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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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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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07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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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DUMMY

일주일이란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보지 못했던 드라마를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이고, 찢어졌던 발바닥이 대충 아물어 절뚝거리며 돌아다닐 수도 있는 시간이고, 미미와 키티에게서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할 수 있는 시간이고, 백정을 원망하고 증오하다 그 감정의 회오리가 나 자신의 순진함(다른 말로 멍청함이라고 한다.)까지도 휩쓸어버릴 수도 있는 시간이다. 고작 두 달 정도 같이 살았다고 키티는 어떻게 됐을까, 설마 잡혀 죽진 않았겠지, 하며 궁금해할 수 있는 시간이고, 내 뒤에 있다는 누군가의 정체를 계속 생각해 보지만 짐작조차 못 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아픈데 생기면 연락해.”

멀어져 가는 스포츠카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근 이십 년을 살아온 아파트가 보인다. 절뚝거리며 복도로 들어선다. 엘리베이터를 불러내리는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며 집으로 들어가면 미미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혹시 모르지 않나. 지난 일주일간 연락이 닿지 않았지만, 이제는 가능할지도.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내가 가야 할 곳이 도봉이 맞는지, 언제 어디로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 건지, 당신들에게 나를 지키란 의뢰를 한 게 누군지, 키티는 어떻게 됐는지 등등.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들어가서 8층을 누른다. 닫히는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 등 뒤 거울을 본다. 스물일곱, 아니 스물여덟. 나름 동안이라고 생각했던 얼굴이 고작 일주일 만에 제 나이를 찾아버렸다. 퀭한 두 눈, 입가에 나 있는 부스럼, 볼품없이 제멋대로 자라 있는 수염. 눈을 치켜뜨고 눈곱을 떼어낸다. 띵. 문이 열린다. 현관 앞으로 다가가 비밀번호를 누른다. 우렁찬 오류경보음에 눈을 크게 뜨다가 피식 웃는다. 맨 앞자리의 0을 빼먹었다. 지금이 삼월 초니 두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난 듯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비밀번호를 꾹꾹 누른다.

뒤에서 멍! 소리가 들린다. 개가 여기에 왜? 돌아보는 찰나 어깨부근에서 무지막지하게 뜨거운 불덩어리가 파고들어 오는 느낌이 난다. 계단 꼭대기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이고, 새까만 뭔가가 날아오는 것도 보인다. 엉겁결에 팔을 들어 앞을 가린다. 팔뚝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통증이 몰려온다. 팔을 본다. 화살?

이 빌어먹을 놈의 화살이 왜 내 팔뚝에? 이런 씨.

몸을 낮추고 손으로 뒤통수를 가리며 비밀번호를 마저 누른다. 잠금장치 풀리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리고 목과 어깨 사이에 끔찍한 고통이 느껴진다. 문을 연다. 쿵쾅거리며 계단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잽싸게 문을 닫는다. 오토락을 설치한 이후 수년 동안 사용해본 적 없는 손잡이에 달린 잠금장치를 돌린다. 곧 뭔가가 현관문을 긁어대는 소리와 손잡이가 철컥철컥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이 씨발 새끼야. 너 뭐하는 새끼야?”

악을 쓴다. 밖에선 아무 대꾸가 없다.

“미친 새끼, 너 뭐냐니까?”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른다. 옆집이나 위아래층의 주민이 내 고함을 듣고 나와 보길 바라는 마음에. 하지만 이웃의 누군가는 어떤 기미도 없다.

도어 렌즈를 들여다본다. 밖에서 구멍을 틀어막고 있는 건지, 새까만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심장이 쿵쾅댄다. 화살 박힌 어깨와 팔이 어마어마하게 아파져 온다.

“야, 너 씨발 새끼 꼼짝 말고 있어.”

호통을 치자마자 밖에서 문이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귀속을 후려친다. 무섭다. 쭈뼛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다시 한번 소리가 난다.

밖에 있는 놈이 걷어차는 것 같은데, 철판이 우그러지는 듯 보이는 건 착시일 뿐인가.

뒤돌아본다. 멀지 않은 벽에 붙어 있는 인터폰이 보인다. 얼른 다가가 수화기를 든다. 경비원의 태평스러운 대답이 들린다.

“복도에서 웬 미친놈이 집안으로 따라 들어오려고 하던데요. 지금도 집 앞에 있어요.”

맥이 풀리자 어깻죽지와 팔뚝에서 지독한 통증이 엄습해온다. 고작 십여 일 만에 또 화살을 맞다니. 죽지 않는다는 건 안다. 지난번에도 죽지 않았으니.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다. 무의식중에 조금이라도 힘이 들어갈라치면 썩어서 구멍 뚫린 이빨에 이쑤시개를 쑤셔 넣고 빙빙 돌리는 것처럼 아프다.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전화기로 다가가 수화기를 들고 119를 누른다.

