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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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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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1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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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꽃. 제 9막. 위티시 훈장.

DUMMY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하고는 다시 보석들로 눈을 옮긴다. 사실 어려서부터 고생께나 했던 그인지라, 그리고 이렇게 자라오면서까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은 삶을 살았던 그인지라 이런 보석들을 보는 안목은 영 별로인 그였다. 그런 그가 보기에도 꽤 고급스러운 것들이긴 했다.


물론, 그래봐야 다 똑같은 보석으로 보일 뿐이지만. 만일 일이 잘 되어 자신이 왕위에 오르면 이런 것들도 잘 봐야 귀족들에게 트집잡히지 않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하니 퍽 우스워졌다. 아직 갈 길이 먼데 쓸데없는 것으로 걱정하는 것 같아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돌린다. 그 때 그의 눈에 딱 들어온 것이 있었다. 시계였다.


“이건 왜 이렇게 구석에 뒀나? 꽤 괜찮아 보이는데.”


“예? 아, 프리실라 양이 시계를 차고 다니진 않을 테니까요. 가운데에 있는 것이 우선순위로써는 1위입니다. 귀걸이나 반지, 팔찌, 뭐 그런 거요. 거기다 그거, 귀족 아가씨들이 하기에는 시계가 좀 크지 않습니까? 요즈음 유행은 자그마하고 귀여우면서도 반짝거려서 딱 눈에 띄는 그런 거라던데.”


“그게 뭐야?”


“전들 알겠습니까? 사교계에 나가본 적이 없으니. 그 전에 이런 건 스스로 좀 알아보세요. 저도 이런 거 일일이 조사하는 거, 뭔가 시종노릇 하고 있는 것 같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입니다. 아니면 그 아가씨에게 좀 물어보시든가요. 빈트뮐러 상단이 그렇게 클 수 있었던 것은 귀족들의 취향을 완벽하게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하긴, 카를로가 그 상단의 후원을 받고 있는 걸 보면 말 다했지만 말입니다. 안 그래도...”


프랜시스가 주절주절 얘기하는 것을 뒤로한 채 그는 시계를 바라본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조금 우스웠지만, 꽤 괜찮아 보이는데 단지 요즈음 유행하는 것들보다 조금 크다는 이유로 구석에 밀려난 손목시계가 처량해 보인다. 어째서 저것이 저렇게 제 시선을 빼앗은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는 깨달았다.


손목시계의 장식이 유난히 낯이 익었다 생각했는데, 샤를리즈의 회중시계의 문자판과 비슷했다. 자신이 이렇게 주의력이 좋았나, 새삼 놀란다. 그는 손을 뻗어 손목시계를 든다. 브레슬릿 부분은 백금이었고, 문자판에 그 루타가 자랑하는 보석들이 박혀 있었다. 그에 프랜시스가 물었다.


“그게 마음에 드시나봅니다. 남자가 하기에는 시계 크기도 작고, 브레슬릿 부분도 좀 그런데... 한 번 장인에게 남성들이 하는 시계가 있나 물어볼까요?”


“아니. 그냥 이게 마음에 드는군. 수집용으로 하나 사지.”


“그런 걸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습니까?”


“오늘부터 있다고 해두게. 아, 프리실라의 취향은 역시 잘 모르겠어. 자네가 적당히 골라줘.”


“예?”


“대신, 자네의 약혼녀에게 줄 선물도 내가 계산하지.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오늘은 시릴 슈드레거와 약속이 있어서.”


그는 손목시계를 대충 주머니에 넣고는 지루한 시간이 끝났다는 듯 기지개를 쭉 편다. 프랜시스가 뭐라 말리려 하기도 전에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열고는 나가버린다. 어차피 조금이라도 버텼다간 프랜시스의 잔소리에 나가지도 못하고 잔소리나 들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는 혹시나 프랜시스가 따라올까 싶어 조금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걷다가 이내 창문 옆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고 보면, 오늘 그의 사촌 조카의 탄생을 기리는 검투 대회가 있다. 그리고 그 대회의 우승자 혹은 우승자의 후원자가 훈장을 얻게 되고, 거기서 사촌 조카의 이름이 무엇인지가 밝혀질 것이리라.


본래 크로이츠 왕국의 전통상 왕족의 이름은 그런 식으로 밝혀지는 것이다. 그 때문에 왕족의 이름을 딴 훈장은 엄청난 명예가 되는 것이다. 왕족을 지키는 영원한 검이라는 의미.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러고 보면 그의 이름을 딴 훈장의 주인도 있었다. 그 훈장의 주인을 그의 아버지는 매우 아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는 왕의 총애를 5년도 채 받지 못하고 정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란으로써는 얼굴조차 희미한, 그의 검이었다. 한 가지 딱 생각나는 것은 그의 검은 그를 꽤 아껴서 자주 목마를 태워줬다는 것뿐.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시절 때문에 그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일이 잘 풀리고 나면 그의 불명예도 그가 씻어줘야 할 것이다.







* * *







왕궁의 아침은 항상 분주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분주한 까닭은 태손의 이름을 건 훈장의 주인을 가리는 대회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의 무사들이 왕립 기사단에 입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주어지는 날이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그가 일어날 확률은 극히 드물었지만, 간간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왕족의 이름을 건 훈장은 아니었지만 건국일 기념 훈장을 딴 ‘글렌 아치볼트’의 예도 있었고 좀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라르비카이츠 훈장을 딴 기사도 평민 출신이었다. 비록 그러한 자들은 많지 않았고, 또한 출세의 길이 제한되어 있어 대개 기사단 내에서는 이름을 날리지 못했다.


