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1.
“일단 네가 정신 차리고 자리만 잡으면 여기저기서 스카웃 제의도 많이 들어올 거야. 뭐 그건 네가 알아서 할 문제고.”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그렇게 잘 아세요?”
“음, 대충 주워들은 것도 있고, 내가 모르는 이야기 해주면 치료비도 안 받고 그러니까 찾아오는 애들이 말해주는 것도 있고. 내가 안다고 해서 문제 생길 것 같은 이야기는 들을 생각도 없고, 들어도 못 들은 셈 치니까 부담 없이 말해주는 거야. 상대도 그런 건 알아서 걸러내고. 너도 무슨 이야기 듣거나 하면 말해줘. 공짜로 해줄 수도 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너는 담배 안 피우나 보네.”
“왜 그러세요?”
“마스커들은 냄새를 가리려고 대게가 담배를 피우거든. 향수로 커버하는 애들도 있지만.”
예전에 키티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냄새요?”
“무슨 냄새가 난다고 하던데. 개 코는 못 속여도 다른 애들 코는 담배 냄새로 어느 정도 가릴 수 있나 보더라고. 나야 무슨 냄샌지 맡아 본 적이 없으니까 자세하게는 모르고.”
“냄새를 왜 숨기고 다니는 거예요?”
“몰라서 물어?”
“글쎄요.”
“동물들한테는 영역이라는 게 있잖아. 다른 놈들 영역으로 들어가면 싸우기도 하고.”
“네.”
“마찬가지야. 마스커들도 대부분 영역이 있어. 대부분 그 안에서 지내려 해. 아무리 그래도 일단 겉은 사람이니까, 영역 안에서만 살 수는 없잖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다른 애들 영역으로 들어갈 때도 있을 거 아냐.”
“네, 뭐 그렇겠죠.”
“너희 집 마당 구석에 서서 쉰내가 솔솔 새어나온다면 어쩌겠어.”
“글쎄요. 일단 그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부터 찾아보겠죠.”
“그래, 그거야. 담배나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건 자기가 들어간 영역주인에 대한 예의야. 일단 냄새가 나는데 그 냄새에 담배 냄새, 향수 냄새가 섞여 있으면, 이건 금방 나가겠다는 말이구나, 하면서 그 영역주인도 경계를 푸는 거야. 오케이?”
“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저도 담배를 피우거나 향수를 뿌리고 다녀야 한다는 소리네요.”
“그래, 그러는 게 좋겠지.”
“그런데 저한테 왜 이렇게 많은 걸 가르쳐 주세요?”
“왜, 싫어?”
“싫은 건 아닌데. 치료비도 안 받으면서 들으신 거라고 하셔서.”
“나 같은 의사가 몇 더 있어.”
“네.”
“뭐 고객 관리 차원에서 이러는 거라면 이해될까?”
끄덕인다. 고객 관리. 일단은 나도 고객이라는 소리겠지.
“거기다 너는 돈 냄새가 풀풀 나거든.”
돈 냄새가 난다는 소리를 의사에게서 들으면 덕담일까, 악담일까. 악담에 가깝겠지.
“저기, 성함이?”
“왜 물어? 신고라도 하게?”
“무슨 신고를 해요?”
“무허가 의료행위로 신고할 거 아니면, 이름 같은 건 왜 물어?”
“아니, 그냥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의사라고 해.”
“네. 처방전 빼돌리다 걸리셨다고.”
“누구한테 들었어?”
“전에 차에서 말씀해 주셨는데요.”
“내가 그랬어?”
끄덕인다.
“어쩌다가?”
“그냥 뭐 빼돌린 게 빼돌린 거지. 어쩌다가는 무슨 .”
“아니, 왜 빼돌리셨나 해서.”
“왜 뭐 합당한 이유라도 있으면 면허 살려주게?”
“제가 그런 능력이 어딨어서…….”
“아, 지금 생각해도 짜증 나네. 겨우 종이 쪼가린데 백 장에 십만 원씩 쳐준다잖아. 너 같으면 안 빼돌리겠어? 인턴이라고 소처럼 일만 죽도록 시키고, 돈은 얼마 안 주고.”
그럼 그렇지. 나는 또 병원비가 없는 사람, 병원에 올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에게 자선이라도 한 걸로 잠시 착각했다.
“더 궁금한 건 없어?”
“아까 저보고 육식동물이라고 하셨잖아요.”
“어, 왜?”
“아니, 꿈꿀 때 초식동물은 어떤 꿈을 꾸는지 궁금해서요.”
“넌 어떤 꿈을 꿨는데? 막 때려죽이는 꿈 안 꿨어? 먹기도 했을 거고, 맞지?”
“먹은 적은 없는데요.”
“그런가? 아무튼, 초식들은 대부분 산에 가서 나무껍질 긁고, 남의 밭에 들어가서 야채 뜯어먹고, 도로 같은데 뛰어다니고, 그런다던데.”
