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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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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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04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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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DUMMY

목구멍이 싸하다. 폐에서 씨근덕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조만간 탈수증에 걸릴 것 같다. 고개를 들어 앞서 가는 키티를 본다. 지친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어지럽다. 이 산이 몇 미터나 될지 모르지만, 고산병도 나를 찾아오는 것 같다. 춥고 무섭다. 나는 죽어 무엇이 될까.


벌벌 기기도 하고 휘청거리기도 하며 키티를 따라가다가 고개를 들어본다. 어느덧 성벽이 보인다. 이런 산꼭대기에 성벽이 있다니. 주변에 돌덩이들이 깔렸긴 하지만……. 이런 산꼭대기에 성을 쌓겠다는 어이없는 생각은 위정자 양반이 했을 거고, 고생이란 고생은 연약한 백성이 했겠지. 위정자는 키티 같은 놈이었을 것이다.

성벽을 따라가다 보니 저 멀리 정상이 보인다. 보기만 해도 막막한 바위들뿐이다.

좋은 곳으로 가자고 했나. 네가 말한 좋은 곳이란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을 말하는 것이었나. 그런데 물은? 씻으러 가자고 했잖아. 물은 도대체 어디에?

이 산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이따위 산이 우리나라에 있단 말인가.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산은 보라고 있는 것이지, 오르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 말이 백번 천 번 옳다. 그런데 올라가고 있는 나는 대체 뭔가. 지행 합일설을 주장한 사람도 이런 개 같은 경우를 겪었을 것이다.

이 산은 그 흔한 계단 같은 것도 없고 오솔길이 제대로 나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가 무슨 도, 무슨 시인지는 몰라도 등산객들에 대한 배려 따윈 엿 먹으라고 한다. 돈이 모자란가. 세금은 꼬박꼬박 걷지 않나. 그 돈은 다 어디 쓴단 말인가. 잘 지내는 보도블록 깨부수고, 멀쩡한 아스팔트에 구멍이라도 뚫는 건가. 그래, 엿을 먹어주지. 수십 개든 수백 개든 던지기만 하쇼. 물도 같이. 물이 없으면 먹지 않겠소.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바위(이것을 바위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들을 키티가 히말라야산양처럼 휙휙 날아다니며 올라간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설마 나에게 따라오라는 건 아니겠지. 제정신이라면 그럴 소리를 하지는 않으리라. 말도 안 되는 생각은 키티에게 텔레파시로 전해지나 보다. 바위를 오르던 키티가 뒤돌아보더니 안 올라와? 한다. 확 떨어져 죽어버려라.

일단 바위로 다가가 손을 댄다. 다리도 걸친다. 시늉만 하자는 거다. 솔직히 내가 여기를 어떻게 올라가나. 곧 때려죽여도 안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거기서 뭐 해?”

고개를 들어 키티를 본다. 그가 왼쪽을 가리킨다.

“저쪽으로 돌아가면 밧줄 있어. 그거 잡고 올라와.”

답답하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결국은 올라가야 한단 말인가.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내가 못할 걸 시키겠냐?

다 같은 말이다. 빌어먹을. 안 해도 되는 것 같으면 안 하는 게 좋다. 몸에 든 마음에 든. 그걸 하는데 들어가는 수고에 비해 결과물이 터무니없이 적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손해, 국가의 손해, 전 세계의 손해다. 젠장. 나는 로프를 부여잡고 낑낑대며 정상에 오르고야 만다. 내 팔길이보다 짧은 비석에 새겨진 황석산 정상이라는 글자가 내가 얻어낸 전부다. 전 우주적인 손해다. 내가 산 이름 따위를 알아내기 위해 그렇게 힘들었나.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며, 옆에 우뚝 서 있는 키티의 종아리를 건드린다.

“야 좋은 데 가자며. 좋은 데가 어디야?”

“아, 저리 내려가면 있어.”

올라온 곳과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그곳을 본다.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후련하거나 개운하거나 그런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다.

“저기 뭐가 있는데?”

“집.”

“집?”

“어, 집.”

“사람 사는 집?”

“어.”

“씻는다고 하지 않았어? 사람 있으면 못 씻는 거 아냐?”

“거기 사람 없어.”

“사람 사는 집이라며.”

“어, 가끔 놀러 와.”

“별장 같은 거야?”

“어.”

“그럼 이리 내려가야 한다는 소리야?”

“어.”

“얼마나 가야 하는데?”

“왔던 만큼.”

빌어먹을. 거짓말쟁이 자식. 돌아버리겠다. 올라온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험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야 일어나봐.”

“왜?”

“일어나봐.”

“왜 그러는데?”

“확 일어나 보라니까.”

금방이라도 때릴 것 같은 기세다. 뭔데 윽박지르고 지랄이야. 일어난다. 키티 속에 독재자라도 한 마리 들어앉아 있나 보다.

“야호, 해봐.”

돌아버리겠다. 손을 둥그렇게 모아 입에 갖다 대고 야호, 한다. 메아리는 이 추운 날에도 집에 가지 않고 대꾸한다. 현기증이 밀려온다. 여기서 휘청이기라도 하면 수천 미터 아래로 떨어져 죽을 것 같다.


