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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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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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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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09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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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DUMMY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다른 말로 자본주의 국가라고도 한다.

자본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돈이고, 자본주의 국가란 말은 돈의 국가라는 소리다. 돈의 국가에 살면서도 돈이라는 말을 순화시켜 자본이라는 말을 쓰고, 그마저도 마뜩잖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본주의를 양분 삼아 자유민주주의가 가지를 뻗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것이다.

아무리 자유가 흘러넘치고 민주가 살아 숨 쉬고 있다고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말짱 황이다. 일단 돈이 있고 나서야 자유를 만끽할 수 있고, 민주도 누릴 수 있다. 즉 자유와 민주를 돈으로 산다고 말할 수 있겠다.


누군가 자유를 찾아서 아주 멀리 여행을 떠난다. 자유만을 찾아서. 그런데 청승맞게도 돈이 없다. 그럼 그곳에서 일을 하든지, 소매치기를 하든지, 삥을 뜯든지, 구걸을 하든지 어떻게 해서든 돈을 구하려 할 것이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하고 싶지도 않은 뭔가를 해서 돈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다.

민주주의의 꽃은 투표라고 한다. 투표 날이 되어 꽃을 꽂으러 가려는데, 어느 돈 많은 사람이 와서 몇백, 몇천(적은가?), 몇억, 몇십억을 줄 테니 특정 인물에게 투표하라 한다면, 내 꽃 따윈 당장 팔아 버리겠다. 아주 양심 있는 누군가는 꽃을 지킬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자본주의다.

민주 위에 자본이 있고, 자유 위에 자본이 있다. 내가 이따위 생각을 왜 하고 있을까.


빌어먹을. 빌어먹을. 나는 지금 병원에 있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국가고, 이곳은 자본주의 국가의 병원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병원에서 돈을 받지 않고 사람을 치료해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게 선불이든, 후불이든 중요하지 않다.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이지만, 나 같은 구급차에 실려온 환자는 나라에서 병원비를 대신 내줄지도 모른다. 운이 좋다면 말이다.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일단 치료를 받았는데, 돈을 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모르겠다. 쫓겨나기만 하면 다행인데. 그럴 리는 없겠지만, 콩팥이라도 떼 놓고 가라면 어쩌지?

내 정체를 밝히고 지장을 찍든, 팔 한쪽을 맡겨놓든 해서 돈을 가지고 올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도 없다. 팔다리에 화살을 하나씩 꽂은 놈이 구급차에 실려오면, 경찰 아저씨들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우라지게 다행스럽게도 나는 신분을 증명할 만한 걸 가지고 있지 않았고, 기억 상실증에 걸린 녀석처럼 행동했다. 그게 전부다.

여기 실려온 지는 만 하루가 지났다. 첫 심문을 당하고 나서부터 나는 계속 자는 척을 했고, 경찰 자기네들끼리 숙덕거리는 이야기를 엿들은 바로는 어디 감금당해 있던 놈이 탈출한 게 아닐까 싶단다. 솔직하게 내 정체를 밝히고, 사실 나는 서울에 사는 아무개인데, 꿈 때문에 어느 이상한 놈한테 걸려서 여기까지 끌려왔고, 꿈 때문에 사냥꾼한테 화살을 맞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 꿈이 어떤 꿈인지 물어본다면, 짐승을 죽이는 꿈인데, 꿈이 진짜였고 벌써 저 같은 놈 몇을 죽였습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을 말하는 건 아주 먼 훗날의 일이 되어야 한다. 정신병원이나 감옥에 갈 수는 없잖아?


오줌이 마렵다. 실눈을 뜨고 천천히 주변을 살핀다. 아무도 없다. 침대 밖으로 다리를 뻗고 일어나려 한다. 뭔가 내 팔을 꼬집으며 잡아당긴다. 그제야 내 손등에 링거 바늘이 꽂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링거 대를 앞세우고 병실 밖으로 나간다. 나를 심문했던 형사 중 한 명이 긴 의자에 드러누워 자고 있다. 별로 하고 싶은 말도 없고, 듣고 싶은 말도 없다. 그를 남겨두고 쩔뚝이며 화장실로 간다. 변기 속으로 누런 액체를 흘려보내며 팔에 감긴 붕대를 본다. 환자복에 가려 보이지 않는 허벅지에도 붕대가 감겨 있으리라. 헛웃음이 나온다. 키티가 생각나고, 사냥꾼의 뒷모습이 생각나고, 푸른 비늘의 괴물이 생각난다. 대체 그놈은 뭘까? 내가 아인슈타인 정도 되는 것도 아니고, 처음 봤던 것을 다시 떠올린다고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병실로 돌아간다. 침대 옆 수납장을 열어본다. 남색 트레이닝복이 보인다. 그걸 꺼내 침대 위에 두고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어본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다. 입고 있는 환자복 위에 트레이닝복을 대충 포개 입고 밖으로 나간다. 형사는 여전히 자고 있다. 나가는 중에 간호사가 물어오면 바람 좀 쐬러 간다 말하려 했는데, 간호사는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거린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주머니를 더듬어본다. 아까도 없었던 게 이제 와 생길 리가 만무하다. 하우스로 돌아가든지, 서울로 돌아가든지, 어디든 돌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간단 말인가. 돈은 한 푼도 없고,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지나가는 차도 없다. 설령 차가 있다 해도, 내 꼴을 보고 설지 의문이다. 봉두난발에 트레이닝복 사이로 보이는 환자복. 그리고 슬리퍼. 정신병원에서 막 탈출한 사람 같다.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잠깐 걸어본다. 아무 느낌이 없다. 돌아서서 오른쪽으로도 걸어본다. 역시 아무렇지 않다. 나는 식스센스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한숨을 내쉬고 계속 걷는다.

