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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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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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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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1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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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 13막. 사냥.

DUMMY

“슈드레거의 꼴이 아주 우습게 된 거지. 알고 있나? 자네가 샤를리즈 빈트뮐러를 죽이려고 한 것은 상단의 모든 간부들이 알고 있어. 그리고 그들 모두가 아주 부끄러워하고 있지! 자네가 분명 슈드레거를 위해 그 일을 벌인 것이라는 건 모두가 잘 알아. 하지만 그 일이 결국엔 우리를 분열시키고 있다. 갈팡질팡하던 간부들은 빈트뮐러 상단에게 밉보일까싶어 슈드레거의 기밀들을 고해바치고 있어. 분위기가 너무나도 어수선해졌다. 자네는 이 일을 책임져야 할 거야!”


테미안의 노기어린 외침에 시릴은 움찔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 또한 그 실수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죽이려면 한 번에 죽였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고, 결국 깨작거리다가 점점 분위기를 흐려놓은 셈이 된 것이다. 덕분에 빈트뮐러 상단의 경비는 더욱 강화되었고, 암살자는 구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그리고 슈드레거 간부들 사이에서는 이제 자신의 상단이 한낱 작가인 여자조차 죽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탄하겠지. 슈드레거를 살리고자 한 행동이 빈트뮐러의 강인함을 증명시켜주는 꼴이 된 셈이다. 생각이 짧았다. 여자 하나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일이 란 크로프츠에게 알려진다면, 아마 슈드레거는 더 이상 후원자를 찾을 수 없게 되겠지. 시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욱 빠져드는 늪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다. 시릴의 얼굴이 한층 어두워지자 테미안은 머뭇거리더니 외투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낸다.


몇 장의 종이였다. 시릴이 무엇이냐는 듯 테미안을 바라보자 그는 턱짓으로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오늘 여기에 온 이유이지.”


꽤 의미심장한 말에 시릴은 인상을 찌푸리고 안경을 쓴 뒤 그 종이들을 집어 든다. 다름 아닌 청첩장이었다. 누가 결혼하나 싶어 보는데 그의 인상은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오스월의 외동딸이 결혼을 한다는 건가! 그것도 빈트뮐러 간부의 장남과!”


“그렇다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야. 빈트뮐러의 간부 자식들과 슈드레거 간부 자식들 간의 혼담이야. 이게 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지.”


“빈트뮐러가 움직이기 시작했군.”


시릴이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 심리적으로 조급할 때면 으레 나오는 버릇인지라 테미안은 그를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었다. 시릴은 정신없이 종이들을 넘겼다. 그리고 명단에 적힌 간부들의 이름을 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쉰다.


“젠장! 모두 슈드레거에 꼭 필요한 인재들이로군. 특히 오스월은 휘하 장인들이 가장 많은 자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아버지의 말을 듣는 것인데.”


시릴이 두 손을 모은 뒤 이마에 갖다 대면서 말했다. 마치 기도를 하는 형상이었다. 테미안은 그를 바라보다가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아아, 그러고 보니 자네는 오스월의 외동딸과 혼담이 오갔었지. 하지만 그 때는 어쩔 수 없지 않았나? 자네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뭐 바빴으니 말일세. 게다가 대학만 나오면 더 좋은 곳에서 혼담이 올 지도 모르니, 그래서 총수께서도 자네의 말을 들어주었고.”


테미안의 말에 시릴은 눈을 끔뻑였다. 마치 ‘그 때 그런 변명을 댔었나?’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고, 테미안은 그를 눈치 챘지만 모른 척했다. 사실 아는 이는 다 알고 있었다. 시릴이 꽤 오래 전부터 짝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다는 것쯤은.


그 여자가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어찌 되었건 그 짝사랑은 좋게 끝나지는 않았다. 그러니 아직까지도 그는 홀몸인 게지. 슈드레거 내부에서 떠도는 소문이었지만, 정작 시릴만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모르는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그랬었지.”


“아무튼 여태까지 별말이 없었던 빈트뮐러 쪽의 간부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 슈드레거를 집어삼키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나 다름이 없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혼담들에 초대받지 못한 간부들은 빈트뮐러에 대한 반감이 심해졌지.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나, 뭐라나.”


테미안이 마치 저잣거리의 쓸데없는 소문을 읊듯 이야기하자 시릴은 코웃음을 쳤다.


“흥. 그것들은 우리에게도 있으나 마나한 것들이야. 오히려 여기에 적힌 자들이 슈드레거를 위해 진짜 필요한 이들이지. 그런데 말이야. 빈트뮐러... 이 여우같은 놈들이 마치 우리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려고 하는 것 같지 않는가!”


“만약 그런다면 무슨 의도로 그런단 말인가? 바켄바우어마저 집어삼킨 빈트뮐러가 왜 굳이 우리를 가지고 놀아? 여태까지 빈트뮐러가 걸어온 길을 보면, 절대로 그렇게 미적미적 일을 처리하지는 않네.”


“모르지. 나도 의중을 잘 모르겠네. 솔직히 이 청첩장이 내 손에 들어온 것도 의문이야. 만일 슈드레거를 아무도 모르게 집어삼키고 싶었다면... 이런 것도 조용히 처리해야할 것 아닌가? 바켄바우어 때만 하더라도 그랬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전혀 몰랐지. 그저 바켄바우어의 장인들이 갑자기 그라니우스로 가더니 빈트뮐러 소속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빈트뮐러가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았어. 그리고는 서서히 몰락했고, 갑자기 바켄바우어의 총수가 이 나라를 떴어. 이게 빈트뮐러의 방식이야. 비록 우리 쪽의 정보가 약해진 것도 있겠지만... 아무튼 아무도 모르게 일을 벌이고는 마치 감상하라는 듯 꽝! 하고 터뜨리지. 그런데 지금 이것들은 우리에게 힌트를 주고 있어. 마치 게임을 하듯이 말이야.”


