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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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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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13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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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DUMMY

한숨을 쉬며 축축한 침대를 짚고 일어선다. 다리가 후들거려 당장 쓰러져버릴 것 같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귀에서 이명이 들린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벽을 짚어가며 힘겹게 거실로 나간다. 전화기를 들고 미미의 휴대폰 번호를 누른다.

“여보세요?”

“저 원훈인데요.”

“누구?”

“푸요.”

“아 그래. 깨어났네?”

“네.”

“웬일이야?”

나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다.

“저번에 저 같은 사람 소개해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아아, 그랬지. 잠깐, 오늘이 며칠이지?”

수화기 저편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벌써 이렇게 됐나? 십 일밖에 안 남았네.”

“저기, 어디로 가야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예전에 의사……선생님한테서 듣기로는 도봉 쪽에 드리머들이 있다던데, 거기로 가야 하나요?”

“어 그래, 잠깐만.”

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야 이 멍청아, 여기 말고 저쪽으로, 하는 소리가 가물거린다.

“의사한테 들은 게 맞아. 도봉구청으로 가서 큰 도로 쪽 말고 반대편으로 가 보면 벤치 여러 개 있거든. 거기 앉아 있어. 그럼 누가 올 거야. 그 사람한테 내 소개로 왔다고 하면 돼.”

“네 그럼 다른 거 물어볼게…….”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지금 좀 바빠서.”

바로 전화가 끊어진다. 벽에 기대선 채 전화기를 바라보다가 화살이 박혔던 팔뚝을 본다.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를 것 같다. 흉터가 남든 안 남든 별 중요하지는 않지만.

방으로 돌아가서 옷장을 연다. 두꺼운 옷을 잡았다가 계절을 떠올리곤 청바지와 베이지색 니트를 꺼내 침대 위로 던진다. 마우스를 딸깍거리던 백정이 돌아본다.

“나가려고?”

말없이 끄덕인다.

“어디?”

“도봉.”

“그쪽 애들 만나러?”

“어.”

“잘 갔다 와.”

옷장을 닫고 침대에 걸터앉는다. 축축하다. 바지 속으로 다리를 끼워 넣는다. 생각해 보니 지갑도 없고 돈도 없다.

“야 돈 좀 빌려줘.”

“싫은데.”

싫다는데 어쩌겠나. 싫으면 싫은 거지. 실망할 가치도 없다.

니트에 머리를 끼워 넣는다. 힘이 없어 머리를 밖으로 빼내기가 쉽지 않다. 겨우 옷을 다 입고 다시 옷장을 열어 아래쪽 수납장을 열어본다. 쓰진 않지만 버리지도 않았던 워크맨, CD 플레이어, 핸드폰 상자가 보이고 그 속에서 낡은 지갑을 찾아 꺼내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방을 빠져나가려 할 때 백정이 말한다.

“세수라도 하고 가지 더러운데.”

얼굴을 만져본다. 덥수룩한 수염이 만져진다. 한숨을 쉬고 욕실로 들어간다.


은행에서 카드를 새로 발급받고 오만 원을 찾는다. 밖으로 나가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본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도 그대로 고산도 그대로다. 세상은 변함이 없다. 내가 사는 세상은 그대로다.

택시를 세워 올라타고 도봉구청으로 가달라고 한다. 중년의 택시 기사는 신호를 받고 멈춰 설 때마다 대통령 욕을 해댄다. 내가 대통령과 아는 사이도 아니고, 특별히 그 사람에게 호감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욕하는 것은 상관없는데, 자꾸만 내 동의를 구한다. 네, 네, 하며 대답은 하지만 왜 욕을 하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알아봐야 뭐하겠나 싶다. 취임 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렇게 욕을 해대는 건지. 고작 두 달 잤다고 내가 타임워프라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타임워프를 하긴 한 건가.


구청 앞에 택시가 멈추고 돈을 주고받고 내린다. 입에는 네라는 대답이 붙어버려 누가 와서 도를 아십니까, 물어오면 네라고 할 것 같다.

미미가 말했던 곳으로 찾아가 벤치에 앉는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닌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들어보지만,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다.

너무 늦어버린 걸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누군가 신발을 툭툭 걷어찬다.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뜬다. 머리 위에서 내리쬐던 태양은 건물 뒤로 숨어버린 지도 제법 지난 듯 거리 곳곳에는 땅거미가 지고 있다. 날 건드린 사람을 본다. 키는 170 정도 될까. 색바랜 빨간색 벙거지 모자 아래로 땟구정물이 눌어붙어 잿빛에 가까운 낯빛을 띠고 있는, 나보다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남자가 서 있다. 그의 뒤에는 바구니가 달린 낡은 손수레가 있고, 그 바구니 속에는 신문지며 골판지 따위가 들어 있다.

이 벤치가 이 사람 자린가? 내가 자고 있으니 위기의식을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뭐 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겉모습보다 젊다.

“저…….”

목이 멘다. 마른기침을 뱉어내고 목을 가다듬는다.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굴?”

