어라 그런 걸까? 키보드 워리어들은 다 그럴까? 이것도 무슨 병인지 모르겠다. 뚫린 입은 있지만, 튀어나오려는 단어들을 목구멍 속에 있는 가느다란 채로 필터링해서 내보내는.


자동차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로 진입하고도 한참을 들어가더니 멈춰 선다. 문을 열고 내려 주위를 둘러본다. 어둠 너머로 한층 더 짙은 산 그림자가 보인다. 저기 보이는 산은, 내가 지난 삼 주가량을 보아왔던 바로 그 산이다. 떠들어대던 라디오가 시동과 함께 꺼지고, 어느새 뚱뚱하게 변한 미미가 내린다. 차가 출렁거린다. 질량 보존의 법칙이란 오묘한 것이다.

어? 잠깐. 그럼 미미는 변하기 전이랑 변하고 난 후랑 몸무게가 같아야 하는데. 언제 한번 물어봐야겠다. 어떤 게 진짜 모습인지. 몸무게는 변함이 없는지.

미미는 말없이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녀를 따라간다.

“보여요?”

“뭐가?”

“하우스요.”

“아.”

미미는 영문 모를 소리와 함께 침묵 속으로 침잠한다.

아는 뭐지? 무슨 뜻이지? 아 뒤에는 무슨 말을 하려 한 거지? 보인단 말일까, 안 보인단 말일까?


“야 키티, 키티.”

짙은 어둠 한가운데서 빛나는 선이 생겨나더니, 그 선이 범위를 넓혀간다.

“어, 너 뭐냐?”

빛 속에서 키티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는 길에 주워왔어.”

미미가 나 대신 대답한다.

“개한테 물렸다며, 어때?”

“어, 이거 좆나게 아파. 아무래도 의사한테 가봐야겠는데.”

“너 물었다는 그 개가 해태 같아.”

“해태라고?”

“어, 얘가 봤다던데.”

“아 씨발, 그래서 혼자 미친놈처럼 도망갔었냐?”

화살이 갑자기 나에게 날아온다.

“너도 거기 있었어?”

“당연히 있었지. 미친놈이 산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더니, 낚여서 질질 끌려갔잖아.”

“낚여?”

“그래, 너 그 냄새 맡고 갔잖아. 그게 너 같은 놈들 끌고 가는 미끼야.”

“아.”

“그건 그렇고 해태 어떻게 생겼데, 광화문 앞에 있는 거랑 같냐?”

봤던 그대로를 설명해 준다. 미미가 나에게 고개를 돌린다.

“뿔은, 뿔도 있다고 들었는데?”

“아, 뿔 같은 거도 있긴 했는데, 그게 연기처럼 흐릿하던데요.”

“아직 어린놈이었나 보네.”

“크던데요?”

“크긴 개뿔이 보통 길에 다니는 똥강아지더만.”

“크기랑은 상관없어. 뿔로 대충 나이를 알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해태가 사냥개 같은 거예요?”

“대충 뭐 그런 거지.”

“저한테만 그렇게 보였으면, 꿈꾸는 사람만 볼 수 있는 거네요?”

“아니, 중독자들도 볼 수 있어.”

“약쟁이도요?”

“그래, 약쟁이.”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요, 약쟁이가 어떻게 우리를 볼 수 있고 해태도 볼 수 있고 그런 거죠?”

미미가 그런 나를 무시하고 키티를 본다.

“같이 산지도 두 달 정도 안 됐어? 얘한테 왜 하나도 안 가르쳐 줬어?”

“안 물어보잖아. 뭘 물어봐야 가르쳐 주지.”

참 어이가 없다. 묻기만 하면 귀찮다고 주먹을 날리던 놈이.

“올라가면서 이야기해줄게. 뭐 챙겨 나올 거 있으면 지금 해.”

여기 도착했을 때 몸에 지니고 있었던 단 하나, 지갑을 찾으러 하우스로 들어간다. 정들었던 TV와도 작별 인사를 하고, 나를 죽일 뻔했던, 별장에서 끌려온 솥과도 작별 인사를 한다. 모든 준비를 끝마쳤는데 지갑을 찾을 수 없다. 몇 번을 둘러봐도 마찬가지다. 키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야, 가자.”

키티를 본다. 설마 내 지갑을 가져가진 않았겠지. 그랬겠지. 가져갈 필요가 뭐 있겠어. 그냥 지갑 내놔 하면 그만인데. 어디다 흘린 건가? 설마……. 아니, 괜히 부정 탈 생각은 하지 말자.

“안 나와?”

키티가 눈을 치켜뜬다. 그래도 작은 눈이다.

“그래, 나가. 나가.”

밖으로 나가 자동차 뒷좌석에 올라탄다.

“너 뭐야, 사장님이야?”

창문 너머로 키티를 본다. 사장님은 또 뭔가.

“내려 자식아.”