한숨을 쉰다. 한숨 쉬는 것 말고는 지금 이 상황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왜, 어쩌다 생겼을까요?”
“나도 모르지 그건. 사람은 왜 어쩌다 생겼을 거 같아?”
“글쎄요.”
“하나의 종이 생기는데 이유가 어딨겠어? 새는 왜 생겼고, 물고기는 왜 생겼을까? 네가 물어보는 게 이런 종류 같지 않아?”
“그런가요?”
“혹시 또 모르지. 구석기나 신석기시대 사람 중에는 자연에 존재하는 동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러니까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었는지도.”
“만화나 SF영화 같네요.”
“너네 존재 자체가 만화야.”
그를 본다. 눈에서 심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게 자신이 하는 말에 심각하게 도취해 있는 것 같다.
“왜 옛날 이야기에 변신하고 사람 간 빼먹는 구미호 나오잖아. 곰나루 전설 같은 것도 있고. 그런 게 다 너네 이야기 아닐까? 말 그대로 만화 같은 이야기들.”
“저도 그런 생각해본 적 있어요. 늑대인간 전설이나 미노타우로스 이야기 같은 거.”
“미노타우로스가 미노스 왕 마누라가 소랑 바람 펴서 낳은 애였지, 아마?”
“네, 맞아요. 열 받은 미노스 왕이 지하 미궁에 가뒀놨는데 테세우스가 죽였다고.”
“이집트 벽화 같은데도 반인반수가 나오고, 서유기 이야기도 있지.”
끄떡인다.
“그런 이야기가 알게 모르게 많네요.”
“대부분 건국신화 같은 걸 보면 다 그래. 동물과 관련된 사람이나 기괴한 몰골의 괴물들이 나타나서 짠하니까 땅이 만들어지고 강이 만들어지고 그러잖아. 우리나라 신화를 봐도 곰과 호랑이가 나와서 말하고. 뭐 부여 같은 나라에서는 귀족들 성도 마가, 우가, 저가, 구가라고 했고. 진짜 동물들하고 어울려서 나라를 만들었다는 건 말도 안 되잖아. 곰 토템 부족, 호랑이 토템 부족 하는 건 옛날 사람들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고.”
“무시라뇨?”
“그렇잖아.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 너 같으면 호랑이나 곰을 자기보다 월등한 존재라고 믿으면서 숭배할 수 있겠어?”
“그렇진 않죠.”
“그러니까 네가 못하는 걸 왜 옛날 사람들은 했을 거라고 생각하냐 이거야. 지금처럼 먹을 게 남아도는 세상도 아니고, 그 시절 사람들은 그런 짐승이 보이면 잡아먹기 바빴을 건데. 너 피자 신이나 치킨 신 같은 거 믿어?”
“듣고 보니 그러네요.”
“옛날 사람들은 뇌가 절반밖에 없었던 것도 아니고.”
끄덕이며 노트북 모니터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여기 그려져 있는 곳 말고는 전부 프리랜서들이 살아요?”
“대부분이 잠실 쪽에 있어. 미미같은 브로커가 몇 있거든.”
브로커라고 하니 이해가 간다. 사무실이라고 했던 그 지하실과 모여 있던 이들은 모두 미미에게 일을 받으려고 모였던 거구나.
그가 일어나더니 냉장고 앞으로 걸어간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 떨어진 창밖을 본다. 그가 음료수 캔을 하나 가지고 와 앉더니 말한다.
“아 참 너 이거 모르지?”
그를 본다. 웃으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그게 뭔데요?”
“얼마 전에 그냥 인터넷 뒤적거리다가 찾은 건데, 여기 이 글 읽어봐.”
읽어본다. 어떤 회사원이 목격한 소녀와 할머니, 그리고 남자 셋의 싸움이 적혀 있다.
“이게 뭐죠, 무슨 소설 같은 건가요?”
“이 글 적힌 시간 봐.”
“2004년 11월. 이게 왜요?”
“못 들었나 보구나. 이게 예전에 키티가 도망 다녔을 시기거든.”
“네, 그런데?”
“여기 이 남자들이 키티하고 그놈 친구들 같다고.”
“친구요? 친구도 있었어요?”
“그럼 친구도 하나 없을 줄 알았어?”
“이 사람들은 지금…….”
“여기 쓰여 있잖아. 다 죽었어. 키티만 빼고.”
의사가 캔뚜껑을 딴다.
“아, 그런데 그 음료수 제 꺼 아닌데.”
“그럼 누구 껀데?”
“저기 저쪽에.”
고개를 들어 노인을 본다. 노인은 어느새 잠에서 깨어나 도끼눈으로 의사를 노려보고 있다.
- 작가의말
부족한 글을 봐 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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