그를 다시 한번 본다.

누굴 기다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드리머? 마스커? 나 같은 사람?

“그냥 여기 있으면 된다고 해서…….”

“누가?”

“그게 미미…….”

계속 말하려다 입을 다물고 다시 그를 본다.

이건 내가 심문이라도 당하는 꼴이지 않나. 내가 왜 이 사람한테?

“저기 조금 있다 갈 테니까…….”

“짐승이지?”

그를 보며 침을 삼킨다.

“혹시 드리머 …….”

물어보는 나를 버려두고 그는 말없이 걸어간다. 따라가려 일어선다.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주저앉아 버린다.

“저기 잠깐만요.”

고함질러 보지만, 그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계속 걸어간다. 말을 듣지 않는 허벅지를 몇 번 때리고는 일어나 그를 따라간다. 뻣뻣한 다리가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넘어졌다가 일어서고, 다시 넘어지고. 손바닥의 피부는 까져 핏기를 내비치고 있다.

모퉁이를 돌아 사라져버린 그를 기를 쓰고 쫓아간다. 모퉁이를 돌자 그는 길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보고 있다. 그에게 다가간다.

“저기 짐승이라고…….”

“다쳤나?”

“다쳤다기보다 두 달 정도 누워 있었습니다.”

그가 팔을 뻗어 내 뒤편을 가리키며 입을 연다.

“저기.”

돌아본다. 붉은 벽돌의 삼 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일이 층 사이 계단에 있으면 데리러 올 거야.”

“네, 고맙습니다.”

그는 인사도 제대로 듣지 않고 걸어가 버린다.

뒤돌아 건물로 다가간다. 가까이서 보니 제법 낡아 보인다. 굳게 닫혀 있는 유리문 너머로 어두컴컴한 계단이 보인다. 나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무시하고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가니 더 어둡다. 조심스레 계단을 오른다. 몇 번이나 발을 헛디디며 간신히 일 층과 이 층 중간으로 간다. 얼마간 기다리며 서성이는데, 불현듯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나를 덮쳐온다. 빠르게 고개를 돌려보지만, 머리가 띵해지며 시야가 어두워진다.


말소리가 들린다. 왼쪽 눈만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펴본다. 알아낼 수 있는 건 얼마 없다. 물이 샜던 자국이 남아 있는, 곰팡이 가득한 회색 천장과 같은 색깔의 벽. 뿌연 담배 연기. 둥그런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는 세 명의 남자. 그들의 머리 위에 길게 늘어져 있는 형광등. 그들을 더 자세히 보려 눈에 힘을 준다. 그러다 그중 한 명과 눈이 마주친다. 뜨끔하며 급하게 눈을 감아보지만, 들켰나 보다.

“저놈 깼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몸을 일으킨다. 머리가 멍하다.

내가 누워 있던 곳을 본다. 듬성듬성 쥐 파먹은 자국이 있는 고동색 소파가 보인다. 벼룩 몇 마리가 웬 떡이냐 하며 날 씹고, 물고, 맛봤을 것 같다. 서서히 등이 간지러워지는 게 정말 물렸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올려다본다. 내 또래 정도 되어 보인다. 홀쭉하고 기다란 얼굴에 양쪽으로 불거져 나온 광대뼈. 게다가 게슴츠레한 눈. 어디선가 본 듯한데……. 그래, 이건 염소 같다.

“일어나, 형님이 보자 신다.”

그를 따라간다. 어두운 복도를 따라 몇 개의 방문을 지나쳐 가장 안쪽에 있는 문 앞으로 간다. 염소 얼굴이 노크한다.

“누구야?”

걸걸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형님, 깨어나서 데리고 왔습니다.”

“들여보내.”

염소 얼굴은 악어에게 먹이를 주는 사육사처럼 나만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아 버린다.

엉겁결에 밀려들어 간 방안은 불빛 한점 없다.

“불곰, 불곰 맞지?”

어둠 저편에서 말한다.

“네,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미미한테서 이야기를 들었던 건 두 달쯤 됐는데, 왜 이제 온 거지?”


작가의말

이제 세 편쯤 남은 것 같습니다. 아마 이번 주 안에는 다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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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2.05.13 255 1 9쪽
4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2.05.09 206 1 8쪽
4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 12.05.07 209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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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7 274 3 9쪽
4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5 209 2 8쪽
4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3 259 2 9쪽
3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3 12.04.21 240 2 10쪽
3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7 265 3 12쪽
3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5 24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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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11 309 4 9쪽
3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5 12.04.10 293 4 9쪽
3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1 12.04.09 287 3 9쪽
3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07 376 7 7쪽
3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6 289 4 9쪽
2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5 427 4 10쪽
2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1 12.04.04 358 5 9쪽
2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3 12.04.03 492 6 8쪽
2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1 12.04.02 485 7 8쪽
2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1 12.03.23 515 5 11쪽
2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2 12.03.22 433 6 9쪽
2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3 12.03.21 355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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