그러나 글렌 아치볼트의 경우엔 현재 실력만으로는 왕립 기사단의 1인자로 평가되는 인물이었다. 이러한 인물들이 분명 존재했기에 이름께나 날린다는 용병들 사이에서 훈장을 건 대회가 열린다는 소문이 돌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귀족들에게 로비를 하곤 했다.


귀족은 훈장을 따서 제 명예를 드높이고, 왕실에 제 사람을 만들어 놓을 수 있다. 용병은 평민이면서 거의 귀족에 준하는 명예와 권력을 얻을 수 있다. 왕국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무사를 고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룰에 관심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사내가 그를 고용한 청년의 뒤를 따르며 중얼거렸다.


“크긴 크군요. 저는 그라니언 성이 가장 큰 줄 알았는데.”


에단의 소심한 감상에 에드리안은 픽 웃고는 어깨를 으쓱인다.


“그런가요? 사실 전 잘 모르겠던데. 제가 크기 개념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하긴, 왕궁에서 안 가본 곳이 더 많으니까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어요.”


“흠. 그건 그렇고 의외로 사람이 없군요?”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건 고위 귀족들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서 그런 거예요. 제가 사람 많은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 건 부친을 닮지 않으셔도 좋을 텐데요.”


공작을 두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에드리안은 키득거리며 웃고는 말했다.


“그것보다 절대 상처를 입혀선 안 되는 분들의 얼굴은 다 기억하셨죠?”


에드리안이 마차에서 보여준 초상화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적힌 이들은 거의 다 고위 귀족 출신의 무인들이었다. 어차피 에드리안에게 훈장을 안겨주고, 샤를리즈를 깔보기 위해 참여한 에단이다. 왕립 기사단에 들어가거나 하는 일은 관심 밖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다치게 하거나 한다 해서 가슴 조릴 이유는 없었다.


샤를리즈 또한 ‘설마 에단이 그렇게 잘나가시는 양반들을 다치게 하겠어?’라며 어깨를 으쓱였었다. 그 도발에 괜히 걸려들어 에단이 날뛰기라도 할까봐 에드리안은 결국 그 구하기 힘들다는 초상화들을 직접 구해왔다. 그 수고를 모를 리 없는 에단은 일단 보긴 다 봐뒀지만 사실 기억을 할 자신은 없었다.


기껏해야 에드리안이 옆에서 ‘저 분은 절대로 건드려선 안되요.’라고 거듭 강조한 스웨어 백작이나 기억이 날 뿐이었다. 사실 그마저도 그 댁 아드님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굳이 이런 사실을 알릴 필요 없다는 생각에 에단은 고개를 끄덕인다.


“예.”


요지는 꽤 비싸 보이는 갑옷을 입은 자는 적당히 상대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갑옷이나 검에는 꽤 안목이 있는 그이다. 차라리 그를 보고 상대를 할지 안 할지 결정하는 것이 빠르다.


“어차피 그 분들은 왕립 기사단이시니 참여는 하지 않으실 테지만. 간혹 쓸 만한 이가 있으면 나서서 시험해보신다고 하시니까요. 게다가 그렇게 나선 분들을 쓰러뜨린 자는 한 번도 없었고요. 그것이 고의이든 아니든.”


“에드리안 군도 그럽니까? 예를 들면 뛰어난 학자가 골탕이나 먹어보라는 식으로 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데도 봐주는 그런 거 말입니다.”


“안 한다고는 말 못하죠.”


“처세술 같은 거, 엄청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누님이나 에단 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제가 순진하지는 않다고 해둘게요.”


“저는 그래도 제법 압니다.”


일전에 공작부인의 별장에서 있었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에드리안은 눈치 채고는 괜히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인다. 그에 에단은 헛기침을 하곤 말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제게 호칭을 빼시고 존대도 거두시죠. 다른 이들은 보기 이상할 테니까요.”


확실히 공작 가문의 유일한 도련님이 한낱 용병에게 ‘~씨’라든가 존댓말을 하는 것은 이상했다. 그리고 에단의 ‘~군’이라는 표현도 문제가 있었다. 서로에게 항상 그런 식으로 말해왔던 둘이라 호칭 때문에 약간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에드리안이었다. 그는 한껏 굳은 채 말했다.


“그, 그럴까?”


“예, 도련님.”


그 말에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은 어색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습이라도 해두는 것이었다.


작가의말

잠수를 오랜 기간동안 타서 스토리 라인을 다시 재 구성해봤는데...

15막으로는 턱도 없네요. 조금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꼭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은 다 외전으로 돌렸는데도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엉..

그리고 로맨스.... 사실 이 부분이 저한테 가장 큰 문제인데.
제가 로맨스는 써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걸 어떻게 하지... 항상 그 생각뿐이네요. 로맨스 부분은 사실 거의 백지입니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ㅠㅠ

그런데 스토리상 로맨스를 아예 들어낼 수도 없는지라... 제 생각에 로맨스로 가면 아마 퀄리티가 똥망이 될 것 같습니다.

에드리안의 로맨스를 쓰라고 하면 차라리 쉬울 것 같습니다. 샤를리즈는... 너무 애가 빡세서(?) 더 힘드네요. 얘는 시작부터가 막혀요.ㅋㅋㅋㅋㅠㅠ

로맨스 스토리 라인을 짜다가 징징거려봤습니다. 죄송합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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