미미를 보니 그녀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문을 열고 내린다. 키티가 잽싸게 내 자리를 차지해 버린다. 넌 사장님이냐?

앞좌석에 올라탄다. 그가 반쯤 드러누워 담배를 빼물더니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입을 연다.

“이제 어디로 가?”

미미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며 뒤돌아본다.

“글쎄, 모르겠네. 옮기기는 해야 할 텐데. 일단 의사부터 만나고 나서.”

“서울은 아직 그대로야?”

“더 심해졌어.”

“전에는 조금만 잠수 타면 된다며. 지난번보다 더 오래 있어야 돼?”

“모르겠어. 지금 서울 분위기가 장난 아니라서. 아주 끝장을 볼 거 같기도 하고.”

자동차가 뒤뚱거리며 출발한다.

“그럼 어느 한 쪽에 붙어야 하는 거 아냐?”

“네가 어디로 붙게?”

“네 아빠 쪽에.”

“안돼!”

창문에 기댄 채 그들의 이야기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던 나는 미미의 고함에 눈을 번쩍 뜬다.

“왜 안 돼?”

“지금 눈에 띄면 당장 넘겨버릴걸?”

“그럼 뭐 할 수 없고.”

그들의 대화가 끊기고 정적이 찾아오지만, 한번 달아났던 잠은 돌아오지 않는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하고, 입을 한껏 벌렸다 다물기도 해보고, 화살이 박혔던 허벅지를 무심결에 건드렸다 사무치는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한다.


“너 아까 물었었지? 중독자들이 어떻게 우리도 볼 수 있고 해태도 볼 수 있냐고.”

미미가 말을 걸어온다.

“네.”

“음, 보통 마약을 하면 환각이 보인다고 하잖아.”

“네.”

“그런 거야. 환각 속에서 진짜를 보는 거지.”

환각 속에서 진짜가 보인다고? 그럼 실제로 보이는 건 가짜란 말인가?

머릿속이 간지럽다. 겉이라도 긁으려고 손을 들던 나는 하필 그게 다친 팔이라 지끈거리는 통증에 신음을 흘린다. 내가 내는 소리를 알아들었다는 신호로 오해했는지 계속 이야기를 한다.

“약을 하면 대충 꿈꾸는 거랑 비슷해. 나는 꿈 기억도 안 나고 약도 안 해봐서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들었어. 강도가 센 약이면 더 비슷해진다고 하던데.”

“저기 환각상태에서 진짜를 본다고 하셨잖아요.”

“응? 어 그랬지.”

“그럼 지금 눈에 보이는 건 가짜란 말이에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너 자외선 알지?”

“네, 알긴 아는데.”

“그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그러니까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 말고도 진짜가 더 있다는 말이야, 환각상태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럼 제 꿈도 환각상태라는 말이 되네요.”

“그렇게 되나? 그럴지도 모르겠네.”

“약 맞으면 다 그래요?”

“진짜가 보이는 거?”

“네.”

“아니, 안 그런 사람도 있는데……. 이건 내 생각인데 말이야. 왜 사극 같은데 보면 그런 거 나오잖아.”

“그런 거요?”

“그래, 그 뭐지?”

사극에 나오는 건 왕과 신하들, 장군들 또…….

“무녀 같은 거, 제사장 같은 거.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혈통으로 이어지잖아. 아니면 조건 맞는 애들 찾아서 어릴 때부터 훈련을 시키던지. 내 생각에는 그런 애들이 환각상태에 빠지면 보이는 것 같아. 그런 체질이 있든지, 그런 피가 있든지 하겠지.”

모르겠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무녀는 뭐고 제사장은 뭐고 혈통은 또 뭐고. 이틀 전에는 몸으로 고생하더니 오늘은 머리로 고생하고.

“그런데 그 사람들이 왜 우리 같은 사람을 죽이려 하는 거죠?”

“글쎄, 왜 그럴까, 인간들은 왜 그럴까? 네가 말해봐. 인간들은 왜 그래? 넌 나보다 인간으로 훨씬 오래 살았잖아.”

생각해 본다. 인간들은 왜 그럴까. 아마도 내 생각이 맞는다면…….

“사냥꾼만 있는 거 아니죠? 사냥꾼 말고도 더 있죠?”

미미가 흥미롭다는 얼굴로 나를 힐끔 본다.

“아주 바보는 아니네.”

당연하지. 나도 한땐 엘리트가 될 수 있었는데…….


작가의말

댓글이 많이 달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적어도 이만큼은 된다는 말이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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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11 309 4 9쪽
3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5 12.04.10 293 4 9쪽
3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1 12.04.09 287 3 9쪽
3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07 376 7 7쪽
3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6 289 4 9쪽
2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5 427 4 10쪽
2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1 12.04.04 357 5 9쪽
2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3 12.04.03 491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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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1 12.03.23 515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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