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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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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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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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7,496

작성
12.05.15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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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DUMMY

“들었다. 그래 어쩌다가?”

“두 달 전에 집 앞에서 사냥꾼에게 습격을 당해서.”

“사냥꾼, 들어본 것 같군. 동대문 놈들이 좀 시끄러웠지.”

다리가 후들거린다. 힘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긴장돼서,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실려 있는 힘이, 내가 감당하기가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것이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계속 말한다.

“미미 말로는 스물여덟이라던데, 맞나?”

“네, 맞습니다. 늦게 깨어났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혹시 죽으려고 했었나?”

딸각 소리가 나며 반대편에서 주홍색 불이 켜진다. 커다란 나무 책상 위에 놓인, 갓이 쓰여있는 스탠드에서 나오는 불빛이다. 책상 건너편에 호일 펌을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가 천천히 일어나 책상 앞으로 걸어나오더니, 스툴 의자를 끌어당겨 책상 앞에 가져다 놓고는 책상에 걸터앉는다.

“이리로 와서 좀 앉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간다. 갸름한 얼굴에 새빨간 입술. 굵고 불그스름한 흉터가 턱밑에서부터 오른뺨을 가로질러 귀 아래까지 이어져 있다. 나이는 짐작하기 어렵다.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로 보이기도 하고, 삼십 대 정도로 보이기도 한다.

“잠깐만.”

그가 휴대폰을 꺼내 든다.

“이름이 뭐지?”

“원훈입니다. 강원훈.”

정적이 흐른다. 그가 휴대폰에서 귀를 떼더니 입을 연다.

“전화를 안 받는군. 그래 묻고 싶은 게 뭐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니 찾아왔을 거 아냐.”

헛기침을 하고 목을 가다듬는다.

“네, 제가 드리머라고 들었습니다.”

“드리머라. 그래,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도 다 저 같은 분들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맞아. 여기는 전부 자각자들이지.”

“자각자?”

“아니, 단어는 신경 쓸 필요 없어. 우리끼리 붙인 명칭이니까.”

“네. 제가 듣기로는 일 년이 지나면 위험하다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진다고.”

그가 나를 보며 입꼬리를 올린다. 흉터가 꿈틀거리며 호를 그린다. 내가 계속 말한다.

“제가 이번 달 보름이 되면 일 년째가 됩니다.”

“꼭 어쩔 수 없는 건 아닌데……. 그래, 십 일쯤 남았나?”

“네.”

“두근두근하겠어? 생각도 많을 거고.”

고개를 까딱한다.

“저한테 방법을 가르쳐 주시면…….”

“왜?”

그를 본다.

“미미한테도 말했는데, 내가 왜 가르쳐 줘야 하지?”

할 말이 없다. 왜 가르쳐 줘야 한다고 해야 할까?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우리끼리 돕고 살아야 하니까?

“내가 가르쳐 줘서 네가 살아남는다면, 그래서 나한테 돌아오는 건? 없어. 좋아. 내가 예수나 석가모니처럼 살 떨리게 성인군자라서, 나한테 아무런 이익이 없어도 가르쳐 준다고 쳐. 네가 강남이나 동대문으로 가 버리면, 그래서 이쪽하고 싸워야 한다면?”

그가 책상에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좌우로 돌린다. 우두둑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나 혼자 같으면 선심 쓰는 셈 치고 가르쳐 줄지도 몰라. 그런데 이쪽에 딸린 식구가 근 백은 돼. 네가 그쪽으로 가서 우리 식구들의 적이 된다면?”

“제가 그쪽으로 가지 않겠다고…….”

그를 본다.

“네가 약속을 한다 해도 널 어떻게 믿지? 네가 약속을 어기면, 경찰이라도 찾아갈까? 소송이라도 걸어? 아니면 동네방네 다니면서 강원훈이라는 씹새끼는 약속도 안 지키는 좆같은 새끼라고 할까?”

이곳으로 찾아오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모든 것이 잘 해결되고, 난 살아남고…… 그리고 해피엔딩. 미친. 나는 아직 멀었나 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제가 그 방법을 들을 수 있을까요?”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 네가 개나 고양이 같은 평범한 놈 같으면 그냥 말해줄 수도 있어. 소도 괜찮아. 돼지도 괜찮고. 수틀리면 죽여버리면 되니까. 그런데 너는 곰이야. 얼마나 셀지 몰라. 지금 건물 안에 있는 애들이 다 달려들어도 감당이 안 될 수도 있어.”

그가 책상 위에 있는 커피포트를 들어 컵에 따른다. 알싸한 커피 향이 콧속으로 스며들자 내장이 요동친다.

두 달 동안 내가 뭘 먹었지? 겨울잠이라도 잔 건가? 그건 둘째치고 지금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답을 들을 수 있을까?

“여기 애들은 강남, 동대문에 짧게는 한 달에서 보통 서너 달씩은 쫓기던 애들이야.”

끄덕인다.

“그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부 그쪽에 원한을 가지고 있지.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한 애들도 있는데, 걔들도 마찬가지야. 다들 원한이 있어.”

그가 커피를 후루룩 마신다.

“내가 가르친 놈들은 다 그래. 그런데 너는 아니야. 너는 쫓겨본 적도 없고, 위험한 적도 없었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까도 말했듯이 언제라도 그쪽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이거든.”

그가 다시 커피를 들이켜고는 나를 본다.

“그렇게 불쌍한 표정 짓지 마. 어쩔 수 없잖아.”

내 표정이 그렇게 티가 났나? 어쩔 수 없는 것이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원하는 답을 얻어낼 수가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기 때문에.

