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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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최근연재일 :
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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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26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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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 13막. 사냥.

DUMMY

"그럼 한동안 당신을 습격하려는 자들은 계속 처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로군요."


"그러네. 수고 좀 해줄래? 대신 상단의 일은 당분간 제외시켜줄게."


뜻밖의 제안에 에단은 눈을 반짝였다. 그도 그럴 것이 타고난 무인인 그에게 있어서는 밤늦게 침입자들을 처치하는 것이 하루 종일 골머리를 앓고 있어야 하는 서류작업보다 훨씬 편했으니까. 에단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정말입니까?"


"물론. 그 정도는 당연히 배려해줘야 하는 문제지. 그런데 이제 에단이 맡아야 할 일은 로버트가 대신 맡게 될 텐데 그에게 이 슬픈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할지."


"제가 전하게 해주십시오. 안 그래도 요즈음 깐족거려서 골탕 먹일 일이 필요했는데."


일에 꽤 요령이 붙은 로버트가 에단보다 훨씬 빨리 일을 끝내고 그의 사저로 와 약을 올리던 것이 몹시 신경 쓰였던 그이다. 이런 기회가 오게 될 줄이야. 에단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데 샤를리즈 또한 꺼림칙한 일을 에단에게 넘겨 기쁘다는 듯 말했다.


"어머? 나야 고맙지. 그럼 마음먹은 김에 지금 당장 출발하시든가."


"물론이죠. 내가 이런 날이 오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겁니다."


에단이 퍽 신이 난다는 듯 기지개를 펴며 말하자 샤를리즈는 빙긋 웃은 뒤 가보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의자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깊은 생각에 잠길 때면 으레 하는 행동이었던지라 에단은 별 말 하지 않고 그녀의 방을 나왔다.


시릴 슈드레거가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몰라도 결론적으로 그녀의 기분이 좋아졌으니 그거면 된 건가? 사실 자신을 죽이려하는 이가 있다는 말을 전하려 할 때 꽤 긴장하고 있었다, 에단은.


지난 번 바켄바우어 사건 이후로 샤를리즈는 꽤 예민해져 있었으니까. 그래서 에단이 바쁠 때, 혼자 나갈 때면 힘 꽤나 쓰는 마부를 꼭 데리고 가곤 했었다. 씩씩한 척 해도 결국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에단 씨.”


낯익은 목소리에 에단은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험상궂은 인상에 목소리의 주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계속 찾아와서 죄송하지만...”


꽤나 공손하게 말하는 란의 말을 에단은 싹둑 자르며 말했다.


“알면 됐습니다. 그리고 미리 답변 드리자면 오늘도 바쁘다는 군요.”


에단의 말에 란은 보기 드물게 인상을 찌푸린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아마 이렇게 수득 없이 돌아가는 것이 열 번째가 넘어갔으니. 만약 에단이 그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물불 안 가리고, 바쁘든 말든 쳐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란이 교양 있는 남자라는 사실은 굉장히 다행인 일이었다.


“미치겠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바쁘답니까?”


“작가니까 아무래도 마감이나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슬슬 에단 씨도 변명이 떨어져 가는가 보군요. 참신함이 떨어져요.”


란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어쩌면 농담으로 넘길 수 있는 간단한 말을, 참신함이라는 말에 에단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한다.


“그 놈의 참신함! 오늘따라 유난히 참신함이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듣네요. 도대체 내가 그 참신함을 가져야 할 이유가 뭡니까? 난 그냥 힘 좀 쓰는 건달 같은, 뭐 그런 건데.”


에단의 과민반응에 란은 자신이 혹여 말실수를 했나 싶어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내 알았다는 듯 웃는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짜증을 낸 주제에 말이다. 그러고 보면 성격도 참 좋다 싶다. 몇 번을 거절당하고도 웃는 낯으로 오는 것을 보면.


“음. 보아하니 샤를리즈 양한테 들들 볶인 모양이군요.”


“뭐, 비슷하죠. 몇 번 들락날락거리더니 이젠 상단의 일을 파악하기 시작하셨나봅니다?”


“그런가요? 뭐, 적어도 에단 씨가 생각보다 다혈질이라는 건 파악했죠, 덕분에.”


“이 성격도 많이 죽은 건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에단이 말했고, 란은 눈을 놀랍다는 듯 되물었다.


“정말요?”


“예. 소싯적엔 꽤 날렸죠. 그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얌전하게 살줄은 몰랐는데.”


