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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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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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1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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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 13막. 사냥.

DUMMY

그 때 프랜시스 드 블라라트-그는 블라레트 가문의 장남이었기 때문에 사실 이러한 논쟁에는 관심이 없는 자였다.-가 말했다.


“하지만 그 차남이라는 자, 장남인 에녹 경을 굉장히 많이 따른다더군요. 게다가 공공연히 작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데다가 제 형과는 척을 지고 싶지 않다고 뜻을 이미 밝혔고요. 물론, 뛰어난 자이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제 뜻을 밝힌 자에게 줄을 댄다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관심이 없는 것치고는 꽤 정확한 지적이었기에, 먼저 말을 꺼낸 자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프랜시스는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에 만족을 했는지 옅은 미소를 띈 채 말을 이었다.


“한 번 때를 기다려 봅시다. 어차피 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몇 달 후에나 일어날 겁니다. 게다가 어쩌면 태자 저하께서 직접 나설 지도 모르고, 혹은 그라니언이 개입할 지도 모르지요. 아시다시피 아스피트의 세력보다 그라니언의 세력이 현저하게 강한 지금, 아스피트 령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라니언에서 원군을 보내줄 수도 있죠. 그렇다면, 그 때는 그라니언 쪽에 서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라니언 가문에는 검을 들고 싸울 이가 별로 없으니... 게다가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그 때는 시국이 또 어찌 되어 있을지.”


그렇게 말하며 프랜시스는 창가에 앉아있는 란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는 분명 이쪽을 바라보고 호응을 하고 있었지만,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놓칠 리 없는 프랜시스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그들이었으니까.


프랜시스의 인상은 저절로 돌아갔다. 저것도 재주면 재주다. 마치 머리를 두 개로 가른 뒤 한 쪽은 이쪽에 신경을 쓰게 하고, 다른 한 쪽은 제가 좋아하는 분야만 신경 쓰게 하면 되니까. 문제는 그러한 사실을 아는 이쪽에서는 매우 분통터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럼 이만 일어날까요?”


한 사내가 말하자 다른 사내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프랜시스는 빙긋 웃은 뒤 말했다.


“그럽시다. 꽤 오래 앉아있었군요. 아, 저는 크로프츠 씨와 따로 할 말이 있으니 먼저들 나가십시오. 계산은 제가 다 할 테니까...”


“매번 고맙습니다, 블라레트 경. 우리 수준에 이런 곳은 출입하기도 힘든데...”


의례적인 인사에 프랜시스는 특유의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마찬가지로 의례적인 답변을 한다.


“아닙니다. 여러분과 이야기하면 제 식견이 더 넓어지는 느낌을 받는데, 그게 얼마나 즐거운지. 블라레트 령에만 박혀 있었으면 절대로 알 수 없었던 일이지요.”


그 말에 사내들은 아니라는 둥 훈훈한 미소로 답한 뒤, 하나 둘 씩 방을 나갔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남은 사내가 꽤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는 물었다.


“헌데, 블라레트 경. 크로프츠 씨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예?”


“항상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분이 갑자기 오늘은 조금... 뭐랄까? 시들해졌다고나 할까. 혹시 전쟁이나 이런 쪽에 관심이 없는데 괜히 우리끼리 떠들었나 싶어서 죄송하기도 하고. 아시다시피 크로프츠 씨는 정말로 좋은 분이시지만 뭐랄까?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존재 같은 느낌이 계속 들어 직접 묻지는 못하고, 이렇게 블라레트 경께 묻는 겁니다. 아, 물론 블라레트 경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아닙니다. 저 친구가 그런 면이 있지요. 어린 시절부터 그랬어요.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한 건지는 잘 알겠습니다. 어... 저 친구가 요즈음 부쩍 저러내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아프거나, 오늘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제가 나중에 한 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저도 저 친구를 잘 모르겠어서요. 아무튼 예...”


프랜시스는 무어라 횡설수설했고, 그것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사내도 프랜시스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란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사실만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사내는 어색하게 웃은 뒤 방을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프랜시스는 짜증이 어린 표정으로 걸어가 란에게 소리쳤다.


“도대체 뭐하고 계신 겁니까!”


그에 정신을 퍼뜩 차린 란은 주변을 둘러본다. 그제야 다른 이들이 모두 떠났다는 것을 깨달은 표정이다. 인사도 제대로 나눈 주제에 말이다! 프랜시스는 제 몸에 있는 짜증을 모두 토해내듯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요즈음 왜 그러십니까? 거의 한 달째 이러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득이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네. 인지도가 전혀 없는 나로썬 이번에 일어나게 될 전쟁이 형님의 인지도를 누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 하지만 아스피트 쪽의 힘만 빌렸다간, 차후 내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들을 누를 수 없으니 그라니언 쪽의 힘도 빌려야 할 테고. 그리고 두 가문을 견제할 제 3의 세력도 필요하다는 거 아닌가?”


제대로 듣지도 않은 주제에 정확하게 요점을 파악하고, 말해내는 란의 여유로운 모습에 프랜시스는 이를 으득 갈았다. 재수 없을 정도로 얄밉지 않은가! 누구는 몇 시간동안 다른 이들의 말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다른 생각만 주구장창 해댄 주제에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 잔소리를 할 수도 없고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프랜시스는 란을 노려보다가 말했다.


“이제는 저도 알아야겠습니다. 다른 이들도 조금씩 눈치 채기 시작했다고요. 저하께서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시다는 걸요. 무엇입니까? 도대체 빈트뮐러 상단의 무엇이 저하를 그렇게 괴롭히는 겁니까?”


“자네가 알 게 아니라니까?”


