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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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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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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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0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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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DUMMY

샤를리즈가 재빨리 몸을 틀어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이봐요! 잠깐만!”


뒤에서 들려오는 란의 외침은 무시한다. 태어나서 이렇게 빨리 계단을 내려가는 건 처음이었지만,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이런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제 모습이 우스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사실은 그게 아니다. 란에게 이런 충격을 줄 수 있는 자신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워서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멀리서 프리실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프리실라가 있는 이상 자신을 쫓아올 수는 없겠지. 그 정도로 사리분별 없는 남자는 아니다. 2층을 올려다보고 싶었지만 참는다. 정말로 웃음을 터뜨릴 지도 몰라서.


그래서 샤를리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택을 나왔다.


“어디로 모실까요, 아가씨?”


“상단으로요.”


“알겠습니다.”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자 샤를리즈는 그 안으로 쏙 들어가 최대한 몸을 기대며 편하게 앉았다. 그리고는 커튼을 열어 밖을 바라보았다. 마차가 덜컹거리더니 움직이기 시작했고, 샤를리즈의 머릿속도 어지러이 움직였다. 신관 데스마타와 애나마리아의 예언.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진 촌극 같은 이야기들. 공작은 선왕을 무서운 이라고 말했지만, 객관적인 사실만을 들은 샤를리즈는 그가 참 어설프다고 생각했다. 현명하지만, 동시에 어리석었던 자. 고작 신관의 말에 휘둘려 일을 이렇게까지 끌고 온 것이다. 뭐, 문제는 그 예언들이 다 맞았다는 것이었지만.


“아니지...”


샤를리즈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신관 데스마타가 했던 두 번째 예언이었던가? 선왕의 아들은 선왕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그건 틀린 예언이 되었다. 적어도 샤를리즈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란은 분명 현명했지만 그런 예언 따위에 휘둘릴 정도로 감정적인 남자가 아니다. 그리고 적어도 광기 같은 것도 없었지. 있었다면, 그녀가 놓칠 리 없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온 그녀이다. 작은 실마리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수없이 그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리고 제 목적을 위해 윤리의식 하나 없이 사람을 휘두르는, 그런 자는 아니었다, 란은. 그는 조금 더... 명분을 중요시하는 그런 사람이지. 샤를리즈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만약, 만약에 그 예언이 옳았다면, 선왕의 광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 * *






꽤 빠른 걸음으로, 그러나 우아하게 클랜디스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먼 나라의 조각가들이 최고로 아름다운 비율로 만들었다던, 신의 형상을 한 조각처럼 아름다운 그의 얼굴은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한 방문 앞에 서서는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린다.


“피곤해 죽겠네, 이 짓거리도.”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각을 잡고,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연다. 동시에 날아오는 꽃병에 클랜디스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날카로운 소리가 조용한 복도를 울렸다. 참담하게 깨진 꽃병을 빤히 바라보던 붉은 눈이 방안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아름다운 여자가 씩씩거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클랜디스는 고개를 숙여 그의 환한 금발을 쓸어 넘겼다. 그리고는 말한다.


“무슨 일이야, 올리비아? 환영 인사치곤 너무 격한데.”


“어쩔 거야!”


“뭐가?”


“내가 그렇게 조심해야 한다고 그랬는데!”


그 말에 클랜디스는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복도로 고개를 돌렸다. 미세한 미소가 그의 입가를 스쳐지나갔으나, 여자는 그를 보지 못한 듯했다. 클랜디스는 문을 닫고 그녀에게 걸어가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 쥐며 물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래층엔 하녀들이 있지. 당신의 직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은 하지 마. 그녀들의 입에 당신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건 불쾌하니까.”


“다정하게 굴지 마! 지금은 그런 거에 감동받을 기분 아니니까!”


“도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난 걸까? 난 최근 당신한테만 집중하고 있었다고. 덕분에 요즈음은 난봉꾼이라는 별명도 듣기 힘들 정도지. 이렇게 순애보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야. 그런데 왜...”


“아이를 가졌어!”


그 말에 클랜디스는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그러나 작위적인 표정. 그의 붉은 눈동자가 반짝이려던 찰나 클랜디스는 눈을 감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올리비아는 한동안 몸부림치다가 이내 그의 품안에 안기며 말했다.


“불안해 죽을 것 같아. 그 이 몰래 나는 움직일 수 없는데. 그렇다고 아이를 죽이는 짓은 못해... 어떻게 그런 짓을 한단 말이야.”


“알아. 당신이 얼마나 아이들을 좋아하는지. 그래서 당신의 딸, 프리실라도 그렇게 아꼈던 거잖아. 당신은 그 애에게 동생을 선물하고 싶어 했었지, 프리실라가 태어난 이후로 항상.”


“윽... 이건,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 이가 날 이렇게 버려두지만 않았어도... 내가...”


셔츠가 젖어드는 게 느껴지자 클랜디스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여전히 상냥하게 말했다. 그 어떤 얼음도 녹일 수 있을 정도로 상냥하게.


