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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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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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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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0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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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 13막. 사냥.

DUMMY

며칠이 지난 뒤 마담 페트리시아가 상단을 찾았다. 그녀가 상단에 찾아온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로버트 케일리는 아주아주 오랜만에 머리를 단장하고 정장을 입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가 상단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샤를리즈의 사저였다. 그것도 독대로 말이다. 항상 샤를리즈의 곁에 붙어 다니던 에단 마저도 함께 있기를 거부한 채, 마담 페트리시아는 꽤 신중한 표정으로 샤를리즈의 앞에 앉았다. 샤를리즈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말했다.


“머리, 염색했네요? 금발이 어울릴 줄은 몰랐는데.”


본래는 샤를리즈의 것보다도 더 짙어 적갈색에 가까운 머리칼을 가진 그녀였다. 꽤 도발적인 성격인지라 그 머리가 잘 어울렸는데, 지금 하고 있는 화사한 금발 또한 그녀와 잘 어울렸다. 로버트 케일리가 좋아하겠다고, 샤를리즈는 생각했다. 그의 취향은 본래 정석적인 금발 미녀였으니까.


“이게 본래 머리색이에요.”


“아, 그래서 그랬구나. 금발이 잘 어울렸던 거.”


샤를리즈가 턱을 매만지며 말하자 마담 페트리시아는 키득거리고 웃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자, 이제 서론은 끝냈으니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우선, 가벼운 것부터 시작하죠. 시릴 슈드레거.”


“그가 가벼운 주제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내 머릿속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래, 어때요? 그 사람.”


“아가씨가 알고 있는 것부터 짚어 내려가자면, 전 슈드레거 총수의 애첩이었던 여자가 바람을 피워 낳은 아들이죠. 그리고 그 바람 상대는 아스피트 가문의 방계 중의 방계로 시릴 슈드레거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형당했다더군요. 죄목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아스피트 가문 자체에서 행한 일이라 거기까진 알 수 없었어요. 아무튼 오갈 데 없는 그 애첩은 결국 슈드레거에게 돌아갔고, 마음씨가 착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호구였는지 슈드레거는 받아줬죠. 그래서 이름은 시릴 슈드레거.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영특했고, 그래서인지 슈드레거의 눈에 들어 꽤 귀여움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공부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대학에도 들어갈 수 있었고.”


“대학? 대학까지 들어갔단 말이에요?”


“네. 덕분에 슈드레거의 돈이 제법 깨진 모양이지만. 꽤 유명한 대학이에요. 그 때... 누구더라? 아가씨가 조사하라고 일렀던 그 사람하고 같은 대학이었는데?”


“란. 란 크로프츠.”


샤를리즈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아, 이렇게 해서 그를 불러낼 건수도, 란에게 접근할 기회도, 그리고 그에게 정체를 밝힐만한 만남도 순식간에 이뤄진 셈이다. 문제는 어떻게 꽁꽁 숨은 시릴을 꾀어내느냐 이겠지만.


“맞아요. 아, 그 자와 꽤 친하다는 소문도 들려오더군요. 아무튼 최근에 졸업하고 대학 친구들과 꽤 자주 어울리나보더군요. 그러다가도 요즈음에는 슈드레거 일로 그 쪽 간부들과 마찰이 심하고. 뭐, 우리 쪽에서 심어둔 이가 꽤 잘하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그거야 당연하죠. 내가 아는 한 이간질에 가장 능한 사람을 꽂아 놓았는걸.”


“뭐, 아무튼 자세한 사항은 서류로 다 보냈으니 읽어보시든가요. 하지만 별 거 없을 거예요. 내가 말한 게 요약본이거든.”


“알아요. 내가 마담에게 한두 번 일을 맡겼나?”


샤를리즈가 믿는다는 듯 웃으며 말하자 마담은 빙긋 웃은 뒤 다시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왼쪽 검지를 오른쪽 검지로 천천히 긁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샤를리즈가 노칠 리 없었다. 뭔가 꺼려하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그리고... 아주 오래 전에 물었던 이야기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데...”


“오래 전? 마담이 일을 오래 끈 적은 없었을 텐데요?”


“사실 일은 빨리 마쳤었죠. 다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망설였어요.”


“음... 누군데 이렇게 뜸을 들이실까? 전 짐작도 안 가네요. 그 마담 페트리시아가 이렇게 떨다니.”


샤를리즈의 물음에 마담 페트리시아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다시 한 뒤 고개를 들었다.


“클랜디스 드 로즈퍼드.”


“아...”


뜻밖의 이름에 샤를리즈는 불현 듯 그와 마주쳤던 날을 떠올렸다. 가면무도회였었지. 비록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소름끼치리만치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그 얼굴로 내뱉는, 유혹의 말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뱀처럼 서서히 그녀를 옥죄는 분위기.


“아가씨. 그 자는 아주 위험한 자에요. 나는 그 자를 직접 본 적이 없지만, 그 자의 외할머니 되는 여자에 대해 알고 있죠.”


