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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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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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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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12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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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DUMMY

물끄러미 창 밖을 본다.

마약을 하면 환각을 불러오고, 인간 중 특별한 놈들은 환각 속에서 우리를 알아볼 수 있다.

어딘가 허술한 거 같으면서도, 뭐가 허술한지 콕 집어내기는 어려운……. 꽤나 머리 싸매고 생각해 냈을법한, 그럴듯한 거짓말을 듣고 난 것 같다. 상대는 나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인데.

슬쩍 미미를 본다. 그녀는 묵묵히 운전하고 있다.

“우리를, 그러니까 미미 씨처럼 변신한다거나, 전에 뱀이라는 여자가 썼던 최면 같은 힘을 자기한테 유리하게 쓰려는 사람도 있겠네요? 근처에 얼쩡거리면서 콩고물 안 떨어지나 지켜보는 사람도 있을 거고, 맞죠?”

“그래, 잘 아네.”

내 생각이 맞아 나가니 더 거짓말 같다. 내가 생각할 수 있으면 상대도 생각할 수 있을 거고…….

마음속에서 다른 소리가 들려온다.

거짓말 아니란 거 알잖아. 사냥꾼도 봤고, 해태도 봤어. 미미가 변하는 것도 봤고, 무엇보다 네가 그 꿈의 당사자잖아.

알아, 안다고. 그래도, 그래도……. 들었던 모든 게 거짓말이라 생각해 버리면 훨씬 편하잖아.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악마나 외계인 같은 거네요?”

“응?”

“왜 보면 악마 숭배자들도 있고, 악마와 계약했다는 사람도 있잖아요. 악마 사냥꾼도 있고, 악마 같은 게 어딨어 하는 사람도 있고. 외계인도 마찬가지고.”

“그래, 그러고 보니 비슷하네. 봤다는 사람, 못 봤다는 사람,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도 있고.”

“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넌 어쩌고 싶어?”

“네?”

“네가 지구에 사는 외계인이라 치고, 인간들 눈에 안 띄게 숨어 사는 게 좋겠어, 아니면 인간들하고 친하게 지내겠어?”

“글쎄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봐서.”

“미리 생각해 놓는 게 좋을 거야. 괜히 그런 거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키티처럼 될 수도 있으니까.”

“키티요?”

슬쩍 뒤돌아본다. 아주 맛있게 자고 있다. 입을 쩍 벌리고, 다리도 쩍 벌리고. 다시 미미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혹시 전에 말씀하셨던 강남이랑 동대문이 그 이야기예요?”

“그래, 대충 비슷해. 강남 쪽 애들은 친하게 지내면서 우리도 이용할 건 이용하자 하는 식이고, 동대문 애들은 그냥 조용하게 살자는 거고.”

“네, 키티처럼 될 수도 있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미미가 룸미러를 슬쩍 보더니 입을 연다.

“키티가 원래 멀리 시골에서 살다 왔거든, 가족들끼리. 그러다…….”

“내 이야기, 하지 마.”

자는 중에도 귀가 간지러웠나 보다.

“알았어. 옛날이야기는 안 할게.”

미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계속 이야기한다.

“키티가 원래 동대문 쪽에 있었어. 그런데 너 생각해봐. 쟤 성격에 어디 그런 단체 생활이 맞겠어? 거기다 동대문 쪽이 좀 보수적이거든. 뭐 그래서 그쪽에 있다가 프리랜서로 나오면서 욕도 많이 들었고, 싫어하는 애들도 많이 만들었지.”

단체 생활을 하는 키티라. 한번 보고 싶긴 하다. 전혀 안 어울릴 것 같긴 한데, 또 모르겠다.

“프리랜서라고 하셨잖아요.”

“응.”

“미미 씨는 어떤 생각이세요?”

“글쎄, 나야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쪽이겠지? 그러니까 이러고 있는 거고.”

그녀가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

“키티는 돈 모아서 무인도 하나 사서, 거기 살 거라던데?”

절로 끄덕여진다. 무인도와 키티 제법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왜 약을 하는 거예요?”

“인간들은 왜 마약을 한다고 생각해?”

“그거야 뭐, 호기심?”

“그래 우리도 호기심 때문이겠지.”

“그럼 한번 해보고 안 하면 되잖아요.”

“좀 똑똑해졌나 싶더니, 또 왜 이래? 너 인간들은 왜 마약을 계속하는데, 한 번 하고 안 하면 되잖아?”

“글쎄요.”

“중독이잖아. 굳이 우리가 보이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몽롱한 그 상태를 못 잊어서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금단증상때문에 계속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우리 같은 애들은 평소보다 훨씬 민감해지기도 하고, 힘도 세지고, 중독성이 인간들보다 더 강해. 한번 하면 거의 못 빠져나와.”

“아. 약은 하면 안 되겠네요.”

“왜, 해볼 생각이었어?”

창밖을 본다.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길래, 어떻게 보일는지 해보고 싶긴 했다. 중독이란 말을 듣기 전까진. 중독되기 싫어서 담배도 안 폈던 건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용인.”

“서울 밑에 용인요?”

“그래.”

“서울 쪽으로 가면 위험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용인까지만 가는 거잖아. 다른 애들 영역이라서 웬만하면 안 넘어와.”

“다른 애들?”

“그럼 너, 뭐 우리 같은 애들이 강남이랑 문동대에만 사는 줄 알았어? 나머지는 다 프리랜서고?”

“아.”

“솔직히 나도 너네 데리고 별로 가고 싶진 않은데, 의사가 멀리까지는 잘 안 오려고 하고, 용인에 아는 애들도 몇 있으니까 그리로 가는 거야.”