‘세상 참 덧없다.’는 듯 말하는 에단의 모습에 란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게 있어서 에단은 꽤 신선한 인물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하나같이 학구열이 가득한, 어쩌면 샌님들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열기는 뜨겁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실거린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반면, 에단은 겉으로는 아주 가라앉아 있었지만, 대화를 나눠보면 갓 잡아 올린 생선-란이 느끼기에는 그랬다.-처럼 활기찬 사람이었다.


“흐음. 첫인상과는 많이 다르네요. 아, 그러고 보면 빈트뮐러 상단의 사람들은 유독 첫인상을 못 맞추는군요.”


“빈트뮐러 상단의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샤를리즈 님과 저뿐 아닙니까? 저야 점잖다고 생각했을 테고, 샤를리즈 님은요?”


“음... 그냥 엄청 똑똑하고 교양 있는 여자?”


“하지만 성격은 더러운 여자죠.”


에단의 지적에 란은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그렇게 지적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물론, 까다로운 면이 있지만 그런 점이 매력이기도 하고요.”


“그거야 1년 정도밖에 알지 못했으니 그렇죠. 나는 꽤 오래 알았으니까... 나정도 되면 그 매력이 아주 신물이 날 정도로...”


“그러고 보면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들 들었는데, 혹시...”


란이 말끝을 흐리자 에단은 ‘또 이 레퍼토리인가?’라는 생각을 여실히 표정에 드러냈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성질 더럽고 챙겨야 하는 여동생이라고요. 도대체 오래 지냈으면 뭔가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어... 보통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모르죠. 하지만 제 경우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시군요.”


란이 빙긋 웃으며 대답하자 에단은 그제야 자신이 예민했다는 것을 깨닫고 헛기침을 한다. 역시 성격은 좋다. 에단은 괜히 미안해져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그... 오랜 시간동안 함께 있다 보면 성격 같은 것들이 옮곤 하죠.”


샤를리즈가 곤란할 때면 괜히 제 이름을 빌어 상황을 모면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에단이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그 또한 괜히 샤를리즈의 이름을 빌어 변명한다.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란은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 짜증 낸 거는 괜찮은데요. 뭐, 그럴 수도 있고. 그런 오해를 매일 받는 건 피곤한 일이니까요.”


“경험담입니까?”


“뭐.”


란이 묘하게 말을 흐리자 에단은 더 묻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오늘도 거절당하셨으니 이제는 어찌할 생각입니까? 차선책이나 그런 거 없습니까?”


“글쎄요. 그런 게 통할 여자도 아닌 것 같고. 덕분에 친구들에게는 엄청 원망을 사고 있죠. 그럼에도 오늘 만나지 못했으니 이후의 일정은 없고. 그래서 멍하게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가고, 또 내일이 되면 또 오고, 뭐 그렇겠죠.”


“참. 뚝심이 있는 건지. 아니면...”


“바보 같은 짓이죠. 그래도 왠지 이렇게 해야 할 것 같군요.”


“어째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샤를리즈 양은 지금 이걸 즐기고 있는 것 같거든요. 이왕이면 최대한 맞춰줄 생각입니다.”


그 말에 에단은 눈을 깜빡이다가 흥미롭다는 듯 턱을 매만졌다. 란은 그러한 에단의 반응에 멋쩍어하며 말했다.


“저 또한 그녀에게 얻어야할 것이 많은 사람이니까요.”






* * *






학자들과 귀족 청년들 간의 토론이 끝나고, 에드리안은 남아서 학자들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 뒤 짐을 챙겨 그의 시종에게 건네준 뒤 학처럼 왕궁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의 시종은 공작의 앨런처럼 다정하거나 적당히 말벗이 되어주는 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따지고 보면 과묵한 쪽에 가까웠고, 정도를 걷는 느낌이 강한 사내.


절대 잘못된 일은 하지 않고, 혹여 자신이 잘못된 일을 할라치면 핏대를 세우며 반대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외로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그래서 사실 에드리안은 편했다. 에드리안의 성격 상 잘못된 일은 거의 하지 않는데다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즐기지 않았으니. 비록 둘은 함께 걸을 때 말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둘은 서로를 상당히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이!”