“그럼 제가 여기로 들어온다고 하면…….”

그가 손을 내젓는다.

“그건 이쪽에서 사절이야. 우리가 뭐 하는지 알잖아. 강남, 동대문 놈들과 싸우는 거야. 이쪽은 모두가 원한으로 뭉쳐 있어. 그런데 네가 들어온다면? 집단이 분열되는 사실의 밑바닥에는 이질적인, 그러니까 소속원들이 집단의 목적을 공감하지 못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아. 괜히 너 같은 놈을 받아들인다면? 물론 표면적으로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세를 키우자면, 강한 놈을 영입하는 것보다 좋을 일도 없을 테지. 그런데 이쪽은 그런 게 아니거든. 죽이자 하면 그래, 죽이자, 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왜? 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고. 어떻게 생각해?”

맞는 말인 것 같다. 딱히 뭐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저 사람 입장이라고 해도.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믿음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라. 이쪽 세계에서 그런 단어는 사치야. 믿음, 신용. 인간 세상에서는 겉으로나마 통용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쪽 세계 특히 우리 쪽은 조금만 삐끗 하도 몰살당할 판국인데, 생판 모르는 남을,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 모르는 변수를, 고작 믿음이라는 것 하나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지금 이대로 너를 돌려보내면 너는 금방 죽겠지. 그럼 변수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거야. x니 y니 따질 필요도 없이 이 상태가 유지되는 거지. 믿음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 말고, 너라는 변수가 확실하게 이쪽에 마이너스가 아니라는 답을 내놔 봐. 그럼 네가 듣기 싫다고 해도 말해줄 테니까.”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이쪽에 도움이 될까? 이쪽에 들어갈 수도 없다면, 내가 각성자가 된다면, 강남이나 동대문 쪽 몇몇을 죽여준다고 할까? 아니 그것도 믿음으로 귀결되는 문제다. 내가 안 해버리면 그만이니. 믿음을 배제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나 따위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눈앞 남자의 숨통을 틀어쥐고, 목숨을 살려줄 테니 답을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고.

그가 손톱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린다.

“할 말 없으면 그만 가 봐.”

가라 한다고 가면, 난 죽게 되겠지. 이 남자의 발목이라도 잡고 늘어져 봐야 할까? 그래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불가능하다. 이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들었던 말들을 되짚어보면, 이 사람은 모험을 하지 않는다. 돌다리를 두들겨보고 건너는 부류가 아니고 돌다리 따위는 건너려 하지 않는,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는 부류다.

무거운 정적만 맴돌던 방 안에 따르릉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화면을 본다.

“미미네.”

미미. 미미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래, 나야. 전화했더니 안 받더군. 그래서 돌려보내려던 참이었어. 이번 달이 마지막이라더군. 내가 왜? 똑같이 말했지. 넌 뭘 줄 수 있냐고. 네 아버지라도 넘겨주면 생각해 볼 수도 있지. 공짜로는 안된다는 거 알잖아. 고양이와 여우가 곰을?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지금은 이래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아. 돈은 이제 필요 없어졌어. 엊그제 털었는데, 집에 연락 안 해봤어? 뭐 네가 그렇게 말하면 힌트 정도는 줄 수 있어. 명줄이 길면 살겠지. 거기다 빚으로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고. 바꿔 줄까?”

그가 나에게 휴대폰을 건넨다.

“받아봐.”

휴대폰을 귀에 댄다.

“미미 씨?”

“그래, 나야.”

“지금 어디세요?”

“부산 근천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네.”

“아저씨가 뭘 해야 할지 가르쳐 주기로 했으니까 잘 들어.”

“네.”

“그리고…….”

“네, 말씀하세요.”

“그 사람이 공짜로 뭘 줄 거라는 생각은 안 하지?”

“네.”

“내가 그쪽에 뭔가를 주기로 했어.”

“어떤 걸?”

“그건 알 필요 없고, 네가 기억해야 할 건 내 덕에 산다는 거야. 똑똑히 기억해.”

“저기, 키티는 지금 어떻게…….”

“이쪽으로 온 건 아는데 아직 못 찾았어.”

“네.”

“내 덕에 산다는 거 기억해.”

“네.”

전화가 끊긴다. 물끄러미 휴대폰을 바라보다 그에게 준다. 그가 전화기를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들었지? 힌트만 주기로 했어. 직접 도와주진 않아.”

“네.”

“네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해. 사람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러.”

“네?”

“자아를 무너뜨려. 널 다른 뭔가로 만들어. 넌 답을 이미 알고 있어. 네가 뭘 해야 할지 알고 있다는 말이야.”

그가 말을 멈추고 나를 뚫어지게 본다. 나는 슬쩍 고개를 숙인다.

“여기까지 하지. 그럼 가 봐.”

“돌이킬 수 없는 짓이라는 게…….”

“이런 말이 있어. 사람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는 것 말고는 없다.”

그가 책상에서 내려서더니 내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고는 문밖으로 나간다.

내가 절대 하지 못할 돌이킬 수 없는 짓? 그게 뭐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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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22 karu
    작성일
    12.05.16 00:13
    No. 1

    무심코 지나가려다 뒤로가기를 눌러서 본 목록...에서 깜짝놀라서 다시들어와서 댓글씁니다!

    저는 사실 글 읽을때 문피아캠페인 < 이부분까지만 보고 넘어가거든요 ㅠㅠ 댓글도 거의안달고...

    이소설.. 인면수심자. 재미있어요 너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항상..
    뿌려진 떡밥들이 어떻게 해결될지도 궁금하고요 ㅎㅎ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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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7 274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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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5 24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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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07 376 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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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1 12.03.23 515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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