“네.”

“너 뭐 필요한 거 있어? 있으면 올라가는 대로 사고.”

잠깐 생각한다.

“저기 돈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왜? 얼마나?”

“노트북이나 하나 사려고요. 있어 보니까 TV 보는 거 말고는 할 게 없어서.”

“그래 알았어.”

“돈은 키티한테 받으세요.”

“그래.”

쉽게 쉽게 잘도 대답한다. 솔직히 나는 키티에게 돈을 돌려받긴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뜻밖의 기회가 와서 눈물 나게 만족스럽다.

“나는?”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키티다. 다시 잠들었나 싶었더니. 자유자재로 자다 깨다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부럽다.

“왜 너도 하나 사줘?”

“아니 살 필요는 없고, 영식이 어딨어?”

“본부에 있겠지. 왜?”

“영식이한테 내 컴퓨터 좀 가져오라고 해.”

“구피 걔 요새 내 말 안 들어. 네가 해.”

키티가 기다란 팔을 불쑥 내밀더니 컵홀더에 있는 미미의 휴대폰을 가지고 간다.

“야, 나야. 나라니까. 아 씨발 진짜. 집에 가서 내 컴퓨터 좀. 아니, 거기 말고. 아니 아니, 곰 새끼 집. 어. 들어가자마자 바로 나오는 방에. 거기 보면 컴퓨터 있어. 새 거. 작은 거. 사람들 들고 다니는 거. 그래, 그래. 노트북. 그거 가지고 용인으로 와. 오면 전화해. 그래.”

키티가 통화를 만족스럽게 끝낸다.

“온대?”

“어.”

“신기하네.”

“뭐가?”

“구피가 네 말도 다 듣고.”

“지가 하려던 거, 괜히 내가 했다가 이 꼴 났잖아. 미안하겠지.”

나는 뒤돌아보고 키티에게 묻는다.

“방금 그 사람이 전에 그 문지기?”

“어, 네가 때려눕혔던 놈.”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잠깐, 방금 키티가 통화 중에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를 말해줬던가? 못 들은 거 같은데. 대체 몇 명이나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거지? 더는 비밀이 아닌 건가? 비밀이 아니면 비밀번호를 뭐라 불러야 하지? 공개번호?

“야, 키티. 의사한테도 전화 좀 해.”

“뭐라고?”

“용인에, 왜 전에 그 여관 있잖아.”

“아, 그 몽……뭐더라?”

“그래, 거기로 오라고.”

키티가 다시 귀에 휴대폰을 가져다 댄다.

“여보세요? 의사 양반, 나야. 나라니까. 나 영웅이. 이 영감이 돌았나,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 씨발, 키티라고…….”

영웅? 키티 이름이 영웅이라고? 히어로? 그러고 보니 키티의 이름을 알 생각도 안 해봤다. 키티는 키티였지 다른 이름이 있을 거란 사실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물론 영웅이라는 이름을 부를 생각은 없다. 야 영웅아, 하고 부르면 돌아보는 키티의 모습.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길거리에 지나가는 고양이를 히어로라 부르면 불렀지.

하품을 한다 눈물이 조금 난다. 고개를 꺾어 투명한 창문에 이마를 붙인다. 희미한 얼굴이 창에 비친다. 듬성듬성 자란 수염, 초췌한 얼굴.

아, 나는 어쩌다 이런 불쌍한 꼬락서니로 여기 이렇게 앉아 있게 된 거지? 지난 시간을 떠올리면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문명의 이기들이 날로 발전해 가는 이런 살기 좋은 세상에, 오늘 이 차 안에서 들었던, 보았던 사실들은 왜 하나같이 호환 마마가 두려웠던 시절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로밖에 안 들리는 걸까.

어슴푸레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녘은 무지막지하게 졸리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공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좋은 시간이다.

내가 꿈속의 곰처럼 그런 힘을 가지게 된다면 무엇을 할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슈퍼 히어로 흉내라도 내볼까? 아서라, 괜히 그러다가 며칠도 못 살고 죽는다. 키티를 흠씬 두들겨 패주긴 해야겠다. 또 어디 보자…….

최면, 둔갑. 뱀은 최면, 여우는 둔갑. 키티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너무 졸리다.


작가의말

댓글 써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게다가 한 분께서 제목까지 만들어주시고 기뻐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자리에 26번 글에 잠깐 등장했던 나비라는 시를 올릴까 했는데, 저작권 때문에 괜히 문제가 생길까 봐(제가 보통 소심한 게 아니라서 말이죠.) 그냥 시인의 이름과 제목만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사이조 야소'라는 시인의 '나비'라는 시입니다. 검색창에 이름과 제목을 쓰니 몇 개나 나오더군요. 읽고 또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글썽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괜히 울컥해져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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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1. 12.04.30 207 2 10쪽
4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7 274 3 9쪽
4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5 209 2 8쪽
4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3 259 2 9쪽
3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3 12.04.21 241 2 10쪽
3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7 266 3 12쪽
3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5 247 3 13쪽
3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3 264 5 9쪽
»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12 325 2 9쪽
3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11 309 4 9쪽
3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5 12.04.10 293 4 9쪽
3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1 12.04.09 288 3 9쪽
3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07 376 7 7쪽
3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6 289 4 9쪽
2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5 427 4 10쪽
2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1 12.04.04 358 5 9쪽
2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3 12.04.03 492 6 8쪽
2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1 12.04.02 485 7 8쪽
2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1 12.03.23 515 5 11쪽
2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2 12.03.22 433 6 9쪽
2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3 12.03.21 355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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