꽤 공격적인 목소리에 그의 시종도, 그도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에드리안은 거의 반사적으로 인상이 돌아갔다. 동부의 후작 가문의 자제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영 아니꼬운 표정을 하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서자출신인 에드리안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무리들이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에드리안은 천한 핏줄이 섞인 ‘잡종’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귀족들은 제법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꽤 편하게 궁정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에드리안이 앞으로 물려받을 작위는 너무나도 높아서, 감히 차기 공작에게 밉보이면서까지 그런 주장을 할 만큼 강심장인 귀족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귀족들이 거의 없을 뿐,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눈앞의 저 치들이 바로 그러하지 않은가? 북부와 남부야 양 공작 가문이 버티고 있다지만 동부와 서부는 후작이나 백작 가문이 강세였다. 그 중 저 치의 가문은 동부에서도 내로라하는 가문으로, 그라니언이나 아스피트와 어느 정도 눈을 맞출 수 있는 가문이었다.


게다가 저들은 그들이 입이 닳도록 말하는 ‘순혈’이었고. 항상 아무도 없는 틈을 타 깨작깨작 거리더니 오늘은 꽤 본격적으로 그를 괴롭힐 모양이었다. 그 때였다.


“무슨 용무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식으로 부르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왕가가 아니고서야 감히 그라니언 가문의 자제분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불러 세운단 말입니까?”


생각지도 못한 그의 시종의 발언에 에드리안은 멍하게 눈만 깜빡였다. 그리고 그것은 저 치들조차 마찬가지인가보다. 그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의 시종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정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행동대장격인 이가 앞장서서 걸어와 시종의 멱살을 잡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가 들고 있었던, 에드리안의 물건들이 모두 쏟아졌다.


“감히 누굴 가르치려 들어? 시종이라는 놈이 윗사람들 이야기하는데 끼어들지 말라는 법도 배우지 못했느냐?”


“배우긴 했습니다만, 주인을 함부로 대하는 이에게 그런 법은 지킬 필요 없다고도 배웠습니다.”


“이 새끼가!”


행동 대장이 주먹을 들었다. 에드리안이 다급하게 다가왔지만, 그의 주먹은 시종을 가격하지 못했다. 오히려 날아간 것은 행동 대장이었다. 그 모습에 에드리안은 주저앉고 싶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얌전히 맞지 않을 것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귀족 자제를 밀치다니. 그것도 저 자제의 집안은 꽤 영향력 있는 집안인지라 에드리안의 수준으로는 입막음을 시킬 수도 없었다. 적어도 왕이나 공작 수준은 되어야 하는데!


“천한 핏줄이 섞인 녀석의 수족이다 보니 예의범절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것 같군. 그렇지 않나? 보아하니 오늘은 옆에 붙어 다니던 엘루이즈 드 스웨어도, 클랜디스 드 로즈퍼드도 없는데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실까? 우리 어린 그라니언께서는?”


“흥! 그러고 보면 저 자식은 항상 해실거리며 뒤에 빠져만 있지. 결국 악역은 제 친구들에게만 맡게 하고 말이야. 비겁한 새끼.”


작가의말

이제 너무나도 한가로워져서 자주 연재할 수 있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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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31 808 23 11쪽
175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3 13.10.25 804 25 10쪽
174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4 13.10.21 939 23 10쪽
173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4 13.10.18 703 20 13쪽
172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16 802 25 10쪽
171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13 905 24 8쪽
170 제 13막. 사냥. +9 13.10.11 1,063 27 9쪽
169 제 13막. 사냥. +5 13.10.08 975 37 10쪽
168 제 13막. 사냥. +9 13.10.02 954 26 14쪽
167 제 13막. 사냥. +7 13.09.28 1,615 35 9쪽
166 제 13막. 사냥. +8 13.09.24 952 28 11쪽
165 제 13막. 사냥. +6 13.09.19 999 29 12쪽
164 제 13막. 사냥. +9 13.09.14 1,445 30 10쪽
163 제 13막. 사냥. +4 13.09.12 2,916 45 10쪽
162 제 13막. 사냥. +4 13.09.10 2,859 38 11쪽
161 제 13막. 사냥. +5 13.09.06 2,045 40 9쪽
160 제 13막. 사냥. +5 13.09.01 1,115 26 10쪽
159 제 13막. 사냥. +8 13.08.29 4,180 36 9쪽
» 제 13막. 사냥. +7 13.08.26 1,525 28 12쪽
157 제 13막. 사냥. +3 13.08.17 2,162 37 11쪽
156 제 13막. 사냥. +2 13.08.10 2,700 21 9쪽
155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8.03 1,148 18 9쪽
154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7.27 1,015 25 11쪽
153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4 13.07.20 953 18 23쪽
152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2 13.07.13 1,022 21 13쪽
151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4 13.07.06 925 15 15쪽
150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6.29 2,752 28 15쪽
149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2 13.06.22 982 19 16쪽
148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6.15 1,010 1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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