일단 병원 앞에서 사라져줘야지. 영업을 방해할 수는 없잖아.


걷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뒤쫓아오는 사람 한 명 없는데 계속해서 뒤를 확인하며 걷는다. 병원에 계속 있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고개를 치켜든다. 차라리 내 정체를 밝히고, 그럴듯한 말이라도 지어내서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지 말았다면, 이랬다면. 시작이다.

다시 돌아갈까. 멈춰 서서 뒤돌아본다. 멀찍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녹색 십자가가 미끈한 자태를 뽐내며 나를 유혹한다.

지금이라면, 저 불빛이 멀리서나마 보이는 지금이라면 돌아갈 수 있다. 돌아가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옷을 벗어 수납장에 넣어둘 수 있다.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 싶진 않다. 다시 걷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저 춥기만 하다. 작은 소음에 고개를 돌린다. 불빛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멈춰 서서 그 빛을 홀린 듯 바라본다. 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정체를 알아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다. 물끄러미 자동차를 바라본다. 차는 길가에 서 있는 나를 무시하고 쌩하니 지나가 버린다. 왠지 섭섭하다. 손을 들지도,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그랬다면 도움을 받았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서 지나가 버린 차에 서운함만을 가진다.

이제 세 번 남았다. 세 번의 꿈, 세 번의 발작이 남았다. 키티는 나를 죽이겠지. 내 속에 있는 곰과 나를 합치겠다 하는 생각은 단념했다. 이것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한다 하는 개념조차 이해되지 않으니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아니, 내가 뭔가를 해보겠다는 마음을 가졌었는지도 의문이다. 키티가 나를 죽이겠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도 농담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설마 죽이겠어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시 소음이 들린다. 고개를 든다. 멀리서 불빛이 다가온다. 왼팔을 수평으로 쭉 뻗고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그런 나를 외면하고 자동차는 지나간다. 이번에는 그다지 섭섭하지 않다.

그랬었나. 어렴풋이 깨닫는다. 도움을 청해 본 적도 없는 녀석이,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세상에는 내 편이 아무도 없다며 불평하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행동이었나 하는 것을.

그리고 한 가지 더. 도와달라고 손 내미는 일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주위에 아직 사람들이 남아 있을 때, 손을 내밀어 볼 걸 그랬다. 도와주겠니 물어볼 걸 그랬다.

지금에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때 나는 도움을 요청하면, 나약함을 내보이면, 내 안의 뭔가가 부서져 버리는 줄 알았다. 그게 자존심이 되었든, 체면이 되었든, 나 자신이 되었든, 산산조각이 나버려 두 번 다시는 회복 못 할 상처가 되는 줄 알았다.


작가의말

뭐라고 후기를 적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주변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 혹시 공지사항 어떻게 쓰는지 아시는 분 계시면 좀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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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2.05.13 255 1 9쪽
4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2.05.09 206 1 8쪽
4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 12.05.07 209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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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1. +2 12.05.02 241 1 9쪽
4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1. 12.04.30 207 2 10쪽
4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7 274 3 9쪽
4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5 209 2 8쪽
4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3 259 2 9쪽
3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3 12.04.21 240 2 10쪽
3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7 266 3 12쪽
3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5 24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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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12 324 2 9쪽
3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11 309 4 9쪽
3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5 12.04.10 293 4 9쪽
»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1 12.04.09 288 3 9쪽
3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07 376 7 7쪽
3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6 289 4 9쪽
2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5 427 4 10쪽
2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1 12.04.04 358 5 9쪽
2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3 12.04.03 492 6 8쪽
2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1 12.04.02 485 7 8쪽
2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1 12.03.23 515 5 11쪽
2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2 12.03.22 433 6 9쪽
2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3 12.03.21 355 7 9쪽
2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1 12.03.20 424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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