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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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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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29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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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 13막. 사냥.

DUMMY

“뭐...”


생각지도 못한 지적에 에드리안은 멍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보였단 말인가? 적어도 제 할 일은 똑바로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흥. 엘루이즈 드 스웨어야 그렇다 치고 클랜디스같은 놈이랑 친하게 지내는 저 녀석의 수준도 알만하지. 제 직위를 올리려고 창녀처럼 몸을 팔고 다니는...”


“그 입 다물어!”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친우의 욕을, 그것도 꽤 더러운 욕을 듣자 에드리안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그의 머리칼만큼이나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클랜디스가 그러고 다닌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귀족 여성들과 대화도 섞지 않고 있었고, 나름대로 점잖게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엘루이즈와 함께 얼마나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록 과거에 그랬다고 한들, 아니 설령 지금도 그러고 있다 하더라도 제 친우를 ‘창녀’에 비유하는 것은 너무나도 화가 나 앞뒤 가리지 않고 에드리안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감히 그런 식으로 말을 하다니! 그것이 고위 귀족들이 하는 행동이냐?”


“하! 지금 그런 놈을 감싸고도는 거냐? 끼리끼리 논다고 하더니.”


“유치하기 짝이 없군. 나를 괴롭히고 싶거든 날 괴롭혀. 내 주변 사람들은 건드리지 말고. 그럴 용기는 차마 없는 건가? 내가 차기 공작이라서?”


“이게 진짜...!”


행동 대장이 곧장 달려들 것처럼 굴었고, 그의 시종 또한 그가 에드리안에게 달려들면 곧장 몸을 날려 그를 때려눕히려고 준비하는 듯 보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꽤 느릿하고,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그들을 주목시켰다.


“요즈음 젊은 것들은 싸움도 꽤 치졸하고, 비겁하고, 유치하게 하는군.”


꽤 도발적인 내용에 그들 모두 고개를 돌렸고, 동시에 이성도 몸도 모두 멈추었다. 다들 멍하게 숨만 쉬면서 저벅저벅 걸어오는 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소문과 다르게 인상을 제법 심하게 찌푸리고는 말했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나 싶어서 직위와는 맞지 않게 엿듣고 있었네만. 이런 일들은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해서 제법 흥미롭거든. 물론, 내가 대개 괴롭히는 쪽이었지만 말이야.”


“아, 아버지...”


에드리안이 멍하게 ‘그 이’를 불렀다. 그러자 청년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궁정식 절을 했다. 그의 뒤를 따르던 앨런은 에드리안의 시종에게 몸은 괜찮은지 묻고 있었고, 공작이 에드리안의 앞에 섰기 때문에 에드리안은 본의 아니게 제 아버지의 뒤에 숨은 꼴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청년들을 바라보며 공작이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흥미로운 일이라 할지라도 내 후계자가 그 대상이 되는 건 썩 탐탁지 않은 일이지. 안 그런가?”


감히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우물거리는 그들을 보며, 에드리안의 인상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결국 이렇다는 것이다. 에드리안이 향후 어찌될지 모르는 후계자일 때는 떳떳하지만, 그가 그의 아비의 자리를 물려받을 때에는 저렇게 그의 앞에서 기게 될 테지.


그래서 굳이 저런 이들과는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저들 또한 아는 것인지 크게 그를 건드리는 일은 없었고. 오늘 처음으로 유난히 크게 건든 것인데 그게 운 좋지 못하게 공작에게 들킨 것이다. 그리고 공작은, 저들이 매일 저러는 줄 아는 것이겠지.


에드리안은 곁눈질로 그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 누이와 똑같은 패턴의 미소가 그의 입가에 감돌았다. 저건 정말로 화가 났다는 뜻이지.


“대답조차 하지 않는군. 내 후계자를 건들더니 이제는 나조차도 만만한가?”


“아, 아, 아닙니다, 각하.”


“아, 그래. 자네는 빈즈하인드 가문의 아들이로군. 차남이었나? 그 댁의 장남이 꽤 머리가 좋았지. 아마도 그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지 않는 한 그가 그 가문의 주인이 될 테지. 그럼 그 후 자네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아마도 빈즈하인드 가문의 슬하에 있는 가문을 잇거나 혹은 전쟁에서 공을 세워 작위를 받아야 할 터인데. 보아하니 기사단에 들어간 것 같지는 않군.”


“그, 그것은...”


“그리고 그 쪽은 동부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카일워즈 가문의 아들이로군. 자네야 장남인지라 별 걱정은 없을 테지만, 문제는 카일워즈 가문이 남부와 사이가 틀어져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이겠지.”


“각하!”


마치 협박이라도 하는 듯한 말투에 발끈한 것인지 카일워즈 가문의 자제가 얼굴을 붉혔고, 공작은 아주 드물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치졸하고 유치한 일에 권력을 쓸 마음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게. 나 또한 동부와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원치 않고 말일세. 다만, 젊은 후계들끼리 친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커서야. 나는 내 후계가 내 자리를 이어받았을 때, 쓸데없는 분란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아. 그건 아마 자네의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일 테지.”


“아...”


‘자네의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이가 아니었다. 동부와 남부는 오랜 기간 사이가 꽤 좋았다. 아니, 사실 남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지역은 어디에도 없었다. 남부를 상대로 감히 큰소리를 내기는 힘드니까. 기껏해야 북부의 아스피트나 가능할까?