“샤를리즈 양입니까?”


미세하지만 란이 움찔했고, 프랜시스는 그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란에게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주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둘은 어렸을 적부터 친했기에 그러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프랜시스는 마치 란을 분석이라도 하는 듯 빤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맞았군요. 그 아가씨가 문제였어요.”


“뭐, 크게 본다면 그런 셈이긴 하지만 아마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


“내 여동생들도, 해치필드 가문의 여식들도, 그리고 그라니언 가문의 외동딸도 길가의 돌처럼 여기더니...”


“그러니까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쪽으로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그럼 뭡니까? 부끄러워할 거 없습니다. 뭐, 샤를리즈 양은 미인이니까요. 확실히 그 아가씨는 고전적인 미인상이고, 제 동생들은... 미인은 아니죠. 그리고 그건 해치필드 가문의 여식들도 마찬가지이고. 그나마 프리실라 양은 미인이지만, 고전적인 미녀상은 아니죠. 아, 샤를리즈 양은 또 ‘붉은 머리’죠. 그러고 보면 저하의 취향은...”


“그런 게 아니라잖아! 그냥 문제가 좀 있었어. 자네한테는 말할 수 없는 문제가.”


“제게 말 못할 문제가 뭡니까? 저는 저하와 사적인 문제도 항상 나눠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럼 공적인 문제라고 생각해두면 되지 않나?”


“그런 것이라면 더더욱 말씀하셔야죠.”


프랜시스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여자들과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했고,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블라레트 가문의 여식이나, 해치필드 가문의 여식들과도 기본적인 대화 이상은 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이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이런 식으로 호기심을 보여 오니까.


란은 더 이상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는 듯, 프랜시스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조금씩 풀리고 있었고, 덕분에 길거리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그 중 시선을 확 끄는 이가 있었다.


하얀 양산을 쓰고 있는 여자였는데, 그녀는 애매하게 양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의 고개가 정확하게 이쪽 창가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란의 시선을, 그녀가 끌었다는 것을 눈치라도 챘는지 그녀의 양산이 살짝 움직였다.


붉은 머리칼이 언뜻 비쳤고, 그 여자의 눈과 란의 눈이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여자의 양산은 다시 여자의 얼굴을 가리었고, 석고상처럼 가만히 서 있던 여자가, 움직였다. 란은 벌떡 일어났고, 그에 놀란 프랜시스가 란의 팔을 반사적으로 잡았다. 그러자 란의 미간이 순식간에 찌푸려졌다.


“무슨 짓인가!”


“어디 가십니까?”


“갔다 와서 이야기하지. 급하네!”


직접 찾아갔을 때는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주제에 지금은 저렇게 잡아보라는 듯 얼굴을 내밀고는 도망가고 있지 않은가! 마지막에 보았을 때, 그렇게 말을 던져 놓았으니 언젠가는 얼굴을 보일 것이라고는 생각했었다. 그래서 구걸하다시피 빈트뮐러 상단을 매일같이 들락날락거렸고, 프랜시스의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오다니. 마치 여태까지 자신의 노력을 비웃는 것 같지 않은가. 란은 프랜시스를 뒤로 한 채 ‘몰리노’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거리의 가운데에서 주변을 둘러본다. 이런 거리-사교장들이 있는 거리에 귀족 여성들이 들락거리는 것은 요즘 시대에서는 드문 일이었다.-에서 흰 양산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멀리, 마치 흰 나비처럼 너울거리는 흰 양산을 발견한 그는 그 즉시 달렸다. 따라 잡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 여자는 마치 잡아 보라는 듯 천천히 걷고 있었으니까. 란은 여자의 팔을 잡았고, 여자의 몸이 일순간 흔들렸다. 순간, 이러한 상황을 언젠가 겪은 적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을 떠올리기 전에, 여자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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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1.05 760 22 14쪽
176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31 808 23 11쪽
175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3 13.10.25 804 25 10쪽
174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4 13.10.21 939 23 10쪽
173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4 13.10.18 703 20 13쪽
172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16 802 25 10쪽
171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13 904 24 8쪽
170 제 13막. 사냥. +9 13.10.11 1,063 27 9쪽
169 제 13막. 사냥. +5 13.10.08 974 37 10쪽
168 제 13막. 사냥. +9 13.10.02 953 26 14쪽
167 제 13막. 사냥. +7 13.09.28 1,615 35 9쪽
166 제 13막. 사냥. +8 13.09.24 952 28 11쪽
165 제 13막. 사냥. +6 13.09.19 999 29 12쪽
» 제 13막. 사냥. +9 13.09.14 1,445 30 10쪽
163 제 13막. 사냥. +4 13.09.12 2,916 45 10쪽
162 제 13막. 사냥. +4 13.09.10 2,859 38 11쪽
161 제 13막. 사냥. +5 13.09.06 2,045 40 9쪽
160 제 13막. 사냥. +5 13.09.01 1,115 26 10쪽
159 제 13막. 사냥. +8 13.08.29 4,179 36 9쪽
158 제 13막. 사냥. +7 13.08.26 1,524 28 12쪽
157 제 13막. 사냥. +3 13.08.17 2,162 37 11쪽
156 제 13막. 사냥. +2 13.08.10 2,700 21 9쪽
155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8.03 1,148 18 9쪽
154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7.27 1,014 25 11쪽
153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4 13.07.20 952 18 23쪽
152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2 13.07.13 1,021 21 13쪽
151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4 13.07.06 925 15 15쪽
150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6.29 2,752 28 15쪽
149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2 13.06.22 981 19 16쪽
148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6.15 1,010 1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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