“여기 잠실…….”

그대로 바닥에 엎드린다. 미칠 것 같다. 맥박이 뛸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은 제정신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아무래도 안 좋은 부위에 꽂힌 것 같다. 현관문은 여전히 간간이 굉음을 뱉어내고 있다. 모르겠다. 바닥에 오른쪽 볼을 붙인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떠올려본다. 사냥꾼? 맞다. 사냥꾼이다. 미친 새끼. 지난번 구피가 죽던 날의 짐작이 맞는 것 같다. 아주 개 같은 경우다. 지갑을 흘렸는데 사냥꾼이 그 지갑을 주웠고……. 씨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주일도 넘게 지났는데 그동안 계속 이곳을 지키고 있었단 말인가? 왜? 대체 왜 나를 못 죽여서 안달 난 놈처럼 저러는 거지? 밖에 나가면 다른 애들도 많잖아. 천명도 넘는다며. 나는 제대로 된 놈도 아닌데, 왜 날? 문득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총 쏘는 놈, 칼 쓰는 놈, 부적 쓰는 놈. 그렇다면 석궁 쓰는 새끼는 뭐지? 돌겠다. 딴에는 뉴트렌드라는 말인데. 그나저나 미미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데.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냥 좀 덜 아팠으면 좋겠다.


현관 벨이 울린다.

“네.”

엎드린 채 대답한다. 다시 벨이 울린다. 생각해 보니 현관문 걷어차는 소리는 언제부터 사라진 건지 모르겠다. 딩동딩동.

“네, 안에 사람 있어요.”

일어나려 해보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다시 벨 소리가 들리고 밖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는 것 같은데 윙윙거리는 소리에 파묻혀 은하계 저편에 있는 외계인이 보내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호처럼 들린다. 왼팔에 힘을 줘 바닥을 짚고 일어난다. 침과 눈물, 콧물이 한데 섞여 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다. 뺨에서 분비물을 닦으며 들고 있는 전화기로 미미의 휴대폰 번호를 누른다. 수화기를 귀에 대고 휘청거리며 현관으로 걸어간다.

“여보세요.”

미미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 원훈인데요. 집 앞에서 또 화살을 맞아서…… 지금 119에…….”

“화살? 왜?”

말을 하며 도어 렌즈로 밖을 본다. 주황색 상의를 입은 남자가 묘한 표정으로서 성이고 있다. 문을 열어준다.

“모르겠…….”

구급대원들이 들어오자마자 몸에서 힘이 빠져 쓰러진다. 전화기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들이 내게 박혀 있는 화살을 보더니 뭐라고 떠들어대며 급하게 들것 위에 나를 올린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너무 심하다는 생각만 든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 사냥꾼도, 통증도, 세상도. 이제 내가 할 일은 없다. 그만 기절하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사냥꾼은 어디로 갔을까? 경비원에게 잡혀갔을 리는 없고.

눈을 끔뻑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통로를 빠져나가자 날 구경하러 모여든 몇몇 사람이 보인다. 손이라도 흔들어주고 싶지만 그건 좀 힘들겠지.

그순간 뭔가 등을 파고든다. 한 번 더.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눈앞이 깜깜해진다.


작가의말

앞글의 대화에서 허술한 부분을 찾긴 했는데 일부러 고치지는 않았습니다. 제 딴에는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고치지 않았다고 변명해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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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 12.05.15 204 3 11쪽
4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2.05.13 255 1 9쪽
4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2.05.09 206 1 8쪽
»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2. +1 12.05.07 210 1 8쪽
4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1. +2 12.05.05 221 8 9쪽
4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1. +2 12.05.02 241 1 9쪽
4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1. 12.04.30 207 2 10쪽
4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7 274 3 9쪽
4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5 209 2 8쪽
4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12.04.23 259 2 9쪽
3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0. +3 12.04.21 241 2 10쪽
3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7 266 3 12쪽
3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5 247 3 13쪽
3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9. +2 12.04.13 265 5 9쪽
3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12 326 2 9쪽
3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11 309 4 9쪽
3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5 12.04.10 293 4 9쪽
3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1 12.04.09 289 3 9쪽
3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8. +3 12.04.07 377 7 7쪽
3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6 290 4 9쪽
2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2 12.04.05 427 4 10쪽
2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1 12.04.04 359 5 9쪽
2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3 12.04.03 492 6 8쪽
2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7. +1 12.04.02 485 7 8쪽
2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1 12.03.23 516 5 11쪽
2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2 12.03.22 434 6 9쪽
2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3 12.03.21 355 7 9쪽
2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1 12.03.20 424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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