“그래, 이건 당신 잘못이 아니야. 이건 모두 각하의 잘못이지. 당신을 내팽개친 각하 말이야.”


“어떻게 하지? 난 이제 그 이가 무서워. 무서워서... 아이를 가진 걸 알면 당장에... 아니, 나뿐만이 아니라 프리실라에게까지... 어떻게...”


“나한테 맡겨. 내가 말할 테니.”


“뭐?”


올리비아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클랜디스는 그녀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며 그녀의 금발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는 내게 빚이 있으니까 날 건드리지는 못할 거야. 그리고 그의 약점을, 당신도 잘 알잖아? 뭣하면 그가 원하는 걸 들어줘버려.”


“뭘? 내가 그 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샤를리즈라고 했던가? 에드리안의 친누이 말이야.”


클랜디스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올리비아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는 클랜디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고 그의 품에서 떨어져 소리쳤다.


“그 애는 인정 못해! 에드리안, 그 아이야 남자 아이니까. 내 욕심 때문에 가문의 대를 끊을 수는 없으니...! 하지만 에드리안까지만이야! 네가 그 계집애를 못 봐서 그렇지!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제 어미를 꼭 닮았어. 주제도 모르는 그 눈과 말이야! 거기다 생각하는 건 그 이를 닮았지. 내가 그 애를 인정한다 해서... 그래서 이제 와서 그 계집애가 나에게 길거라고 생각해? 천만에! 오히려 나와 프리실라를 내치려고 작정을 하고 덤빌 거야! 안 그래도 에드리안이 들어오고 나서는 기세등등해져서...”


극도로 흥분한 올리비아가 횡설수설하며 소리치자 클랜디스는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진정해, 올리비아. 뭐가 문제야?”


“뭐? 내가 지금까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했어?”


“아니, 다 이해했어. 결국 그 계집이 두렵다는 거잖아.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나?”


클랜디스는 천사처럼 환하게 웃은 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악마처럼 속삭였다.


“그라니언 가의 일원으로 정식으로 인정받은 뒤 길길이 날뛰기 전에, 죽여 버리면 될 것을.”






* * *






눈물로 젖은 셔츠를 갈아입은 뒤 클랜디스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야 모든 말이 갖추어져 가는군요. 기쁘시겠어요?”


“아무렴 너만큼 기쁠까.”


커튼 뒤에서 한 노인이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는 갈색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는데, 눈동자는 클랜디스의 그것과 꼭 닮아 있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너무나도 다른 외모를 가진 둘이었으나, 그 눈빛이 너무나도 강렬하여 둘을 동시에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둘이 혈연관계임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클랜디스는 빙긋 웃은 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쁘다마다요. 이제야 우리들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는데. 할아버지는 어떠세요?”


노인은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딸이 살아있었다면, 우리들보다 더욱 기뻐했을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쭉 공들여왔던 일이 드디어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분위기 가라앉는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요. 지금은 그저 기뻐해요. 나는 왕족으로써 직위를, 그리고 할아버지는 대신관으로써의 직위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을!”


클랜디스가 어린아이처럼 팔을 펼치며 말하자 노인, 데스마타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작가의말

12막끝입니다.

최종정리

1. 로즈퍼드 부인과 선왕(란의 아버지) 사이에서 나온 자식이 클랜디스.

2. 란과 클랜디스는 이복형제.

3. 그러므로 현재 공작부인이 가진 아이는 크로이츠 왕가(샤를리즈 나라)의 피와 스니케드 왕가(공작부인의 친정)의 피를 가진 셈.

4. 클랜디스가 태어나기 전에 왕이 죽었기 때문에 모든 이들은 클랜디스가 선왕의 아들임을 모른다.(정식으로 인정받지 않았으므로.)



이 설정들이 차후에 중요해서 무리를 해서 12막을 끌고 왔습니다.

저에게도 독자분들에게도 힘든 막이었네요.

Next chapter : 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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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31 808 23 11쪽
175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3 13.10.25 804 25 10쪽
174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4 13.10.21 939 23 10쪽
173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4 13.10.18 703 20 13쪽
172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16 802 25 10쪽
171 제 14막. 돌이킬 수 없는. +5 13.10.13 905 24 8쪽
170 제 13막. 사냥. +9 13.10.11 1,063 27 9쪽
169 제 13막. 사냥. +5 13.10.08 975 37 10쪽
168 제 13막. 사냥. +9 13.10.02 954 26 14쪽
167 제 13막. 사냥. +7 13.09.28 1,615 3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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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제 13막. 사냥. +5 13.09.01 1,116 26 10쪽
159 제 13막. 사냥. +8 13.08.29 4,180 3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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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제 13막. 사냥. +2 13.08.10 2,700 21 9쪽
»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8.03 1,149 18 9쪽
154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7.27 1,015 25 11쪽
153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4 13.07.20 953 18 23쪽
152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2 13.07.13 1,022 21 13쪽
151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4 13.07.06 926 15 15쪽
150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6.29 2,752 2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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