그도 그럴 것이 남부는 토양이 비옥해서 왕국에서 수확되는 곡식의 절반 넘게 수확 가능한 지역이었다. 감히 누가 먹을 것을 손에 꽉 쥐고 있는 남부의 주인, 그라니언에게 왈가왈부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현재의 공작은 현왕의 오른팔이나 다름이 없는 것을.


그러니 저 말의 뜻은, 작위를 편하게 물려받고 싶거들랑 입을 닥치고 있으라는 소리였다. 말 그대로 말이다. 참으로 교활한 행동에 청년은 이를 으득 갈았다. 다행히 그런 젊은이의 치기에 대해서는 뭐라 할 의향이 없었는지 공작은 말했다.


“사이좋게 지내라는 유치한 조언 따위는 하지 않겠네. 다만, 서로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걸세. 이만 가보게. 나는 내 ‘아들’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말일세.”


그에 청년들은 궁정식 절을 한 뒤 떠났다. 저들이 차후 어떤 말을 할지는 뻔했지만 적어도 그 이야기들이 시녀들의 입을 돌아 그라니언 공작의 귀에 들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저 치들 또한 잘 알 테지.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라니언 공작은 근엄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에드리안.”


“예, 아버지.”


“고작 이런 일로 내가 나섰으니 네 평판은 안 좋아질 테지. 그럼에도 내가 나선 것은 네가 좀 각성하길 바라서였다.”


공작은 한숨을 내쉬며 에드리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별 것 아닌 행동이었지만 괴상하게 어깨가 무거워졌다.


“네가 천성이 착한 건 물론, 단점은 아니다만 방금도 봤다시피 별 것도 아닌 것들이 덤벼들 때에는 문제가 되는 일이야. 너를 걱정한다고 하기 보다는 우리 가문의 위신이 서질 않아. 때로는 네게 덤벼드는 것들을 밟아 비틀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마치 네 누이처럼.”


‘네 누이’라는 것이 프리실라가 아닌 샤를리즈를 뜻하는 바임을 모를 리 없다. 그래, 만일 제 누이였으면 온갖 비아냥거림과 저주를 말해 녀석들의 눈물 콧물을 다 뺐을 테지. 아니, 설령 자신처럼 웃으면서 넘겨도 뒤에서 어떻게든 손을 써 해칠 위인이다. 에드리안은 그 생각에 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 자리에 어울리는 것은 자신이 아닌 누이이다. 차라리 누이와 자신의 성별이 달랐으면 좋으련만. 누이를 따라 행동하는 것은 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따라하는 것일 뿐.


“이만 가보마. 오늘 일이 네게 자극제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아, 오늘은 좀 늦게 들어 오거라. ‘그 분’께서 오시는 날이니.”


“그 분... 네. 그럴게요. 스웨어 가문의 저택에서 저녁 먹고 갈 테니까... 가보세요, 아버지.”


“그래.”


공작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앨런을 손짓으로 불렀고, 앨런은 에드리안의 시종 어깨를 툭툭 두드린 뒤 공작의 뒤를 따른다. 아마도 먼 훗날에는 저러한 모습을 그와 그의 시종도 하고 있겠지. 공작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에드리안은 한숨을 폭 내쉰다. 그러자 시종이 그의 곁에 다가와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연다.


“그... 누님이라는 분은...”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맞아.”


에드리안이 곧장 대답하고는 앞을 걸어간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각성하기를 바랐다, 그의 아버지는. 그리고 자신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에드리안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고, 그의 시종은 움찔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 누님 분은 대단하신 모양입니다. 각하께서 다른 이를 인정하는 모습은 극히 드무니까요.”


시종의 말에 에드리안은 빙긋 웃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그럼. 누구든 누님을 해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뼈도 못 추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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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31 808 23 11쪽
175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3 13.10.25 804 25 10쪽
174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4 13.10.21 939 23 10쪽
173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4 13.10.18 703 20 13쪽
172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16 802 25 10쪽
171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13 905 24 8쪽
170 제 13막. 사냥. +9 13.10.11 1,063 27 9쪽
169 제 13막. 사냥. +5 13.10.08 974 37 10쪽
168 제 13막. 사냥. +9 13.10.02 953 26 14쪽
167 제 13막. 사냥. +7 13.09.28 1,615 35 9쪽
166 제 13막. 사냥. +8 13.09.24 952 28 11쪽
165 제 13막. 사냥. +6 13.09.19 999 29 12쪽
164 제 13막. 사냥. +9 13.09.14 1,445 30 10쪽
163 제 13막. 사냥. +4 13.09.12 2,916 45 10쪽
162 제 13막. 사냥. +4 13.09.10 2,859 38 11쪽
161 제 13막. 사냥. +5 13.09.06 2,045 40 9쪽
160 제 13막. 사냥. +5 13.09.01 1,115 26 10쪽
» 제 13막. 사냥. +8 13.08.29 4,180 36 9쪽
158 제 13막. 사냥. +7 13.08.26 1,524 28 12쪽
157 제 13막. 사냥. +3 13.08.17 2,162 37 11쪽
156 제 13막. 사냥. +2 13.08.10 2,700 21 9쪽
155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8.03 1,148 1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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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2 13.07.13 1,021 21 13쪽
151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4 13.07.06 925 15 15쪽
150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6.29 2,752 28 15쪽
149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2 13.06.22 981 19 16쪽
148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6.15 1,010 1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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