시릴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그런 그의 반응은 당연했다. 이쪽은 지금 죽으냐, 사냐의 기로에 서 있는데, 저것들은 마치 게임을 하듯 서서히 몰아세우고 있지 않는가. 마치 사냥감을 한 곳으로 몰아세우 듯. 사냥꾼이야 이런 방식이 재미있겠지만, 사냥감인 이쪽의 입장에서는 아주 짜증이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릴의 지적에 테미안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의 둥그런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방식을 바꾼 걸까? 하필이면 우리에게.”


“그건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


시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 시간동안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무릎 관절에서는 우두둑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릴은 걸어가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열었다. 촛불에만 의존하던 방의 밝기가 훨씬 밝아졌다. 시릴은 창문을 열며 말했다.


“분명한건, 지금 빈트뮐러는 슈드레거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는 거야. 바켄바우어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무언가가.”


시릴이 고개를 돌려 테미안을 바라보았다. 햇빛의 정 반대에 선 그였기에, 그의 얼굴은 한없이 그늘 져 있었다.


“그리고 조만간 그것들은 대화를 걸어오겠지. 누구에게, 그리고 어떻게 대화를 걸어올지 궁금하군. 우리는 그저 초조하게 그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네.”







* * *








최근 북부와 인접하고 있는 야만족들과 그 너머에 있는 나라와의 잦은 분쟁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 지식층 사이에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만일 전쟁이 일어날 경우, 왕가의 누가 나서야 하느냐.’ ‘북부의 아스피트의 서열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은 없는가?’ 등등 말이다.


전쟁이라는 주제는 크로이츠 왕국에서도 다뤄진지 꽤 오래된 주제였던지라 젊은이들은 지금의 시국을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덕분에 왕궁 밖 토론장이나 다름없는 ‘사교장-카페와 비슷함.-’은 붐볐다.


그 가운데에서도 자리를 빌리는데 가장 비싼 대신, 출입한 이들에 대한 정보 누출이 가장 없다고 알려진 사교장인 ‘몰리노’에는 6명 정도 되는 사내들이 그 주제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다른 그룹에서 다루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아스피트 가문의 장남은 버려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폐인처럼 지내는데다가 공작과는 사이가 극도로 좋지 않죠. 게다가 마치 대들기라도 하듯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이상한 행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줄을 타려면 그 가문의 차남에게 줄을 타는 것이 좋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그 자는 무인으로서 아주 뛰어난 재능을 보여 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전쟁에서도 훌륭하게 제 역할을 수행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우리 같은 이들은 역시...”


그렇게 말한 이는 꽤 세력을 떨치고 있는 가문의 삼남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장남이 아닌 자는 거의 쓸모가 없는데다가 제 가문에 계속 남아 있다가는 장남에게 목숨을 잃거나, 혹은 장남과의 사이가 좋다고 한들, 장남의 충신들에게 누명을 써 죽임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혹시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애매모호한 입장에서 혼인도 제대로 못한 채 전전하며 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랬기에 그런 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라니언이나 아스피트 휘하에서 공을 세워 그들의 충실한 가신이 되거나, 혹은 뛰어난 재주를 발휘해 왕가에 인정을 받아 기사가 되거나, 혹은 법조인이나 의원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자신들의 여자 형제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이 그들인 셈이다. 그랬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이번 사태는 중요한 것이다. 왕가의 기사가 되는 것은 힘드니 아스피트의 기사라도 되어 보겠다는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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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1.05 761 22 14쪽
176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31 808 23 11쪽
175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3 13.10.25 804 25 10쪽
174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4 13.10.21 939 23 10쪽
173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4 13.10.18 703 20 13쪽
172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16 802 25 10쪽
171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13 905 24 8쪽
170 제 13막. 사냥. +9 13.10.11 1,063 27 9쪽
169 제 13막. 사냥. +5 13.10.08 975 37 10쪽
168 제 13막. 사냥. +9 13.10.02 954 26 14쪽
167 제 13막. 사냥. +7 13.09.28 1,615 35 9쪽
166 제 13막. 사냥. +8 13.09.24 953 28 11쪽
165 제 13막. 사냥. +6 13.09.19 999 29 12쪽
164 제 13막. 사냥. +9 13.09.14 1,445 30 10쪽
» 제 13막. 사냥. +4 13.09.12 2,917 45 10쪽
162 제 13막. 사냥. +4 13.09.10 2,859 38 11쪽
161 제 13막. 사냥. +5 13.09.06 2,045 40 9쪽
160 제 13막. 사냥. +5 13.09.01 1,116 26 10쪽
159 제 13막. 사냥. +8 13.08.29 4,180 36 9쪽
158 제 13막. 사냥. +7 13.08.26 1,525 28 12쪽
157 제 13막. 사냥. +3 13.08.17 2,162 37 11쪽
156 제 13막. 사냥. +2 13.08.10 2,700 21 9쪽
155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8.03 1,148 18 9쪽
154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7.27 1,015 25 11쪽
153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4 13.07.20 953 18 23쪽
152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2 13.07.13 1,022 21 13쪽
151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4 13.07.06 926 15 15쪽
150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6.29 2,752 28 15쪽
149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2 13.06.22 982 19 16쪽
148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6.15 1,010 1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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