“야 아직 멀었어?”

“이 근처 같은데.”

키티는 여전히 지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걸 두고 괴물이라고 하는 거겠지. 그가 토끼처럼 펄쩍펄쩍 뛰어가더니 주변에서 가장 큰 나무에 붙어 기어오른다. 나는 그 광경을 넋 놓고 지켜본다. 이건 정말, 이걸 말했던 건가. 키티는 이런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나도 이런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까.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마도 힘들 것 같다. 그는 손과 발에 접착제라도 붙어 있는 것 같이 빠르게 나무를 타고 오른다. 거의 꼭대기에 다다르자 두 손으로 나무를 잡고 고개를 휘휘 돌린다.

“저기네.”

키티가 내 왼쪽을 가리킨다. 왼쪽을 본다. 빽빽한 나무들만이 내 시야를 가리고 있다. 이 너머에 있단 소린가. 그를 본다. 그가 나무에서 뛰어내려 가볍게 착지한다.

“이쪽으로 한 이십 분 걸으면 있어.”

끄덕인다.

“그럼 천천히 와.”

키티가 앞으로 튀어 나간다. 입을 벌리고 그의 뒷모습을 본다. 축지법이라도 쓰는 것 같다. 짐승 새끼. 그는 곧 사라진다.

하늘을 바라보며 입김을 한번 내뿜고는 발밑을 내려다본다. 눈이 녹지 않은 곳에 키티의 발자국이 희미하게 찍혀 있다. 걷기 시작한다.

올라가는 것보단 옆으로 걷는 것이 훨씬 수월하긴 하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가고 있긴 한 건지, 알지도 못하는 산속에서 미아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내가 여기서 길을 잃는다 해도 산악 구조대 같은 것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키티의 발자국으로 짐작되는 흔적이 있긴 하지만, 그 흔적이 그의 것이란 걸 온전히 믿을 수도 없다.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그가 가리켰던 방향이 맞긴 한 건지, 주위를 둘러보아도 온통 똑같은 나무뿐인데. 고개를 돌려 내가 걸어온 곳을 본다. 그쪽으로 왼팔을 뻗는다. 내가 가야 할 방향으로 오른팔을 뻗는다.

“뭐하냐, 체조하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나타난 키티가 한심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체조는 내려가서 해.”

끄덕인다. 키티를 본다. 길을 잃지 않아 다행인가?

“먼저 가.”

그가 걸어간다. 편하게 뒤를 따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이 한 채 나타난다. 키티는 건물로 다가가지 않고 멀찍이 서 있다.

“안 가?”

“먼저 가.”

다가가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성에가 낀 창문. 이상하다. 실내 기온과 외부 기온이 같으면 성에가 끼지 않는 것 아닌가. 창문을 옆으로 밀어본다. 열리지 않는다.

“사람 있냐?”

키티가 소리친다.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지. 와서 보는 게 뭐가 어렵다고.

“모르겠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문 두드려봐.”

문을 두드린다.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다시 두드린다. 대답조차 없다. 멀리 서 있는 키티를 보며 어깨를 으쓱한다.

“없어?”

으쓱하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자동차 바퀴 자국이 땅에 새겨져 있다.

“얼마 전에 갔나 보네.”

그 자국을 손으로 가리키며 키티를 본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현관문에 귀를 대본다. 귀를 떼더니 문지방 위를 더듬거린다. 내려온 그의 손에 열쇠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온기가 실내에서 느껴진다. 키티는 어슬렁거리며 이리저리 쏘다닌다. 확인하는 거겠지. 그가 식칼을 들고 나타난다.

“너 이 층 확인해봐.”

이 층에 사람이라도 있으면 바로 찌를 기세다. 올라가는 나를 보더니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진다.

방 두 개를 살펴보지만, 사람은 없다. 아래로 내려간다. 부엌으로 가본다. 각종 식기와 식탁, 싱크대가 있다. 떠나버린 누군가를 기다리며. 나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하우스에 사는 것보다, 여기가 더 나은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그래, 여긴 홈이고 거긴 하우스라서 그런가 보다.

거실로 간다. 커다란 카펫 끝에 흔들의자가 벽을 보고 있다. 의자를 카펫 가운데로 옮기고 거기 앉는다. 창 밖의 새파란 하늘이 보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을도 보인다.

돌아버리겠다. 왜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나 싶다. 그냥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게 빠르지 않았나. 이건 정말 돌겠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물소리. 평온하기만 한 하늘. 흔들거리는 의자.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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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2.05.30 20:24
    No. 1

    아니... 그런 집이 있으면 처음부터 가면 됐을 거 아닌가요...? 아니, 잠깐씩 머물다 가는 집이니까 곤란하려나? 키티가 괴물같은 체력을 지닌 건지, 원훈이 체력이 약한 건지, 아니면 그 둘 다 인건지... 이 둘은 보다보면 만담같아서 웃겨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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