“허어? 그렇게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그런 셈이죠. 들어봐요. 이 이야기는 우리 쪽에서 꽤 유명한 이야기이니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 홍등가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그 때에 어느 부호가 찾아와서 몸을 파는 아이들 가운데 아주 외모가 빼어난 아이들을 모두 사갔다고 하더군요. 거의 평생을 먹고 살 돈을 쥐어주고서 말이에요. 게다가 그가 원하는 아이를 낳아준다면 그 돈의 10배를 주겠다고 했대요. 얼굴값 좀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아이들은 모두 그에게 달려갔죠. 아시다시피 몸을 파는 이들은 아기를 가지는 순간, 돈을 벌 수단이 거의 없어지는 셈인지라 아이를 갖지 않기 위해 독약을 주로 먹어서,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이들은 드물었죠. 아무튼 단 한사람이 그가 원하는 아이를 낳았는데, 그 여자가 꽤 유명한 여자였어요. 이쪽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미인인 데다가 머리가 아주 좋아서 고위 귀족만을 상대한 여자였죠. 그 여자가 낳은 것은 딸. 그녀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었다고 들었어요. 아주 어렸을 때, 난 그 딸을 본 적 있었어요. 그런데 나는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 여자의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이 나요. 그 정도로 미인이었지. 뭐, 외국의 사신들조차 그녀를 한 번쯤 보기 위해 줄을 섰다니 말은 다했죠. 그 정도로 미인이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꽤 한미한 가문이었지만, 아무튼 귀족 가문의 정부인으로 들어가게 되요.”


“...로즈퍼드 부인의 이야기로군요.”


샤를리즈 또한 알고 있었다. 남자든 여자든 꾀어내어 죽인다는 악마처럼 아름다웠던 여자. 그리고 그 외모를 꼭 닮은 클랜디스 드 로즈퍼드.


“맞아요. 그녀는 비록 신분 세탁을 했지만 본질은 홍등가 여자의 딸. 뭐, 딸은 그 부호인 아버지가 키웠지만요. 하지만 정말로 흥미로운 사실은, 이 일을 제가 맡았을 때 그 부호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지만 그 어떠한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는 거예요. 즉, 그 자의 이름과 신분은 모두 가짜였다는 것이죠. 그럼 누굴까요? 신분조차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돈을 가진 그 남자는. 아쉽게도 전 찾지 못했어요. 실체를 감추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손을 써둔 지라.”


페트리시아가 혀를 차며 말하자 샤를리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샤를리즈 스스로도 그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 걸릴 것이다. 마담 페트리시아의 정보망은 샤를리즈의 것보다는 조금 부족했지만, 그래도 정확했고 무엇보다 빨랐다.


그런 그녀가 꽤 오랜 시간동안 공을 들여 찾아도 찾지 못한 정보이다. 샤를리즈라면 찾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샤를리즈는 금세 찌푸려진 미간을 검지와 중지로 문질렀다. 그래도 일단은 찾아봐야겠지. 샤를리즈는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어, 그래서요. 나는 클랜디스의 가족력 외의 것도 알고 싶은데.”


“가장 중요한 대목이 바로 여기서부터. 자, 아가씨. 아가씨는 머리가 좋잖아요? 왜 그 부호는 홍등가의 여자들을 사들였을까요? 왜 그는 그들에게서 아이를 얻고 싶어 했을까요? 그것도 딸을?”


“수수께끼인가요? 글쎄요. 상식적으로 한 번 생각을 해보죠. 그는 그의 신분이 드러나고 싶어 하지 않는 남자였어요. 돈이 아주 많고, 자신의 신분을 마담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숨길 수 있을 만한 권력도 가진 자였죠. 그러니 그는 아마도 고위 귀족이나 뭐, 그 비슷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군요. 대상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시대의 대상인이라고 해봐야 바켄바우어나 슈드레거인데 그들은 그럴 이유도 없을뿐더러 마담의 눈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의 권력은 가지고 있지 않죠.”


샤를리즈는 눈을 내리깐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들이 아닌 딸을 원한 모양이군요. 하긴, 그건 당연한 거예요. 가문을 잇지 않는 아들은 하등 쓸모도 없는 걸? 그도 그럴게 그는 농부가 아니니까요. 그에게 필요한 아들은 그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아들일 뿐. 그러니 그는 딸을 원한 거예요. 그렇다면 딸을 가지고 뭘 하려고 했을까요? 그것도 아주 아름답고, 영악한 재능을 가진 딸. 뭐, 이 세계에서는 뻔한 일이죠. 딸을 가지고 장사를 하려고 했던 거예요. 문제는 그가 무엇을 원했냐는 것인데...”


그녀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여기서부터는 잘 모르겠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왜 그렇게 큰돈을 들인, 악마처럼 아름답고 재능 있는 여성을 고작 자작가문의 처로 보냈냐는 거죠. 그것도 세가 기운 로즈퍼드 자작가문 같은. 물론, 그 가문은 명망있는 가문이고, 옛날에는 아주 잘 나가는 가문이었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돈을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 가문이 조금 한미한 가문이었기 때문에 그 여자가 정부인이 될 수 있었지만...”


“맞아요. 거기서 조금 의문이죠. 다행히 나는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아냈고요.”


“궁금하네요. 왜 그랬죠?”


“그 자의 과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있었더군요. 왕의 정부.”


‘왕의 정부’라는 말에 의자에 기대어 있던 샤를리즈의 몸이 펴졌다. 그리고는 샤를리즈의 녹색 눈동자가 빛을 발했고,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샤를리즈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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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4 13.10.18 703 20 13쪽
172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16 802 25 10쪽
171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13 905 24 8쪽
170 제 13막. 사냥. +9 13.10.11 1,063 27 9쪽
169 제 13막. 사냥. +5 13.10.08 975 37 10쪽
168 제 13막. 사냥. +9 13.10.02 954 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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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제 13막. 사냥. +5 13.09.06 2,045 40 9쪽
» 제 13막. 사냥. +5 13.09.01 1,117 26 10쪽
159 제 13막. 사냥. +8 13.08.29 4,180 3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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